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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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참 따뜻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 여겼다. 처음엔 잔소리꾼에, 깔끔쟁이에 보통 사람이 싫어할 말만 하고 다녀 독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들이지만 어느새 그들에게 빠지게 하는 효과를 지녔다. 주인공들이 했던 행동들이 타인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소설은 초반부터 인물들이 너무 많았다. 많은 인물들을 파악하느라 더디 읽혔다고 보는게 옳다. 베어타운의 가족들의 이름, 아이들, 그들의 친구들의 이름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는 쉴새 없이 읽히는 게 이 소설의 장점이다. 베어타운은 하키로 똘똘 뭉친 공동체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하키 선수이며 그들의 가족이며, 하키부가 소속된 위원회이며 혹은 하키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1페이지)로 소설이 시작된다.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느라 소설의 첫 장이 잊힐즈음 서서히 드러나는 게 이 소설의 백미다. 기타를 사랑하는 소녀 마야, 그 소녀의 단짝 아나, 하키부 단장인 아빠 페테르, 변호사인 엄마 미라가 있다. 하키부 단장인 아빠 페테르는 자신의 스승 소네를 A팀 코치 자리에서 잘라야 한다. 그 자리를 청소년팀 코치인 다비드를 보내야 한다는 이사회의 결정을 들었다. 다비드 또한 소네의 제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하키팀을 이끄는 코치나 단장, 사장, 이사회는 '이겼느냐'가 중요하다. 과정은 필요없다. 다비드가 청소년팀에게 하는 말도 '이겨라'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다. 이기는게 중요했다. 청소년팀을 승리로 이끌 선수는 케빈이다. 케빈을 전담 마크하는 이들을 물리치는 아이가 케빈의 친구 벤이(벤야민)고. 준결승전에서 승리한 날 베어타운의 모든 사람들은 승리를 축하하고, 아이들만의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를 모른척 허락해 주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술을 마시던 이들. 서로에게 호감이 있던 소년과 소녀. 열여덟 살의 소년이 열다섯 살의 소녀를 성폭행했다.

 

 

 

성폭행 당한 아이는 방에 틀어박히고, 가해자는 버젓이 운동을 계속한다. 성폭행 사건이 본격화되자 베어타운의 사람들은 소녀를 탓한다. 좋아서 같이 자놓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베어타운 하키팀의 승리와 한 아이의 고통을 놓고 보았을 때 무엇이 중요한가, 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이를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모른척 했던 부모의 심정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소녀와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모른척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부모가 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나 또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리라.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245페이지)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소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비난해도 한 아이의 고백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허리가 아픈 엄마의 편한 일자리와 5천 크로네의 큰 돈이 있었음에도 용기를 냈던 것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비록 성폭행 가해자인 소년이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이것이 소설이 가진 힘이다. 물론 소설의 첫 문장에서처럼 스스로 단죄를 가해 그가 영원히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수도 있다. 한 마을의 공동의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한 개인의 안위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 소녀를 비난하고 소년을 환호했다. 마을의 영웅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말은 하찮은 것이다. 다들 얘기하길 말로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들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322페이지)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374페이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나는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엿보았다. 어떤 행동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집단과 개인의 차원에서 세세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사건을 똑바로 보고 고통을 느끼는 이들의 입장에 서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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