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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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너무도 평범하게 진행이 될때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일탈을 꿈꾼다고 해서 생각대로 일탈을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서라도 상상의 나래를 펴며 평범한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가정에 별 일이 없어서 이고, 가족의 누군가 아프거나, 가족 모두가 힘들어 할 시련이 닥쳐 왔을때에야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굉장히 좋은 것임을 깨닫는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 들었음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다만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랄뿐.

 

 

일상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써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번째 라디오다.

글을 읽는게 아니라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솔직한 단상들을 일주일에 한번씩 일본 잡지 '앙앙'에 연재 했던 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매일의 라디오, 누군가의 일상, 솔직하게 말하는 글을 들으며 우리는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보통의 음악들처럼 하루키의 글들도 그렇게 솔직하게 다가왔다.

 

 

무라카미의 세 번째 라디오를 읽고, 이젠 첫 번째 라디오를 만났다.

삽화가 없었던 기존의 판 본이 아쉬움을 주었던 것에 오하시 아유미의 삽화를 넣어 새로이 펴낸 작품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에세이 한 편에 오하시 아유미의 삽화 두 편을 실어 에세이를 삽화와 함께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정말이지 그의 평범한 일상을 보는 것 같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며,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들이며, 비행기 안에서 음료를 시킬때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블러드 메리'를 시킨다든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른 나라 사람이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인데도, 그의 일상은 아주 평범하구나, 특별한게 없구나 싶다. 이런 그의 솔직한 단상들이 오히려 그에게 호감이 갖게 하는 것 같다.

 

 

하루키 씨는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에 특별한 식당에 간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식당에는 하루키 씨 부부와 젊은 한쌍의 남녀가 있었는데, 옆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며, 깊은 사이가 되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페로몬을 머금은 안개가 자욱하게 떠다니고 있었는데, 곧이어 들리는 소리에 하루키 씨 부부와 웨이터도, 소믈리에도, 남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여자도 얼어붙었다고 했다. 바로 젊은 남자의 '츠르릅 츠르릅'하고 엄청난 소리를 내며 파스타를 먹는 소리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키씨는 그 커플이 어떤 운명의 길을 걸었을까 문득문득 궁금해진다고 썼다.

 

 

이 대목에서 나의 한 연애사가 생각이 났다. 내가 많이 좋아했고, 그 남자는 약간 뜨뜻미지근했던 사이였는데, 내 친한 친구에게 그를 소개했다. 같이 밥 먹는 자리에서 그 남자가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다며 내 친구가 싫다고 했다. 나는 그가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다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친구는 그 남자와 헤어지라고 난리였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덜 좋아하는 것이 싫었을 수 있고, 진짜로 소리를 내며 먹는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는 헤어지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이 싫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쩝쩝' 거리며 먹는 사람과 헤어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에는 헤어졌는데, 파스타를 맛있게 먹던 그 커플은 어땠을까 나도 궁금해진다.

 

 

여러분들은 컴퓨터 부팅이 될때 그 시간동안 무얼하시나요?

 

나 같은 경우는 사무실에서는 컴퓨터를 켜놓고 비번을 넣고 부팅이 되는 사이에 자잘한 일들을 하고, 집에서는 읽고 있던 책 몇 페이지를 보거나, 스마트 폰을 보곤 한다. 반면 하루키 씨는 부팅이 되는 그 시간동안 짤막한 동화를 읽는다고 했다. 줄거리가 복잡한 소설이나 킬링타임용 잡지 보다는 오래된 동화집을 읽는다고 했다. 컴퓨터 화면이 다 떠도 더 읽어도 좋을 것이라며 동화의 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동화의 뒷이야기에 궁금증이 일게 하기도 한다.

 

 

아주 소소하고도 솔직한 그의 단상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얼굴에는 그의 잔잔하게 다가오는 글처럼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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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
우영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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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적에 역사 시간에 배웠던 '묘청의 난'을 새롭게 조명하는 책을 만났다.

고려시대, 서경 출신의 묘청은 풍수지리설에 의거, 개경의 지덕이 쇠약한 때문에 고려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판단, 서경 출신의 정지상과 백수한 등의 지지를 받아 당시의 왕이었던 인종에게 서경으로 천도를 옮길 것을 제안하였다. 인종은 서경의 명당인 임원역에 '대화궁'을 짓게 하였고, 반면 경주 출신의 김부식은 서경천도계획을 극구 반대하였고, 인종은 서경천도계획을 단념하고, 묘청은 반란을 일으켰다.

 

 

인종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했던 이자겸의 난을 비롯, 우리 역사서에 있는 난들이 왕권을 도전하는 난들이 있었던데 비해, 묘청의 난은 왕권을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라고 지었으며, 새로운 왕을 옹립하지 않았다. 이는 새로운 왕을 세우기보다는 현재의 인종을 왕으로 세우고, 단군 왕검이 나라를 세웠던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최후의 결전』은 묘청의 난을 재구성한다.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고조선을 세웠던 단군 왕검의 뜻을 이루어 북방으로 나가려 했고, 자주적인 고려를 찾고자 한 정지상과 중국의 유학사상을 바탕으로 지금의 고려를 유지하고 싶은 김부식의 한판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고자 한 일이었다. 서경파와 신라 출신인 김부식의 동경파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서경파인 정지상은 운명을 바꾸려 했고, 동경파인 김부식은 권력을 지키려했다. 묘청이 뜻이 아무리 위대하였다고 해도, 그는 대결에서 패한자다. 묘청의 난이 끝난 후 김부식은 승승장구했고, 인종의 곁에서 다시 권력을 그러쥐었다.

 

 

고려의 권력 구조가 개경 세력과, 개경 세력을 견제하는 서경 세력으로 인해 권력이 균형을 이루었다면, 묘청의 난으로 인해 묘청과 함께 서경천도계획에 참여했던 정지상 등이 죽고나서는 개경의 문신 세력들이 독주를 하게 되었다. 힘이 없던 인종의 곁에서 김부식등의 문신세력들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여겼고, 문신 귀족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문제들이 후에 무신 정변을 일으켰다 하니, 권력을 향한 욕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정지상과 김부식의 대결을 그린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역사를 있는 그대로 써낸 역사서적인줄 알았다. 묘청의 난을 일으켰던 배경과 정지상과 김부식의 대결을 역사서로 써냈다면 역사의 진실을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이어서 더 흥미진진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예를 들면 정지상의 여인을 가상의 인물로 내세웠던 점이 그랬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그토록 읽어주었던 삼국사기도 이긴 자의 역사를 다르게 쓰기였던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이처럼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다. 기록을 남길때 자신들이 했던 잘못은 슬쩍 빼버리고, 역사를 새롭게 쓰기도 한다. 이런 면을 이 소설에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역사서를 읽는다는 것은 역사를 새로이 보는 시각을 열어주는 일인 것 같다. 잊고 있었던 역사적 지식을 기억해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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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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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하게되고, 그 사람과 몇년을 살때까지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또는 그 사람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 말고 진실한 내면을 알수 있는가. 또는 이해할 수 있는가.

 

 

굉장한 찬사를 받았던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는 결혼하고 5년을 산 부부의 각자의 내면의 깊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가지게 만든 작품이었다. 맨처음 배우자를 만났을때의 그 두근거림, 설렘, 사랑으로 가득찬 나날들이었을것이다. 어느 정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숨기고, 잘 보이고 싶고, 좋은 모습만을 보이고 싶지만, 여러 해를 살다보면 그이의 습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습관 등을 하나하나 알아 가게 된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그 사람의 사소한 습관까지도 알수 있는 가족으로 변하게 된다. 설렘보다는 편안함이 더 자리하는 곳. 때로는 권태기가 찾아와 다른 이를 마음에 품기고 하고 바람을 피우는 일까지 생긴다. 누군가 그러더라. 결혼해 10년쯤 살다보면 '그저 가족'이라고. 어떤 이는 남편과 자신을 가리켜 '우리는 형제'라는 말까지 하더라.

 

 

 결혼 5주년을 맞아 아내인 에이미가 사라지고, 결혼기념일마다 하곤 했던 보물찾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녀가 남긴 보물찾기 쪽지를 발견했던 것이다. 에이미가 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최근에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에이미는 미소를 지으며 아침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경찰들이 오고, 에이미가 남겨둔 보물찾기 단서를 찾아가던중 닉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에이미가 사라지는 날 부터의 닉의 시점, 7년전 처음 닉을 만나 일기를 써 온 에이미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이 된다. 우리는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진실된 속마음, 그동안 멀리해 왔지만, 아내에 대한 측은한 마음도 생겼고, 식었던 사랑이 다시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점점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고 닉이 에이미를 죽였을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TV 매체의 여론도 닉에게 적대적이 되어간다.

 

 

대중과 가까운 사람들, 흔히 연예인 부부들 중에 '쇼윈도 부부'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에서는 남남처럼 지내지만 대중에게 보일때는 한없이 다정하고, 사이좋은 잉꼬부부처럼 보여주는 걸 일컫는 말이다. 책 속에서 에이미의 부모는 에이미를 주인공으로 한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시리즈로 된 책을 쓰고 있었다. 에이미는 '어메이징 에이미'와는 전혀 다른 애인데, 부모앞에서는 자신의 진짜 에이미를 감추고, '어메이징 에이미'처럼 행동하게 된다. 외동인 자신에게 모든 기대를 거는 부모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부모에게는 에이미 이외에 다른 어린애는 없었으므로. 부모의 큰 기대가 아이를 망칠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였다.

 

 

모든 여자들에게 부러움을 주는 사랑스러운 에이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을때, 닉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을때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에이미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부부가 있다면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났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닉은 에이미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을수 있을까. 에이미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린 여자애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이 되고, 임신한 아내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데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수많은 의문으로 가득찬 소설이었다.

읽어갈수록 닉을 미워하다가 또 에이미를 미워하다가 결국에는 이 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었을때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람과, 그 모습이 가짜 모습인것처럼 변했다고 느꼈을때 불륜을 저지르거나 의문을 남겨놓고 사라지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다시 가정을 꾸렸을때 그들은 서로 진정으로 이해하며 살수 있는가. 나는 이게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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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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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시간이 날때마다 내게 전화를 하신다.

딸들이 하나같이 무심하여 아버지에게 안부전화도 하지 않으니,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를 하신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전화를 하신다. 때로는 아버지의 전화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남동생과 싸운 이야기, 서운한 이야기, 엄마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 직장에서 있었든 일들을 마치 일기를 쓰시듯 그렇게 전화하시는 걸 보며 때론 귀찮을 때도 있다. 그렇게 자주 전화를 하시니 나는 역시나 전화를 먼저 걸지 않고 그렇게 받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안부를 듣는다. 습관처럼 그렇게 전화하시는 이유가, 딸과 사위의 안부를, 손주 녀석들의 안부를 듣는 게 유일한 기쁨이라 하신다. 사실 아버지 젊었을 적엔 술드시고 오면, 우리를 잠 못자게 하시곤, 일렬로 앉혀놓고 노래를 시키시거나, 잔소리를 하셨다. 엄마에게 잘 못하시는 아버지가 싫었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날마다 가출을 꿈꾸었었다.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달아나 혼자만의 시간을 꿈꾸었다. 결혼하면 친정집은 절대 오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자리가 많이 컸다는 걸 알수 있었다. 가족끼리 모여 술자리라도 가지면, 우리 딸들은 아버지한테 서운했던 옛날 이야기들을 꺼내놓기도 하지만, 아버지와의 시간을 즐긴다. 연세가 드셔 자식들을 챙기는 아버지를 우리는 많이 이해하려고 했다. 많은 시간을 지내오면서 우리는 아빠를 이해하고 있고,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함께하는 시간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는 중에 박범신이라는 이름만으로 작가의 신작을 구입했는데  신작 『소금』은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였던 것이다. 만약 소금밭에서 일하는 염부가 소금밭에 코를 박고 죽었을때, 그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염부 1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옆에서 작업하고 있는 염부 2가 있듯. 그렇게 무감하게 염부의 죽음을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나의 아버지라면 염부 1은 염부 1이 되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빌어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했다.

책 속에서는 이 책의 화자인 박 시인의 아버지 이야기를,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의 이야기를, 선명우의 아버지 이야기를 건넨다. 이 모든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보면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벌고, 자식에 대한 희망으로 자신을 죽음까지도 내몰수 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돈을 벌어오는 존재로 소비는 날로 커지고, 아버지의 인생은 사라지고 만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마치 노예처럼 그렇게 자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왜 함께 있을 땐 아무것도 몰랐을까.

 

 

일반적인 소설을 보면, 아버지가 가출을 했을때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흩어졌던 가족들은 비로소 아버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아버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므로써 다시 화목하고, 행복해진다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소금』에서 가출한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가출한 아버지로 인해 그 집의 가족은 해체되고 만다. 아버지는 가족의 전적인 경제적인 면을 담당했고, 아버지의 부재로 엄마는 아버지를 찾다 교통사고로 죽고, 여섯 개의 방이 있었던 복층의 빌라는 경매로 넘어가 버린다. 큰언니의 통장에 있었던 잔고는 큰언니가 살기 위해 남자친구와 함께 외국으로 유학 가버리고, 조금의 돈이 있었던 작은 언니와 시우는 단칸방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족이 해체되었고, 시우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아버지가 다녔다는 지금은 폐교된 학교의 배롱나무 앞에서 시우는 '나'와 만났다. '나'는 2년간 살았던 아내 우희와 이혼하고 고향인 강경으로 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시인이다. 시우는 '시인의 친구'라는 이름을 가졌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 시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염원이 시우라는 이름속에 갇혀 있었다.

 

 

 

 

나이가 얼마나 들면 ......

 

...... 사는 게, 무섭지 않을까요?

 

가출을 한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는 자신의 삶은 가출을 하기 전의 선명우와 가출한 후의 선명우로 삶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처자식들에게 통장이었다. 그런 삶에서 뛰쳐 나와 장을 떠돌며 자기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졌던 전신마비 환자를 돌보고, 피가 섞이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소금을 일구어낸다. 소금을 만들어내는 일이란, 한낮의 뙤약볕이 내리쬐어도 쉬지않고 대파질을 하게 만드는 일이다. 소금은 어려운 이에게 '밥'이었고, '목숨'이었다. '치사해, 치사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젊은 시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위해 치사해 질수 밖에 없는 아버지, 아버지들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아버지를, 남편을, 아이들에, 가족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 통장 취급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족을 위해 주말까지도 일하고 있는 남편이 가끔 안쓰러울때가 있다. 힘들텐데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때로는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아이들이 아빠를 우습게 보지 않게 하기 위해,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항상 '잘 다녀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하게 만든다. 아빠가 퇴근하고 들어와도 자기 방에서 꼼짝 안하는 아이들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힘들지 않아?' 라고 물었을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그때는 그만 둬야 하는 거다' 라고 말하는 남편. 가족을 위해 주말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일하러 가는 남편을 나는 우습게 만들고 싶지 않다.   

 

 

작가는 젊은 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어 책을 썼다 했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들의 아버지를 볼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슴에 스며들었다.'생명을 살리는 소금'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 작가. 이 책은 '생명을 살리는 소금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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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무 - 우리 땅에 사는 나무들의 모든 것
김진석.김태영 지음 / 돌베개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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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나무나 꽃이 좋다.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나 꽃, 지금은 다시 한번 쳐다보고 사진에 남기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름을 안다면 더욱 반갑고, 모르는 나무나 꽃이라면 궁금함에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한다. 아이들 어렸을 적엔 아이들이 식물이나 동물들에 더 가깝게 다가가라고 도감을 사주었다. 세밀화로 그린 식물도감이나 나무도감을 구입해놓고 아이들과 함께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컸다. 한동안 남편의 소원이 조그만 텃밭을 구입해 나무도 심고, 텃밭작물을 키우고 싶어했다. 작년 가을에 그 꿈을 이뤄 남편은 올 봄에 나무 70여그루를 심었다. 나무를 심기 전부터 나무에 대한 공부를 했는데, 인터넷으로 하는게 부족했는지 책을 구입해서 읽기도 하고, 집에 있는 식물도감을 매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한국의 나무』를 보고는 반가워하며 들춰보려고 하는 것이다. 생일선물로 받은 귀한 선물을 내가 먼저 보려고 했던 참에 남편이 욕심내는 걸 보고는 안되겠다 싶어 책을 펴게 되었다. 내가 흥미있게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가 자리를 빌 때마다 남편은 책 곁으로 다가와 기웃거렸다.

 

 

『한국의 나무』는 이 땅에서 만날 수 있는 650여 종의 나무들을 정확하고 상세한 세부 사진과 함께 소개한 책이다.

 

 

두 분의 저자 김진석, 김태영이 지난 10년 동안 전국을 직접 누비며 나무들을 관찰하고, 조사하고 직접 찍은 내용이다. 국내에서 자생하는 나무들로써 거의 모든 수종을 담았다고 한다. 그들이 누비고 다녔던 노고를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만났다. 궁금했던 나무들에 대한 지식을 한 권의 책 속에서, 사진 자료를 보며 나무들을 머릿속에 새기고, 나무들의 꽃을, 열매를, 잎을 들여다 보았다. 사실, 단풍나무에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안 것은 몇 해 되지 않는다. 봄이 되면 새로운 단풍잎이 돋고, 여름에 무성해졌다가 가을이면 붉게 물들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언젠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풍나무에도 꽃이 핀걸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개비 모양으로 생긴 열매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었다.  

 

 

 

 

학교앞 분수대에 늘어져 있었던 수양버들도 꽃이 핀다는 사실도 그렇댜.

그동안 나는 너무도 나무에 대해 모르고 관심이 없었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느꼈다. 버드나무에도 암꽃과 수꽃차례의 횡단면을 찍은 사진들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었던 나무들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게 되어, 어느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지 알수 있었다.

 

 

나무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수국과와 장미과에 속한 나무들이었다.

올봄 나는 푸른빛 수국을 보고 싶어 남편을 졸랐었다. 수국 화분하나 사다 달라고. 꽃들이 크게 부풀어 있는 꽃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어 오랫동안 피어있는 꽃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내가 바랐던 연보랏빛 수국은 아니었고 진분홍빛 수국이었지만, 올봄 나는 그 수국 화분 하나로도 기뻐했다.

 

 

 

 

장미과에 속한 나무중에서는 하얗게 피어있는 조팝나무 종류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우리 텃밭에 심은 복분자 들도 장미과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봄이면 제일 먼저 꽃을 피워 여자들의 마음을 마구 설레게 해주는 벚나무나 매화, 살구나무, 복숭아 나무들의 꽃의 종단면, 횡단면을 사진으로 자세히 볼수 있었다. 우리가 싹으로 불렀던 것들도 겨울눈으로 표시된다는 것, 나무의 겉껍질인 수피의 모습에서나 나뭇잎 모양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전에 읽었던 책 속의 '산사나무'도 사진 자료로 확인할 수 있었다. 뒷산엘 갔다가 향기에 이끌려 사진에 담아왔던 찔레꽃도 책속에서 볼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 다시 뒷산에 가 찔레꽃을 만난다면 나는 나무의 수형이나 잎, 꽃술을 자세히 들여다 볼것 같다. 

 

 

뒷산에서 만난 찔레꽃

 

 

아무래도 『한국의 나무』는 나무를 공부하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나무의 분포, 형태에서 수형, 잎,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설명을 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때 굉장히 유용한 책일 것이다. 우리가 어딘가를 지날때, 산속에서 만난 나무들이 궁금할때 사진으로 담아와 이 책을 들춰보면 나무에 대해 자세히 알수 있는 책이다. 저자들의 십 년간의 노고가 있었기에 우리는 편하게 책속에서 나무들을 만나 볼수 있었다.

 

 

통영 장사도에서 만난 해당화

 

 

『한국의 나무』를 읽었다고 해서 내가 나무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비슷한 나무를 구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어떤 나무를 보았을때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전보다 더 강해졌음을 나는 느낀다. 

 

내가 책 속의 나무들을 파악하고 즐거워하고 있을때 옆에서 곁눈질로만 보는 남편에게 이제 자신있게 권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무에 대해 더 잘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화초들을 즐겨 키웠던 남편이 이 책을 읽으면 나무에 대해 더 깊은 지식을 갖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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