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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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너무도 평범하게 진행이 될때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일탈을 꿈꾼다고 해서 생각대로 일탈을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서라도 상상의 나래를 펴며 평범한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가정에 별 일이 없어서 이고, 가족의 누군가 아프거나, 가족 모두가 힘들어 할 시련이 닥쳐 왔을때에야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굉장히 좋은 것임을 깨닫는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 들었음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다만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랄뿐.

 

 

일상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써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번째 라디오다.

글을 읽는게 아니라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솔직한 단상들을 일주일에 한번씩 일본 잡지 '앙앙'에 연재 했던 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매일의 라디오, 누군가의 일상, 솔직하게 말하는 글을 들으며 우리는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보통의 음악들처럼 하루키의 글들도 그렇게 솔직하게 다가왔다.

 

 

무라카미의 세 번째 라디오를 읽고, 이젠 첫 번째 라디오를 만났다.

삽화가 없었던 기존의 판 본이 아쉬움을 주었던 것에 오하시 아유미의 삽화를 넣어 새로이 펴낸 작품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에세이 한 편에 오하시 아유미의 삽화 두 편을 실어 에세이를 삽화와 함께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정말이지 그의 평범한 일상을 보는 것 같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며,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들이며, 비행기 안에서 음료를 시킬때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블러드 메리'를 시킨다든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른 나라 사람이어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인데도, 그의 일상은 아주 평범하구나, 특별한게 없구나 싶다. 이런 그의 솔직한 단상들이 오히려 그에게 호감이 갖게 하는 것 같다.

 

 

하루키 씨는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에 특별한 식당에 간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식당에는 하루키 씨 부부와 젊은 한쌍의 남녀가 있었는데, 옆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며, 깊은 사이가 되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페로몬을 머금은 안개가 자욱하게 떠다니고 있었는데, 곧이어 들리는 소리에 하루키 씨 부부와 웨이터도, 소믈리에도, 남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여자도 얼어붙었다고 했다. 바로 젊은 남자의 '츠르릅 츠르릅'하고 엄청난 소리를 내며 파스타를 먹는 소리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키씨는 그 커플이 어떤 운명의 길을 걸었을까 문득문득 궁금해진다고 썼다.

 

 

이 대목에서 나의 한 연애사가 생각이 났다. 내가 많이 좋아했고, 그 남자는 약간 뜨뜻미지근했던 사이였는데, 내 친한 친구에게 그를 소개했다. 같이 밥 먹는 자리에서 그 남자가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다며 내 친구가 싫다고 했다. 나는 그가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다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친구는 그 남자와 헤어지라고 난리였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덜 좋아하는 것이 싫었을 수 있고, 진짜로 소리를 내며 먹는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는 헤어지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이 싫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쩝쩝' 거리며 먹는 사람과 헤어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에는 헤어졌는데, 파스타를 맛있게 먹던 그 커플은 어땠을까 나도 궁금해진다.

 

 

여러분들은 컴퓨터 부팅이 될때 그 시간동안 무얼하시나요?

 

나 같은 경우는 사무실에서는 컴퓨터를 켜놓고 비번을 넣고 부팅이 되는 사이에 자잘한 일들을 하고, 집에서는 읽고 있던 책 몇 페이지를 보거나, 스마트 폰을 보곤 한다. 반면 하루키 씨는 부팅이 되는 그 시간동안 짤막한 동화를 읽는다고 했다. 줄거리가 복잡한 소설이나 킬링타임용 잡지 보다는 오래된 동화집을 읽는다고 했다. 컴퓨터 화면이 다 떠도 더 읽어도 좋을 것이라며 동화의 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동화의 뒷이야기에 궁금증이 일게 하기도 한다.

 

 

아주 소소하고도 솔직한 그의 단상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얼굴에는 그의 잔잔하게 다가오는 글처럼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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