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아버지는 시간이 날때마다 내게 전화를 하신다.

딸들이 하나같이 무심하여 아버지에게 안부전화도 하지 않으니,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를 하신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전화를 하신다. 때로는 아버지의 전화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남동생과 싸운 이야기, 서운한 이야기, 엄마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 직장에서 있었든 일들을 마치 일기를 쓰시듯 그렇게 전화하시는 걸 보며 때론 귀찮을 때도 있다. 그렇게 자주 전화를 하시니 나는 역시나 전화를 먼저 걸지 않고 그렇게 받고 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안부를 듣는다. 습관처럼 그렇게 전화하시는 이유가, 딸과 사위의 안부를, 손주 녀석들의 안부를 듣는 게 유일한 기쁨이라 하신다. 사실 아버지 젊었을 적엔 술드시고 오면, 우리를 잠 못자게 하시곤, 일렬로 앉혀놓고 노래를 시키시거나, 잔소리를 하셨다. 엄마에게 잘 못하시는 아버지가 싫었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날마다 가출을 꿈꾸었었다.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달아나 혼자만의 시간을 꿈꾸었다. 결혼하면 친정집은 절대 오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자리가 많이 컸다는 걸 알수 있었다. 가족끼리 모여 술자리라도 가지면, 우리 딸들은 아버지한테 서운했던 옛날 이야기들을 꺼내놓기도 하지만, 아버지와의 시간을 즐긴다. 연세가 드셔 자식들을 챙기는 아버지를 우리는 많이 이해하려고 했다. 많은 시간을 지내오면서 우리는 아빠를 이해하고 있고,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함께하는 시간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는 중에 박범신이라는 이름만으로 작가의 신작을 구입했는데  신작 『소금』은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였던 것이다. 만약 소금밭에서 일하는 염부가 소금밭에 코를 박고 죽었을때, 그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염부 1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옆에서 작업하고 있는 염부 2가 있듯. 그렇게 무감하게 염부의 죽음을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나의 아버지라면 염부 1은 염부 1이 되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빌어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했다.

책 속에서는 이 책의 화자인 박 시인의 아버지 이야기를,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의 이야기를, 선명우의 아버지 이야기를 건넨다. 이 모든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보면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벌고, 자식에 대한 희망으로 자신을 죽음까지도 내몰수 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돈을 벌어오는 존재로 소비는 날로 커지고, 아버지의 인생은 사라지고 만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마치 노예처럼 그렇게 자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왜 함께 있을 땐 아무것도 몰랐을까.

 

 

일반적인 소설을 보면, 아버지가 가출을 했을때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흩어졌던 가족들은 비로소 아버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아버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므로써 다시 화목하고, 행복해진다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소금』에서 가출한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가출한 아버지로 인해 그 집의 가족은 해체되고 만다. 아버지는 가족의 전적인 경제적인 면을 담당했고, 아버지의 부재로 엄마는 아버지를 찾다 교통사고로 죽고, 여섯 개의 방이 있었던 복층의 빌라는 경매로 넘어가 버린다. 큰언니의 통장에 있었던 잔고는 큰언니가 살기 위해 남자친구와 함께 외국으로 유학 가버리고, 조금의 돈이 있었던 작은 언니와 시우는 단칸방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족이 해체되었고, 시우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다녔다. 아버지가 다녔다는 지금은 폐교된 학교의 배롱나무 앞에서 시우는 '나'와 만났다. '나'는 2년간 살았던 아내 우희와 이혼하고 고향인 강경으로 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시인이다. 시우는 '시인의 친구'라는 이름을 가졌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 시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염원이 시우라는 이름속에 갇혀 있었다.

 

 

 

 

나이가 얼마나 들면 ......

 

...... 사는 게, 무섭지 않을까요?

 

가출을 한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는 자신의 삶은 가출을 하기 전의 선명우와 가출한 후의 선명우로 삶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처자식들에게 통장이었다. 그런 삶에서 뛰쳐 나와 장을 떠돌며 자기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졌던 전신마비 환자를 돌보고, 피가 섞이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소금을 일구어낸다. 소금을 만들어내는 일이란, 한낮의 뙤약볕이 내리쬐어도 쉬지않고 대파질을 하게 만드는 일이다. 소금은 어려운 이에게 '밥'이었고, '목숨'이었다. '치사해, 치사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젊은 시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위해 치사해 질수 밖에 없는 아버지, 아버지들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아버지를, 남편을, 아이들에, 가족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 통장 취급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족을 위해 주말까지도 일하고 있는 남편이 가끔 안쓰러울때가 있다. 힘들텐데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때로는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아이들이 아빠를 우습게 보지 않게 하기 위해,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항상 '잘 다녀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하게 만든다. 아빠가 퇴근하고 들어와도 자기 방에서 꼼짝 안하는 아이들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힘들지 않아?' 라고 물었을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그때는 그만 둬야 하는 거다' 라고 말하는 남편. 가족을 위해 주말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일하러 가는 남편을 나는 우습게 만들고 싶지 않다.   

 

 

작가는 젊은 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어 책을 썼다 했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들의 아버지를 볼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슴에 스며들었다.'생명을 살리는 소금'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 작가. 이 책은 '생명을 살리는 소금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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