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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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보이고, 눈을 감으면 들리고, 눈을 감으면 안다. (133페이지)

 

 

그림을 좋아한다. 책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림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한참을 들여다 보곤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희망」이란 그림. 그림을 넣어 둔 거울속에서 만난 그림을 보며 저자는 절망 만이 가득한 그림 속에서 간절한 희망을 빛을 보는 것이다. 희망을 빛을 가리게 하얀 천으로 눈을 가렸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게 말은 신발도 신지 않는 맨발이다. 그곳에서 희망을 엿본 저자의 그림을 보는 방법을 배웠다.

 

 

저자 황경신은 33편의 그림을 이야기한다.

그림을 보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황경신이 이야기하는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 그림을 속속들이 바라보게 된다. 대부분의 그림에 관련 된 책들은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돈이 없어 모델을 살수 없는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를.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화가에 대한 마음을 열고 그림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황경신은 그림을 달리 보는 방법을 가르켜 준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 「희망」

 

 

그림을 보며 그림속에 깃든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그림속의 이야기는 정말 진실인것만 같다. 아래 그림 「새장을 든 소녀」도 왠지 사랑을 기다리는 한 소녀가 새장 속의 새에게 노래를 가려켜주려는 것만 같다. 이렇게 그림속의 소녀의 이야기는 사실처럼 다가든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다.

 

 

요제프 리플로너이. 「새장을 든 소녀」 

 

 

황경신이 이야기하는 제임스 티소의 「지나가는 폭풍」을 말할때는 폭소를 터트렸다.

자신을 들여다 보는 남자, 그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서도 폭풍이 오기를 바라는 여자의 바램을 말했다. 폭풍이 오면 비가 내릴테고, 비를 피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는 여인,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저 여인을 보라. 때로는 평범하게 다가드는 사랑이 좋음을 모르는 것 같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랑, 잊을 수 없는 기억 한 자락을 갖기 위한 여자의 모습이다.

 

 

제임스 티소. 「지나가는 폭풍」 

 

 

글의 첫머리에 있는 말처럼,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이 들린다. 언젠가 친구들과 등산을 할 때이다. 시끄럽게 이야기하며 산행을 하고 있을 때는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게 걷고 있을 때의 새의 지저귐은 굉장히 기분을 싱그럽게 만들었다. 산속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하나의 새가 지저귀면, 다른 새는 다른 지저귐으로 답을 하고 있었다. 조용한 산속이었기에 들리는 새소리, 평소에 듣지 않았던 새소리가 들리는 것은 우리가 눈을 감은 것처럼 입을 다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가를 하면서 명상의 시간을 가질때, 눈을 감고 명상을 하게 된다.

무념무상의 시간을 갖가고 하는 명상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한참이 걸린다. 눈을 감으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이 난다. 마치 그림처럼 그 광경이 보이는 것이다. 갖가지 생각들을 버리고자 하지만 그 생각들은 날개가 되어 춤을 춘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애써 지우고자 했던 것들도 생각나, 때로는 지우고자 고개을 흔들기도 한다.

 

 

로렌스 알마-태디마. 「실버 페이버리츠」

 

 

 여태 그림에 관련된 책을 읽어왔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과 화가의 이야기가 있는 글들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그림을 보는 일은 즐겁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심미안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 속의 그림과 작가가 그림을 보고난 뒤, 눈을 감고 생각난 것들을 그린 이야기들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지어낼 수도 있을것 같다. 그림을 본 뒤,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우리만의 감성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황경신이 눈을 감고 이야기하는 이별, 슬픔, 성장,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읽고 본다. 그림을, 그림속의 이야기들을. 그림속의 이야기들을 우리만의 이야기로 만든다. 눈을 감으면, 이제 그림이 보인다. 그림속의 이야기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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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낸다 - 더 행복한 삶을 만드는 용기에 관한 진실 31
고든 리빙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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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일을 시작할때 제일 먼저 드는 건 두려움이다.

내가 잘 해 낼수 있을까, 지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달래려 하며 한 발짝 내걷기도 한다.

첫째 아이를 낳고 난후 갑자기 신랑이 섬으로 발령이 나버려 나 혼자서 아이키우랴 직장생활하랴 너무 힘들었었다. 결국엔 참고 2년쯤을 더 하다가 신랑이 다시 지금 살고 있는 광주로 또 발령이 났다. 신랑은 내가 직장 생활하는 걸 싫어해 그만 두길 원했고, 아이도 키울겸 직장을 그만두고, 둘째 아이를 낳고 아이가 네 살 되던 해 까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직장을 다시 알아 볼때, 직장을 그만둔지 너무 오래되어 많이 두려웠다. 4년 정도 쉬었을 뿐인데도, 내가 일을 잘 해낼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에 직장을 포기하고도 싶었다. 두려움을 안고 면접을 보러 다니길 몇번, 드디어 취직이 되었다. 네 살 된 작은 아이를 큰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 맡기고 출근한 첫날, 많이도 두려웠다. 아무것도 못하면 어쩌지, 문서 작업을 제대로 할수 있으려나, 잊지 않았을까. 그랬던 직장생활이 하루가 한 달, 일 년이 넘으면서 벌써 10년 이상이 되었다. 내가 그때 두려움에 지레 겁을 먹고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여전히 직장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 두려운 일이 많고, 용기를 내기가 힘들때가 많다.

정신분석의이자 심리상담가인 저자 고든 리빙스턴은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두려운 일에 대처하는 법, 용기를 내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것을 생각할때 가장 두려운 것 같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이렇게 곰곰 생각해 볼때,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없는 것, 그런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상실감과 두려움이 생긴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겠지만, 자꾸 '죽음'이란 단어를 피하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법,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찾아 온다. 나에게, 너에게, 우리 모두에게. 죽음에 대한 것을 생각할때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두려움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111페이지)

 

오늘도 출근 준비하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오늘 죽는다면,,,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데, 어떤 분은 항상 깨끗하고 좋은 속옷을 챙겨 입고 다니신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죽게 되었을때, 아무렇게나 입은 속옷을 내보이고 싶지 않으셨다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갑자기 내 복장을 다시 한번 훑었다. 이 정도면 부끄럽지는 않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이처럼 인간에게 죽음의 유한성 때문에 살아 있는 날들에 대한 소중함과 간절함이 커진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지금의 시간에서 멀지 않는 기억들은 잊어 먹기도 하고,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마치 스캔하듯 기억했던 것도 이제는 그 사람의 이름이 뭐였더라,, 하고 생각하는 때도 있다. 내가 읽은 책들의 제목도, 내용도 간간히 기억나지 않아 블로그를 열어 검색을 해봐야 알 정도다. 나이 들어 가면서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닌가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 저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있다. 젊은 날들이 그립긴 하지만, 지금도 나쁜 것은 아니다. 나에게 투자하는 여유로운 시간이 있기 때문에 사십 대도 굉장히 편안하게 다가온다. 다만,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안타까울뿐이다.

 

 

저자는 총 서른한 가지의 진실로된 두려움과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특히 용기는 막연한 감정이 아닌 습관이라고 말하고, 용기는 타고 나는게 아니라 보고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을때 용기있게 행동하라고 가르치지만, 그것은 가르쳐지는게 아니고 부모들과 주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경우가 많다. 몇 년전에 일본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본인은 죽은 일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가만히 보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사람을 살려내어 의로운 죽음이라했던 적이 있었다. 최근에도 술취해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기사를 접한 사람은 다행이다. 그 청년 참 용기 있는 친구다.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막상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고민만 하고 있었을때, 그 청년은 용기를 내 사람의 목숨을 구해내었다. 이런 행동들을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한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이 참여했던 저자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또한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은 일과 자신의 출생 때문에 힘들어 했던 일들을 용기를 내어 말하며 우리 앞에 주어진 일들이 더 중요함을, 고통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말라며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 놓여진 많은 장애물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애써 피하지 않고 용기를 낼때 두려움은 극복되는 것 같다. 젊은 날의 추억만 반추하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앞에 놓여진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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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하는 중입니까?
김지운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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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머리칼을 가진 남자를 그려본다.

찰랑거리는 길다란 머리칼, 뒷모습을 보면 여잔지 남잔지 구별할 수 없을만큼 머리결도 고운 남자를. 나는 책속에서나 만화속에서 만나보았다. 오래전에 신문에 연재될때 일부러 연재되는 날을 기다려 만나보았던 김동화 작가의 『빨간 자전거』 속에서 젊은 우체부 아저씨가 긴 머리칼을 하나로 묶고 나왔었다. 남자가 머리를 길러도 이렇게 멋질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또한 TV 속에서 만나는 어떤 락가수는 여자보다 더 찰랑이는 머리결을 자랑한다. 뭐,,외모는 순정만화 속 주인공과는 전혀 다르지만.

 

 

또한 예술하는 남자를 그려본다.

책 속에서도 나왔지만, 예전에 '사랑과 영혼'이란 영화에서 주인공 남녀가 같이 물레에 겹쳐 앉아 흑으로 무언가를 빚으며 사랑을 나누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우리의 이런 마음을 들여다 본듯 작가는 주인공 그린에게 영화 '사랑과 영혼' 속 그 장면을 그대로 상상하게 만든다. 또 남자 문정효는 그린의 곰곰, 하고 있는 장면을 딱 알아맞춰주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예술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특히 더 좋던데, 이 작품 속에서 남자주인공은 도예가다. 하나의 항아리를 빚어 팔면 1천만원을 호가하는 그런 유명한 도예가인 것이다. 그리고 길다란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 늘어뜨리고 흙으로 무언가를 빚는 남자가 주인공인 그런 책이다.  

 

알고 싶다.

알고 싶다.

알고 싶다....... 저 남자를.

 

알고 싶다.

알고 싶다.

알고 싶다....... 그 여자를.

 

이름도 싱그러운 그린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여자가 도예가를 좋아하는 이야기다.

3인칭 시점으로 그려진 내용은 본문에서는 그린의 시점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하나의 장이 끝날때마다 들어있는, '곰곰, 하는 중입니다.' 는 그린을 처음 만나면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담은 정효의 시가 들어 있다. 그린을 바라보는 정효의 마음이 보이는 시詩 속에서 우리는 두근거림을 느끼게 된다. 무릇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 있는 탓이다.

 

마음이 온다.

몸보다 먼저 오는 마음이 오로지 붉다.

연한 분홍인 줄 알았는데.

봄꽃의 망울처럼 마냥 여리고 싱그러운 줄만 알았는데.

내게 오는 그 마음이 때로 진한 노을빛이다.    (181페이지, 곰곰, 하는중입니다.)

 

일단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눈빛에서 드러내게 된다.

상대방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빛. 눈빛에서 다른 이들은 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아무리 눈을 돌리려 해도 어느새 좋아하는 이에게 고정되고 마는 그 눈빛때문에.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은 내게 어떤 마음일까?',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하는 것들이 궁금해 곰곰 생각하게 된다. 둘이서 마주앉아 있어도 서로의 마음이 궁금해 곰곰, 하는 것.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김지운 작가의 책을 꽤 여러 권 읽었는데, 내가 아는 작가의 작품들은 그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가 없다. 여자 남자가 사랑을 할때 꼭 끼어드는 악녀 캐릭터도 없다. 난 이런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솔직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짝사랑이 아니고서야, 둘이서 눈빛을 들키고 마음을 들키고 둘의 사랑이 절정을 향해 다가가기도 힘든데, 옆에 끼어드는 악녀 캐릭터는 반갑지 않다. 이 작품처럼 서로에게 다가서는 시련, 즉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반대를, 함께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버지에게 할말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에 용기를 낸 그린도 좋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그린을 마치 채가듯이, 둘이서 갔던 곳 선운사의 동백과 청보리밭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 정효의 용기있는 행동도 좋았다.

 

또한 김지운 작가의 책은, 책을 읽으면서 미소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통통 튀는 말투를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입으로 그네들의 말투를 따라 해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린.

너를 생각하며 앉아 있는 시간들이 길어져만 간다.

깨어 있는 시간들이 깊어져만 간다.

믿을 수 없다.

동백은커녕 그녀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순간, 순간, 순간들을.

정녕 미치지 않고서야.

아마도 나는, 중독.

남그린에게.       (210페이지,  곰곰, 하는중입니다) 

 

작가는 책속에서의 주인공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고 했다.

작가가, 만들어 낸 주인공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독자들이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작가가 있기 때문에, 스물아홉 살의 문정효에게, 이 글이 연재하는 동안,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그린과 함께 문정효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드라마 '구가의 서'를 보면서 구월령과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구월령이 나오는 때면 나는 잠자기 전 설레는 마음을 부여안고 구월령의 모든 것을 곰곰, 하고 있었다. 행복해진 문정효와 남그린, 나는 이제 정효를 곰곰, 하지 않을 것이다. 정효는 그냥 그린에게 줘버릴 것이다. 마지막에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는 그네들이 얄미워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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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여자 - 최민석 연애소설
최민석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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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랑을 향해 다시 손내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한때 나는 그에게 손내밀고 싶었었다. 온통 그의 기억으로 가득찬 그때. 헤어지고 나서도 그가 꼭 곁에 있는 것만 애달픈 심정이 되면 차라리 전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같이 걸었던 길,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났던, 내가 누군가의 헤어진 어느 날들의 풍경이었다.

 

 

작가 최민석은, 지 한때 이별했던 이를 다시 만날수도 있을까,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기분을 연상케 하는 글을 썼다. 최민석 연애소설이라 지칭한 『쿨한 여자』다. 여자가 얼마나 쿨하면 쿨한 여자일까. 쿨한 여자는 과연 끝까지 쿨할 수 있을까.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순전히 외로웠기 때문이다. 라고 시작하는 첫 문장.

몇 년을 만나고 헤어진 연인들이 있다. 아니 나 ' 경도진'이 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글을 쓰겠다는 이유를 대고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곤 밖에서 노는 아이들을 구경하거나, 구름을 바라보거나, 글을 약간 쓰거나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 한 가지 빠졌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길 즐겼다. 혼자 한강변을 뛰고 샤워를 한후 베란다로 나간 후에 찬 바람이 불때면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헤어지고 난후, 한 13,873,456번 정도 보았다고 했다. 헤어진 지 3년, 남아공 월드컵을 가자는 터무니 없는 약속을 지키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보고 싶어 만나게 되었는데 늘 만나왔던 것처럼 느껴졌다. 같이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예전처럼 보내고 헤어졌다. "나 쿨한 여자야"

 

 

처음의 1부는 원래 단편소설이었다.

이 단편 소설을 버릴 수 없어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지만 또 다른 이야기인듯, 연작 소설처럼 2부와 3부, 4부를 이어 써 한 편의 중장편 소설로 펴냈다. 1부에서 헤어졌던 그녀를 다시 만나고 헤어진 후 2부와 3부, 4부에서는 잊고 있었던, 아니 가끔씩은 궁금해하고 있었던 그녀를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주도로 가는 모임에서 여자 시인과 함께 타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는 그녀를 생각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그런것 같다.

아무리 헤어졌어도 생각나기 마련이고,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면 왠지 불편함마저 느껴지게 되는 것.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없고, 상대방에게도 만나는 사람이 없을때 그들은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서로에게 상대방이 있다면 아예 못본척 그냥 지나칠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당황해하며. 서로에게 가는 시선을 애써 붙들어 맬 것이다.

 

 

 

 

헤어진 사람들은 맥주를 마신다.

그것도 기네스를 마신다. 한때 정우성이 이 맥주를 광고할때, 포털사이트만 열면 나타나서는 나에게 눈을 맞추며 맥주를 권하는 모습에 설레어 마셔 본 맥주를 책 속의 남자가 마시고 있었다. 부드럽게 감기는 흑맥주의 맛인 기네스를 마시는 남자 도진때문에 나는 또 기네스 맥주를 사러 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은 그녀와의 재회가 아니라, 그래서 그녀와의 또 다시 펼쳐질 미래가 아니라, 그리움 자체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리움의 감정 자체를 불러일으켜 세워 내가 가장 나다웠던 시절과 재회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는 나 자신이었던 걸까. (178~179페이지)

 

보통의 헤어진 사람들을 보면 상당히 구차하거나 질질 짜거나 하는데, 작가 최민석은 구차한 소설을 쓰지 않았다. 상당히 깔끔하다. 헤어진 연인들이 이렇게 쿨하면, 누군가 사랑때문에 복수하는 일도, 눈물짓는 일도 많이 없을 것만 같다. 최대한 쿨하게, 최대한 깔끔하게 써낸 글이다. 작가의 글에서 도진이 아주 잠시 만났던 여자 시인을 가리켜 '잠재적 이별 대상', 이하 '잠별'은 , '점진적 이별' 이하 '점별', 을 거쳐 '실재적 이별' '실별'을 거쳤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단어들이다. '나는 쿨한 여자'라고 했지만 절대 쿨할 수 없는 여자와 쿨하고 싶지 않았지만 쿨한체 하고 있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사랑 거 참 오묘하단 말이지.

달거나, 아프거나, 쓰거나 하다. 눈물이 흐르니까 짠맛도 있으려나. 우리의 오감을 다 끌어내는 거 사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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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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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을 읽었던 충격이 떠오른다.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라 여기지 않았던 작품인데, 놀랍도록 흡인력 있는 작품이어서 놀랐고, 추리 형식의 글을 여성 작가가 썼다는 점이 놀라웠었다. 그 소설로 인해 정유정 이라는 작가를 뇌리에 각인시켰던 작품이기도 했다. 들려오는 소리에 작가가 어딘가에 칩거해 차기작을 쓰고 있다는 소리에 그의 신작을 무지하게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녀의 신작이 나왔다는 짧은 글 하나에 바로 예약구매해놓고, 기다리고 있던 참에 신문에서부터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고, 며칠이면 책이 나온다는 설렘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받은 작품을,나는 읽고 있는 다른 책을 팽개쳐두고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흡인력 있는 작품이었다. 정유정 작가다운 글. 프롤로그에서는 책속의 내용, 그 정황을 파악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워 읽었다. 두 번씩이나.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프롤로그에 담겨 있을텐데,,, 하며 자꾸 작가의 생각을 알고자 했다. 드디어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가상의 도시, 화양, 이곳은 경기도에 속한 곳으로 서울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는 곳.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 그들이 집에 도착했을때 문은 열려져 있지 않았고, 윗집의 베란다를 이용해 들어갔지만, 순간 튀어나오는 늑대개에 부딪혀 하마터면 죽을뻔한 소방서 구조대팀장이었다. 집에서는 죽어있는 개들의 시체만 여러 구 있었고, 집안에 있다는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안방을 뒤지고 화장실에 갔더니 남자는 빨간 눈을 하고, 온 몸에 피투성이 인채로 팔뚝엔 개에게 물린 자국이 있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기면서 산소호흡기를 대고 심폐술을 했지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후 화양 시에서는 빨간 눈의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모두들 핏물처럼 배어든 눈을 하고 죽었다. 처음 환자들은 개에게 물린 50대 남자 였고, 남자를 싣고 온 구급대원과 병원에서 남자 환자를 받았던 의사, 간호사들이 차례차례로 죽어가고, 급속도로 핏빛 눈을 한 환자들이 늘어갔다. 이들은 모두 40도가 넘는 고열과 호흡곤란, 폐출혈의 증세가 있었고, 며칠 내 사망에 이르는, 전염병이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전염병이라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사실만 겨우 파악한데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어가자 정부는 화양시를 봉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8일 간의 혼돈이 시작되었다.

 

 

왜 사람이 죽어가는지, 어떻게 전염이 되는지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봉쇄되어 한 사람씩 죽어가는 사람들을 볼때 재난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졌다.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고, 나는 이쪽에, 사랑하는 가족은 저쪽에 있는 상태였다. 정유정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시점을 1인칭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을 쓰지 않았다. 작가의 목소리가 드러날 것을 염려해 6개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5명의 사람과 하나의 개의 시점으로. 한 사람 씩의 시점으로 이어는 글들은 그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같은 사건을 두고서도 여러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들을 보자면, 먼저 소방서 구조팀장인 기준과 현재는 수의사로 지내고 있으며, 과거엔 알래스카에서 개썰매 레이스인 아이디타로드에 한국인 최초로 참여했던 재형, '과연 수의사 인가, 개장수인가'라는 글로 신문에 게재해 재형을 물먹인 기자 윤주, 화양의료원의 간호사 수진, 자기를 괴롭히는 상사의 개의 혀를 잘라는 죽여 현역에서 전역하고 소방서에서 공익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해, 그리고 늑대개 '링고'가 그들이다.

 

 

화자들 속에서 늑대개 '링고'의 시점을 보면, 과연 영리한 개들은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싶다. 책 속에서 링고는 영화 '하울링'의 그 늑대개가 생각나기도 한다.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들었던 암캐 스타를 위해 온 마음을 다 바치는 이야기가 그랬고, 스타를 죽인 남자를 향해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복수하려는 그 마음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아닌 개들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죽이면 이렇게도 변하는 것인가 싶었다. 링고는 스타라는 개를 좋아한다. 이 둘의 이름은 비틀즈의 멤버 '링고스타'의 이름을 따온 작가의 위트가 아니었을까.

 

윤주는 종종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가만있지 않는지. 안전한 자기 집을 두고 감염의 위험과 무장 군인, 추위가 허기가 기다리는 광장에 모이는 진짜 이유가 뭔지. 이 방에 홀로 남은 지금에야 그녀는 답을 알 것도 같았다. 그들은 '누군가'를 향해 모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시켜줄 누군가, 시선을 맞대고 앉아 함께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뭔가를 나눠 먹을 수 있는 누군가, 시시각각 조여드는 죽음의 손을 잊게 해줄 누군가를 만나고자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404 페이지)

 

작가는 『7년의 밤』에서의 오영제 처럼 동해를 '악의 축'으로 만들었다.

화양의료원의 감염내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버지는 잘난 큰아들과 재능있는 막내 딸 사이에서 특별하지 않는 동해를 '내세울 수 없는 자식' ,'숨기고 싶은 자식'이었다. 동해가 애정결핍으로 자신을 보아달라는 강력한 외침으로 말썽을 부리면 지하실에 가두거나 해 마음속으로부터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 분노가 죄 없는 개를 죽이는 것 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친부모를, 자기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까지 화형에 처하겠다는 정신적으로 피폐한 괴물로 변해가는 인물이었다. 동해를 보며 요즘 부모들의 세태, 잘하고 있는데도 더 잘하기를 바라고, 최고가 아니면 안된다는 부모들에게 각성하라는 일침을 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자신을 보아달라는 구애의 눈빛을 잘 살펴야 되지 않을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닌 작가, 정유정은 상당히 냉정하다.

6개의 시선으로 내용을 이끌어가는 화자들을 결코 다 살려두지 않는다. 아무리 인수공통전염병 이라고 하지만, 부분의 책에서는 화자들을 살려두고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한다. 하지만 정유정 작가는 이들은 가차없이 죽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이 핏물이 배어든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죽였다는 것으로 복수를 당하기도 하고, 다른 이유로 냉정하게 죽이고 있었다.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말라는 듯이.

 

 

프롤로그에서 재형이 '살고 싶어서' 쉬차의 줄을 끊었을때처럼, 살기 위해서 개들을 떼로 죽일수 있는게 인간이 아니던가. 핏빛 죽음이 있는 곳에서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살려 주세요'하는 사람들의 외침, 모조리 살처분을 당할때 개들의 '살려주세요' 하는 그들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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