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사랑법 - 돌보고 돌아보며 사랑을 배우다
우석훈 글.사진 / 상상너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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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읽었던 책과 이어서 읽게 된 이 책 역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번에 읽었던 책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연인과 헤어지고 난 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 책은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한 경제학자의 에세이를 담았다.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저자가 쓴 이 모든 이야기를 믿을 수 없고, 이렇게 고양이들을 보살핀다는게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책속에서 그가 길고양이들을 향한 사랑과 베품을 볼수 있었다.

 

 

사랑을 받아야만 기분 좋은 것은 아닌것 같다.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고, 누군가 예를들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돌보면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경제학자인 저자 우석훈은 그렇게 길고양이들을 키우고 돌보며 자신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있었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이렇게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집에 데려와 키운다는 것. 고양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지금 나한테 집으로 찾아온 고양이들에게 저자 우석훈 처럼 베풀수 있냐고 물어보면 아직까진 확답을 하진 못하겠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골에 계신 시아버님을 생각했다.

역시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신 시어머님은 집에 길고양이들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넘기셨는데, 시아버님은 찾아온 길고양이들에게 남은 밥을 챙겨주셨다. 그랬더니 고양이들은 시간이 되면 집으로 찾아와 아버님에게 밥달라며 애처롭게 쳐다보았다고 했다. 그 뒤부터 길고양이들은 집에 아예 터전을 잡고 새끼까지 낳아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오토바이로 30분이 걸리는 논에 고양이들을 보자기에 싸 데리고 가서 놓아주었는데, 그 녀석들이 한 달만에 집에 찾아왔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 말씀이 얼마나 집을 찾아 헤맸겠느냐며, 이제는 포기하고 고양이밥을 챙겨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고양이를 조금 무서워하지만 책 속 사진들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은 상당히 귀여웠다.

저자의 모습에서 보아서 그런가. 애교 부리고 발라당 누워있는 고양이들의 사진을 보고있자니, 나도 고양이를 그리 싫어하지 않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키울수 있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사실 밤에 아파트에서 어딘가를 가다보면, 먹이 때문에 음식물수거통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들을 볼수 있다. 비닐 봉지를 헤집어놓기도 하는게 배고파서 그랬다는 걸 요즘에는 알겠다. 비오는 밤이면 꼭 아기울음 소리같이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도 짝을 찾기 위한 울음소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행복은 우리가 흘려보내는 순간에 숨어 있다. 행복은 연출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것에서 발견된다.  ((134페이지)

 

책을 읽다보니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한미 FTA를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고, 그의 진보적인 정치 생각들도 볼 수 있었다. 요즘엔 책속에서 이런 어느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모습이 보이면 왠지 후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거 책을 읽으며 점점 정치적으로 변하는 것인가.

 

나한테 의미 있는 것을 계속 돌보며, 마음을 나누는 것들이 커질수록 삶은 더 풍성해지는 거 같다. 단, 행복이란 날아가는 화살이 잠시 만들어내는 빛 망을 같은 순간순간이니 부여 쥐려 하지 말것! 고양이들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달라 금방 지나가고, 헤어질 때가 금방 온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애틋하다. 삶은 애틋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애절함이 흐르고 있다.  (161페이지)

 

저자 우석훈은 그러고보니 꽤 많은 책을 썼다.

길고양이들을 돌보며 첫아이를 만나는 그 순간의 설렘과 경이에 대해 쓴 장면을 보고는 나도 내 아이들이 탄생하던 순간의 그 '경이'가 기었났다. 꼭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어떤 것들을 돌보며 우리는 사랑을 배우는 것은 틀림없다. 아, 나도 이제 아파트 단지내에서 배고파하는 고양이들을 보면 참치캔 하나라도 던져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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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초상
찰스 디킨스 지음, 김희정 옮김 / B612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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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여행에세이는 언제 읽어도 설렘을 준다.

책을 읽으면서도 설레지만, 책을 받아 볼때부터 여행 에세이를 읽을 생각에 먼저 설레는 것이다. 이런 설렘이 좋다. 여러가지 일들로 바빠 국내 여행도 제대로 못다니고, 경제적인 것 때문에 해외여행은 꿈도 못꾸지만, 그래도 외국여행은 희망사항이다. 언젠가는 꼭 떠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꼭 떠나고야 말겠다고. 외국의 여행지 중 가고 싶은데는 많지만, 내가 농담 삼아, 우스개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 죽기전에 프랑스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다음이 이탈리아 일 것이다. 로마의 도시들, 오래된 건축물들. 직접 가보지 않아 여태 사진으로만 접해본 것들이지만 그래도 그곳이 늘 그립게 느껴진다. 가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니 그런건가보다.

 

 

『위대한 유산』, 『크리스마스 캐럴』, 『올리버 트위스트』로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에세이가 나왔다는 말을 역시 책을 좋아하는 이웃분에게 들었다. 디킨스의 여행 에세이는 어떤 느낌일까 굉장히 궁금했다. 요즘의 여행 에세이는 선명한 사진과 함께 여행지의 설명과 여행지에서의 감정들이 주로 보여지는데 작가 디킨스가 본 이탈리아의 여행에세이는 뭔가 색다른 느낌을 줄것 같았다. 예전의 책들을 보면, 책의 앞면에 사진들과 그림 자료가 있고, 그 다음에 글들이 이어지는데, 『이탈리아의 초상』또한 이탈리아의 정경들이 먼저 보이고, 그 뒤로 디킨스의 글이 이어졌다. 1844년에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여행지에서의 일 년 동안의 기록을 담은 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디킨스의 글은 다른 여행지로 떠나야 하는 촉박함이 없었다. 한 곳에 집을 얻어 머무르는 사람 특유의 느긋하고 여유로움이 있었다. 

 

 

 

 

 

어딘가 여행을 떠났을때,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곳에 머무르며 그 지방의 풍경들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 장소에서 생활하듯이 있는 것도 굉장히 좋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디킨스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일년을 그렇게 머물렀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가 다니는 곳, 그가 다녔던 장소들, 그를 안내한 사람들, 그가 만나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가 어느 한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걸 보면, 역시 한 편의 단편소설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 장소와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가 인도하는 아름다운 문장들과 함께 우리는 그 장소를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그곳을 상상했다.

 

 

책을 읽다보니 복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살아가면서 한 방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또는 즐거운 상상으로 일주일을 즐겁게 보낼수 있다는 것때문에 복권을 사는데, 1844년 그 시절에도 복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공 모양의 번호 숫자중 다섯 개의 번호를 꺼내 당첨되는 벼락부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로또가 그때도 있었다는 사실에 그때나 지금이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알수 있었다.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사진은 좁은 골목길 사진이었다. 좁은 골목길에 집을 얻은 한 부인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마차 바퀴가 끼어 겨우 빠져나왔다는 글이었는데 좁은 골목길을 걸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자동차나 버스로 이동을 하지만 그때는 마차를 타고 다녔다.

지금의 버스처럼 마차가 달려가다가 사람을 태우고 내리고 했었다. 그때도 여행지를 안내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니, 여행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행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삶을 향한 열정을 일깨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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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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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중학교 2학년때 새로 오신 수학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처음으로 학교에 부임받아 오신 선생님이셨다. 당연히 총각선생님이셨고. 지금으로부터 30년전 일인데, 이상하게, 머릿속에 영화 화면처럼 상세하게 그 시절의 선생님이 기억난다. 또한 지금도 선생님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그 분은 양00 선생님으로 처음 수학시간에 수업에 들어오신 날 우리의 염원으로 노래 한 곡을 부르셨다. 누구의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돈키호테'라는 말이 들어가는 곡이었다. 음이 기억이 날듯말듯해 검색해 보았지만 찾지 못하는것이 기억에서 잊혀졌나보다. 그 음악을 듣고 '돈키호테'에 관심을 가졌던듯 하다. 그 뒤로 책을 읽었어도 이상하게 생각나는 건 그 시절의 중학교때 수학 선생님이시다. 얼굴도 못생기셨는데 총각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좋아하고, 어떤 아이를 좋아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었던 듯도 하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읽어본 지가 꽤 오래되어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오랫만에 그 선생님을 떠올리는 글을 만났다. 서영은 작가가 출판사 편집장과 함께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발자취를 찾아가는 여행 에세이 이다.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쓰게 된 배경과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집 등을 돌아보는 여정이다. 작가가 다녔던 곳마다 돈 키호테의 영혼이 묻어 나왔다. 책의 표지에서처럼 팔을 높게 쳐든 돈 키호테의 모습이 가는 곳곳마다 설치되어 있어, 돈 키호테의 나라 답게 세르반테스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곳이었다.

  

 

세상을 향해 결투를 청했던 『돈 키호테』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었다.

 

 

작품을 썼던 곳, 작품과 관련된 곳에서 『돈 키호테』를 다시 읽어보며 작품을 생각하면, 그 느낌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느낌들을 받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세르반테스의 묘에서 돈 키호테란 인물 속에 강하게 투사된 전의가 작가 자신의 지칠 줄 모르는 대결의식의 투영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었다.

 

언덕 너머로 보이는 풍차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병졸로 보여 쫓아갔던 돈 키호테의 허무맹랑한 용기가 라 만차의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쓰게 된 감옥으로 향하며, 지하로 지하로 들어가는 곳들은 작가의 글을 쓰는 고통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들게 했다. 작가들의 방, 스스로 갇히는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은 언제 봐도 멋진 표현이라 생각이 든다.  

 

모든 작가의 방은 스스로 갇히는 감옥이기 때문에,. 갇혀 있던 곳에서 작품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방에 창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상상의 나래를 높이 펼치기 위해서 몸뚱어리는 묶어놓고, 눈 막고 귀 막고 들어앉는 게 아닌가.  (301페이지) 

 

세르반테스 감옥 전경,      캄포 데 크립타나 가는 길 로터리에 세워진 설치물

 

위 사진에서 보면 세르반테스가 불후의 명작 『돈 키호테』를 썼던 감옥이다. 이 감옥 세르반테스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또한 오른쪽 사진은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 생각하는 돈 키호테가 돌진하고, 그것이 거인이 아닌 풍차임을 알리려 돈 키호테를 말리는 산초의 설치물이다. 

 

책에서는 곳곳마다 사진과 함께 세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었고, 그 상황에 맞는 책 속의 구절들을 여행을 함께한 이들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나즈막히 읽어주고 있었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구절들, 사진과 함께 보는 『돈 키호테』는 훨씬 이해하기 쉽다. 로시난테를 타고 황야를 향해 달려가는 돈 키호테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비록 허황된 생각으로 물들어 있었다 할지라도.   

 

돈 키호테의 길을 걷다보면, 돈 키호테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가 둘시네아 였듯, 우리 또한 그 길에서 스스로 둘시네아가 되는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여성을 훌륭하고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로 그렸던 세르반테스의 마음과 어느새 비슷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돈 키호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세상을 향해 결투를 청했던 돈 키호테의 길 위에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손을 높이 쳐들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우리 앞에 힘든 일이 있어도, 돈 키호테의 용기를 기억하며 세상에 부딪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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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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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공부 쪽 기억 말고 사람에 관련된 기억이 좋다. 그 사람의 생김새, 이름 등을 잘 기억한다. 때론 길거리에서 지나다 스쳐간 사람의 얼굴도 기억할 정도다. 상대방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나는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는 척 했을때 곤란해 하는 경우를 보고, 어떻게 아는 사이라는 걸 설명해야 하는 게 싫어, 이제는 알아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아는 척을 하면, 마치 이제야 봤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 때로는 너무 싫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기억력이 둔화되는 것을 느낀다.

내가 읽었던 책의 제목들, 작가 이름들, 책 속의 주인공들, 내가 보았던 영화의 제목들, 영화 배우 이름들이 때론 생각나지 않아, 메모를 남기는 블로그를 열어봐야 하고, 검색을 해봐야 알수 있다. 그 누구도 비껴가지 못하는 세월이라는 시간속에 갇혔다. 때로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슬프지만, 이 또한 내가 적응해야 할 일이다. 이보다 더한 일들이 생길수 있으므로. 예를 들자면 김영하가 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주인공처럼, 알츠하이머가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칠십 세의 노인이 있다. 그는 30년간 사람들을 살해했으며, 살인의 기쁨에 겨워했던 남자였다. 교통사고로 인해 뇌 회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25년간 살인을 하지 않고 있었던 그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치매로 인해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현재의 기억들은 점점 잃어간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 하나 뿐인 딸을 잊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일지를 쓴다. 일지 속의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프차를 몰고 다니는 젊은 남자와 접촉사고가 났다. 그의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서 차의 트렁크 쪽을 보았더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살인자는 살인자를 알아보는 법. 최근에 동네에서 일어난 세 명의 젊은 여성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아닐까 의심이 갔다. 기억이 간간히 끊어지는 와중에 박주태가 자신의 집을, 딸 은희의 연구소 주변에 나타나는 걸 보았다. 딸 은희를 노리는 거라고 의심하고, 그의 주변을 살핀다.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그가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순간이 떠오른다. 또는 문화센터에 시를 배우기 위해 다녔던 일들도 떠오른다. 딸 은희가 중학교때 왕따를 당했던 일들도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김병수는 자신의 기억들을 놓치지 않을수 있을까. 또한 새로운 연쇄살인범 박주태로부터 딸 은희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의 기억들은 점점 뒤죽박죽이 된다.

 

사람은 자신이 유리하게 기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겪었어도, 각자의 기억들을 들어보면 많이 다른 것을 알수 있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일로 기억이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연쇄살인범 김병수도 그러했는지 모른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으로 자신의 기억을 변형시켰는지도 모른다. 치매를 앓으면서 김병수는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다른 모습으로 기억했다. 치매의 틈에 감춰버리고 말았다.

 

기억의 편린들은 파편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아주 짧은 소설이다. 중편에 가까운 소설이며, 쉼없이 읽힌다. 연쇄살인범이 이야기하는 짤막짤막한 기억의 파편들로 우리를 인도했다. 어제의 일이 기억나지 않고, 메모가 있어도 그것이 무슨 메모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우린 절망하고 말았다. 파편이 되어 흩어지고 마는 그의 기억들의 편린들 때문이었다.

 

금강경을 읽는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지니라.  (9페이지)

 

소설의 마지막이 압권이었던 작품이다. 전혀 의심하지 않다가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랄까.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았던 한 연쇄살인범 노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억들도 그대로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변형시키지는 않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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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이리나 레인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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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왔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최근에 읽었다. 또한 영화까지 개봉을 해 개봉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영화로 보기도 했다.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작품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도 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작품이 다른 시각으로 나와도 궁금하기 마련이다. 톨스토이의 오마주인 작품이 나오면 우리는 또 읽는다.

 

19세기말 러시아 귀족사회를 뒤흔들었던 안나 카레니나가 현대의 뉴욕에서 '안나 K'로 다시 태어났다. 이 한 문구 만으로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던 사람은 다시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아주 큰 기대를 안고 보기 마련이다. 

 

현대판 '안나 카레니나'는 전체적인 플롯은 비슷하다. 하지만 배경이 뉴욕인만큼 그들의 직업도, 생각도 톨스토이의 안나와는 다르다. 안나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의 딸이다.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나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씨 같은 소설속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알렉스 K와의 결혼이었다. 다아시 씨나 히스클리프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지만, 안락함과 돈 걱정 없이 살수 있겠다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안나의 사촌 카티아는 데이비드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는 작가 지망생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갈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로 카티아를 사랑했지만, 우연히 방문한 안나의 매력적인 모습을 보고는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다. 안나에게는 아들 세료자가 있었지만, 아기에게 사랑을 베풀기 보다는 데이비드를 만나는데 시간을 쏟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매는 더 살이 붙었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안나에게 데이비드를 뺏긴 카티아는 상심하고 있었지만, 어렸을적부터 자신을 좋아했던 레프와 결혼하게 된다.

 

 

 

 

사랑의 이상과 현실은 이렇게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처음 사랑에 빠질때 불타는 사랑을 하며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 식어버리기도 하는게 사랑이다. 사랑이란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열정이 식을수 밖에 없다. 나이 많이 먹은 남자와의 무료한 결혼생활을 하며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때, 젊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면, 자신의 가정을 포기하고 사랑을 찾아 떠나고 싶어 질 것이다. 하지만 젊은 남자에게 자기보다 어리고 아름다운 여자가 생길까봐 늘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이 생긴다면, 그 또한 불행일 것이다.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도 불행하다고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어도 그 사랑이 깨질까봐 불안해 하는 이는 더 큰 불행이라고 볼수 있다. 톨스토이가 썼던 『안나 카레니나』와 이리나 레인이 쓴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또는 지금 우리의 모습들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소설이었다. 

 

한편으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다른 결말을 지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비슷한 결말로 인해 다시 안나의 삶을 생각해 본다. 19세기의 안나, 현재의 안나, 그들은 불행한 삶을 살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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