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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평점 :
돈키호테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중학교 2학년때 새로 오신 수학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처음으로 학교에 부임받아 오신 선생님이셨다. 당연히 총각선생님이셨고. 지금으로부터 30년전 일인데, 이상하게, 머릿속에 영화 화면처럼 상세하게 그 시절의 선생님이 기억난다. 또한 지금도 선생님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그 분은 양00 선생님으로 처음 수학시간에 수업에 들어오신 날 우리의 염원으로 노래 한 곡을 부르셨다. 누구의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돈키호테'라는 말이 들어가는 곡이었다. 음이 기억이 날듯말듯해 검색해 보았지만 찾지 못하는것이 기억에서 잊혀졌나보다. 그 음악을 듣고 '돈키호테'에 관심을 가졌던듯 하다. 그 뒤로 책을 읽었어도 이상하게 생각나는 건 그 시절의 중학교때 수학 선생님이시다. 얼굴도 못생기셨는데 총각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좋아하고, 어떤 아이를 좋아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었던 듯도 하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읽어본 지가 꽤 오래되어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오랫만에 그 선생님을 떠올리는 글을 만났다. 서영은 작가가 출판사 편집장과 함께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발자취를 찾아가는 여행 에세이 이다.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쓰게 된 배경과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집 등을 돌아보는 여정이다. 작가가 다녔던 곳마다 돈 키호테의 영혼이 묻어 나왔다. 책의 표지에서처럼 팔을 높게 쳐든 돈 키호테의 모습이 가는 곳곳마다 설치되어 있어, 돈 키호테의 나라 답게 세르반테스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곳이었다.
세상을 향해 결투를 청했던 『돈 키호테』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었다.
작품을 썼던 곳, 작품과 관련된 곳에서 『돈 키호테』를 다시 읽어보며 작품을 생각하면, 그 느낌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느낌들을 받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세르반테스의 묘에서 돈 키호테란 인물 속에 강하게 투사된 전의가 작가 자신의 지칠 줄 모르는 대결의식의 투영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었다.
언덕 너머로 보이는 풍차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병졸로 보여 쫓아갔던 돈 키호테의 허무맹랑한 용기가 라 만차의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쓰게 된 감옥으로 향하며, 지하로 지하로 들어가는 곳들은 작가의 글을 쓰는 고통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느낌도 들게 했다. 작가들의 방, 스스로 갇히는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은 언제 봐도 멋진 표현이라 생각이 든다.
모든 작가의 방은 스스로 갇히는 감옥이기 때문에,. 갇혀 있던 곳에서 작품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방에 창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상상의 나래를 높이 펼치기 위해서 몸뚱어리는 묶어놓고, 눈 막고 귀 막고 들어앉는 게 아닌가. (301페이지)
세르반테스 감옥 전경, 캄포 데 크립타나 가는 길 로터리에 세워진 설치물
위 사진에서 보면 세르반테스가 불후의 명작 『돈 키호테』를 썼던 감옥이다. 이 감옥 세르반테스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또한 오른쪽 사진은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 생각하는 돈 키호테가 돌진하고, 그것이 거인이 아닌 풍차임을 알리려 돈 키호테를 말리는 산초의 설치물이다.
책에서는 곳곳마다 사진과 함께 세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었고, 그 상황에 맞는 책 속의 구절들을 여행을 함께한 이들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나즈막히 읽어주고 있었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구절들, 사진과 함께 보는 『돈 키호테』는 훨씬 이해하기 쉽다. 로시난테를 타고 황야를 향해 달려가는 돈 키호테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비록 허황된 생각으로 물들어 있었다 할지라도.
돈 키호테의 길을 걷다보면, 돈 키호테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가 둘시네아 였듯, 우리 또한 그 길에서 스스로 둘시네아가 되는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여성을 훌륭하고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로 그렸던 세르반테스의 마음과 어느새 비슷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돈 키호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세상을 향해 결투를 청했던 돈 키호테의 길 위에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손을 높이 쳐들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우리 앞에 힘든 일이 있어도, 돈 키호테의 용기를 기억하며 세상에 부딪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