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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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소설집이라고 칭하였으나 나는 하나의 주제로 된 각자의 인물을 말하는 장편으로 읽혔다. 하나의 이야기는 다른 소설의 내용에서 이어지는 듯했고 작가가 추구한 감정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공통된 단어의 언급이 그렇다. 우주와 외계 생명체, 지구. 우리가 이 세계에서 아주 잠시 머물 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광활한 우주에서 아주 찰나의 시간만 스칠 뿐이라는 것을.

 


인간 사회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거 같다. 지금도 땅을 찾겠다는 나라와 지키려는 자의 전쟁 중이다. 지구는 잠시 평화로웠을 뿐,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빼앗는다. 잠시 머물다 갈 인간들이 이 세계에 영원히 살 것처럼 싸운다.




 

지구에서 머무는 인간들에게 지구 바깥세상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난다. 인간을 죽이고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하려고 하지만 인간은 전쟁을 겪어온 경험으로 맞서 싸운다. 늑대의 유전자를 주입한 인간들은 크람푸스를 제거했고, 크람푸스가 사라진 세계에서 그들은 보통의 인간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었으므로 우주 밖으로 내쳐지게 되었다.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과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반인류로 여겨져 두려웠으리라.

 


지구의 침략자는 크람푸스 뿐만 아니라 바키타도 있다. 지구의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바키타는 인공화합물 뿐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문명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 인간들은 멸망한 지구에서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향한다. 이 부분에서는 인류가 일회용품을 마구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것을 꼬집는 것만 같다. 지구가 이렇게 일회용품 쓰레기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먹히고 말 것 같다는 것을 경고하는 거 말이다. 우리가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질문을 건넨다.


 

옐로스톤 폭발 이후 화산재에 뒤덮인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검은 연기로 가득한 지구에서 우주선에 탑승하지 못한 인간들은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냉동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은 우주선에서 저 멀리 푸른 점으로 보일 지구를 안타깝게 그려 볼 뿐이리라. 직접 다가가지도,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신호를 받지도 못할 것이다.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또 다른 지구를 찾아 정착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안개는 중요한 단서다. 지구가 멸망해가는, 한 마을이 사라져가는 매개체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안개 속에서 죽은 자들이 서로를 물어뜯는다. 죽음의 다른 변형이다. 어떤 외계 생명체는 안개를 피우며 조용히 다가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한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때로는 죽음 이후의 것을 말한다. 인간이 마음을 열었을 때 그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그들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해줄 뿐이다.


 

평소 접하지 않은 내용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미래의 인간 세계를 마주한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혼합된 세계. 우리가 머무는 세상 밖이 자기가 살아야 할 세계라고 여기는 거다. 지금 현재의 세상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인간 세상으로 들어온 과거 텍스트의 존재와 세상 밖으로 나간, 서로의 존재를 교체하는 세계. 두 세계의 접점은 우리의 심연 그 깊은 바다의 것인지도 모른다. 다분히 영화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들을 연이어 떠나보내게 되면 마음은 주는 것이 아니라 보관해두는 것, 기댄다는 건 그것이 사라졌을 때 넘어진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떠난다는 건 붙잡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53페이지, 흰 밤과 푸른 달중에서)

 


우리가 사는 지금이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찰나의 시간을 지날 뿐이다. 우주, 죽음, 소멸. 이 단어를 이루는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한 유리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실의 고통을 넘어 살고자 한다. 살아있다는 그 마음 하나로 살길 바란다.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나. 나의 존재를 실감하는 때이기도 하며 삶의 원동력이 되는 단어. ‘살아 있다라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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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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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여러 사람이 모여 말한다고 치자.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그 토론에 참여할 수 없을 거라고 여긴다. 할 말이 없을뿐더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미루어 짐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면? 다르게 생각해보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타인이 말하는 책에 관하여 고개를 끄덕거리고 그 사람의 언어에서 내게 와닿는 것들이 있다. 이 세상의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비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우리가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책에서 언급되지 않은 내용에 관하여 누군가 질문했을 경우 우리가 하는 행동 패턴은 단순하다. 그 뜻이 아니라며 책 속에 있는 내용만을 설명하려 들 것이다. 계속 다른 질문을 한다면 책에 관하여 설명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해가며 설명해야 할 것이다.




 

독서는 우선 비()독서라 할 수 있다.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치는 대단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어떤 책을 잡고 펼치는 그 몸짓은 언제나 그것과 동시에 행해지는,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 역()의 몸짓을 가린다. , 그 책 외에 다른 모든 책들, 어떤 다른 세상이었다면, 선택된 그 행복한 책 대신 선택될 수도 있었을 다른 모든 책들을 잡지 않고 덮는 몸짓을 가리는 것이다. (26페이지)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작가의 머릿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작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책을 쓴 작가에 작품 속 인물에 대한 질문했을 때 백 퍼센트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책을 출판하는 편집자들은 수많은 작품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하게 편집자의 눈에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원고 더미 속에 파묻히기 마련이다. 자기 작품을 읽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발자크의 작품 잃어버린 환상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저널리스트인 루스토는 주인공 뤼시앙이 쓴 원고를 파리에서 가장 큰 출판업자에게 보내라고 한다. , 원고를 봉인하는데, 출판업자가 원고를 한 번 펼쳐보기라도 하는지 나중에 확인하기 위해서다. 출판업자는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은 채 시집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결론은 출판할 수 없다는 것과 봉인을 뜯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루스토가 뤼시앙에게 말하기를, 그 출판업자가 애지중지하는 작가의 작품을 비평하되, 서두에는 우호적으로, 말미에는 혹평을 하여 눈에 띄게 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뤼시앙은 그 출판업자로부터 데이지 꽃을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이 부분을 읽고 드는 생각이다. 수많은 평론가가 있다. 특히 소설 작품 뒷표지에 주로 나오는 문학평론가의 비평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학평론가는 과연 그 작품을 제대로 읽고 연구하고 쓴 글인가 싶었다. 많은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는 법이므로. 문학평론가의 글이 명쾌하기는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없잖다.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 말하지는 않았는지 문득 궁금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찰나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그러므로 용기만 있다면 자신이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또 그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제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흔히 있는 경우이며, 부끄러움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것, 즉 책이 아니라 어떤 복합적인 담론 상황 책은 이 담론 상황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결과이다 에 관심을 갖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175페이지)

 


저자를 포함해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들도 학생들을 전혀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로라 보헤넌이 티브족 사람들에게 햄릿의 가족 상황을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티브족이 관심을 두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관점에서였고, 햄릿 속에 들어있는 관계나 상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내 상황에 따라 감동을 하고 울거나 무감각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UB), 대충 뒤적거려 본 책(SB),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HB),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FB)를 구분하여 주석을 남겼다. 이 모든 것임에도 책에 대하여 설명하고 중요한 점을 시사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우리가 분석한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 이것이 아마 책들에 대해 잘 말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달라진다. 접근 가능한 몇 가지 자료들에 입각하여 무엇보다 우선 중시해야 할 것은 바로 작품과 자기 자신, 그 둘 사이의 다양한 접점들이기 때문이다. (229페이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느낌을 쓴다. 어떤 책은 써야 할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굉장한 감동을 했어도 쓸 말이 없을 때도 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글로 나타나지 않을 때. 글을 쓰는 작가의 노고를 생각한다. 저자는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그러므로 책과 책을 읽은 사람의 접점이 생긴다고 말이다. 자기화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이것은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책 내용을 쓰기보다는 책을 읽고 파생되는 감정들을 쓸 것! 작가와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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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28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자기 감정 자기 생각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 저랑 같네요. 동감이에요. 그러자고 책 읽는 것이죠. 단순히 지식을 위한 거라면 의미가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
 
목요일에는 코코아를 마블 카페 이야기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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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네책방, 동네카페들을 소재로 한 소설이 자주 보인다. 비슷한 설정이긴 하지만 찾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소설의 느낌이 달라진다. 어떤 소설은 마음의 위로를 주고 어떤 소설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다. 뭔가 거창한 주제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장소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야기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아오야마 미치코는 도서실에 있어요라는 작품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도 이 작품의 영향이 크다. 일본 특유의 잔잔함으로 가득한 소설에서 일상에서 행복을 나누는 법을 배우게 된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저마다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열두 개의 색깔로 열두 명의 이야기가 도쿄와 호주 시드니에 걸쳐 전해진다. 마치, 마스터가 있는 카페, 시드니의 거리에 선 느낌이다. 목요일에 따뜻한 코코아를 주문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마스터로부터 집안일, 요리, 아이 키우는 일에는 젬병인 직장인 여성, 마블 카페 건너편에 있는 유치원의 교사 에나와 야스코, 이혼남과 평생 함께하고 싶은 리사, 결혼 50주년 기념 여행하는 노부부, 초록색을 그리러 호주로 온 유(You), 보타닉가든 옆에서 오렌지 색으로 칠해진 샌드위치 가게를 하는 랄프 씨, 마녀가 되고 싶었던 신디, 번역가 아쓰코, 일본의 봄을 알리는 벚꽃과 시드니의 봄을 알리는 자카란다 꽃의 기억을 안고 있는 메리와 마코. 각자가 가진 이미지가 색깔로 나타나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우리의 삶도 그러지 않을까. 무조건 직진으로 향하기보다는 살짝 돌아가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사람이 인연이 되어 평생 함께할지도 모른다.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내가 그었던 잣대를 벗어나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접어들기도 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발견이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안다고 여겼더라도 새롭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시절 둘 다 젬병인 마라톤 대회에서 결승점을 남겨두고 앞으로 달려가던 리사를 떠올리곤 어쩌면 친구를 잘 알지 못하는 게 아닌가 여긴 야스코처럼. 어느 날 우연히 진심을 알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1초 앞도 모르는 채 살고 있다. 자기 의지만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대항할 수 없는 것도 맞은편에서 찾아온다. 그럴 때 끝없이 부푸는 불안은 우리에게 무서운 시나리오를 쓰게 한다. 자기가 만든 스토리인데, 마치 누군가가 떠맡긴 미래처럼, 그리고 그것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우리는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확실히 있는 것은 호흡하는 나, 웃고 있는 마코, 피어 있는 벚꽃. (174~175페이지, 삼색기의 약속Purple/Sydney, 중에서)





 

마블 카페를 중심으로 하여 이어지는 연작 단편 소설이다. 연작소설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찾아와 그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소설을 읽어보면 못하는 게 있다고 해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물론 먼저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겉돌고 말 것이므로.


 

카페에 가면 핫코코아 한잔 마셔야 할 거 같다. 더운 날에도,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날에도 달콤하고 뜨거운 핫코코아 한잔 마시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 같다. 마블 카페와 비슷한 곳에서 아오야마 미치코의 소설을 좀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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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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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특징은 중요한 단서를 독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숨겨놓는다. 독자는 작가가 숨겨놓은 장치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주어진 단서 하나 무시할 수가 없다. 소설의 시작과 끝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가장 찬란한 순간에 불행이 찾아오는 것인가. 평소보다 과하게 느끼는 충만함. 그 찬란함을 질투하는 것인가. 미즈노 이즈미의 행복이 오래가지 않았던 이유가 그렇다. 행복이라는 감정도 너무 자만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미즈노 이즈미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즈음. 불행한 일이 터졌다. 딸 사라의 대학 입학과 아들 다이키의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족과 파티를 하던 날. 연쇄살인범이 도주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이었다. 다이키가 연쇄살인범으로 오인되어 쫓기다가 사고가 나 목숨을 잃었다. 이즈미는 고통스럽다. 왜 다이키가 죽어야 했을까. 다이키의 죽음은 이즈미의 삶을 바꾸고 만다.


 

15년 후, 빌라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고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은 사라졌다. 집 근처 CCTV에 발견되었으나 그의 아내도 알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만이 의심을 품고 사건에 집착한다. 아들이 왜 사라졌는지, 누군가에게 살해되지는 않았는지 가족은 알아야 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미쓰야와 가쿠토는 15년 전에 일어났던 중학생 사고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집착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형사의 의문에 따라 현재 일어난 살인사건이 과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살인사건을 조사함과 동시에 15년 전에 일어났던 사고의 관계자들을 만나며 두 사건이 연결되어있음을 시사한다.


 

가족이라도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한다. 아이들도 부모와 친구들에게 하는 행동이 다르듯 얼마쯤은 말하거나 하지 않는다. 가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이유다. 깊이 파헤치다 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때가 있다. 이즈미가 괴로워했던 이유도 자기가 알고 있는 아들과 백 퍼센트 맞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이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살해되었다면 살인자만 미워하면 되지만 무엇 때문에 아들이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니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행방이 묘연했던 다쓰히코의 아내 모모코와 그녀의 어머니, 다이키의 관계가 묘하게 맞물려 소설을 이끌어간다. 전체적으로 조금 답답한 면도 없잖았다. 작가는 어머니의 집착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그 원인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한 것 같았다. 한 사람이 가진 어두움과 광기, 집착. 그로 인한 죽음의 결과가 어쩐지 허탈하다.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두번째 시리즈가 출간되었다고 한다. 순간 기억 능력이 있는 미쓰야와 신참 형사 가쿠토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접점이 조금은 다르지만 하나의 해결점을 찾을 파트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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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아이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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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노출된 사람은 주로 아이와 여성이다. 물리적인 폭력 및 정신적인 폭력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여성이 가진 연약함을 이용해 폭력을 가한다. 폭력을 가하고 부모라는 보호자의 명목으로 무마하려 든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보호받고 싶다.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지만,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감추고 숨어드는 존재다.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있다. 소설에서 남자는 폭력적인 존재에 가깝다. 17년 전, 열 살 무렵 유괴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지희는 아직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괴범이자 살인범이 잡히지도 않았고 자기가 본 인물이 맞는지 기억조차 흐트러졌고 유괴를 당한 아이의 부모에게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유괴당했다가 죽은 아이, 미성의 엄마 은정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자기 딸과 함께 유괴되었다가 살아온 지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지희가 미성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유일한 목격자인 지희가 유괴범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작용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희의 고통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유괴범을 기억해내려고 스케치를 하고 또 했던 고통을 짐작하지 못했을까. 그저 자기의 고통과 슬픔이 커서 타인의 고통 따위 관심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희의 기억 속 유괴범은 미성의 아빠 이도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족사진을 들고 주소를 알고 있으니 말하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듣고 기억이 번형되었을 수도 있었다. 지희는 자기 가족을 해칠까 봐 늘 두리번거렸고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다. 유괴되었다가 살아온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또 다른 폭력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그런 시점에 유괴범이 나타나고 지희는 그가 진짜 유괴범이 맞는지 기억을 더듬고 유괴범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난다.


 

지희와 함께 사는 규연 또한 부모의 폭력에 노출된 아이였다. 반복된 폭력으로 가출하기를 여러 번, 그날 미성이 유괴되던 날 지희와 미성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일하던 매장에서 한 아이가 서성거리는 걸 보았고, 자신과 비슷한 아이라고 여겨 시현을 집으로 데려왔다. 시현의 말만 믿고 집으로 데려와도 되는가, 자칫 유괴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염려를 했던 거 같다. 한편으로는 거리에서 헤맬 아이를 보호하는 것도 필요했다고 보는데 여기에서는 시현의 사정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거 같았다. 거리를 헤매다 다른 아이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당하지 않을 것. 차마 내칠 수 없어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싶었던 거 같다.


 


 

 

유괴되었던 기억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데도 지희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직접 사람을 만나고 자기의 기억 속 유괴범의 뒤를 쫓았다. 대부분 유괴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데 반해 지희는 맞섰다. 다소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도전하는 여성,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을 그렸다.

 


아이는 부모의 대용품이 아니며 함부로 다뤄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며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거 같다. 유괴된 기억이 고통처럼 따라다니겠지만, 지희는 전처럼 뒤로 숨지 않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필요한 대처를 할 것이다. 스스로 갇힌 장소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여성과 아이는 여전히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 그 답을 조금쯤 얻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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