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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ㅣ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2
이지양 지음 / 샘터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행간에 은근한 향이 배어나고, 소리 내어 읽으면 그 맛이 더욱 살아나는 글이 가득한 책을 만났다. <홀로 앉아 금을 타고>(샘터. 2007). 아! 제목을 읊조리는 순간, 나는 봄밤에 취음(醉吟)하는 옛 사람이 된다. 흥이 절로 나고 마음에는 여유가 만만하다. ‘옛글 속의 우리 음악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덩실덩실 우리를 찾아온 이 책에는 옛 선조들의 글과 음악, 그림이 가득하다. 그들의 재미 난 삶의 모습, 여유까지도 ‘향유’하는 멋스러움이 책장을 넘길 때 마다 고스란히 묻어 난다.
초등학교 시절, 내 단짝 친구 수희는 가야금 병창을 하는 아이였다. 그 친구의 약간 쉰 목소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나는 친구를 졸라 매일 한 소절씩 판소리를 배웠다. 일부러 소리를 질러 목을 쉬게도 만들고, 그 친구의 목소리를 흉내내기 위해 틈이 날 때마다 꽤나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판소리 사설이었지만 문장을 끝맺는 말들, 중간중간 들어가는 추임새들이 재미 있어 친구가 판소리를 할 때마다 내 나름의 추임새를 던져보기도 했다. 그런 추억 덕에 나는 우리 소리를 좋아하고, 듣는 귀의 역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도 국악에 대한 내 관심은 꾸준히 이어져 음악 시간에 보는 단소 시험이 내게는 즐거운 놀이였고, 대금을 연주하고 싶어 국악원에 등록해 소금을 잠깐 배우기도 했다. 김애라씨의 해금 연주에 반해 한 때는 해금 소리에 푹 빠져 지냈고, 최근에 본 뮤지컬에서 판소리의 깊은 울림에 온몸이 떨린 후로 또 다시 판소리 사랑을 외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책 덕분에 우리 음악을 연주하는 데 쓰이는 악기들을 더 많이 알게 됐고, 음악에 얽힌 선조들의 일화를 통해 우리 음악을 좀더 재미있게 듣는 법을 배웠다. 성능이 더욱 좋아진 듣는 귀를 갖게 된 셈이다.
묵독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소리 내어 읽곤 했다. 그래야만 이 책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직접 발음해 보고, 내 목소리로 전해지는 맛깔스런 말들을 들어보면서 그 말에 담긴 흥과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고, 조금은 그런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운치, 흥, 교교한 달빛… 자꾸 써 보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한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읽는 내내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연주를 틀어 놓았고, 온갖 감각을 동원하며 행간의 숨은 뜻까지 파악하고자 했다. 그 덕분에 선조들이 가졌다는 ‘맑은 즐거움’을 내 나름대로 맛볼 수 있었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의 연주와 비트 박스를 결합해 화제가 됐던 캐논 변주곡. 옛 것과 오늘날의 것, 우리 음악과 다른 이의 음악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오랫동안 가까이 하지 않아 그 동안 친숙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음악을 즐길 줄 아는 타고난 듣는 귀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의 듣는 귀를 깨어나게 해 줄 우리 음악들이 좀 더 많이 울려 퍼지고, 사랑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하루 빨리 “문화적 고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