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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대 화성인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김옥희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존레논 대 화성인>(2007. 북스토리)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아직도 모르겠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도. 이 작가, 참 묘하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초반부부터 잔뜩 거부감을 느끼게 만들지만 분명 뭔가 있으니 끝을 봐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을 갖게 한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작가의 <겐지와 겐이치로>(웅진지식하우스. 2007)를 읽었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보며 여러 번 웃었다. 그러다가도 뜨끔하게 만드는 것이 있어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 작품 <존레논 대 화성인>을 읽고 보니 <겐지와 겐이치로>는 작가의 특성이 절반도 드러나지 않은 작품이었다. 수위가 약했다는 얘기다.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은 가장 자기 자신을 닮았다고 고백한다. “그 이후로 다시는 이런 작품을 못 쓰고 있다”라고.
제목을 보고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 기대한다면? 물론 ‘재미’도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중에는 분명 도중에 책을 덮어버릴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라거나 ‘에이, 미친 놈!’이라는 추임새와 함께. 우리가 알고 있는, 너무나도 친숙한 이름의 주인공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라는 캐릭터까지도 전혀 다른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원래 알고 있던, 우리가 부여한 의미들은 완전히 탈수, 건조되어 흔적조차 없다. 패러디? 이건 패러디가 아니다. 처음부터 ‘동명이인’이었을 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은 없다.
책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를 들자면 <존레논 대 화성인>씨가 말을 하는 거다. 모차르트에서 독일 문학자, 영국의 뉴웨이브 작가까지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지 각주만으로도 몇 페이지는 될 듯하다. 이 작가, 독자를 아주 성가시게 한다. 어디서 그 많은 것들을 알았는지 따로 용어집이나 인명집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꼭 개그 콘서트 ‘개그 두뇌 트레이닝’의 최상급 코스 문제 같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시도 때도 없이 툭툭 튀어 나온다. 짤막한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다. 잡다한 지식들과 괴상 야릇한 캐릭터들이 결국 의도적으로, 촘촘하게 엮여 있다.
이 책은 추천하고 ‘싶기도’ 하고, 추천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만큼 매니아적인 소설이다. 누군가는 20쪽을 채 보지 못하고 덮어 버릴, 한 쪽에서는 읽는 내내 감탄할 그런 소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어찌나 다양한 인명들이 등장하는지. 문맥을 잡고 각주를 다느라 고생했을 번역자의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주 골치 아픈 소설. 하지만 그 덕에 나는 특별한 작가를 한 명을 알게 되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 자신의 상상력이 얼마나 평범하고 틀에 꽉 박혀 있는지를 좀 보라며 뒤통수를 때린다. 편견이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뇌를 마구 찔러주신다. 그러니 어찌되었든 나는 이 작가에 주목하고, 그가 내놓은 신선한 녀석들을 주기적으로 내 머릿속에 집어 넣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