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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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는 이상한 책이었다. 아주 친숙한 소재로 시작된 이야기에 마음 놓고 공감하며 읽다가 갑자기 확 나 자신이 낯설어졌다. 그런 순간이 자주 있었다.


언론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서, 저자 권석천의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러다 잘리면 어쩌시려고?’, ‘이런 치부까지 굳이?’라고 묻고 싶을 만큼, 읽는 내가 다 걱정이 되는 솔직함이었다. 그런데 그 솔직함이 자꾸 거울처럼 나를 비췄다. 자, 당신도 좀 들여다보라고, 당신은 지금 어떠냐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책의 형상을 한 거울이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책을 읽지 않는 동안에도 자꾸만 제목이 떠올랐다. 사람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 우리는 여전히 무례하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데 이렇게나 자주 실패하지만, 그래도 다시 예의를 차려보자는 목소리가 나를 따라다녔다. 그 목소리는 절대로 “세상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대충 타협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뼈아픈 자각 후에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고, 내 비루한 현실을 인식한 뒤 찾아오는 그 부끄러움을 힘으로 우리 사람답게 살자고 계속 말을 건넸다. 아주 쉽고 부드럽게, 심지어 재미있게.


솔직히 말하자면 1967년생, 만 53세인 아저씨의 글에서 영화 ‘꿈의 제인’과 ‘우리들’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JTBC 보도국장과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거쳤다는 이 아저씨도 나처럼 TV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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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나 ‘까불이’들은 있다. 그 까불이들과 공존해야 하는 세상에서 남이 불편할까 봐 나를 낮추는 것도, 붙어보기 전에 도망치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니들 다 까불지 마라” 하고 외치고, “사람 봐가면서 까부시라”고 말해야 한다. 비록 목소리는 바르르 떨리고, 다리는 후들거리더라도."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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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후반부에는 웬 소설 같은 글들이 여러 편 나오는데, 읽는 사람은 좀 갸우뚱해지는 글이었지만 쓴 사람이 정말 재미있게 썼구나 싶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예리함과 동시에 “조용히 책 읽고 영화 보며 지내고 싶은 것이 오랜 꿈”인 사람의 순수한 애정이 곳곳에 담겨 있어서, 단호한 마침표와 소심한 말줄임표가 자유자재로 섞여 있어서 지루함 없이 읽었다. 아니, 무척 좋았다. 이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한 마음에 ‘권석천’이라는 이름을 검색해볼 정도로.


세상에, 누군지도 몰랐던 50대 기자 아저씨의 글을 읽었을 뿐인데 만나서 오래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이 생길 줄이야. 정말 이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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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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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라는 제목, 1997년부터 나무 작업을 시작한 ‘목수’이기도 하며, 몇 년 전부터 강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는 작가의 소개글을 읽으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책에 실린 10편의 소설 중 앞쪽에 배치된 것들은 어느 정도 그 상상과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뒤로 가면 갈수록 숲에 들어가 홀로 고요히 사는 삶을 택했지만, 실은 세상일에 너무도 관심이 많고 할 말도 많은 이야기꾼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이 소설로 김진송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배경도 없이 소설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갸우뚱하기도 하고, 와! 하며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늘 꿈과 현실을 오가고 있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지식들을 쉴 새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그 복잡함 속에서도 한순간도 흥미를 놓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듯한 상세한 묘사, 한 문장의 길이가 엄청난데도 술술 읽히는 리듬감 있는 문장 덕분이었다. 소설 속 배경 역시 어찌나 구체적인지 자꾸만 실제 이야기로 읽혔고, 현실 풍자가 많아 소설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작가는 자꾸 현실을 비꼰다. 소설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하고 싶은 말을 죄다 쏟아 붓는다. 그 안에는 누군지 다 알만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얼굴이 여럿 겹치고,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겹친다. 처음엔 그냥 피식거리며, 재미있게만 읽었다. 시사 팟캐스트를 듣는 기분으로. 그러다 서서히 거리두기가 되는 시점이 찾아왔고, 지금 우리, 그 안의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읽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숲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피식거리며 웃다가, 뒷맛이 씁쓸해지면서 마무리 되는 10편의 소설을 참 맛있게 읽었다. 매일 걷는 길,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들, 아침마다 듣는 뉴스, 숲에서 새로 만난 나무, 상추를 씻다 발견한 달팽이(?) 하나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설이기도. 작가의 다른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는 어쩌면 작가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수식이지 않을까 싶다. '만드는'이라는 말 앞에 '아주 잘'을 붙여서.

언제나 전진을 막는 장애물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시해도 좋을 자잘한 것들이었다. 거물들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 한두 개의 추문만 들추어내면 그대로 사라지게 할 수 있어. 문제는 익명의 존재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껄여대는 그런 존재들이야. 그들은 쳐내는 수밖에 없어. (223-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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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의 언어 - 국어학자가 차려낸 밥상 인문학 음식의 언어
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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ᆞ단어 하나에서 시작해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오가며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고수, 만난 적 있으세요? 저는 만났습니다. 바로 이 책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 2016)에서요.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면 무조건 읽고 싶은 제게 이 책은 와, 뭐랄까, 언어 수집가가 몇십 년간 모아놓은 노트를 한 권으로 압축한 사전 같았어요. 상세한 레시피 같은 건 없고요, 맛깔 나는 음식 묘사도 없습니다. 이 책의 방점은 ‘음식’이 아니라 ‘국어학자가 차려낸’에 있거든요. 한반도는 물론 중국의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넘나들며 언어를 조사하고 연구해온 국어학자가 음식이라는 주제를 만나면 순식간에 음식 언어의 지도가 촤르르 펼쳐진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느꼈어요.


ᆞ‘밥’의 뜻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밥’이라는 목적어와 어울리는 동사를 거쳐, ‘밥’을 뜻하는 지역의 방언들을 지나, 1890년대의 주막집 밥상으로, 지난 100년의 밥그릇 크기의 변화로, 죽과 미음으로, 삼시 세끼와 며느리밥풀꽃으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 퍼져나갑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표현 ‘징까루’에서 시작된 밀가루 이야기는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거쳐, 동요 ‘밀과 보리가 자란다’와 만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식 언어가 세상 어디까지 닿게 될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밤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목숨을 지켰다는 <아라비안나이트> 속세헤라자드 처럼, 한성우 작가님을 통과한 음식 언어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집니다.


ᆞ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읽다가는 머리가 아파질 수도 있어요. 너무 방대한 자료가 압축되어 있으니까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독자라면 어느 장을 펼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실 테고요. 한때 민속학과 방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저는 언어학적 설명들이 자주 나오는 점이 무척 좋았습니다. 하지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여지를 남겨두는 점도 좋았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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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8쪽) “볶음밥 역시 ‘볶은 밥’인데 같은 기제에 따라 ‘볶음밥’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비빔밥’의 ‘비빔’은 점차 ‘비빔국수’, ‘비빔냉면’ 등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간다. 이왕 ‘비빔’으로 굳어졌으니 ‘비빈’이 아닌 ‘비빔’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 굳이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렇게 굳어지고 그렇게 쓰이는 것이 말이다. 국어학자들이나 매달릴 어원 논쟁이나, 욕심 많은 지자체들이나 우길 원조 논쟁은 이제 그만하고 맛있게 비벼 먹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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ᆞ이 책을 읽고 나니 한성우 선생님이 너무 궁금해져서 다른 저서는 없나 검색해봤어요. 2016년에 출간된 이 책 <우리 음식의 언어> 말고도 2권의 책이 더 있더라고요. 2018년에는 '유행가에서 길어 올린 우리말의 인문학'이라는 부제로 <노래의 언어>를, 2019년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요즘 북한 말, 북한 삶 안내서'라는 <문화어수업>을 쓰셨대요. 세상에. 음식에서도, 유행가에서도, 북한 말에서도 이야기를 길어 올릴 수 있다니. 역시, 국어학계의 세헤라자드가 맞았어요... 2020년에는 또 어떤 주제로 언어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엮고 계실지 무척 궁금한데요, 만물박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밤새 듣고픈 손녀의 마음으로 저는 이제 <노래의 언어>를 들으러 갑니다! :)


+ 아참, 이 책의 단점은 읽다 보면 배가 고프다는 것... 음식 언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맛깔난 묘사 없이도 자꾸 배고파요... 음식 사진도 다 흑백이지만 아는 맛이 무서우니까... 그러니까 배고플 땐 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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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책읽기 - 지식을 경영하는
스티브 레빈 지음, 송승하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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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 힘든 일을 겪고 나는 책에 매달렸다. 그리고 책에 중독되고 말았다. 책을 읽는 동안 찾아오는 마음의 안정, 잠시나마 괴로운 일을 잊을 있게 해줄 아니라 재미까지 주는, 그런 책의 매력에 나를 던져버렸다. 시간이 흘러 괴롭던 일이 어느 정도 잊혀질 무렵, 책을 좀더 읽고 싶어졌다. 책이 가진 매력을 짧은 시간에, 쏙쏙 빨아들여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법 대해 알려주는 , 다른 이들의 읽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을 사들이고, 주말에는 효율적인 독서법을 알려준다는 강의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름대로의 읽기 습관을 갖추고 있다. , <전략적 책읽기>(밀리언 하우스. 2007) 내게 선물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매혹적인 제목인가? 역시 뭔가 새로운 방법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책을 만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로운 것은 없었다. 속에는 읽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전략적 읽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라서.
 
책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나는 대화 꼽고 싶다. 책을 읽지 말고, 책과 대화하라는 것이다. 저자를 만나 따끈한 잔을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자. 친구들과 수다를 책에 대한 생각들을 마구 쏟아내자. 궁금한 것은 질문하고, 다른 의견이 있으면 치열하게 싸워도 보자. 어느 맛있는 권을 소화시키고, 기분 좋은 트림을 하고 있는 당신이 보일 테니까.
 
나는 밑줄을 많이 긋는다. 아무 무늬도 없는 나무 연필을 손에 쥐고, 나를 감동시킬 문장을 찾기 위해 집중한다. 인터넷 서점 곳을 매일 돌아다니고, 관심이 가는 책은 주저 없이 주문한다. 종종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러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출퇴근 길에도,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책은 필수다. 침대에 읽고 싶은 책들을 올려두고, 밤에 누울 때마다 책들을 바라 본다. 다른 흥미거리가 생겨 읽기에 소홀하다 싶으면, 서평 이벤트에 많이 응모한다. 약속된 기한을 지키기 위해 퇴근 자유시간과 주말을 반납하기도 한다. 정성껏 서평에 누군가 같은 마음으로 댓글을 달아 주었을 , 신이 나서 다른 책을 고른다. 집에 들어가 TV 켜는 대신, 컴퓨터로 음악을 틀고 따끈한 잔을 준비한다. 그렇다고 안에만 박혀 있지는 못한다. 읽은 책을 나누기 위해 열심히 사람을 만난다. 사람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기쁨, 어느 친구가 소개해 책과 내가 좋아하는 책이 같았을 때의 행복, 의미 없는 푸념대신 수다를 떨며 웃고 떠드는 순간, 모든 것이 내가 책을 놓을 없는 이유다.
 
시간이 없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아무 것도 하는 시간, 나도 모르게 흘려 보낸 시간들을 긁어 모으고, 자투리 시간을 악착같이 활용해야만 하루도 빠짐 없이 책을 읽을 있다. 그러니 시간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것으로 확보하고, 시간들을 좋은 책으로 채우기 위해 계획을 짜는 성실한 나를 얻을 있다. 새로운 정보를 매일 접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가득하고, 학구열에 불탄다. 막연했던 관심사가 어느 구체적으로 좁혀진다.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들을 생각하면 요즘 , 싸도 너무 싸다.
 
너무 이야기만 했다. 으이구! ‘이야기만 하면 나는 세상 최고의 수다쟁이가 되고 만다. , 이제 당신의 차례예요. 당신의 읽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들려주세요.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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