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개정증보 2판) -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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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수명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인터넷 서점의 메인을 차지하는 책이라 해도 길어야 2주? 체감하기로는 1주만 지나도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책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독자의 장바구니는 터질 듯 불어난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다”는 말을 부여잡고 책을 사대는 (나 같은) 독자들은 갖고 싶은 책이 집에 도착하는 순간, 또 다른 책을 탐색한다. 이런 시대에 20년을 독자의 곁에 머무는 책이라니. 국보도 아니고. 


과학에 별 관심이 없는 나도 수십 번쯤 들어본 이름, 정재승. 내게 정재승이라는 과학자는 ‘심청’이나 ‘빨간 머리 앤’ 같은 존재였다. 너무 많이 들어서 굉장히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은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 없는,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 말이다. <과학 콘서트>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출간 후 20년을 존재했지만 한 번도 만날 일 없던 책을 이제야 펼쳤고, 끝까지 읽었다. 


‘개정증보 2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또다시 출간하는 20년 전의 이야기라니. 2주 후를 알 수 없는 세상에서 20년 전의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구심을 잔뜩 품고 서문을 펼치자마자 명쾌한 답이 나타났다.


📍“20년에 부치는 개정증보 2판은 독자들에게 복잡계 과학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학문적 나이테이자, 과학자 정재승이 독자들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학문적 주름이다. 앞으로도 개정판들을 통해 독자와 함께 책도 성장하는 모습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나이테가 쌓이고 주름이 늘어가면서, 독자들과 성숙해지는 책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드리고 싶다.”


저자의 바람처럼 책은 시간의 주름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었다. 올해 새로 쓴 서문을 시작으로, 10년 전 개정증보판의 서문과 20년 전 초판의 서문이 차례로 이어졌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기분으로 “애송이 연구원” 시절의 한 과학자를 한참 만나고 나면, 그의 10년 후, 20년 후의 이야기가10년 늦은 커튼콜,두 번째 커튼콜이라는 이름을 달고 펼쳐진다. 387쪽 중 75쪽을 차지하는 이 기나긴 앵콜을 읽으며 내내 뭉클했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연구하고 성장해 이제는 내로라하는 뇌공학자가 되었지만, “10년 후 세 번째 커튼콜에서 다시 인사드리겠다고 약속”하며 여전히 무대 뒤에서 독자들의 박수 소리를 기다리는 한 사람이 거기 있었다.


10년 후 다시 돌아올 이 멋진 연주자를 기대하며 책장을 덮으려는 찰나, 2001년 7월 7일, 2011년 7월 7일, 2020년 7월 7일이라는 글자가 찍힌 판권 면이 나타났다. 저자와 독자가 함께 쌓아가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며, 좋은 이야기를 잘 알아보는 편집자들의 흔적이 거기 있었다. 20년 전의 이야기가 꾸준히 독자를 만날 수 있도록 성장해온 출판사의 주름이 거기 있었다. 그렇지.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저자와 그런 저자를 발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출판사, 그렇게 나온 책을 끝까지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독자가 함께 움직일 때 책의 수명은 길어지는 것이었지.


책을 덮으며 몇 주간 심란했던 마음이 차분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성실하고 유쾌한 과학자의 세 번째 커튼콜을 의심 없이 기다린다. 나 역시 '독자'라는 자리에서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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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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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유고 산문이라는 짧은 문구가 붙은 책 <오늘의 착각>을 앞에 두고 며칠을 바라만 봤다. 사람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라는 뜻의 유고’. 시인 허수경의 글을 나는 유고로서야 처음, 제대로 만나는구나 싶었다.


읽은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이름이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시인의 ‘언니’였고, 늘 그에게서 소식을 들어왔고, 돌아가신 그때에도, 1년 후에도, 허수경 시인이 남긴 편지와 글들을 자주 접했으니까. 하지만 착각이었다. 나는 그의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채로 그를 가까이 느끼고, 그의 아픔과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환한 오렌지색의 고운 표지를 입고 내 앞에 온 시인의 산문을 한 문장 한 문장 쓰다듬듯 읽었다. 8편의 산문 속에 시가 가득했다. 시를 쓰고,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읽은 것을 전하며 또 하나의 시를 만들어내는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오랜 불면의 시간이 그 안에 있었다. 벼리고 벼려서 깊어진 시인의 생각과 언어가 그가 머물던 독일과 한국을 넘어 여러 세계에 닿아 있었다.


독자로서의 나는 매일 글을 읽는다. 그러면서도 ‘시’는 읽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함축되어 있다고, 어렵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자꾸 ‘이해’의 영역에서 시를 평가하고 멀리해왔다. 최근 시인이 쓴 산문을 여러 권 접하며 그 안에서 새롭게 시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 안다고 착각했던 허수경 시인도 <오늘의 착각>을 통해 이제야, 비로소. 그는 떠나고 없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시를, 시가 된 편지들을 하나씩 읽어나가고 싶다. 삶 자체가 시였던 다정한 언니를 이제라도 제대로 알아가고 싶다. 그럴 수 있으리라는 즐거운 착각에 기꺼이 빠진 채로.


“...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 앞에 서 있는 불안.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난 뒤에야 안심이 되는 세계. 꽃이 왜 예쁜지에 대해서 시인의 언어보다는 식물학자의 설명이 더 납득되는 이 논리적인 세계 앞에서 무작정 항복하는 것. 그런데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설명할 수 없는 것 그 너머에는? 그 너머에서 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 시가 아닐까. 논리로 설명되는 세계의 불완전함을 절망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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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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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는 이상한 책이었다. 아주 친숙한 소재로 시작된 이야기에 마음 놓고 공감하며 읽다가 갑자기 확 나 자신이 낯설어졌다. 그런 순간이 자주 있었다.


언론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서, 저자 권석천의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러다 잘리면 어쩌시려고?’, ‘이런 치부까지 굳이?’라고 묻고 싶을 만큼, 읽는 내가 다 걱정이 되는 솔직함이었다. 그런데 그 솔직함이 자꾸 거울처럼 나를 비췄다. 자, 당신도 좀 들여다보라고, 당신은 지금 어떠냐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책의 형상을 한 거울이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책을 읽지 않는 동안에도 자꾸만 제목이 떠올랐다. 사람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 우리는 여전히 무례하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데 이렇게나 자주 실패하지만, 그래도 다시 예의를 차려보자는 목소리가 나를 따라다녔다. 그 목소리는 절대로 “세상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대충 타협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뼈아픈 자각 후에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고, 내 비루한 현실을 인식한 뒤 찾아오는 그 부끄러움을 힘으로 우리 사람답게 살자고 계속 말을 건넸다. 아주 쉽고 부드럽게, 심지어 재미있게.


솔직히 말하자면 1967년생, 만 53세인 아저씨의 글에서 영화 ‘꿈의 제인’과 ‘우리들’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JTBC 보도국장과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거쳤다는 이 아저씨도 나처럼 TV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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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나 ‘까불이’들은 있다. 그 까불이들과 공존해야 하는 세상에서 남이 불편할까 봐 나를 낮추는 것도, 붙어보기 전에 도망치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니들 다 까불지 마라” 하고 외치고, “사람 봐가면서 까부시라”고 말해야 한다. 비록 목소리는 바르르 떨리고, 다리는 후들거리더라도."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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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후반부에는 웬 소설 같은 글들이 여러 편 나오는데, 읽는 사람은 좀 갸우뚱해지는 글이었지만 쓴 사람이 정말 재미있게 썼구나 싶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예리함과 동시에 “조용히 책 읽고 영화 보며 지내고 싶은 것이 오랜 꿈”인 사람의 순수한 애정이 곳곳에 담겨 있어서, 단호한 마침표와 소심한 말줄임표가 자유자재로 섞여 있어서 지루함 없이 읽었다. 아니, 무척 좋았다. 이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한 마음에 ‘권석천’이라는 이름을 검색해볼 정도로.


세상에, 누군지도 몰랐던 50대 기자 아저씨의 글을 읽었을 뿐인데 만나서 오래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이 생길 줄이야. 정말 이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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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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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라는 제목, 1997년부터 나무 작업을 시작한 ‘목수’이기도 하며, 몇 년 전부터 강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는 작가의 소개글을 읽으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책에 실린 10편의 소설 중 앞쪽에 배치된 것들은 어느 정도 그 상상과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뒤로 가면 갈수록 숲에 들어가 홀로 고요히 사는 삶을 택했지만, 실은 세상일에 너무도 관심이 많고 할 말도 많은 이야기꾼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이 소설로 김진송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배경도 없이 소설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갸우뚱하기도 하고, 와! 하며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늘 꿈과 현실을 오가고 있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지식들을 쉴 새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그 복잡함 속에서도 한순간도 흥미를 놓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듯한 상세한 묘사, 한 문장의 길이가 엄청난데도 술술 읽히는 리듬감 있는 문장 덕분이었다. 소설 속 배경 역시 어찌나 구체적인지 자꾸만 실제 이야기로 읽혔고, 현실 풍자가 많아 소설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작가는 자꾸 현실을 비꼰다. 소설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하고 싶은 말을 죄다 쏟아 붓는다. 그 안에는 누군지 다 알만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얼굴이 여럿 겹치고,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겹친다. 처음엔 그냥 피식거리며, 재미있게만 읽었다. 시사 팟캐스트를 듣는 기분으로. 그러다 서서히 거리두기가 되는 시점이 찾아왔고, 지금 우리, 그 안의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읽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숲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피식거리며 웃다가, 뒷맛이 씁쓸해지면서 마무리 되는 10편의 소설을 참 맛있게 읽었다. 매일 걷는 길,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들, 아침마다 듣는 뉴스, 숲에서 새로 만난 나무, 상추를 씻다 발견한 달팽이(?) 하나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설이기도. 작가의 다른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는 어쩌면 작가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수식이지 않을까 싶다. '만드는'이라는 말 앞에 '아주 잘'을 붙여서.

언제나 전진을 막는 장애물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시해도 좋을 자잘한 것들이었다. 거물들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 한두 개의 추문만 들추어내면 그대로 사라지게 할 수 있어. 문제는 익명의 존재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껄여대는 그런 존재들이야. 그들은 쳐내는 수밖에 없어. (223-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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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의 언어 - 국어학자가 차려낸 밥상 인문학 음식의 언어
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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ᆞ단어 하나에서 시작해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오가며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고수, 만난 적 있으세요? 저는 만났습니다. 바로 이 책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 2016)에서요.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면 무조건 읽고 싶은 제게 이 책은 와, 뭐랄까, 언어 수집가가 몇십 년간 모아놓은 노트를 한 권으로 압축한 사전 같았어요. 상세한 레시피 같은 건 없고요, 맛깔 나는 음식 묘사도 없습니다. 이 책의 방점은 ‘음식’이 아니라 ‘국어학자가 차려낸’에 있거든요. 한반도는 물론 중국의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넘나들며 언어를 조사하고 연구해온 국어학자가 음식이라는 주제를 만나면 순식간에 음식 언어의 지도가 촤르르 펼쳐진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느꼈어요.


ᆞ‘밥’의 뜻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밥’이라는 목적어와 어울리는 동사를 거쳐, ‘밥’을 뜻하는 지역의 방언들을 지나, 1890년대의 주막집 밥상으로, 지난 100년의 밥그릇 크기의 변화로, 죽과 미음으로, 삼시 세끼와 며느리밥풀꽃으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 퍼져나갑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표현 ‘징까루’에서 시작된 밀가루 이야기는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거쳐, 동요 ‘밀과 보리가 자란다’와 만나기도 하고요. 하나의 음식 언어가 세상 어디까지 닿게 될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밤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목숨을 지켰다는 <아라비안나이트> 속세헤라자드 처럼, 한성우 작가님을 통과한 음식 언어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집니다.


ᆞ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읽다가는 머리가 아파질 수도 있어요. 너무 방대한 자료가 압축되어 있으니까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독자라면 어느 장을 펼쳐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실 테고요. 한때 민속학과 방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저는 언어학적 설명들이 자주 나오는 점이 무척 좋았습니다. 하지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여지를 남겨두는 점도 좋았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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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8쪽) “볶음밥 역시 ‘볶은 밥’인데 같은 기제에 따라 ‘볶음밥’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비빔밥’의 ‘비빔’은 점차 ‘비빔국수’, ‘비빔냉면’ 등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간다. 이왕 ‘비빔’으로 굳어졌으니 ‘비빈’이 아닌 ‘비빔’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 굳이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렇게 굳어지고 그렇게 쓰이는 것이 말이다. 국어학자들이나 매달릴 어원 논쟁이나, 욕심 많은 지자체들이나 우길 원조 논쟁은 이제 그만하고 맛있게 비벼 먹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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ᆞ이 책을 읽고 나니 한성우 선생님이 너무 궁금해져서 다른 저서는 없나 검색해봤어요. 2016년에 출간된 이 책 <우리 음식의 언어> 말고도 2권의 책이 더 있더라고요. 2018년에는 '유행가에서 길어 올린 우리말의 인문학'이라는 부제로 <노래의 언어>를, 2019년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요즘 북한 말, 북한 삶 안내서'라는 <문화어수업>을 쓰셨대요. 세상에. 음식에서도, 유행가에서도, 북한 말에서도 이야기를 길어 올릴 수 있다니. 역시, 국어학계의 세헤라자드가 맞았어요... 2020년에는 또 어떤 주제로 언어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엮고 계실지 무척 궁금한데요, 만물박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밤새 듣고픈 손녀의 마음으로 저는 이제 <노래의 언어>를 들으러 갑니다! :)


+ 아참, 이 책의 단점은 읽다 보면 배가 고프다는 것... 음식 언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맛깔난 묘사 없이도 자꾸 배고파요... 음식 사진도 다 흑백이지만 아는 맛이 무서우니까... 그러니까 배고플 땐 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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