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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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라는 제목, 1997년부터 나무 작업을 시작한 ‘목수’이기도 하며, 몇 년 전부터 강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는 작가의 소개글을 읽으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책에 실린 10편의 소설 중 앞쪽에 배치된 것들은 어느 정도 그 상상과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뒤로 가면 갈수록 숲에 들어가 홀로 고요히 사는 삶을 택했지만, 실은 세상일에 너무도 관심이 많고 할 말도 많은 이야기꾼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이 소설로 김진송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배경도 없이 소설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갸우뚱하기도 하고, 와! 하며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늘 꿈과 현실을 오가고 있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지식들을 쉴 새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그 복잡함 속에서도 한순간도 흥미를 놓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듯한 상세한 묘사, 한 문장의 길이가 엄청난데도 술술 읽히는 리듬감 있는 문장 덕분이었다. 소설 속 배경 역시 어찌나 구체적인지 자꾸만 실제 이야기로 읽혔고, 현실 풍자가 많아 소설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작가는 자꾸 현실을 비꼰다. 소설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하고 싶은 말을 죄다 쏟아 붓는다. 그 안에는 누군지 다 알만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얼굴이 여럿 겹치고,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겹친다. 처음엔 그냥 피식거리며, 재미있게만 읽었다. 시사 팟캐스트를 듣는 기분으로. 그러다 서서히 거리두기가 되는 시점이 찾아왔고, 지금 우리, 그 안의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읽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숲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피식거리며 웃다가, 뒷맛이 씁쓸해지면서 마무리 되는 10편의 소설을 참 맛있게 읽었다. 매일 걷는 길,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들, 아침마다 듣는 뉴스, 숲에서 새로 만난 나무, 상추를 씻다 발견한 달팽이(?) 하나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설이기도. 작가의 다른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는 어쩌면 작가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수식이지 않을까 싶다. '만드는'이라는 말 앞에 '아주 잘'을 붙여서.

언제나 전진을 막는 장애물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시해도 좋을 자잘한 것들이었다. 거물들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 한두 개의 추문만 들추어내면 그대로 사라지게 할 수 있어. 문제는 익명의 존재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껄여대는 그런 존재들이야. 그들은 쳐내는 수밖에 없어. (223-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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