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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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유고 산문이라는 짧은 문구가 붙은 책 <오늘의 착각>을 앞에 두고 며칠을 바라만 봤다. 사람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라는 뜻의 유고’. 시인 허수경의 글을 나는 유고로서야 처음, 제대로 만나는구나 싶었다.


읽은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이름이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시인의 ‘언니’였고, 늘 그에게서 소식을 들어왔고, 돌아가신 그때에도, 1년 후에도, 허수경 시인이 남긴 편지와 글들을 자주 접했으니까. 하지만 착각이었다. 나는 그의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채로 그를 가까이 느끼고, 그의 아픔과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환한 오렌지색의 고운 표지를 입고 내 앞에 온 시인의 산문을 한 문장 한 문장 쓰다듬듯 읽었다. 8편의 산문 속에 시가 가득했다. 시를 쓰고,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읽은 것을 전하며 또 하나의 시를 만들어내는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오랜 불면의 시간이 그 안에 있었다. 벼리고 벼려서 깊어진 시인의 생각과 언어가 그가 머물던 독일과 한국을 넘어 여러 세계에 닿아 있었다.


독자로서의 나는 매일 글을 읽는다. 그러면서도 ‘시’는 읽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함축되어 있다고, 어렵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자꾸 ‘이해’의 영역에서 시를 평가하고 멀리해왔다. 최근 시인이 쓴 산문을 여러 권 접하며 그 안에서 새롭게 시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 안다고 착각했던 허수경 시인도 <오늘의 착각>을 통해 이제야, 비로소. 그는 떠나고 없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시를, 시가 된 편지들을 하나씩 읽어나가고 싶다. 삶 자체가 시였던 다정한 언니를 이제라도 제대로 알아가고 싶다. 그럴 수 있으리라는 즐거운 착각에 기꺼이 빠진 채로.


“...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 앞에 서 있는 불안.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난 뒤에야 안심이 되는 세계. 꽃이 왜 예쁜지에 대해서 시인의 언어보다는 식물학자의 설명이 더 납득되는 이 논리적인 세계 앞에서 무작정 항복하는 것. 그런데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설명할 수 없는 것 그 너머에는? 그 너머에서 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 시가 아닐까. 논리로 설명되는 세계의 불완전함을 절망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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