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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 미국 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그 역사와 정치적 욕망
김진호.최형묵.백찬홍 지음 / 평사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Again 1907
작년이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기념이었다고 한다(http://1907revival.com/). 어렸을 때 교회에서 불렀던 '부흥'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 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나라 이땅에 임하소서"
'부흥'은 왜 이루어져야 하는가? 천천히 생각하다보니, 가사가 끔찍하게 다가온다. 하나님께 오로지 회개하는 자에게 죄악의 용서가 있을 것이며, 우리들의 우상들에게는 성령의 불이 과감하게 선사될 것이며, '부흥의 불길'과 '진리의 말씀'과 '은혜의 강물', 그리고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는 그 주님나라가 다가오게 될 것이다.
철저하게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데다가, 부흥, 진리, 은혜, 성령이라는 것은 주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철저히 수동적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이에 대항하면 '우상'과 같은 급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었구나.
2002년 월드컵에서 "Again 1968"의 카드섹션을 기억하는가? 똑같은 구호가 작년 한동안 교계에서 설파되었었다.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글들을 읽다보니, 이 부흥이나 노래속의 '부흥'이나 결국 비슷한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Again 1907도 결국에 끔찍한 과거로의 복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례한 者들의 크리스마스> - 무엇이 무례한가?
지금까지 여남은 권의 책들을 읽어왔고, 한국 교회에 대한 나름의 생각틀을 통해서 그것들을 소화해 왔고, '역사적 예수론'이라는 대안적인 이론틀로써 '기독교인'으로서의 나를 어떻게 정립할까 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꼽을 수 있는 책들은,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http://blog.aladin.co.kr/hendrix/1857177)와 류상태의 책들(http://blog.aladin.co.kr/hendrix/1713606, http://blog.aladin.co.kr/hendrix/1857014),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무례한 복음>(http://blog.aladin.co.kr/hendrix/1836958) 정도였는데, 이 책 <무례한 者들의 크리스마스>는 그 중에서 가장 심층적으로 벼려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무례하다는 이야기인가? 저번의 <무례한 복음>에서의 '무례한'이 다른 나라의 민중들에게 '제국주의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전해지는 복음의 수식어였다면,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이하 크리스마스)에서의 무례한은 1)내부적으로 성서무오류의 근본주의 2)사회에 강요하는 보수주의 3)'비정치성'을 가장한 정치교회의 3가지 층위로 정리할 수 있다.
이 3가지 층위는 서로 엉켜서 서로 강화하며,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더욱더 드러낼 수밖에 없고, 더 강고하게 '병리적 현상'으로서의 교회를, 그리고 '권력장치'로서의 교회의 이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무례함'의 계보학
이러한 한국교회의 '무례함'은 역사적인 것이다. 허나 이것은 '정통'에서 뿌리내려서 올곧게 내려온 산물이 아니라, 사회의 갖가지 현상들이 뒤엉켜진 것이었다. 이 '역사성'을 생각해 보자. 초기 선교사가 들어왔을 때, 선교사들의 입장이라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것에 다름 아니었다. 민중들은 수탈과 '전쟁' 그로 인한 기근으로 인하여 교회를 찾았으나, 이에 대해 선교사들을 위시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탐탁치 않게 여겼다.
절박한 민중의 간구라는 것에 대답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예수쟁이'를, 그리고 교회의 '신도'를 통한 '기독교化'를 바랬던 선교사들은 그들의 사회적 요구라는 것에 대답하지 않았고, 오로지 '예수이름으로' 기도하고, '내밀한' 차원에서의 하나님 섬기기를 바랬다.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 더욱더 극한으로 이르렀을 때, 민중들은 교회를 찾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똑같이 '기독교화'를 바라게 되는 데, 그것들이 마주쳐 일어난 사건이 '평양대부흥운동'이었던 것이다. 극한의 심리적 위축은 '간구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찾게 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개개인에게 있어서 이것이 '심리적'인 평안을 얻게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의 변화나, 정치적인 유의미한 변화, 혹은 사회적인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한편에서는 '억눌린자'의 펼쳐짐이 아닌 '억눌린자'를 골방-기도방으로 내미는 결과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바람을 탄 평양의 기독교가 한국의 주류 기독교가 되었다. 이후에도 일제-식민치하의 엄혹한 현실은 '주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이들에게 더더욱 악조건을 만들었고, '신사참배'라는 불행이 그들에게 닥쳐왔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가장 온전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꿋꿋히 기도했다. 적극적 '대항'보다는 소극적인 '저항'으로 버틴것이다. 교계 지도자들 중 많은 이들이 잡혀들어가 순교를 당했고, 이러한 경험은 그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으며, 그러한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은 채, 전쟁의 상흔마저 닥쳤을 때, 전혀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지경에 이른다.
문제는 이의 해결책이다. 그들은 이러한 대외적 환경에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었고, 반공주의와 친미라는 길을 택하게 되었으며, 더 문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그들의 신앙을 동일선상에서 엮어버렸다는 점이다. '성서무오설'로 정리될 수 있는 근본주의적 강령은 비판이나 '자유로운 사유' 따위는 헌신짝처럼 갖다 버렸다. 그들은 '온전한 믿음'을 택하는 대신 하나님이 주신 '두뇌'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독재시대에 있어 대다수의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정치에 대한 비개입'을 이야기하면서 진보적인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사회참여를 반대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구국기도회'등을 통하여서 정권을 찬양하였고, 한국의 압축적인 경제성장과 교회의 압축적인 성장이 함께 했다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경향속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교회는 든든한 '독재정권'의 우군이었던 것이다.
최근 교회들이 제목소리를 내면서 '정치화'되는 것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들이 갖고 있는 '근본주의적' 가치관과 사회적인 보수주의적 입장과 반하는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악'의 무리가 나라를 집어삼키려 하는 데,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물론, 최근의 세련된 경향의 근본주의(NGO로 포괄될 수 있는)의 교회들은 예전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빨갱이'를 지옥에 보내라는 사자후는 토하지 않지만, 세련된 보수(New-Right)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한국교회를 단순하게 '미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성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정치교회>(http://blog.aladin.co.kr/hendrix/1859898)를 읽을 때도 생각했었지만, 교회들의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오히려 순수한 그들의 욕망의 목소리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이미 권력의 추구를 명시하고 있는 정치권력에게 놀아날 소지가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미 한국의 교회는 극우적 멘털리티 그 자체를 창출하고, 권력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것은 대형화-세습화라는 양상을 띄고 있는 교회들의 경향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으며, 또한 '특권'(면세혜택 등)과 함께 '자본'을 함께 향유하는 교회들의 구조를 보면서 더욱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진보적 기독교인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사실, 진보적 교회 이야기를 일부러 빼놓았다. 한국의 진보적 기독교와 그 운동이라는 것은 독재정권의 시대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고, 민중의 '흐느낌'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해왔다. 초창기의 사회운동이 크리스찬아카데미 등에서 길러진 이들에 의해서 제창되었고, 또한 민중운동의 많은 이들이 '민중신학'의 세례를 받기도 하였으며, 억눌린 자들을 대변하는 교회의 역군들이 진보적 기독교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바다.
하지만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제목 그 자체가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했던 것은, '제도적' 민주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시작되었을 때부터의 '진보적 기독교'라는 것의 자리매김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진보적 기독교 인사들 중 많은 이들이 정부에 개입했고, 나름의 자리를 확보했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아니, 어떤 차별성이라도 만들어 내었는가.
문제는 그들의 당연스러운 '변화'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던 것이 먼저이리라. 그들 중 일부는 '자유주의자'였을 테고, 또 다른 사람들은 지금의 기준에서 '좌파'였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민족주의자'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민주화를 위해서, 또 다른 어떤 이들은 '민중의 생존권'을 위해서, 그리고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다. 이들의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차이는 묵살되고 '범-' 이라는 접두어가 가르치듯 항상 묶여서 '덩어리'로만 보이려는 경향들이 오히려 한줌밖에 안되는 숫자의 그들의 발목을 옥죄었다. 다양한 논의를 펼치고 그것들의 실천들을 담보로해서 '연대'하는 것 보다는, 항상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야한다'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온 것은 아닐까?
안병무 이후의 민중신학이 없는 것은 어쩌면 '천개의 민중신학'을 통합한 '하나의 민중신학'을 꿈꾸기에 그래왔던 것은 아닐까? 진보적 기독교가 쇠퇴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진보적 기독교'를 규정하려는 망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작고 다부진 '신학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소망이다. 그리고 그것이 '공룡'이 되어버린 한국 개신교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더 읽어야 겠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꾸준히 생각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