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 오른 밥상 - 건강한 사회를 위한 먹거리의 대반란
우석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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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석훈의 첫번째 퍼즐, 도마 위에 오른 밥상

우석훈의 글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주고 있는데, 내가 읽은 우석훈의 저작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 <88만원 세대> ->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아픈 아이들의 세대> 순이었다. 그의 블로그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퍼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같다. 그의 <음식국부론 - 도마 위에 오른 밥상>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식국부론 - 도마 위에 오른 밥상>과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현상들을 통해서 그 근원에 어떤 문제가 있는 지를 추측하게 하는 퍼즐 조각이라면, <한미FTA...>는 그 경향을 촉진할 수 있는 퍼즐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아니고, 수십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퍼즐의 조각조각을 통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동형적이라 할 수 있겠다. <88만원 세대>가 그 결과물들이 그려내는 세상에서의 10대와 20대의 지금을 말한다면, <샌드위치 위기론 ...>은 지금의 기업들이 당면하는 '본질적' 위기에 대한 다시 바라보기가 될 것이다.

<도마 위에 오른 밥상>은 우리의 음식, 식단에 대한 이야기다.

우석훈이 가진 강력한 재능은 '박학다식함'이 신문 스포츠면 수준의 평이한 수준의 글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책은 10대도 읽을 수 있고, 가정집의 가사노동을 하면서 잠시 밖에 짬을 낼 수 없는 한국의 주부들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장점은 유감없이 드러난다.

'한살림'이나 'coop' 등의 생협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요 몇년 새, 주부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퍼지기 시작한 운동의 결과물 들이다. '아픈 아이들'이 늘어나고 그에 대한 원인 조차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대응인데, 아토피가 그런 흐름들에 크게 기여했다. 난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아이를 가져보지도 않았고, 아토피를 앓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크게 공감할 수 있을 지 장담을 못하지만, 밤새 가려워 긁는 '티없이 맑은 아이'의 울음을 듣는 엄마가 아이 만큼 마음 아파했으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우석훈은 '아빠들의 입맛'과 '엄마들이 차려주는 밥상'의 괴리를 이야기하는 데, 밖의 식당에서 조미료에 버무려져버린 음식을 먹어버릇하여 길들여진 입맛을 가진 아빠들이 집에서 "왜 이리 싱거워?"를 연발하면서 엄마들은 조미료를 더 넣기 시작하고, 그걸 같이 먹는 아이는 '조미료'가 주는 영향권에 그대로 포획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입맛을 가진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얕은 맛'에 노출되고, 외식을 즐겨하게 되며, 설탕과 조미료로 가득한 식단을 추구하게 되며, 아토피가 아니더라도 '비만'에 노출되는 것이 지금의 우리 식습관이 만들어낸 사회의 모습이다.

된장이 한동안 천대받다가 '항암제'로 추앙받기 시작하였고, 김치가 '세계인의 식품'이 되었다.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단순하다. 오랫동안 먹어왔기에 검증되었다는 점, 그리고 '발효'라는 혁신적인 맛의 기법에 의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에 대해서 매번 강변하지만, 기실 음식에 대해서 '보수'적인 것이 오히려 사회적인 혁신을 추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음식 국부론

이런한 음식 이야기에 끝에 '음식국부론'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생각할 문제들을 던지는데, 미국의 농업형태, 축산형태에 대해서 알려주는 부분이다.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 자유주의적인 방법에 의해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의 영농정책이, 그리고 축산정책이 집행되리라 생각하지만, 미국은 그들에게 '생계비 형태'의 보상을 통해서 농업을 육성하고 있다. 그리고 대규모 원조를 통해서 세계인의 입맛을 길들이고 그것을 통해서 수요를 창출하면서(대규모 곡류 메이저 기업들) 이익을 보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농업을 버리는 정책의 연속이다. WTO 문제가 불거진 이후 10여년이 지나고 있지만, 농업은 언제나 '울며 징징대는' 귀찮은 존재였을 뿐, 그들에게 진정한 '시민권'과 '생산자'로서의 권리를 준적이 없으며, 가장 진보적이었던 정부는 "6헥타르" 즉 1만 5천평 이상을 가진 기업농 형태가 아닌 다른 농업 형태를 철수하는 기조로 농업을 집행했고, 그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제 곧 음식의 '안전'이라는 것이 쟁점이 될 텐데, 그 때 우리는 누가 만든 식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가? 농촌 공동화를 오히려 조장하는 현재의 풍토는 곧바로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양산하게 할 수밖에 없다. 유기농을 먹여야 겠지만, 현재같은 농업공동화가 심화될 수록, 유기농 농산물의 국산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유기농 농산물은 비싸질 수밖에 없으며, '하이엔드'화 될 수밖에 없다.

그의 저작들은 언제나 처음에는 '우울함' 그리고 '극한적인 절망'을 안겨주지만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데, 그렇기에 결론 부는 오히려 '마지막 기회'를 말하는 어느 정도는 희망적인 논조가 보인다. 또 그가 다른 사회과학자들과 다른 것은 지금까지 나왔던 솔루션들과 좀 다른 방식의 '공동진화'라는 시스템을 상정하는 대안들을 내놓는 다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대안은 '생협'이다. 최소한의 '중간거래'를 차단하고 진정 믿을 수 있는 음식, 안전한 음식을 얻을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생협'. 우리는 '생협'에 대해서 '먹물 좀 먹은 가방끈 여자들'의 '귀찮은 소비행태'로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고, 어쩌면 지금까지의 어떤 좌파들도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 듯하다. GMO에 대한 비판은 하지만, 그 대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데, 우석훈의 강점이란 당장 쓸 수 있는 '정책'으로서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음식에 대한 선택은 언제나 '개인적'인 것이 된다. 내가 '아웃백'을 먹던지 아니면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와 '계란 후라이'를 먹던지는 언제나 내 선택일 것이다. 물론 내가 유기농을 사는 지 안 사는 지의 문제 또한 내 개인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다수가 유기농을 먹을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게 하는 것과, 유기농을 소수의 백화점 특별 매장에서만 살 수 있는 환경에 대다수의 사람들을 처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 크게는 국가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동진화'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거대담론'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디테일'을 읽어내는 능력이 떨어졌던 나에게 이런 우석훈의 저작들이 주는 힘이란 엄청난 것이고, Journalist가 되려는 계획에 있어서도 많은 소스를 주며,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한 번쯤 다시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다시 한번 그의 저작들을 찬찬히 살펴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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