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론 현대사상의 모험 10
에릭 홉스봄 지음, 강성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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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과의 유쾌한 대화?

"저항 반역 그리고 재즈"라는 책을 읽었을 때 홉스봄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사랑방에서 손주를 머리맡에 앉혀두고 하기엔 부담스러운 이야기들의 역사였다면, 이 책 "역사론"은 그동안 그가 기술해온 '역사 방법론'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난해한 감이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의 문체에 젖어서 익숙하게 될 때 쯤에는, 동네 어귀에서 앉아있는 현인인 한 어르신과의 대화로 이 책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홉스봄에 의해서 비판받는 역사가들은 흔히 다음과 같은 부류이다.

먼저 속류 맑스주의 역사가들이다. 맑스의 인식을 단순한 '토대-상부구조'론으로 환원하고, 단선적인 역사관 (원시 공산제 ->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제 -> 사회주의 사회구성체)로 역사를 환원하려는,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근대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홉스봄은 먼저 수행한다.

두번째는 주류의 계량사가들이다. 모든 역사현상을 수치로 환원하고, 칸트주의자들의 '의심할 수 없는 전제'에 입각한 실증주의적 방법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그들은, 실제 역사가 움직이는 힘에 대한 인식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홉스봄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세번째가 상당히 논쟁적인 부류인데, 그들은 바로 포스트모던 역사가들이다. 그들은 중심에 대한 해체, 니체적인 상대주의를 통해서 역사를 파악하고, 생생한 구술사와 그들 나름의 계열화를 통해서 역사를 파악하려 하는데, 홉스봄은 그들에 대해서 절대적인 사실관계의 측면을 그들이 간과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홉스봄이 지나치게 완고한 나머지, 이 부류의 사람들의 장점을 간과한 것일 수있다. 중심과 결정론에 대한 부정이 의미하는 것이, 새로운 진리작용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역사의 움직이는 동적 측면을 강조하는 홉스봄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상당부분에서 홉스봄은 아직 이론적 입장이 완성되지 않은 '약한 고리'에 대해서만 비판을 가하는 측면도 나에게는 반비판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시기와 그의 지적사유의 풍토를 살펴보건데, 그의 저작은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으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학문에 천착하고 다른 사유와의 접속을 지금까지 끊어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다시한번 그의 저작들의 위대한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역시 이 책을 다 덮고나서 느끼기도, '어르신 한 수 잘 배웠습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단단하고 고집스럽지만 상당히 많은 '지혜'가 들어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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