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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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유원에 대해서

www.armarius.net 에 들어가본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꽤 쓸만한 서평을 읽을 수 있고(요즘은 좀 뜸한 듯하다), '어떤 공부를 할 때 어떤 책부터 읽어야할까'에 대해서 고민이 있을 때 그 해결책을 나름대로 얻을 수 있는 홈페이지다.

강유원을 안 지는 꽤 되었으나, 그냥 왠지 모를 그의 '꼬장꼬장함'에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았고, 그냥 철학자, 그리고 좀 탄탄한 글을 쓰는 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저술들을 올해 조금씩 읽었을 때(그의 manuscript를 읽고, <<책과 세계>> http://blog.aladin.co.kr/hendrix/1713643 를 읽고 나서) 부터 그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아우라, 혹은 힘을 느끼게 되었고, 또 그가 보여준 실용적으로 즉각 사용할 수 있는 공부법(예를 들면 3공 노트의 사용법)에 대해 알고 또 따라하게 되면서 강유원에게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교양', '독서', 그리고 <<책>>

한동안 지식의 축적에 굉장한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http://blog.aladin.co.kr/hendrix/1718148 물론 그 매개가 되었던 현재도 실행되지 않고 있는 '퀴즈 영웅' 프로젝트 때문이었지만, 덕분에 90% 정도의 비율로 매일 신문을 정독하게 되었고, '교양'에 대해서 말하는 책들을 예전에는 흘깃 스치고 지나가다 이제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일전에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을 읽었다. 방대한 유럽의 역사, 그리고 문학, 미술, 음악, 지성사에 대해서 풀어놓는 그의 매력보다, 그가 말하는 '교양'과 그것을 획득한 방법에 더 끌리곤 했다.

"교양은 자신의 문명화에 대한 아주 폭넓은 지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가 사람이라면, 그 이름은 교양이 될 것이다."(p.566) "교양은 문화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어색하게 남의 눈에 튀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p.567) "즉 교양지식은 단지 정보의 총합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기놀이에서와 같이 게임 규칙과 정보의 혼합이다. ... 장기판의 모양과 범위와 말들의 숫자와 고유의 길에 대한 이해다."(p.575)

"초보자는 일등급의 학술서적과 삼등급의 돼지가죽책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귀중한 시간을 대학의 값싼 생산품 때문에 낭비하지 않게 된다."(p.623) "서점에서는 "그냥 구경 좀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분명하게 한마디만 하면 된다."(p.624)

그리고 강준만의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http://blog.aladin.co.kr/hendrix/1709615)을 읽고 "이거 뭐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주저리 주저리 시의적 이슈들을 늘어놓은 책에 대한 반감이랄까?

<<책>>을 읽기 전 마지막으로 읽은 이정우의 <<탐독>>(http://blog.aladin.co.kr/hendrix/1718148)은 굉장한 도전으로 다가왔는 데,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고, 그걸 알기에 길이 까마득해 보였다는 거다. 이건 다독으로 극복하려면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 그런 것이었다. 학문의 횡단. 너무나 아득하지만 꼭 정복하고 싶은 유토피아로 보였다.

이런 책들을 읽고난 후에 잡은 <<책>>은 또 좀 다른 '책'이다.

그가 www.armarius.net 에 올려놓은 서평들의 모음이다. 사실 다운받아서 읽을 수 있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날로그 인간인 게, 굳이 웹상에 올려놓은 글도 다시금 뜯어보기 위해서는 꼭 출력이라는 변환 과정이 필요하다. 출간이 되어있으면 산다.

성대 앞 '풀무질'에 갔다가 '월척'으로 이 책을 낚은 것을 보면 그렇다. 남들 같으면 그냥 다운 받아서 봤을 수도 있겠다(책값이 없는 독자들이여 다운 받아서 프린트 해서 보시길).

<<책>>에서 강유원의 독서의 지도를 명쾌하게 잡아내기는 어렵다. 왜냐면 단편적인 서평들의 모음이고 목차를 아무리 쳐다봐도 '무순'임에 틀림없다. 그냥 "시간순이었을까?" 라는 추측 뿐이다.

아마 다치바나 다카시였다면, 시간순으로 읽은 책들을 정리하면 그가 읽었던 주제들의 순서가 나올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진 프로젝트에 맞춰서 책을 몇 meter 단위로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유원이 이 책에서 어지러이 주제들을 늘어놓는 다 하여 그가 '어지럽게 생각'이 늘어져 있는 사람은 아니다. 몇가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전공이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이었던 점에 약간의 알리바이를 둘 수 있겠다.

그가 읽는 책들은 주되게 사회과학과, 역사 책들이라 할 수 있으며, 그가 주로 찾아내는 주제들은 그 책들의 주제의 빈도에 따라 '파시즘', '민족주의', '현대자본주의', '미국', '서양 지성사' 등에 걸터있다.

약간의 맥락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현대 사회를 읽어내기 위해 '파시즘'과 '미국', '현대자본주의'를 살펴보고 그 근저에 있는 서구의 사상의 흐름을 읽어낼 필요가 있던 게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강유원이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 데, 그는 변명을 한다는 게 한편으로 좀 웃겼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읽는 사람이 아니다. 책읽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노는 게 인간본성에 맞는 거 아닐까. 그냥 빈둥거리는 거 말이다. 예전에는 궁금한 게 많아서 책을 읽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다. 무식하다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책을 읽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도 별로 없다. 모르면 어떠랴 하는 거다. 왜 책을 읽냐고 누가 물어보면 '그냥 읽는다', '심심해서 읽는다', '안 읽으면 할 일이 없어서' 등이 적절한 답이 아닐까 싶다."(p.295)

하지만 '그냥 읽는자'라 말할 수 없는 까칠한 그의 비평이, 그의 '날서있음'이 자꾸만 그의 글에 손이가게 한다.

이제 넘어설꺼다. 이제 내 공부를 할 구상이다. 하지만 그 성실함과, '주례사식 비평' 따위는 집어치고 있는 강유원에게 배워야 할 건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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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 2008-01-31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산적 책읽기50도 좋았는데 언젠가 이것도 읽어봐야겠군요^^;

양승훈 2008-01-31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원래 '생산'과는 좀 떨어져 있어서요~~ 이 책 괜찮죠.. ㅎㅎ
 
왼손과 오른손 - 좌우 상징, 억압과 금기의 문화사
주강현 지음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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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면 아무런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보리라 선택한 책이었다. 주강현은 언젠가 TV에서 보았었는데,, 도올에는 못 미쳐도 상소리 잘 쓰면서 강의하는 민속학자다. 그의 강의는 차분하면서 씨니컬하고, 갑자기 격정적이 될 때가 있다.

이 책은 문화사적인 좌우 대칭, 그리고 지리의 배치 등을 보여준다. 그를 위해서 엄청난 자료를 동원해 이를 입증한다.

공간이라는 것의 정치경제학~ 그것에 대한 문화사적 분석이다..

사실 이 책은 단순한 이론 사회학을 뛰어넘어서 문화인류학이나 복식학의 범주를 질주하고 있기에, 이진경의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같은 책 처럼.. 한번 눈에서 감을 일으면,, 쭈욱 그냥 지나치게 된다. 따라서 어느정도의 '문화인류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일반 교양서는 아닌 셈이다. 다만 오랫동안 천천히 따져가면서 읽고 '옳거니' 하면서 읽으면 음미할만한 책이다.

따라서 나에게 남는 것은 '다량의 정보가 홍수처럼 왔다가 갔다가 한' 기억이고.. 몇가지 문구가 기억 남는다.

왼손과 오른속은 선천적으로 '우열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했듯,, '특정한 관계'(사회적 관계)한에서만 차별받거나 배제될 따름이다.

또한 현대에 있어 왼손에 대한 붐이라는 것도 사실은,, 왼손에 대한 '배제'의 논리가 깔려 있으며, 그 왼손의 유용성의 척도를 강조하는 사람들 조차 사실은 '경제성'에만 주안점을 둘 뿐 왼손과 오른손의 대등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대칭을 추구하나 사실은 비대칭 적이며, 자연은 비대칭적이나 오히려 그러한 대칭에 대해서 비차별적이다..

난 왼손잡이야... 나나난나난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나 ......

그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내 유치원 선생이 말한 것 처럼 왼손이 저주받은 손으로 거듭나지 않는 것은,, 결국 '유전자'를 갖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에 달려있지 않을까?

(2004년 8월 12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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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 대담 시리즈 2
김용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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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큼 도발적인 책으로 보기는 어려운 책이다.

요즘 한참 잘나가는,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서양철학(맑스주의, 문화철학)을 공부한 김용석

근대적 사유에 대한 반성으로 동양철학을 사유하는 이승환이 만난다.

시종일관, 이승환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감을 앞세워서 선입견을 먼저보여주지만,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는 그의 '문제설정'에 의한 사유에서 오는 것이었으리라..

상당히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서 몇가지는 공감하고(자본주의 근대의 폐혜 => 새로운 사유의 필요성) 몇가지는 계속 부딪히면서(옥시덴탈리즘:서양에 대한 편견, 오리엔탈리즘:동양에 대한 편견) 합의라기 보다는 김용석이 져주는 분위기로 논의를 한다.

철학이라는 것이 어떻게 세상에 적용될 수 있는 지를 볼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기실. 우리에게 주어진 서구적(게다가 자유주의 - 칸트, 데카르트, 로크, 베이컨, 논리실증주의 편향) 사유의 근거없음을 우리는 너무 믿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다만,, 김용석의 '형식 논리'에 대한 강조는 맥락을 이해하더라고 지나친 감도 없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그들의 전제 없는 논리의 강조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맥락적으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사실,,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조차도 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새로운 사유의 질료로 쓸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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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논술.토론.교양의 심화를 위한 43개의 주제와 43명의 놀라운 답변들 휴머니스트 교양을 읽는다 8
김용석.이재민.표정훈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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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학회에서 뭔가의 책을 '연구'하면서 본다는 것을 비추어 볼 때, 이 책은 부실한 책이다.

여러가지 서평들에서 나오고 있지만, 이 책에 들어간 필진의 능력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특히 그러한 문제는 6장 인생에 나온 필진이나, 2장 과학기술의 나온 필진중 몇은,, 아무런 근거 없는 사유 따위에 근거하고 있다.(유전자 결정론의 근거를 결정론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하거나, 종교의 절대적 사유를 보여주기 위해 매슬로우 식의 천박한 미국제 사유에서 빌려오기도 하며,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어떠한 전제도 없이-현대 철학의 논점을 파악하지도 못한채- 보여주기도 한다.)

프랑스 바칼루레아 철학시험 답안지인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의 대쌍이 되기에(속된 말로 "고삐리"들의 사유수준)에도 턱없이 모자란 대학 교수, 각계 전문가 일부의 글들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기 그지 없다.

다만 이 책의 강점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서 아젠다를 던진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학회 소모임에서 읽기에는 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읽어볼만한 책들을 제시했다면,, 한철연의 "삶과 철학" 보다 오히려 높은 교양서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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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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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이론에 기댄 Hendrix의 '冊論'

세상에는 겁대가리 없이 분류해 보자면, 5가지의 책이 있다.

1. 계속 읽을 책들

이런 책에는 함부로 줄을 긋지 않는 편이 좋다. 왜냐면, 계속 읽어가면서 머리 속에 그 구도 자체를 찬찬히 각인시키는 근육의 독서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넘지 못할 책들은, 천천히 '자근 자근 씹어주면서' 읽어줄 필요가 있겠다. 게다가 여러번 읽어야 하니,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지만, 덕택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2. 요약해가면서 정리해가면서 읽을 책들

이런 책은 일단 한번 주욱 보고선, 한번 더 읽을 때, 옆줄(!)을 긋고 독서 노트 한권을 정리해가면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정리된 바를 머리속에 갈무리 해가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교과서는 이런 식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3. 지식을 쌓기 위해서 읽는 책들

이런 책들은 한번 읽고선, 다시 뒤척여가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을, 독서 카드 등에 기록할 수 있는 책들이다. 계속 볼 필요는 없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할 것. 대신 처음 읽을 때 통독을 하고, 다음 번부터는 필요한 부분을 독서 카드를 통해서 읽으면 된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 읽는 자료들을 이렇게 처리하면 되겠다.

4. 한 번 죽 읽으면 되는 책들

가벼운 맘으로 읽으면 되는 책들이다. 그냥 읽고나서 인상만 남으면 되는 그런 책들은 이렇게 읽으면 된다. 대신 책값은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에서 노는 대신으로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노래방은 한시간에 15000원이지만, 4시간정도를 10000원 정도에 해결할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진 않은 휴식법이라 할 수 있겠다.
 

5. 읽다가 찢어야 할 책들

책으로 느껴지지 않는 책은 읽다가 과감하게 찢어도 된다. 다만 그런 '찢는 행위'를 저지르는 판단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확고하게 그런 판단이 섰다면, 그런 책은, 찢던지 라면 받침으로 쓰면 된다. 확고한 판단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다.

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그건 바로 이 분류들이 강유원이 말하는 책의 분류에 기인해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나에게 강유원은 지적인 토대를 구축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강유원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이윤기가 번역했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오역을 지적하면서 부터였다.

그 전까지 홉스, 로크 연구자이자 회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몇 몇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의 철저한 독서에서 비롯된

그런 오역의 지적과, 곧바로 이어진 이윤기의 개정판의 펴냄은 그를 꽤 많은 이들에게 알리게 했다.

요새 주로 들어가서 많은 도움을 받는 지식인들의 블로그가 있다면, 바로 우석훈의 블로그("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의 저자 : economos.egloos.com)와 강유원의 블로그(armarius.net)이다.

우석훈의 블로그가 최근의 어젠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발칙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한다면,

강유원의 블로그가 가진 매력은 바로 "튼튼한 토대"에서 나오는 글들이 많고, 항상 그것들이 많은 고민거리를 제공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의 책에 대한 평가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는 거다. 그 만큼 빽빽하고 치밀한 서평을 쓰기 때문이다. 

요근래는 여성의 흡연이나, '혼전순결'의 문제등이 거론되었는데,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서도 볼 수 없는 건강한 논의가 펼쳐졌었다.


그것 역시 armarius 커뮤니티의 '지적인' 신뢰성의 예라 할 수 있겠다.

'책과 세계'

사실 이 책은 그 전에 썼었던 "서양문명의 기반"을 연구하면서 나온 화두 하나에 대한 탐구이다. 그는 서양문명의 기반을 연구하기 위한 책들을 읽으면서 나오는 단상들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것이다.

강유원식 스타일이란 그런 거다. 물론 내 규정이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포기하지 않고 급하지 않고 무거운 책을 읽어내는 정성. 그리고 그것을 통한 사유. 그가 '방방' 떠다니는 현대 프랑스 철학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철퇴를 퍼붓는 데에도 이유는 있는 거다. '직관'적 철학에 대한 회의라고 할까?? (그런데 나는 이를테면 프랑스 철학을 더욱 더 단단하게 보강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의 스타일대로 추구하는 독서는 느리지만 사유의 깊이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고, 그는 통찰력의 확장을 얻어내고 있는 거다.

책과 세계.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가??

"책 자체가 아닌 세계, 즉 책이 놓인 공간 속에서 책의 의미를 살펴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언명의 비진리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책, 넓게 말해서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 즉, 세계가 텍스트에 앞서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어느덧 텍스트는 .... 자신에 앞서 있던 세계를 희롱하기 시작했고, ... 그것 자체로 일정한 힘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 와중에 세계와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텍스트도 생겨났다. 이것은 인간 의식의 분열인 동시에 세계의 분열이다."(p.4)

이러한 토대에서 독서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텍스트와 그 텍스트가 생산된 컨텍스트로서의 세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이제 정확하게 알아낼 도리가 없게 되었다. ... 차라리 컨텍스트의 산물일지도 모를 텍스트들 스스로가 말하게 하고, 텍스트에 의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컨텍스트 스스로가 드러나게 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p.5)

즉, 책 그 내용 자체로의 책과, 그 책과 조우한 세계, 그리고 그 책이 바꿔놓은 세계라는 3개의 축으로 볼 수 있는거다. 더 정확히는 헤겔적 정-반-합의 구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

정(그 자체로의 책-텍스트) ----- 반(책과 조우한 세계-컨텍스트(맥락))

                                       ▽

                               합(책이 바꿔놓은 세계)

이러한 구도 안에서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들과 당대의 컨텍스트와 그 책들이 미친 파급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컨텍스트(사회경제적 배경, 정치적 역학관계)를 제외하고 또 하나의 파급으로 "매체"를 언급한다.

마샬 맥루한을 연상시키는 논의(사실 이 부분도 여러가지 첨예한 논증들이 있으나 생략한다.)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논의들의 섞임에도 불과하고 그의 글을 쓰는 방식은 기민하고 늘어지지 않는다. 그게 그의 글의 장점이다.
 

예전에 강유원이 강의에서 했었던 말이 있는데,

"<<책과 세계>>의 '환상적 불멸성 : 신국'을 한번 보자. 글을 자세히 보면 뒷문장이 앞문장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야 독자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일관되게 다른 생각을 들지 않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강유원의 저술이 빛이 난다.
 

천천히 공부한 자가 한 마디를 할 때의 묵직함이 묻어나는 짧지만 강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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