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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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이론에 기댄 Hendrix의 '冊論'

세상에는 겁대가리 없이 분류해 보자면, 5가지의 책이 있다.

1. 계속 읽을 책들

이런 책에는 함부로 줄을 긋지 않는 편이 좋다. 왜냐면, 계속 읽어가면서 머리 속에 그 구도 자체를 찬찬히 각인시키는 근육의 독서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넘지 못할 책들은, 천천히 '자근 자근 씹어주면서' 읽어줄 필요가 있겠다. 게다가 여러번 읽어야 하니,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지만, 덕택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2. 요약해가면서 정리해가면서 읽을 책들

이런 책은 일단 한번 주욱 보고선, 한번 더 읽을 때, 옆줄(!)을 긋고 독서 노트 한권을 정리해가면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정리된 바를 머리속에 갈무리 해가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교과서는 이런 식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3. 지식을 쌓기 위해서 읽는 책들

이런 책들은 한번 읽고선, 다시 뒤척여가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을, 독서 카드 등에 기록할 수 있는 책들이다. 계속 볼 필요는 없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할 것. 대신 처음 읽을 때 통독을 하고, 다음 번부터는 필요한 부분을 독서 카드를 통해서 읽으면 된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 읽는 자료들을 이렇게 처리하면 되겠다.

4. 한 번 죽 읽으면 되는 책들

가벼운 맘으로 읽으면 되는 책들이다. 그냥 읽고나서 인상만 남으면 되는 그런 책들은 이렇게 읽으면 된다. 대신 책값은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에서 노는 대신으로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노래방은 한시간에 15000원이지만, 4시간정도를 10000원 정도에 해결할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진 않은 휴식법이라 할 수 있겠다.
 

5. 읽다가 찢어야 할 책들

책으로 느껴지지 않는 책은 읽다가 과감하게 찢어도 된다. 다만 그런 '찢는 행위'를 저지르는 판단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확고하게 그런 판단이 섰다면, 그런 책은, 찢던지 라면 받침으로 쓰면 된다. 확고한 판단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다.

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그건 바로 이 분류들이 강유원이 말하는 책의 분류에 기인해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나에게 강유원은 지적인 토대를 구축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강유원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이윤기가 번역했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오역을 지적하면서 부터였다.

그 전까지 홉스, 로크 연구자이자 회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몇 몇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의 철저한 독서에서 비롯된

그런 오역의 지적과, 곧바로 이어진 이윤기의 개정판의 펴냄은 그를 꽤 많은 이들에게 알리게 했다.

요새 주로 들어가서 많은 도움을 받는 지식인들의 블로그가 있다면, 바로 우석훈의 블로그("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의 저자 : economos.egloos.com)와 강유원의 블로그(armarius.net)이다.

우석훈의 블로그가 최근의 어젠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발칙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한다면,

강유원의 블로그가 가진 매력은 바로 "튼튼한 토대"에서 나오는 글들이 많고, 항상 그것들이 많은 고민거리를 제공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의 책에 대한 평가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는 거다. 그 만큼 빽빽하고 치밀한 서평을 쓰기 때문이다. 

요근래는 여성의 흡연이나, '혼전순결'의 문제등이 거론되었는데,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서도 볼 수 없는 건강한 논의가 펼쳐졌었다.


그것 역시 armarius 커뮤니티의 '지적인' 신뢰성의 예라 할 수 있겠다.

'책과 세계'

사실 이 책은 그 전에 썼었던 "서양문명의 기반"을 연구하면서 나온 화두 하나에 대한 탐구이다. 그는 서양문명의 기반을 연구하기 위한 책들을 읽으면서 나오는 단상들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것이다.

강유원식 스타일이란 그런 거다. 물론 내 규정이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포기하지 않고 급하지 않고 무거운 책을 읽어내는 정성. 그리고 그것을 통한 사유. 그가 '방방' 떠다니는 현대 프랑스 철학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철퇴를 퍼붓는 데에도 이유는 있는 거다. '직관'적 철학에 대한 회의라고 할까?? (그런데 나는 이를테면 프랑스 철학을 더욱 더 단단하게 보강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의 스타일대로 추구하는 독서는 느리지만 사유의 깊이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고, 그는 통찰력의 확장을 얻어내고 있는 거다.

책과 세계.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가??

"책 자체가 아닌 세계, 즉 책이 놓인 공간 속에서 책의 의미를 살펴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언명의 비진리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책, 넓게 말해서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 즉, 세계가 텍스트에 앞서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어느덧 텍스트는 .... 자신에 앞서 있던 세계를 희롱하기 시작했고, ... 그것 자체로 일정한 힘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 와중에 세계와 일치하는 점이 전혀 없는 텍스트도 생겨났다. 이것은 인간 의식의 분열인 동시에 세계의 분열이다."(p.4)

이러한 토대에서 독서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텍스트와 그 텍스트가 생산된 컨텍스트로서의 세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이제 정확하게 알아낼 도리가 없게 되었다. ... 차라리 컨텍스트의 산물일지도 모를 텍스트들 스스로가 말하게 하고, 텍스트에 의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컨텍스트 스스로가 드러나게 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p.5)

즉, 책 그 내용 자체로의 책과, 그 책과 조우한 세계, 그리고 그 책이 바꿔놓은 세계라는 3개의 축으로 볼 수 있는거다. 더 정확히는 헤겔적 정-반-합의 구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

정(그 자체로의 책-텍스트) ----- 반(책과 조우한 세계-컨텍스트(맥락))

                                       ▽

                               합(책이 바꿔놓은 세계)

이러한 구도 안에서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들과 당대의 컨텍스트와 그 책들이 미친 파급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컨텍스트(사회경제적 배경, 정치적 역학관계)를 제외하고 또 하나의 파급으로 "매체"를 언급한다.

마샬 맥루한을 연상시키는 논의(사실 이 부분도 여러가지 첨예한 논증들이 있으나 생략한다.)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논의들의 섞임에도 불과하고 그의 글을 쓰는 방식은 기민하고 늘어지지 않는다. 그게 그의 글의 장점이다.
 

예전에 강유원이 강의에서 했었던 말이 있는데,

"<<책과 세계>>의 '환상적 불멸성 : 신국'을 한번 보자. 글을 자세히 보면 뒷문장이 앞문장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야 독자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일관되게 다른 생각을 들지 않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강유원의 저술이 빛이 난다.
 

천천히 공부한 자가 한 마디를 할 때의 묵직함이 묻어나는 짧지만 강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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