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난 강준만의 정치적, 아니 그의 세계관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개혁'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진보의 순결주의를 비판할 때 보이는 지독한 '마키아벨리즘'과 극우파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도덕적' 근거 양자 모두 너무나 고집스럽지만 한편으로 몰입되어보지 않고 바깥에서만 후려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강준만 만큼 방대한 양의 지식을 흡수하고 또 뿜어내는 지식인이 한국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2~3시간동안, 국내 일간지를 모두 거실에 펼쳐놓고 읽고 스크랩한다는 그의 습관과, 꾸준이 읽어내지 않고서는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 것 같은 지식인 사회(예를 들면 문학계)의 특정한 지형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구도를 그나마 제대로 꿰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도 강준만 정도이리라 생각한다. 특별한 곡해없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도 강준만의 능력이라 볼 수 있겠다.

빌어먹을 TV 퀴즈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상식' 쌓기의 신선놀음은 나의 밑도끝도 없는 오지랖과 결합하여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을 집게 했고(이 책에 대한 평은 다시금 할 계획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학습법'(뇌 개발론?)과 '현대 교양론'을 일게 만들었고, 그 중간 기착지 정도가 강준만의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이 되겠다.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을 너무나 재미읽게 읽어버린 나머지, 그에 대한 비판을 가지고 있는 강준만의 서문을 읽어버린 나는 굉장한 강준만식 "교양론"에 대한 기대를 했었지만, 이 책에 있는 건 "교양론"이 아니라 '사전'이라는 말을 내가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그대로의 시사 이슈들이었다.

책은 문화, 역사:세계, 사회, 경제:정보의 섹션으로 구분되어있고 그에 관련된 개념들에 대해서 강준만은 기술하고 있다.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신문기사와 본인이 읽었던 책들의 인용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책값은 2만 3천원, 총 페이지수 646페이지. 사실 좀 돈이 아깝다. 차라리 그의 강점인 실명비판으로 후려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나마 영양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사전'을 지향한 나머지 비판적 인식을 좀체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인식'이나 '총체적 판단'을 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물론 그의 자료를 구성해내고 그것들의 맥락을 짚어내고 논쟁들을 펼쳐내는 능력자체는 여전히 '달인'의 수준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교양'이라는 것이 단순한 자료들의 집적과 그 자료들을 통해서 얻는 정보 만이 아니라는 걸 생각한다면, 제목 선정이 잘못되었다. 본인이 동의하던 안하던 이 책은 '한국인을 위한 시사상식 사전' 정도가 올바르다 하겠다(실제 강준만의 인용 중에 박문각에서 나온 SPA시사상식이 있다. 좀 충격적이었다. - 그 주제는 배아세포 연구였다.).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과 잠시 강준만의 "교양"을 비교해 보자면

1)슈바니츠의 "교양'이 통시적이고 역사적인 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면 강준만의 "교양"은 최신 이슈(당시의)가 중심이고, '역사, 세계' 챕터에 나온 것도 물론 현재를 읽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사'요 '세계'이다.

2)슈바니츠의 "교양"이 선별주의를 말하면서도 '계몽적' 태도 덕택에 뭇 제자들에게 공부법을 알려주는 혜택을 제공한다면, 강준만의 "교양"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논쟁 구도를 하나 하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현재의 시점에서 읽을 때는 물론 다른 결론이 도출된 경우도 많다.).

결론적으로 정보량에서 책의 두께에 비해서 많다고 볼수도 없고, 저자의 '편집'을 통한 판단 외에는 직접적인 입장을 듣기가 힘들기 때문에 딱 꽉 들어맞게 짜여진 구성과 의도를 발견하기는 힘든 듯하다. '가나다라'순의 '교양'을 '알게되는' 것을 제외하면....

Yes24에서 현재 30% 이상의 할인을 하고 있는 데, 그 이유를 알 법도 하다. 혹시 "정치학 사전"도 이런식일까?? 목차를 좀 꼼꼼히 봐야겠다. 굳이 지식을 쌓기 위해서라면 SPA가 훨씬더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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