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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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두 덕후의 이야기!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결코 한아의 외모 때문에 벌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어쩐지 친해지고 싶은 호감형이기는 하지만 평일 오후 두시의 6호선에서 눈에 뛸 정도지, 출퇴근 시간 2호선에서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희미한 인상이었다. 길에서 말 걸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본인도 그 점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6개월에 한 번도 손질하지 않는 아무렇게나 늘어진 머리에, 직접 짠 니트와 걸을 때마다 편안하게 접히고 움직이는 긴 치마는 한아의 가게가 있는 서교동 골목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조금 멍하게 걷는 편이었다. 가만두면 정거장이나 역을 늘 놓칠 것 같은 표정으로. 9~10쪽

이 소설의 첫문장처럼, '한아'는 누군가 보고 반할만큼 멋진 외모와 스타일의 소유자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는 2만광년 떨어진 곳에서 한아를 지켜보다가 반해버려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먼 곳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오직 한아와 함께 있기 위해서. 심지어 한아와 11년 사귄 남자친구 '경민'은 '우주 자유 여행권'이라는 말에 미련없이 지구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우주로 떠났는데 말이다.

"나도 저렇게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왔어."

한아는 울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경민이…… 진짜 경민이 어딨어?"

"경민씨의 이름, 얼굴, 정보…… 특히 너와 관련된 정보들과 내 우주 자유 여행권을 서로 바꿨어. 완전히 자발적인 과정이었고 경민씨를 결코 해치지 않았어. 동의하에 바꾼거야. 지금쯤은 이 은하계 바깥을 탐험하고 있을 거야." 93~94쪽

"나는 안 될까.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 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95쪽

심지어 경민의 모습을 한 이 외계인이 망원경을 통해 한아를 보고 반해버리자, 외계인이 살고 있던 별 전체가 한아 꿈을 꿨다고 한다. 그 별의 사람들(외계인)은 "자가 분열로 번식을 하는데다가 인간보다 강한 집단 무의식으로 꿈이 이어져"(100쪽) 있어서 그렇게 공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하지만 첫번째로 널 보고 널 생각한 건 나였기 때문에 내가 온 거야." 101쪽

그런데 왜 하필 한아였을까? 이 우주에는, 아니 한아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한아였을까? 그래서 이 경민 모습을 한 외계인도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엇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내가 네 옆에 있는 바보 인간보다 더 가까울 거라고, 그런데 그걸 넌 모르니까, 전혀 모르니까, 도저히 잠들 수 없었어." 102쪽

"억지로 수십억 다른 지구인들을 관찰해봤는데도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어. 미적인 기준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솔직히 인간은 아무리 봐도 아름답게 안 느껴져. 근데 너만…… 너만 아름다웠어. 빛났어. 눈부셨어." 104쪽

한편 경민과 함께 지구를 떠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아폴로'라는 이름의 가수였는데, 우주대스타를 꿈꾸며 지구를 떠난 것이다. 아폴로의 팬클럽 회장이었던 '주영'은 경민의 모습을 한 그(외계인)로부터 아폴로의 소식을 듣고 아폴로가 있는 우주로 떠난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지구에는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주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녀에게는 아폴로가 그 모두 아니 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36~37쪽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난 따라갈 거야, 내 아티스트." 118쪽

"말 그대로 스타라니까. 중력이 없으면 스타겠어요? 벗어날 수 있었으면 나도 다르게 살았지. 가끔은 포기가 더 효율적일 때가 있죠." 119쪽

나 역시 오랫동안 덕후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아폴로를 향한 주영의 맹목적인 사랑에 공감했지만, (설정이 다소 황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아의 소소한 몸짓을 발견하고 사랑해 준 외계인의 사랑에 더 끌렸다. (『옥상에서 만나요』에서도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친구가 등장했었다.)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 그것은 아마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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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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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건 다 뭐였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준희(화자)'는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다. 여중, 여고를 다녔던 준희는 또래 여자친구들끼리 서로 사귀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준희는 그 아이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그 아이들과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거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녀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 한 학년 위의 선배를 좋아했었고, '남자처럼 짧은 머리'의 인희의 사랑을 받기도 했었다.

그 애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강도 높은 수험생 생활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연인 관계를 누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서로를 지켜보고, 살뜰하게 챙기고 보살폈다.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인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특별한 관심을 주고, 설렘을 느끼게 해 준다면. 다른 아이들과 구별해 줄 모종의 사연, 로맨스를 선사해 주기만 한다면. 또한 당시 우리의 조건에서는 남자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 애인이 이 모든 요구를 더 잘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무엇이 필요한지, 다가오는 생일에 무슨 선물을 원하는지도 굳이 내색하고 가를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그로 인한 이득이 욕심나도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깉은 곳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신자가 될 수 없는 사람.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럴 수 없는 쪽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46~47쪽

그 시절 아이들이 좋아했던 상대는 또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들(!)의 팬클럽 활동은 물론이고 팬픽까지 직접 써서 돌러보며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마치 그 오빠들이 자신들과 늘 함께하는 것처럼 여겼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친해질 수도 없는 애인이었다.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다들 그런 애인을 한 명씩 갖고 있었다. 한번은 민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오빠가 진짜 그 오빠가 맞을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지. 우리가 보는 모습은 대중을 상대로 만들어진 거니까. 화려하고 매끈매끈한 표면이니까. 그 이면에 어떤 성격이 감춰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 135쪽

동성애니 레즈비언이니, 학창시절에 소문이 무성했던 아이들도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남자 친구를 만나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시절, 그 감정 들을 솔직하게 밝힐 수 없었던 준희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날 느닷없이 찾아온 인희를 보면서, 예전과 달라진게 전혀 없는 인희를 돌려보내고 나서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희를 한심하다고 여겼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적응하지 못하는 그 애를 비웃었다. 그건 그저 유행이었다고, 그뿐이었다고 못박아 주고 싶었다. 여자 아이들 집단에서 너는 남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었던 거라고 말이다. 나는 또 이렇게도 말해 주고 싶었다. 정신 차리라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이제 우리 주변에는 진짜 남자들이 있으니 남자 흉내는 그만두라고. 아무리 흉내를 내려해도 진짜 남자를 따라갈 수는 없을 거라고. 너의 꼴은 우스꽝스럽고, 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진다고. 158쪽

그때 나는 그것이 그 애 자신의 표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난 짧은 머리와 힙합 바지를 자동적으로 남성에 대한 모방이라고 여겼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걷는 인희의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를 흉내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남성적이라고 말해지는 특성들이 당연히 남성들에게 속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여자들도 짧은 머리를 원할 수 있고, 그것이 ─ 당연히 ─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라는 표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차린 뒤로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159쪽

이것은 준희가 살았던 작은 항구 도시에서만 유행했던 일이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즈음 여중, 여고에서 흔하게 일어나던 일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레즈비언이니 팬픽이니, 이런 용어만 쓰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도 여러 오빠들에게 미친듯이 열광했었고, 키 크고 숏커트 머리를 한 소녀들이 두루두루 인기가 많았었다. 바로 옆에 남중, 남고가 붙어 있었지만 남학생들을 만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늘 높은 담벼락 안에 갇혀 있었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어느덧 버스 막차가 끝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절 우리 모두가 준희였고, 인희였으며, 민지였을 것이다.

"우리 고등학교 때 말이야. 그건 다 뭐였을까?"

나는 인희의 시선을 피한 채 단호하게 말했다.

"그땐 다 미쳤었어." 150쪽

나는 남자들을 아주 좋아했다.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다고 해서 나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한때 어찌 어찌 일어난 일, 이제는 지나간 일로 여겨졌다. 나는 그때 일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그 일들이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난 남자를 너무 좋아해서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조차 한 여자에게 가장 커다란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면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분명 존재했으나 오래전 까마득히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 앉아 버렸다는 대륙에 관해 생각해 볼 때처럼. 6년간 본 것들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다.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 153쪽

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는 울고 싶어진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두 나의 적이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의 매력을 알아볼 것만 같아서 나는 애가 탄다. 그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82쪽

언젠가 시골 외할머니를 보며 사람이 산골짜기 사이에서 태어나 밭에서 일하다가 그냥 그곳에서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 누가 그 사람을 기억해 주나?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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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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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하고 쫄깃한 우럭의 맛. 어쩌면, 우주의 맛!

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인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을 포함해 「재희」,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등 총 네 편의 연작소설이 실려 있는 박상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네 편의 연작소설에는 닮은 듯 다른 듯한 화자, '영'이 등장한다. 현재 '영'은 30대 초반의 작가로 대도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네 편의 연작소설 모두 그의 연애사를 다루고 있다.

스무살의 여름, '영'은 '재희'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영'이 남자와 키스하고 있는 것을 「재희」에게 들켜버렸기 때문인데, 재희는 처음 본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영'과 재희는 동성 친구처럼 지냈고, 심지어 동거까지 하게 됐다. 나중에 재희의 예비 남편이 알게 됐지만, 결혼이 깨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재희는 헤테로였으니까.

'영'은 군대에 가기 전에 연상의 공무원을 만났는데, 그 공무원의 성생활이 문란해 병을 얻게 된다. 그 때문에 6개월만에 의병 제대를 하게 됐지만 '영'은 자신의 병에게 '카일리'라는 애칭을 붙여준다. 약을 매일 챙겨 먹으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이 '카일리' 때문에 자유 연애를 하던 그의 행동에도 약간의 제약이 생겼다.

한때 그는 띠동갑의 편집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영'은 그를 진짜 사랑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투병 중일 때 만난 사람이었는데, 그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ㅡ 당신이 지금 먹고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ㅡ 광어죠. 아니, 우럭인가? 제가 사실 생선을 잘 구별 못해요. 그냥 비싼 건 다 맛있더라구요.

ㅡ 맞고 틀려요. 당신이 맛보고 있는 건 우럭, 그러나 그것은 비단 우럭의 맛이 아닙니다. 혀끝에 감도는 건 우주의 맛이기도 해요.

ㅡ 네? 그게 무슨 (개떡 같은) 말씀이신지……

ㅡ 우리가 먹는 우럭도, 우리 자신도 모두 우주의 일부잖아요. 그러니까 우주가 우주를 맛보는 과정인 거죠. 「우럭 한점 우주의 맛」, 105쪽

그 다음에 만난 '규호'에게는 '카일리'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하지만 규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당시 규호는 의대생인 형의 생활을 돌봐주며 '유설희 간호학원'에서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영'을 만나기 위해 인천에서 서울까지 그 먼 길을 오고갔다. 제주도가 고향인 규호는 육지, 그것도 '대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다고, 그곳에서 사랑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 나, 네가 엄청 필요해 규호야…… 나는 자꾸만 흐려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서울로,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도시로 향했다. 「대도시의 사랑법」 251쪽

이 책을 덮자마자 가장 먼저 '유설희 간호학원'을 검색해 봤다. "인천 하면 유설희지."라고 했던 규호의 목소리가 맴돌았기 때문인데, 인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그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다니. 대구에서 태어난 작가가 어떻게 알았을까?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궁금증도 생겼다. 인천 하면 인천 앞바다에 뜬 사이다 아닌가.

규호를 떠나보낸 서른두살의 '영'은 10월 말, 「늦은 우기의 바캉스」를 가게 된다. 그곳은 1년 전 규호와 함께 왔던 곳으로, 규호와 함께 머물렀던 방에 채팅방에서 우연히 매칭된 한 외국 남자와 함께 묶는다. 그곳에서 규호를 떠올린다. 한때 자신에게 소원이었던 그 이름, '규호'를.

낯설다. 그들의 사랑이 낯설었던 건 아니다. 가장 최근에도 『항구의 사랑』을 통해 접했었으니까. 내가 낯설었던 것은 박상영 작가의 문장들이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부쩍 읽는 나보다 작가들의 문장들이 더 젊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이니 오죽할까.

더 낯설었던 건 강지희가 쓴 「해설:멜랑콜리 퀴어 지리학」이었다. 해설에 사용된 용어들을 보며, 이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만큼 동떨어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소설에서 규호의 공간이 '제주(섬)'에서 '인천'을 거쳐 '서울'로 그리고 '상해'로 점차 넓어지는 반면, 화자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퀴어의 성적 자유는 '대도시' 속에서 더 자유롭게 탐색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왔지만, 유독 병리화되는 특정 질병과 연결된 퀴어에게 도시의 경계선은 더 강력한 제약과 통제로 작동한다. 그래서 결국 화자의 공간으로 남는 곳은 대도시 속의 공항이다. 상해로 넘어가지 못한 채 홀로 공항철도를 타고 돌아오는 그의 쓸쓸한 모습은 소설 서두에서 만료된 여권 때문에 일본 여행을 가지 못하고 홀로 돌아오던 모습과 겹쳐진다. 카일리를 가진 그에게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의 여권(시민권)이 언제나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을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절반의 시민권이 지금 한국에서 퀴어 정치가 지닌 한계를 반영한다는 사실 역시 자명해 보인다. 「해설:멜랑콜리 퀴어 지리학」, 329~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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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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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모든 것은, 내가 바보 같은 농담이나 즐기는 치명적 성향을 지녔고, 마르케타는 농담을 절대 이해 못 하는 치명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52쪽

모든 것은, 진지하지 못했던 그의 '농담'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그 농담 때문에 '인생 최초의 파멸'을 맛보게 된다.

대학에서 공산당 학생 연맹에 소속되어 있던 '루드비크'는 늘 진지하고 공산당원 연수에 열성적이었던 '마르케타'에게 한 통의 엽서를 보낸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59쪽

사실 그의 사상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지만, 방학 동안 그녀를 그리워하는 자신과 달리 마르케타가 당 활동에 너무 열성적이어서, 게다가 늘 모든 일에 진지했기 때문에 그런 '농담'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보낸 그 엽서가 학생 연맹 지도부의 손에 들어가 공개 비판에 처해진다. 평소 그와 함께 했던 동지들이, 심지어 마르케타의 진지함을 알고 있어 그의 '농담'을 이해할 법도 했던 친구들이 그를 학교와 당으로부터 축출하는데 일제히 손을 들어 찬성한다. 이후 그는 '검은 표지'를 달고 군대에 보내져 그곳에서 노동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에 영광"(62쪽)이라고 인사를 할 정도였으니, 신성한 노동으로 그를 교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루드비크의 생각은 달랐다. 그 또한 한때는 당과 관련된 활동과 사상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없다면 죽은 것과 다름 없다고 여겼지만 노동을 하면서, 루치에를 만나면서 그런 것들이 환상이라는 것, 소소한 일상을 추구하는 삶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런 일들(너무도 전적으로 그 시대 것이어서 곧 그 용어조차 뜻모를 소리가 되어 버릴 일들)을 하다가 나는 파멸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바로 그 일들에 계속 집착했다. 여러 위원회에 소환되었을 때 나는 나를 공산주의로 이끌었던 동기를 수십 가지는 늘어놓았지만, 이 운동에서 무엇보다 나를 매혹시키고 심지어 홀리기까지 했던 것은 내 시대의 (또는 그렇다고 믿었던) 역사의 수레바퀴였다. (……) 우리가 맛보았던 그 도취는 보통 권력의 도취라고 불리는데, 나는 그러나 (약간의 선의로) 그보다 좀 덜 가혹한 말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말 위에 올라탔다는 데 취했고, 우리 엉덩이 밑에 말의 몸을 느꼈다는 데 취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결국 추악한 권력에의 탐욕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모든 일에 여러 가지 면이 있듯) 거기에는 동시에 아름다운 환상이 있었다.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이제 역사의 밭깥에 머물러 있거나 역사의 발굽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이끌어 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그런 시대를 우리, 바로 우리가 여는 것이라는 그런 환상이 있었다.

나는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나서는 삶은 삶이 아니라 반 죽음이며, 권태이고, 유배이고, 시베리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시베리아에서 여섯 달이 지난 후) 지금 나는 갑자기,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완전히 새롭고 예상치도 못했던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내 앞에는 이제 전속력으로 비상하는 역사의 날개 아래 가렸던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잊혔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124~125쪽

세월이 흘러 다시 사회로 돌아온 루드비크는 한 라디오 방송사 기자를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그녀는 학창시절 자신을 축출하는데 앞장 선 제마네크의 부인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루드비크는 제마네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부인을 이용하기로 한다. 이미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헬레나(제마네크의 부인)가 '왕들의 기마 행렬'을 취재하기 위해 루드비크의 고향인 모라비아를 방문한다고 하자 그도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1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루드비크. 그가 잡은 호텔은 그녀와 밀회를 나누기에는 너무 낡고 더러워서 다른 숙소를 찾아야만 했다. 마침 오래전에 자신이 일자리를 구해 준 적이 있었던 코스트카가 이곳에 살고 있어서 그에게 잠시 집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다른 일 때문에 집에 머물 시간이 없다며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면도가 필요한 루드비크에게 이발소를 소개해 주는데, 그곳에서 이발사로 일하고 있는 루치에를 만난다. 루드비크가 군대 시절 만났던 루치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 또한 그녀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한편, 루드비크는 '왕들의 기마 행렬'에서 헬레나와 제마네크를 만난다. 루드비크는 제마네크가 사랑하는 부인을 취함으로써 그에게 복수하려 했지만, 오히려 제마네크는 젊은 여자를 동반하고 있었으며 헬레네와 제마네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고 한다.

세상에, 복수는 커녕 제마네크가 버린 여자를 자신이 갖다니. 자신에게 최초의 파멸을 선물한 제마네크에게 아름다운 파괴를 돌려주려 했는데 실패한 것이다. 도대체 이 복수가 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어린시절, 루드비크 또한 모라비아의 민속축제인 '왕들이 기마 행렬'에 참여했었다. 그땐 같은 악단 소속의 야로슬라프가 왕이었다. 야로슬라프는 루드비크나 제마네크와는 달리 고향 모라비아에서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음악가다. 그는 지금껏 그 민속 축제를 이어오고 있으며 올해는 야로슬라프의 아들(인 줄 알았다)이 왕이 되었다고 한다. 행렬 속에서 우연히 야로슬라프를 다시 만나게 된 루드비크. (이미 복수도 물 건너 갔기 때문에) 그는 야로슬라프에게 예전처럼 자신도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야로슬라프는 악단과 자신을 떠난 루드비크가 싫었지만, 그래도 옛 정 때문인지 그의 청을 들어준다. 오랫동안 악기를 연주하지 않아서 걱정했지만, 연주가 시작되자 찬사가 쏟아졌다. 루드비크는 야로슬라프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나는 이 노래들 속에서 (이 노래의 유리 집 속에서) 행복했다. 거기에서는 슬픔이 가볍지 않고,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고, 사랑이 우습지 않으며, 증오심이 맥없지 않고, 사람들은 온몸과 마음으로(그래, 루치에,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행복은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절망은 다뉴브 강으로 뛰어들게 만들며, 그곳에서는 그러니까 사랑이 사랑으로, 고통이 고통으로 머물고, 아직 가치들이 유린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노래들 속에 나의 출구가 있고, 나의 본원의 표지가, 내가 배반한 나의 집,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나의 집인 집(배신당한 집에서야말로 가장 비통한 탄식이 솟아나오는 법이므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깨달았다. 이 나의 집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이 세상 것이 아니라면 그 집은 대체 어떤 것인가?) 우리가 노래하는 것들은 모두가 단지 추억이고 기념물이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으로 보존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을. 529쪽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야로슬라프가 연주를 하다가 쓰러진 것이다. 행복한 순간에 쓰러진 친구를 품에 안게 된 루드비크는 생각한다. 농담으로부터 비롯된 자신 인생의 파괴사를. 만약 그가 농담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나는, 증오의 대상 제마네크를 쓰러뜨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이 귀향이 결국은 이렇게 땅에 쓰러진 내 친구를 두 팔에 안고 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전율하였다. 532쪽

내 인생의 일들 전부가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생겨났던 것인데? 나는 실수로 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내 인생의 모든 일들을 전부 취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일들을 초래한 실수들이 내가 한 실수들이 아니라면 무슨 권리로 내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내 엽서의 농담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잘못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알렉세이의 아버지가(지금은 복권되긴 했지만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이 다시 살아나진 않는다.)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잘못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실수들은 너무도 흔하고 일반적이어서 세상 이치 속에서 예외나 '잘못'도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순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이란 말인가? 역사 자체가? 그 신성한, 합리적인 역사가? 그런데 왜 그런 실수들이 역사 탓이라고 해야만 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나의 이성에만 그렇게 보일 뿐, 만일 역사에 자기 고유의 이성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482~483쪽

『농담』은 네 명의 화자(루드비크-헬레나-루드비크-야로슬라프-루드비크-코스트카-루드비크,헬레나,야로슬라프)가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다.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를 두고도 화자에 따라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르다. 각자의 목소리가 다르고, 각자의 기억이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얽혀 있어서 마지막에는 결국 한 곳(모라비아)에서 마주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가 살았던 시대는 '농담'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 '농담'을 이해하지도, '농담'에 웃을 수도 없었던 경직된 시대였다. 실제로 밀란 쿤데라(1929~)는 1950년에 체코 소설가 얀 트레풀카(1929~2012)와 함께 '반공산당 활동'이라는 죄목으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했다. 이후 공산당에 재가입하기는 하지만 (또 추방당했다.) 『농담』은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며, 그의 작품 곳곳에서 『농담』 조의 '농담'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여전히 그런 '농담'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전쟁 중에 깨달았다. 그들은 우리가 존재할 권리가 없으며, 단지 체코어를 말하는 독일인일 뿐이라고 믿게 만들어 놓으려 했다. 우리는 우리가 존재했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해 두어야 했다. 그 시기에 우리는 모두 우리의 근원지로 순례를 떠났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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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임금이 노동 생산물의 가치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품만 뜻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체제가 유죄라는 것, 가장 정직한 주인들조차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혹한 경쟁 법칙을 따르고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녕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될 우리 사회체제죠. 56쪽

우리는 과도기, 동요기에 있어요 아마도 혁명적 폭력이 발생할 텐데, 그 폭력은 흔히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과장과 격정은 덧없는 것이죠 …… 오! 지금 당장의 큰 어려움을 숨기지는 않겠습니다. 이 모든 꿈의 미래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 미래 사회, 그 풍속이 우리의 풍속과 너무나 다른 정의로운 노동의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개념을 제시할 수가 없어요. 그것은 또다른 행성에 있는 또다른 세계처럼 보이죠 …… 이 점을 고백해야 합니다. 재조직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모색 단계에 있어요. 57쪽

분명 현재의 사회체제는 개인주의적 원리 덕분에 오랜 번영이 가능했습니다. 개인주의적 원리란 당연히 경쟁심, 사적 이해관계가 풍요로운 생산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것을 가리키죠. 집산주의가 언젠가 이런 풍요에 이를 수 있을까요? 또한 이윤이란 개념이 파괴될 때, 그 어떤 수단으로 노동자의 생산 기능을 자극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바로 거기에 회의와 고뇌, 튼튼하지 못한 지반, 다시 말해 언젠가 사회주의의 결정적 승리가 도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투쟁으로 더욱더 다져나가야 할 허약한 지반이 있어요…… 여하튼 정의가 우리의 것인 이상, 우리는 승리할 겁니다.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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