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자신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무엇을 알아냈습니까?

단편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 테드 창

단편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2007)」은 물리학자 킵 손의 이야기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킵 손은 1990년대 중반 북투어 중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틀 안에서 어떻게 (이론상의)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는지 설명"했다고 한다. "킵 손이 묘사한 타임머신은 한 쌍의 문에 가까웠고, 한쪽 문으로 들어가거나 거기서 나오는 물체가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다른 문에서 나오거나 거기로 들어가는 식으로 기능했다."(495쪽)

작가는 킵 손의 이야기에 『아라비안 나이트』의 형식을 접목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바그다드에서 직물 거래를 하는 푸와드 이븐 압바스(화자)는 통행금지 시간이 됐는데도 거리를 헤매다가 붙잡혀 대주교 앞으로 끌려간다.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그 간의 사정을 대주교에게 풀어 놓는다.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선물할 물건을 사기 위해 한 가게에 들른 압바스는 연금술로 가게를 채웠다는 상인을 만나게 된다. 보통 '연금술'이라고 하면 비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것을 떠올리지만, 그 상인이 말하는 '연금술'은 의미가 조금 달랐다.

"그러니까, 주인장이 비금속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바꿀 수 있지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연금술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사실 그런 게 아닙니다.

땅속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것보다 더 싼, 황금의 원천입니다. 연금술 문헌은 황금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몹시 고되지요. 그에 비하면 산 밑으로 광산을 파는 일은 복숭아나무에서 복숭아를 따는 일만큼이나 쉬워 보일 정도로요." 13쪽

그는 비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흔한 연금술 대신 '세월의 문'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 '세월의 문' 양쪽은 이십 년의 세월로 분리되어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십 년 뒤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물론 다시 문을 열고 나오면 현재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한다.

상인 바샤라트에 따르면, "한쪽 부리의 시간을 마치 물처럼 흐르게 하고, 반대쪽 부리에서는 그것을 시럽처럼 걸쭉하게 만들었다"(18쪽)고 했지만 압바스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압바스가 '타임머신'을 믿으려하지 않자 20년 뒤의 자신을 만나고 돌아온 '하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더 잘 알 수는 있는 것입니다.

밧줄을 꼬아 살아가던 하산은 '세월의 문'을 통과해 20년 뒤 어마하게 부자가 된 자신을 만났다. 젊은 '하산'은 나이 든 하산에게 물었다. "어떻게 운명을 이렇게나 크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22쪽) 하지만 나이든 하산은 비법 대신 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만 매번 알려줬다. 젊은 하산은 나이든 하산이 한꺼번에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 게 궁금했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 이 모든 걸 겪고 나자 나이든 하산은 보물이 있는 곳을 알려줬고, 더이상 나이든 하산을 찾아가지 않았다.

상인으로부터 '하산'의 이야기를 들은 '아지브'라는 젊은 직조공 역시 20년 뒤의 자신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이에 실망한 아지브는 평소에 돈을 모아두는 궤를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는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 부자이면서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20년 뒤의 자신. 그는 그 궤를 훔쳐 현재로 돌아왔고,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타히라와 결혼한다. 하지만 타히라가 갑자기 부자가 된 하산을 의심하며 자신을 위해 더이상 돈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자, 하산 역시 자신의 사랑이 의심받는 걸 원치 않아서 그 돈을 갚을 때까지 궤에다가 금화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훗날 자신을 찾아올 '젊은 하산'을 기다렸던 것이다.

"'세월의 문'을 이용한다는 것은 결과를 모른 채 제비를 뽑는 행위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궁전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는 것을 닮았습니다. 정상적으로 복도를 거쳐 가는 것보다 더 빨리 목적하는 방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 말입니다. 어떤 통로를 이용하든 방 자체에는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과거와 마찬가지로 바꿀 수 없다는 뜻입니까? (…) 만약 자신이 지금부터 이십 년 뒤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죽음을 피할 방법은 전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바샤라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7쪽

상인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단지 예정되어 있던 일들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는 왜 '세월의 문'을 만들어서 과거 혹은 미래의 자신을 만나게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그는 오래전 하산과 결혼한 '라니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우연히 남편을 찾아온 '젊은 하산'을 보고, 남편이 그와 나눈 이야기를 엿듣게 됐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젊은 시절의 남편이 그리워서 '세월의 문'을 통해 젊은 하산을 만나러 갔다. 우연히 한 목걸이 때문에 젊은 하산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젊은 하산이 가지고 있던 그 목걸이는, 오래전에 남편이 자신에게 준 것이었고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것과 20년 뒤의 자신의 것을 모두 찾아가 젊은 하산을 구해줬다. 하지만 젊은 하산과 장년의 하산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고 해도, 과거를 방문하면 예기치 않던 일과 조우할 가능성이 있군요."

"사실입니다. 이제 제가 왜 미래와 과거가 같다고 했는지 이해하셨습니까? 우리는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더 잘 알 수는 있는 것입니다." 42~43쪽

이 이야기들을 모두 들은 압바스는 자신이 집을 떠나자마자 무너진 모스크 벽에 깔려 죽은 아내 나쟈를 만나기 위해 '세월의 문'을 통과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그다드에 있는 '세월의 문'은 이제 막 만들어서, 2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20년 후로는 갈 수 있지만 20년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단, 카이로에 있는 '세월의 문'은 20년 전으로 돌아가는게 가능하다는 것. 그는 어쩌면 나쟈의 죽음에 착오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니면 자신이 나쟈를 구출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카이로로 떠난다. 하지만 "일어난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45쪽)는 법. 어렵게 카이로에 도착해 '세월의 문'을 지나 20년 전으로 돌아가지만 나샤는 이미 죽은 뒤였다. 대신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나쟈가 마지막 순간에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 것. 그 슬픔에 거리를 배회하다가 검문에 걸려 대주교 앞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과거와 미래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쪽도 바꿀 수 없고, 단지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 과거로의 제 여행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제가 배은 것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알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우리는 등장 인물인 동시에 관객이고, 우리는 바로 그 이야기를 살아감으로써 그것이 전해주는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56~57쪽

상인이 말하는 연금술은 비금속을 황금으로 만드는 길고 어려운 연금술이 아닌 황금을 캘 수 있는 지점을 알려주는 '세월의 문'을 만드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비록 바꿀 수는 없지만, 지름길을 통해 좀 더 빨리 갈 수 있으니 확실히 좋은 방법이긴 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처럼 우리의 삶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더이상 의미없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운명이야 어찌됐든 우리의 '자유의지'대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비록 지름길을 알려준다고 해도, 나는 미래의 나와 마주하는게 두렵다. 언제나 장밋빛 미래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20년 뒤의 나는 도저히 만날 용기가 없다.)

작가가 소설의 배경을 무슬림 세계로 설정한 것은, 그들의 종교가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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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지!

나는 와타나베와 그의 선배 나가사와를 통해 '개츠비'를 만날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했던 와타나베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종종 펼쳐서 읽곤 했는데, 그가 기숙사 식당에서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고 있던 날 나가사와가 말을 걸어왔다. 평소 와타나베에게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졌던 그 선배는 와타나베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보이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 둘은 친구가 됐고, 나 역시 그들의 친구가 됐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멋지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주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 본 사람은 없었으며, 읽고 싶어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1968년에 스콧 피츠제럴드를 읽는다는 것은 반동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결코 권장할 만한 행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내 주위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었으며, 나와 그가 친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나가사와라는 이름을 가진 도쿄 대학 법학부의 학생으로서, 나보다 두 학년 위였다. 우리는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자연히 서로가 얼굴만 알고 있는 그런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내가 식당의 양지 쪽에서 볕을 쬐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자니까, 옆에 와 앉아서 무엇을 읽느냐고 물어 왔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했다. 재미있냐고 그는 물었다. 세 번째 읽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10월의 일이었다.

나가사와 선배는 잘 알면 알수록 묘한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이한 사람과 만나고, 서로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 그처럼 기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아직 없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은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의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58~60쪽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당연히) 세 번 이상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소설이다. 와타나베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가 없고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위대한 개츠비』는 점점 빼곡해져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흔한 스토리 같지만, 이 '위대한'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5년 전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이 보이는 만(灣) 건너편에 집을 샀고,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밤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는 5년 전 우연히 만난 데이지에게 첫 눈에 반해 버렸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 밖에 없었던 개츠비와는 달리 데이지에게는 부족한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츠비는 데이지의 그런 환경과 모습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꼭 '사랑'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자꾸 '사랑이 아니었다'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아쉽다.

그는 거짓 핑계로 그녀를 차지했기 때문에 자신을 경멸했을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수백만 달러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데이지에게 고의로 안도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 인물인 것처럼 믿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를 충분히 보살펴 줄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가정의 뒷받침도 없었을 뿐더러 비정한 정부의 변덕에 따라 세계 어디에서든 갑자기 목숨이 날아가 버리게 될지도 모를 처지였다. 210쪽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형씨. 한동안은 그녀가 나를 차 버려줬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꽤 똑똑한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나는 본래의 야망을 잊은 채 순간순간 점점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었고, 또 갑자기 다른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 그녀에게 앞으로 할 일을 들려주면서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도대체 거창한 일들을 할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211~212쪽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전쟁이었다. 개츠비는 1차 대전 때문에 해외로 파병됐고, 군대에서 활약이 대단했던 개츠비의 귀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지고 말았다. 개츠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데이지도 주변의 압력 때문에 혹은 예전에 개츠비에게서 받았던 안도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데이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톰에게는 정부가 있었고 데이지도 정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과 함께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는 톰의 재산과 지위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데이지의 결혼 소식을 들은 개츠비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갖은 불법을 저지르며 돈을 모았고, 대저택을 구입했다. 개츠비는 여전히 데이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부자가 된 자신을 보면 데이지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년을 기다린, 아니 준비한 사랑의 끝은 참으로 잔혹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사랑 밖에 몰랐던 개츠비, 그는 너무 순수했다. 문득 떠오르는 영화 속 대사가 하나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개츠비는 자신이 변한만큼 데이지도 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상실했다고,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p.227)

『위대한 개츠비』를 이끌어 나가는 화자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이자 개츠비의 옆집에 살고 있는 캐러웨이다. 불법과 일탈을 일삼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올곧다. 개츠비가 얼마나 데이지를 사랑하는지 알면서도 그들의 만남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어찌됐든 개츠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고, 그가 사랑하는 데이지도 이미 결혼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츠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 유일하게 개츠비의 편에 서고,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환멸을 보낸다. 그리고 그곳을 떠난다.

얼마 전, 김연수의 『시절일기』를 읽다가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놓은듯한 글을 발견해 옮겨본다. 개츠비의 사랑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니, 아니 두 명 더 있다. 김연수 작가도 찰스 백스터의 생각에 동의하니까 흥미롭다고 한 것이리라.

 

찰스 백스터의 『서브텍스트 읽기』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예로 들며, 찰스 백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랑을 원한다는 뜻이지만, 사실 그는 그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를 원할 따름이다. 표면 아래 음울하게 감추어진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무엇인가는 소설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요동친다.

어쩌면 개츠비는 자신이 데이지를 원한다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저질렀던 그 많은 소동의 의미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워진다. 이 씁쓸한 웃음 속에 아이러니가 깃든다.

─ 김연수, 『시절일기』 180쪽

 

나의 사랑,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작품이다. 데이지가 변했듯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도 변하고 있다. 때론 개츠비의 사랑이 눈물 겨울 정도로 순수하게만 보이다가도, 때론 사랑의 실체를 모르고 물질적 허상만 쫓는 그의 행보가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데이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 따위 모르는 나쁜 여자라고 욕을 할 때도 있고, 나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데이지와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며 격하게 공감할 때도 있다. 읽을 때마다 우리 내면을 그대로 비춰주는 개츠비. 그런 면에서 '개츠비'는 위대하다. 조만간 책장을 또 펼칠 수 밖에 없는 나의 사랑,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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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27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로 한 번 그리고 영화로 한 번
봤을 따름입니다.

소설로 세 번씩이나 오옷 ~ !!!

뒷북소녀 2019-08-28 08:44   좋아요 0 | URL
아마 세 번...도 넘게 읽었을거예요.ㅋㅋㅋ
처음에 한 번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게 읽을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매력이 있더라구요.ㅋㅋㅋ
 
신이 내린 필력은 없지만 잘 쓰고 싶습니다
심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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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만드는 주문, 이런 일이 있었다!

도대체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나는 매일 고민한다.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첫 문장은 이미 썼지만, 이대로 써도 되는지도 고민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고민되는 글쓰기.

13년간 청소년부터 직장인까지 수천 명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온 심원은 첫 문장을 만드는 마법같은 주문이 있다고 한다. 글쓰기에 능숙한 사람도 첫 문장 쓰기는 어려운 법. 어차피 첫 문장을 공들여 쓴다고 해도 글을 고치는 과정이 있으니 그냥 써보라고 말한다. 그래도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면 무조건 이렇게 시작해보라고 조언한다.

독자들은 "그러니까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라는 건가요?"하고 물을 것이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지 막막할 때 언제나 서공하는 방법이 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 이 문장을 쓰기만 하면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수 있다. 일단 노트에 다음과 같이 써보자.

이런 일이 있었다.

아무리 평범한 문장이라도 글로 쓰면 힘이 생긴다. 문장은 생각을 유도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쓰면 반드시 "무슨 일이 있었지?" 묻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은 경험과 기억을 소환하는 짧은 주문이며, 무엇을 베어 물지를 결정하는 주문이다.

글쓰기 소재는 경험에서 나온다. 글쓰기를 하려면 먼저 "무슨 일이 있었지?"하고 물을 수밖에 없고, "이런 일이 있었다"하고 운을 떼면 글쓰기가 시작된다. 특별하고 충격적인 일을 떠올리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날 리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글쓰기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기록하면서 시작한다. 19~20쪽

수많은 글쓰기 비법들에서 빠지지 않고 강조되는 것이 바로 일단 써보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써보는 것 조차 힘들었던 우리들에게 첫 문장을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줬으니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닐까?

다음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고쳐 쓰기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 가는 사람은 없다. 그들도 모두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문장을 다듬는다. 그런데 고쳐 쓰기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초고를 고칠 때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 배치부터 신경 써야 한다. 문장은 여기를 고치면 저기가 문제고, 저기를 고치면 여기가 문제다. 반면 문단 배치는 더 쉽다. 문단은 결국 하나의 결론만 담고 있으므로 각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뽑아 자연스럽게 연결해두고, 그다음에 문장을 검토하면 된다. 그러므로 글 고치기의 효율을 높이려면 문장의 배치보다는 문단 배치를 먼저 하는 게 낫다. 271쪽

대부분의 초보 글쟁이들은 글을 고쳐 쓰라고 할 때, 문장부터 다듬는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없는지 살펴본다. 그런데 어차피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굳이 우리가 하지 않아도 편집기가 알아서 체크해 주는 것이니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 구도를 먼저 잡듯이 글도 문장을 다듬기 전에 문장들을 배치하며 구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 문장도 쓸 수 없을 때가 있다. 저자는 그럴 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글을 고치려면 고칠 글이 있어야 하고 글을 고치는 요령을 어느 정도 익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자 대부분은 아직 글쓰기와 글 고치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글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글쓰기와 글 고치기를 연습하자. 281쪽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시간을 견뎌야만 뭔가 쓸 수 있지만, 도무지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어진다면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을 필사하거나 재구성하는 연습을 해보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제 뭔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아쉽게도 그런 순간이 당장 찾아오지 않더라도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86쪽

다른 사람의 글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방법은, 스티븐 킹과 함께 아마존에서 작법 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가 제임스 스콧 벨의 비법을 따르면 된다.

소설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왼쪽 페이지의 첫 문장을 읽어라. 그 문장을 당신의 노트에 옮겨 적어라. 그리고 그 문장에서 첫 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라. 그 장면을 다 쓰고 나면 옮겨 적은 첫 문장을 지우고 당신만의 첫 문장을 다시 써 넣어라. 제임스 스콧 벨, 『작가가 작가에게』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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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문장이 남았다 - 시대를 이끈 한 구절의 지성
허연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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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발견한 의미있는 한 대목, 그 한 대목만으로도 책은 나의 분신이 된다!

매일경제신문에 연재한 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을 엮어서 만든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였다.) '시대를 이끈 한 구절의 지성'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장르를 불문하고) 세상에 한 획을 그은 작가와 그들의 책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화씨 451』이라는 소설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미국 환상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레이 브래드버리가 쓴 『화씨 451』는 책이 죄악시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화씨 451도는 섭씨 232.7도쯤 되는 온도로, 종이에 불이 붙는 온도를 의미한다. 정부가 책을 금지하자 사람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책 한 권씩을 저장하기 시작한다. 어떤 책이 읽고 싶으면, 그 책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 그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내가 만약 플라톤의 『국가』를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플라톤의 분신이 되는 것이다.

일찍이 윌리엄 서머셋 모옴도 말했다. "책에서 발견한 의미있는 한 대목, 그 한 대목만으로도 책은 나의 분신이 된다"고.

그렇다. 책은 나에게로 와서 내 자신과 합체한다. 나와 합체됐다는 건 나를 형성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한 나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확장된 나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힘과 기술, 무기를 얻는 일이다. 5~6쪽

멋지지 않은가! 책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작가의 분신이 될 수 있다니. 한 문장만으로 그 책이 나의 분신이 될 수 있다니. 나 또한 한 권의 책을 읽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하나라도 있다면 성공한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장과 검색 기술이 점점 쉽고 편해지는 요즘에는, 책 내용은 커녕 좋은 문장을 만나더라도 기억하는 일이 드물다. 어딘가에 기록해뒀다가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까,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인간 중심의 업적들은 결국 책이 만들어낸 것이다. 노예제가 사라지고,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 많은 질병에 대한 치료의 길이 열리게 한 원동력은 결국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책을 읽으면서 대중들의 자아와 시선이 달라졌고, 그 달라진 자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 것이다.

노예제나 여성차별 같은 말도 안 되는 만행이 자행되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문맹'이다. 소수의 몇 사람에게만 책이 주어졌던 시대, 그 시대가 곧 야만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책이 창문을 열어 주기 전까지 인간은 인간답게 산 적이 없었다. 마녀사냥이 자행되던 중세 때는 유럽 인구의 90%가 문맹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을 벗어나 책을 읽게 되면서 야만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인류가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세상이 바뀐 것이다.

마녀사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마녀사냥을 자행하는 사람들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마녀사냥이 사라진 건 아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에 눈뜬 사람들이 마녀사냥이 옳지 않다는 걸 밝혀냈기 때문에 마녀사냥이 사라진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 인식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 인식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책의 한 문장을 가슴으로 외우는 누군가가 있는 한, 인류는 악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6~7쪽

세상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나아지고 있는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기억을 의지하고 있는 나는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요즘엔 그마저도 기록하지 않아서 기억은 커녕 검색할 것(기억) 조차 없다.

'칼럼'이었던 글들이라 가독성이 매우 좋지만, 생각보다 이야기가 빨리 끝나서 오히려 감질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책 속에 소개된 책들을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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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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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던 '시간'의 개념이 깨지는 순간!

내 손목시계 바늘이 12시를 가리킬 때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4시를 가리킬 때쯤 책 읽기를 마쳤고, 지금은 다시 12시 방향을 향해 돌고 있다. 분명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관찰하며 이 책을 읽었는데, 저자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나처럼 정리를 잘 못하는 독자가 있을거라고 예상했는지, 마지막 부분에 책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해 준다. 저자보다 더 저자의 이야기를 잘 정리할 자신이 없어서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우리는 온 우주에서 균일하게 동등하게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익숙한 시간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온 우주에 하나의 현재, 하나의 ‘지금’이 실재한다. 모든 사람에게 과거는 고정돼 있고, 이미 도래했으며 지나갔다. 미래는 열려 있고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현실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흐르고, 사물의 진화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것이 세상의 기본 구조라고 생각했다.

이 익숙한 틀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시간은 아주 복잡한 현실의 근사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3장)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순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서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세계적이 아니라 지역적이다.

세상의 사건을 지배하는 기본 방정식에는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없다.(2장) 그 차이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희미한 생각과 함께, 과거에 세상이 우리에게 특별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문제가 될 뿐이다.

지역적으로, 시간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른다. 우리가 물체 덩어리에 가까울수록(1장), 우리가 빨리 움직일수록(3장)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 두 사건 사이의 기간은 단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는 리듬은 자체의 동역학을 지니고,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에 의해 기술되는 실체인 중력장에 의해 결정된다. 양자 효과를 무시하면, 시간과 공간은 우리를 담고 있는 거대한 젤리의 양상들이다.(4장)

하지만 세상은 양자적이고, 젤리 같은 시공간 역시 근사치이다. 세상의 기본 문법에는 공간도, 시간도 없고, 오직 물리량을 변화시키는 과정만 있을 뿐이며, 이로부터 우리는 확률과 관계를 산출할 수 있다.(5장)

지금 우리가 아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는 우리가 경험한 시간과 유사한 것이 별로 없다. 특별한 ‘시간’ 변수도 없고 과거와 미래의 차이도 없고 시공간도 없다.(2부) 우리는 세상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쓸 줄 안다. 이 방정식에서 변수들은 서로에 상대적으로 변화한다.(8장) 세상은 ‘정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변화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꽉 막힌 우주’도 아니다.(7장) 오히려 사물들이 아니라 사건들로 가득한 세상이다.(6장)

여기까지는 시간이 없는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었다. 그 우주에서 돌아오는 여행은 시간이 없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시간 감각이 생길 수 있었는지(9장)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다. 놀라운 일은, 시간의 친숙한 면들이 출현하는데 우리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 세상의 작은 일부인 인간의 관점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세상을 본다. 세상과 우리의 상호 작용은 부분적인데,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보게 되는 이유다. 이 희미함에 양자의 불확정성이 추가된다. 그로 인한 무지가 특별한 변수인 열적 시간(9장)의 존재와 우리의 불확실성을 양화한 엔트로피의 존재를 결정한다.

아마도 우리는 나머지 세상과 상호 작용하면서 열적 시간의 한 방향으로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특별한 부분 계에 속하는 것 같다. 따라서 시간의 방향성은 실제적이지만 관점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에 달려 있는 것이다.(10장) 세상의 엔트로피는 ‘우리와 관련돼’ 있고, 우리의 열적 시간과 함께 증가한다. 우리는 이 열적 시간을 간단히 ‘시간’이라 부르는데, 이 변수 안에서 사물들이 순서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고 우주의 전개를 이끈다. 또한 과거에 대한 흔적과 잔존물 그리고 기억이 존재하도록 한다.(11장) 인간은 과거의 흔적들에 대한 기억으로 뭉쳐져 있는, 엔트로피 증가는 대역사의 산물이다. 우리는 각자 각자가 하나의 통합된 존재다. 세상을 반영하고 있고, 타자와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하나의 통합된 실체의 이미지를 구축해왔으며 기억으로 통합된 세계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2장) 여기서 우리가 시간의 ‘흐름’이라 부는 것이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간의 경과를 경청할 때 듣는 소리다.

‘시간’ 변수는 세상을 설명하는 수많은 변수 중 하나다. 중력장의 변수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4장), 우리 규모에서는 양자의 요동을 기록할 수 없기에(5장) 시공간을 아인슈타인의 거대한 연체동물처럼 잘 확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우리 규모에서는 이 연체동물의 움직임이 너무 작아서 무시될 수 있다. 따라서 시공간을 탁자처럼 견고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탁자에는 차원들이 있는데 우리가 공간이라 부르는 차원과 시간이라 부르는, 엔트로피가 그것을 따라서 성장하는 차원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빛에 비해 매우 낮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계마다 서로 다른 고유 시간이 있음을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며, 또한 어떤 물질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 차이도 너무 작아 식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간들이 아닌, 우리가 경험한 균등하고 범세계적이고 순서가 있는 시간, 이 단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엔트로피의 성장에 의존하여 시간의 흐름에 정착한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특별한 관점에서 기술한, 세상에 대한 근사치의 근사치의 근사치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근사치들에서 파생된 확연히 구분되는 수많은 특성들이 겹겹이 쌓인 다층 구조의 복잡한 개념,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시간의 개념에 대해 수많은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고 다층적인 측면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제각각의 다양한 층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잇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평생 시간의 주위를 맴돌고 나서 알게 된 시간의 물리적 구조이다. 199~204쪽

이것을 좀 더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곳에서나, 무엇을 하든 시계바늘처럼 시간이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라는 사실. 시간은 단순히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우리가 '현재' 혹은 '지금'이라고 정의하는 시점도 문법적인 개념일 뿐 과학적으로는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 저자는 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 물리학자라는 것.

그는 친절하지 않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이론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듯 하다. 그가 간단하다고 말하는 이론 조차 나같은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어쩌면 진짜 물리학적인 접근은 어렵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한 아리스토텔레스나 뉴턴의 연구를 언급하며 인문학적인 접근을 했던 것일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사물의 변화에 맞춰 우리의 상황을 규정하는 방식이자 날짜의 변화와 계산에 맞춰 우리 자신을 위치시키는 방식이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변화의 척도이다. 아무 변화도 없으면 시간도 없다. 72~73쪽

아무 움직임이 없으면 시간은 없다. 시간은 움직임의 흔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73쪽

뉴턴은 사물이나 사물의 변화와 상관 없이 ‘진짜’ 시간은 흐르고, 모든 사물이 멈추고 우리 영혼의 움직임마저 얼어붙어버려도 ‘진짜’ 시간은 냉정하게 그리고 동일하게 계속 흐른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시간과 반대인 것이다. 74쪽

뉴턴에게 시계는 항상 부정확하기는 하지만, 동등하고 균일한 시간의 흐름을 좇으려 하는 장치였다. 뉴턴은 이 ‘참된 수학적 절대 시간’은 인지할 수 없고 현상들의 규칙을 관찰하고 계산해서 추론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뉴턴의 시간은 우리 감각의 증거물이 아니라 우아한 지적 산물인 것이다. 76쪽

뉴턴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인류에게 시간은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헤아리는 방식이었다. 뉴턴 이전에는 그 누구도 사물과 상관없는 시간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77쪽

그는 시간에 대해 상반된 주장을 펼쳤던 아리스토텔레스(시간은 변화의 척도일 뿐)와 뉴턴(아무 변화가 없을 때도 흐르는 시간이 있다)의 사례를 들며, 그들이 어떤 실험이나 실측 없이 오직 사유만으로 그런 성과를 얻었다고 추겨세운다. 이것은 저자가 현재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의 연구 또한 추측만 있을 뿐, 어떤 실측값이 없기 때문이다. (부제에서도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이라고 밝혔듯이 사실 이 분야는 실측값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긴 하다.)

그 답변이 우리가 오늘날 유일하게 옳다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정답은 아니다. 양자중력 이론의 대표적인 한 흐름인 루프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이끌어낸 일종의 이론적 추측일 뿐이다. 현재 양자중력 이론은 오직 이론적 상상을 통해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모할 뿐이며, 아직까지는 어떤 실험적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우주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그 안에서 인간 세상을 재조명하게 한다. 매우 그럴듯하며 흥미진진한 상상이자, 양자 이론의 관점에서 중력 현상을 설명하는 천체 우주 물리학의 미개척 분야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옮긴이의 글」, 220쪽

이 책의 번역자이자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중원 교수 또한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창을 열어두고 이 책을 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글」에 의미있는 내용들이 있어서 덧붙여 본다.

이 책의 원제목 『시간의 질서』는 매우 역설적이다. 마치 시간에 어떤 질서와 순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의 주장은 이와 정반대다. 시간에 어떤 순서나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시 세계에서 바라본 우주의 특수한 양상일 뿐, 보편적인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 지각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 본래의 원초적 시간에는 순서나 질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흐름이 없다. 시간은 단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 간의 관계, 좀 더 엄밀히 말해 이 관계들의 동적인 구조에 나타나는 양상이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 번역 책의 제목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인 이유다. 「옮긴이의 글」, 221~222쪽

이 책은 일종의 ‘시간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 시간에 관한 이 우주의 거대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 온전히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이 인류의 역사에서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구의 시간이 아닌 우주의 시간, 곧 시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한 발짝 더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옮긴이의 글」,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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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8-19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양자역학에서.... 음음..으음... 심지어 리뷰마저 어려워... 하지만 이 리뷰를 보면서 언젠가는 읽어보겠다 마음먹어 봅니다 ㅎㅎㅎ

뒷북소녀 2019-08-20 08:42   좋아요 1 | URL
예쁜 표지가 함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버섯처럼요.^^;;
깔끔하게 정리해서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상대성원리 조차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다소 어려운 책이더라구요.
언젠가는 올리게 되실 쟝쟝님 리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