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안에 유창해지는 법 - 외국어, 이번엔 진짜 끝낸다!
베니 루이스 지음, 신예경 옮김 / 알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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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외국어 한번 배워볼까요?

   체코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새로 배울 때마다 새로운 삶을 산다. 그러므로 한 가지 언어밖에 알지 못한다면 삶도 오직 한 번뿐인 것이다." (p.294) 한 가지 언어 밖에 모른다고 해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불편하거나 풍요롭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자동으로 번역을 해주는 툴들도 많기 때문에 도구의 힘을 빌린다면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로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그 나라의 언어를 알지 못해서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물론 세계 공통어인 영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 나라 특유의 문화나 역사를 이해하고 그 나라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지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취업이나 진학이 목적이 아닌 정말 그 외국어 자체를 습득하는게 목표라면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3개월 안에 충분히 유창해 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3개월 안에 유창해질 수 있냐고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유창하다'의 의미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창하다'의 의미는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토익이나 토플처럼 객관화된 점수로 책정되어지는 시험은 완벽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고득점을 얻기 힘듭니다. 하지만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굳이 완벽해 질 필요도, 문법에 맞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우리가 외국인들이 엉터리로 발음하는 한국어를 듣고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처럼, 현지인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또, 시험과는 달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오로지 말로서 대화를 나누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몸짓, 표정, 억양까지 모두 파악해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정말 짧은 언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게 없습니다. 

   그래도 3개월 안에 어떤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취업이나 진학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왜 외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외국어 자체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 될 것입니다. 저처럼 좀 더 풍요로운 여행을 즐기기 위해, 혹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외국 친구를 사귀려고 외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아주 강력한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외국어 정복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사이의 차이는 바로 '언어 자체에 대한 열정'이다. 외국어 정복에 성공한 사람들은 새로운 언어 습득 자체를 곧 보상으로 간주한다. (p.16)


   열정은 외국어 학습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다. 열정에 불을 붙이기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당신은 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흘러나오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거나,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보거나, 그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어라. 그러면 당신의 열정에 불이 붙을 것이고, 이는 여타 부수적인 이익을 동기로 삼았을 때보다 당신의 외국어 실력을 훨씬 일취월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p.18)


   이런 이유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말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합니다. 시험 때문에 외국어를 공부할 때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처음부터 말하는 연습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말하는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우리가 가장 힘들어 하는게 뭔가요? 바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말하는 연습을 시작해 보세요. 발음이 틀리고, 어법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표는 시험점수가 아니라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그는 언어를 배울 때 좀 더 유리한 나이는 없다고 말합니다. 단지 나이에 따라 학습법만 달리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어릴 때 외국어를 배우는게 더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학습법이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적합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린 학생들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보다 강력하고 자발적인 동기가 있고, 그들보다도 더 이해력도 좋습니다. 살면서 그 나라의 언어를 접할 기회도 훨씬 많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디테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는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까? 또 AUDI를 아우디로 읽을 줄 안다면 적어도 네 알파벳의 독일어 발음법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완벽함을 목표로 삼는 것은 헛수고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잇지만, 외국어에 숙달될 언젠가를 향해 노력하면서 그 과정을 통과하는 이정표를 목표로 삼을 수도 있다. 외국어 학습에 있어 종착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마스터란 불가능하단 얘기다. 심지어 나는 모국어인 영어의 새로운 단어와 예전에 미처 몰랐던 다양한 방언을 요즘도 발견하곤 한다. 외국어 학습은 평생 동안 이어지는 모험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일정한 단계들을 분명히 정의해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정해진 기간 안에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 

   비록 유창한 언어 구사력에 대한 나의 구체적인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이 생각하는 유창함의 정의는 가능한 한 명확해야 한다. 또한 유창함의 특성에 들어가지 않는 부분까지도 아울러야 한다. (p.73~74)


   외국인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던 저자가 지금은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해서 12개국어 능통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독일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체코어 뿐만아니라 한국어, 중국어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외국어는 현지인들처럼 아주 유창하게 말할 수 있고, 또 어떤 외국어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어차피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그의 블로그에는 각 언어별로 공부하는 방법이 공개되어 있고, 그와 같은 방법으로 외국어를 공부한 전세계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경험담,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저도 다가오는 휴가 때는 독일어권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블로그를 통해 독일어를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우리 함께 공부해 볼까요? http://www.fluentin3month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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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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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디즘과 전체주의에 대한 반어법, 이렇게 멋진 신세계라니!

   1913년 포드가 컨베이어를 이용해 T형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면서 폭발한 기술 발전은 100년 동안 눈부신 변화를 가져왔고, 우리는 더이상 미래를 '공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더이상 놀랍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포디즘을 경험한 올더스 헉슬리는 자신이 상상한 미래의 모습을 그린 『멋진 신세계』를 1932년 발표합니다.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미아친의 『우리들』과 함께 20세기의 3대 디스토피아 문학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멋진 신세계』에서는 더이상 부모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인공수정을 통해 유리병에서 배양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각 계급에 맞는 외모와 지적 수준을 갖게 됩니다. 반복된 조건반사 훈련과 주입식 학습을 통해 개개인은 자신에게 필요한만큼의 지식만 획득하게 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도록 설계되어 집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지적 탁월성은 그것에 합당한 도덕적 책임을 수반해야 되는 거야. 사람의 재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곁길로 이탈할 가능성도 커지는 법이야. 많은 사람이 타락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희생하는 것이 더 나은 법이야." (p.187)


   아무리 안정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시스템에 의문을 가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분명 상위 계급으로 태어났지만 유리병에서 배양될 때 무언가 잘못 투입되어 하위 계급의 열등한 외모를 가지게 된 '버나드 마르크스'는 배양된 인간들이 아닌 오래전에 사람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는 문명 세계 밖, 그러니까 야만인들의 세계로 휴가를 떠납니다. 그곳에서 그는 원래는 문명 세계에서 태어났지만 어떤 사고로 인해 야만인들의 세계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했던 린다와 그의 아들 '존'을 만나게 됩니다. 버나드는 린다와 존을 문명 세계로 데려오는데,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달리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난 야만인 '존'에게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존'은 그런 사람들을 역겨워 합니다.


   "오, 멋진 신세계……." 야만인은 어떤 악의에 찬 장난으로 미란다의 말을 기억해내어 반복했다. "이러한 인간들이 사는 멋진 신세계여." (p.202)


   포드가 컨베이어를 이용해 T형 자동차를 조립했듯이 『멋진 신세계』에서 아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이들이 들어있는 유리병이 컨베이어 위에서 이동하며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배양에 필요한 무언가를 아이들에게 주입합니다. 헉슬리는 컨베이어와 대량 생산으로 대표되는 포디즘을 소설을 통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쓰여졌던 1932년에는 포디즘이 가져온 기술 발전으로 인해 분명 혜택 받은 것들이 훨씬 더 많았을텐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국가 혹은 계급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개개인이 통제되고 억압 받는 전체주의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지 오웰의 『1984』와도 통하는 부분입니다.


   채워진 병이 끝없이 이어지는 컨베이어 위에 실려 손이 닿지 않는 위치로 이동하기도 전에 히유! 딸깍! 하고 다음 차례의 복막 조각이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와 다른 병으로 들어가서, 컨베이어 위에 실려 천천히 이동해 가는 병의 대열 후미에 자리잡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었다. (p.15~16)


   지금의 사람들은 문명과 기술의 발달이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선물해 줄 것이라고 더이상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혜택보다 부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며 현재보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는 이 신세계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아름다움은 매력적이거든. 그런데 우리는 낡은 것에 사람들이 매혹되는 것을 원치 않아.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를 바라는 입장일세."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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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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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이 진실이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칩니다.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다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앞모습을 훨씬 더 신경 씁니다. 물론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 할 때 상대의 앞모습을 보기 때문이겠죠. 늘 신경쓰며 치장하고 다듬는 앞모습에 비해, 그런 의미에서 뒷모습은 무방비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뒷모습을 제대로 볼 수도 없습니다. 물론 거울 앞에서 몸을 비틀면 뒷모습을 살짝 볼 수도 있습니다. 거울 2개를 활용하면 뒷머리가 어떤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뒷모습은 앞모습에 비해 보다 솔직하고, 어쩌면 좀 더 날 것의 비주얼인지도 모릅니다.

  

   여기 평생 전세계를 돌며 사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작가가 한 명 있습니다. 프랑스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주목하며 '뒷모습'만 찍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표정인지는 앞모습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뒷모습'만 보고서는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에두아르 부바의 '뒷모습' 사진에 글을 썼습니다.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라고 적혀있는 일종의 '주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사람들의 '뒷모습'만 보고서는 도저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셸 투르니에가 사진에 주석을 단 것입니다. 그렇다고 미셸 투르니에의 글이 모두 정확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쨌든 그도 그 사람의 '뒷모습'만 보고 추측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도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만의 '주석'을 달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는 모두 쉰석 장의 '뒷모습' 사진들이 등장합니다. 책 표지에는 글을 쓴 미셸 투르니에의 이름이 먼저 등장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뒷모습'에 주목한 쉰석 장의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뒷모습』 중)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내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 스스로도 잘 모르는 내 뒷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면 동시에 등을 돌리는 방법을 택하거나 그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곤 합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오래전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니, 그래서 『뒷모습』이 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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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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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최종 목적은 스스로 사유하는 것!

   '수졸재'에는 해마다 장서가 1천 권씩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한 창백한 독서광이 사계절 내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시인이지만 다독가로 더 유명한 장석주는 사계절 동안 책을 읽으면서 써내려간 문장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냅니다.


   어떤 책을 읽었을 경우, 우리는 그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존재의 생물학적, 인지적 형질이 미묘하게 바뀌어버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책과 그것을 읽는 사람은 역동적 상호작용을 한다. (p.257~258)


   그는 왜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일까요? 그는 "책 읽기가 주는 청정한 즐거움 때문"(p.113)이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 앎의 즐거움과 사유의 즐거움으로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오른다"(p.113)고 합니다. 그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과 단순히 책만 읽는 사람들을 향해 당부의 말까지 전합니다.


   독서인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책 읽기의 최종 목적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다. 스스로 사유를 하는 것! 책 읽기를 통해 지식의 전체상에 접근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을 '통섭'할 수 있는 사유 능력의 총량을 키워야 한다. 읽는 행위의 능동성은 뇌 회로를 새롭게 여는 수단이 되고 궁극적으로 사유의 복잡성을 견뎌낼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지식과 지식들이 충돌하며 일으키는 사유의 불꽃들과 함께 타오르며, 즉 책 읽기의 열락(悅樂)을 사유의 향연으로 바꿀 때, 그리하여 독서의 총량을 지렛대 삼아 지식 생산자로 나설 때 비로소 진정한 독서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진정한 독서인만이 자기를 넘어서서 초인류가 될 수 있다. (p.113~114)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시인 장석주가 사계절 동안 읽으면서 사유한 것들의 결정체 입니다. 그는 130여 권에 달하는 책들을 읽고, 300권에 이르는 책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는 날마다 책만 읽는게 아닙니다. "날마다 밥을 먹듯"(p.332) 쓰기도 합니다. 혹자들에게는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서평을 쓰는 것이 매우 힘든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가 책을 읽고 이토록 깊이있는 사유를 글로 보여줄 수 있는 것 또한 날마다 책 읽는 것과 함께 밥 먹듯 쉬지 않고, 미친 듯 몰입해서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한 책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책을 읽을 때 절대 편식하지 않습니다. 문학, 철학, 미술, 경제, 여행 등은 물론이고 야구나 축구에 대한 책들도 읽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입니다. 작가가 책 읽기의 최종 목적으로 꼽은, 스스로 사유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장석주와 발터 벤야민은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은 물론이고 방대한 독서력에, 사유를 중시하는 글쓰기까지 닮아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몇 번이나 읽은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를 이렇게 말합니다.


   표제와 씌어진 단상 사이의 접합점은 모호하고 아득하다. 그 모호함과 아득함은 벤야민이 제 글에서 자주 구사하는 시적 상징성과 비의성에서 비롯된다. 표제와 씌어진 단상 사이의 텅 빈 곳을 물론 벤야민 특유의 사유의 비약이 가로지른다. 우리는 그 비약 앞에서 얼어붙는 대신에 그것을 상상과 추론의 질료로 삼을 수 있다. 그래야만 이 책을 '사유의 유격적을 위한 현대의 교본'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p.16~17)


   책 읽기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분들, 혹은 진정한 독서가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를 추천합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한동안은 위축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분발하게 될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사계절 내내 읽어도 넘치는 독서 리스트를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책 속의 책 소개 http://heeya1980s.blog.me/22027560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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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의 세계 -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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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시옷들을 시인의 상상력으로 시어로 직조해내다!

   글자에도 취향 같은게 있을 수 있다면, 나는 '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ㅇ'이나 'ㅎ'처럼 둥근 면이 없는 'ㅅ'은 시릴 정도로 날카롭고 차가워 보입니다. 게다가 두 개의 선이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불안해 보입니다. 쓰는 사람의 필체에 따라 정대칭을 이루기도 하고, 한 선이 더 꼿꼿하게 서면 나머지 한 선은 훨씬 더 불안정하게 기대는 꼴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있는 사람의 형상(人)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않는 'ㅅ' 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름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닉네임에 들어가 있는 'ㅅ'을 치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쓴 적도 있습니다.


   시인 장석주가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에서 "시와 산문을 두루 잘 쓰는 시인"(p.377)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김소연은 산문집 『시옷의 세계』를 통해 'ㅅ'으로 시작하는 사소한 낱맡들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과 감정들을 담아 또 하나의 '시어'로 직조해 냅니다. 「사라짐」, 「사소한 신비」, 「산책」, 「상상력」, 「새하얀 사람」, 「생일」, 「세 번째 상하이」, 「세월의 선의들」처럼 독자들에게는 사소하고 무의미한 낱맡들이 시인의 감성을 덧입고 적당한 "밀도와 온도와 습도"(p.214)를 머금은 시어들로 탄생합니다.


   밀도와 온도와 습도. 책을 읽을 때면 으레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문장을 측정하는 버릇이 있었다. 밀도 높은 문장을 가장 좋아했고, 습도가 낮은 건조한 문장을 신뢰했고, 온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지나치게 낮은 문장에서 풍기는 과잉을 부러워했다.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칠 때, 그것을 집약하려는 집중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문장의 높은 밀도는 글쓴이의 경지를 실감할 수 있어 좋았다.

   따뜻한 문장을 가장 꺼려했다. 따뜻한 문장은 삶을 달관한 듯한 깨달음과 위로로 포장되어 있기가 십상이다. 위선에 가깝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삶과 손쉽게 화해해버렸다는 의미에서 패배자의 모습과 비슷한 뒷맛이 남는다. (p.214)


   또한, 김소연은 『시옷의 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기도 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시인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자신의 재주에 더 의지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험과 취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가들과는 달리 시인이 시어를 선택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좀 더 직관적이고 천부적인 영역의 일이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소설가는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노력한다면 될 수는 있지만, 시인은 그렇게 되기에 어려운게 아닐까요?

   하지만 『시옷의 세계』는 시인도 타고나는 것이 아닌 노력의 결과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김소연은 문장 하나를 써내기 위해 단어를 골라내는 일부터 신중하게 고민합니다.


   단어를 고르는 일에 능력이 있다면 나는 하루에 시를 열 편쯤은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문장은 도착해 있는데 내가 아는 단어들은 낡아, 나는 늘 새로운 단어에 갈급하다. 새롭되 전혀 새롭다는 느낌은 없이, 낡고 익숙한 느낌은 결코 아닌 채로, 문장 속에 슬그머니 스밀 수 있는 단어 하나를 찾는 데에 매일매일을 다 써버린다. 온 동네를 거닐고 커다란 사전을 꺼내고 인터넷을 뒤지고 낯선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그 밖의 일들엔 아무 관심도 없다. 내게 단어를 선물해준 것이 기뻐 꽃씨를 심었고, 값진 단어 하나를 주워듣기 위해서 친구를 만났다. (p.252)


   시인을 두고 타고나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나같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시인을 엉뚱한 몽상가나 언어의 연금술사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김소연은 말합니다. 시인의 상상력이란, 정확하고 과학적인 증표와 징표를 통해 징후를 밝혀내는 논리적 과정을 거치는 것이므로 '풍부하다'가 아닌 '정확하다'는 표현이 더 옳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김소연이 말한 '과학적인 증표와 징표'는 사소한 것도 지나치지 않는 '관찰력'의 다른 말이 아닐까요?


   시인의 상상력이란, 정확하고 과학적인 증표와 징표를 통해 징후를 밝혀내는 논리적 과정이다. 그러니까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다. 상상력이 정확하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옳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숨겨진 공간들, 그 경계의 영역들, 그 이상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모호함을 시인은 상상력의 힘으로 정확하게 호명해낸다. (p.45~46) 


   우연찮게도 최근에 시인들이 쓴 산문집들을 연이어 읽었습니다. 자기 이야기에만 빠져있어 공감은 커녕 흥미를 잃게 만드는 대부분의 산문집들과는 달리, 그들의 문장 속에서는 그저 술술 읽어 내려갈 수만은 없는 밀도감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시인 특유의 상상력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고 정확하게 문장으로 표현해 주니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비록 우리가 놓치긴 했지만, 그것들 또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니까요.


   시인이 가난한 것은 한 사회 안에 시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시인이 너무 많은 것은 세상이 너무 병들었고 제도가 너무 지긋지긋하게 갑갑하기 때문이다. 병든 세상과 낡고 딱딱한 제도에 대한 불만은 창작 행위로 이어질 때에 창조적인 에너지가 된다. 가장 저비용으로, 게다가 아무 기술을 배우지 않고 모국어만 구사할 줄 알면 가능한 높은 접근성으로 인해, 게다가 혼자서 가능한 작당이라는 창작 방식으로 인해, 세상엔 시인이 이토록 많다. 그러나 시인이 가난한 것은 가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이지만, 다른 방식의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서 시인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시의 욕망이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시인일수록 좋은 시를 쓸 확률이 높다. 윤택한 아파트에서 쓰인 시,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서 쓰인 시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지 않다. 옥탑방 아니면 반지하, 도시의 변두리, 시골의 허름하고 불편한, 좁고 누추한 공간에서 쓰인 시에 오히려 생명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시인은 명성을 쌓을수록, 나이가 들어 안정될수록 점점 나태해진다. (p.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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