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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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아직 99℃, 그러나 함께 일어서면 반드시 100℃로 끓어오를 수 있다! 
   최근 자주 접하게 되는 말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정당한 대가를 치뤄라는 것이다. 우석훈은 실업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토익 책을 덮고 짱돌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라고 했고(『88만원 세대』), 유시민은 우리가 얻은 민주주의는 우리 스스로가 쟁취한 것이 아니니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했으며(『후불제 민주주의』), 한홍구 또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각자 준비하라고 했다.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 독려하고 있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 (혹 어떤 이들은 음모론을 주장하며 배후를 대라고 할지도 모른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p92~93)

한사람의 열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
   우리는 그 답을 최규석의 『100℃』에서 찾을 수 있다. 물이 끓으려면 100℃가 돼야 한다. 99℃에서는 절대 끓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99℃까지 온도가 올랐지만, 아직 1℃가 모자라서 끓을 수가 없단다. 그렇다면 그 1℃를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 함께 아궁이에다가 부채질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 더운 날 한명이 희생해서 부채질 10번 하면 되지 굳이 모든 사람이 나갈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혼자서 부채질 10번 하는 것보다 열명이 모여 한번씩 부채질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혼자서 부채질을 하다보면 처음의 세기와 나중의 세기가 달라질테니까. 
   그는 "한사람의 열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을 강조하고 있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다. 학생들이 아무리 화염병을 던지고 시위를 해도 국가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데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이한열 사망 사건이 터지면서 전국민이 6월 항쟁에 참여했고, 그때서야 노태우 전 대통령이 6ㆍ29 선언을 하며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을 했다.
   지난해 6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수없이 광장에 나갔지만 어느 것하나 우리 뜻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데도 국회에서는 날치기도 모자라 대리투표까지 해가며 언론악법을 통과시켰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뜻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모두 함께 일어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정부의 편에 서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해서 과연 바꿀 수 있을까 방관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어느 편에 서야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들이 우리 현대사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함께하지 않을까?
   저자 최규석은 1977년생이다. 그는 1987년 6월민주항쟁 당시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와 나는 역사의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니다. 지금은 국사 교과서에서 현대사 비중이 높아졌지만, 우리 때는 비중도 얼마되지 않았고 그나마 대충 훑어보고 지나가는 정도였다. 그러니 모를 수 밖에. 우리 역사는 분명 말해주고 있다. 모두 함께한다면 우리의 뜻을 전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6월민주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원래 이 책은 중고생들의 현대사 수업 보충교재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 많다. 그러나 현대사는 학생뿐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함께 꾸준히 알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역사는 흘러가고 있으니까. 그러니 이 책을 비롯해 다른 현대사 관련 책들도 함께 읽어보길 바란다.

09-99.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2009/07/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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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돌의 도시 - 생각이 금지된 구역
마누엘 F. 라모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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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페인 국가 대표 자격이 없소. 2군 가서 더 뛰고 오시오!
   생각이 금지된 구역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무엇이 금지된 곳이라고 하면 일단 주제 사라마구가 떠오른다. 정말 없어졌으면 하고 바랐던 '죽음'이 사라지자 도시는 이내 혼란에 빠졌고 죽지 못해 고통 받던 사람은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조차 사라지면 이 모양인데, 생각이 금지되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문득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른다. 빅 브라더가 완벽하게 사람들의 감정을 통제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는가.  

   『둥근 돌의 도시』의 시간적 배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먼 미래인 49세기. 전 우주는 하나로 통합됐고, 세계의 대통령이 전 우주를 통치한다. 주인공 카르멜로 프리사스는 내리막길만 보이면 미친듯이 달린다. 나도 자전거를 타다가 내리막길만 보이면 바람의 속도로 달려 내려간다. 그래서 그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덕분에 그는 여러 번 병원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그는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갔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핸드백을 들고 그를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승부 근성을 느끼리라. 그는 자신보다 앞서가는 그 남자의 핸드백을 잡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차에 부딪혀서 쓰러진다.
   그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주인공보다 앞서갔던 그 남자는 세계의 대통령 핸드백을 훔쳐서 달아나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주인공 때문에 함께 차에 치이고 만 것이다. 이쯤되면 뉴스에도 나올 수 있고, 어쨌든 도둑을 잡았기 때문에 영웅이라 해도 된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멀티 기능이 탑재된 버추얼 비전에서 연일 그의 영웅적인 일을 보도하며 우상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그의 연인이 되길 원했고, 그것은 세계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대통령의 비서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장관 한 명은 돌에 맞아서 살해당하고, 영웅의 행적은 묘연하다. 형사 아부 아산은 영웅이 이 사건의 범인이라 지목하고 그를 찾아나선다.
   『둥근 돌의 도시』는 많은 소설들을 연상시킨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들도 떠오르지만, 조지 오웰의 『1984』와는 유사한 점이 많다. 당시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썼을 때 1984년은 미래였고, 빅 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세뇌시킨다. 행동뿐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둥근 돌의 도시" 또한 마찬가지다. 이곳은 생각뿐만 금지된 것이 아니라 책도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다. 또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보면, 보르헤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안할뿐이다. 이 허접한 작가를 세계의 대작가들과 비교해서 말이다. 
   마누엘 F. 라모스는 나름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다. 혹시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같기도>라는 프로그램을 아는가? "~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가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 <같기도> 같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혀 SF 같지 않고, 생각이 금지된 곳이지만 그것이 결여된 사회를 제대로 그려내지도 못하고, 블랙 유머를 통해 사회를 비웃고 있지만 그 유머는 전혀 통하지 않고,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지만 읽히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야기에 몰입되기는 커녕 도리어 산만할 뿐이다.
   게다가 나를 언짢게 한 부분도 있다. 앞부분에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도 할 수 있지요. 한국인들도 이런 말을 했어요."
"중국인들이에요." / "일본인들이에요."
"누가 말했든 상관없소. 중요한 건 위기가 곧 기회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제부턴 따근한 개고기를 먹고, 야구를 하고, 월드컵 경기에서 이기고, 옥상에서 직원에게 총을 쏘겠네요?"
"당신 참 무식하기도 하군. 체노아, 그런 걸 발전이라고 합니다." (p10)

   이건 분명 한국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인을 중국인 혹은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따근한 개고기로 몸보신해서 월드컵에서도 이길 수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결국은 그런 행동이 무식하다고 비꼬고 있다. 애초에 작가 자신부터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니 재밌게 봐 줄 수가 없는거지. 작가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몸풀기 경기가 아니다. 월드컵으로 따지자면 본선 경기인 것이다. 본선 경기에서 실력을 테스트하면 안되지. 이런 작가도 스페인 대표선수라고, 더 갈고 닦은 다음 오시오!

09-98. 『둥근 돌의 도시』 2009/07/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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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 - 만화가 이우일의 추억을 담은 여행책
이우일 글 그림 / 시공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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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고 소심한 만화가 이우일이 들려주는 좋은 여행이란!
   소설가 김영하는 『김영하ㆍ이우일의 영화이야기』에서 만화가 이우일을 "예민하고 소심한 만화가"라고 말한다. 영화 잡지에 칼럼을 쓰는 김영하는 그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올 일이 있었단다. 그런데 대뜸 이렇게 물었단다. "형,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처음 여행을 제안한 사람이 그였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던가보다. 그러니 김영하에게 소심하다는 말을 들을 수 밖에. 그러나 그의 패션은 절대 소심한 사람의 취향은 아니다. 그는 큰 키에 뿔이 난 두건을 쓰고 다닌다. 또 걸어 다닐 때는 신고 다니는 휠리스를 이용해 귀신처럼 스르륵 이동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에게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는 화산 이씨다. 화산 이씨의 시조는 베트남의 왕족이었는데 반란이 일어나 나라를 잃었다. 멸망한 왕조는 배를 타고 흘러흘러 고려까지 왔다. 중국에선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개성 근처에 자리를 잡은 그들에게 고려의 왕은 화산 이씨라는 성을 하사했다." (『김영하ㆍ이우일의 영화이야기』, p202)


   공식적인 그의 직업은 만화가다. 하지만 삽화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또 여행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온통 궁금증만 유발한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인간일까? (인간 대신 족속을 집어 넣어도 무방하나 사람이나 인물로 바꿔서는 안된다.) 얼마전 그의 여행담이 담긴 『좋은 여행』이 출간됐다. 그럼, 이제부터는 그에게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그는 이미 두 편의 여행책을 펴냈다. 한 편은 사랑하는 아내 선현경과 함께 떠난 10개월 간의 신혼여행을 담은 것이고, 또 한 편은 만화가 현태준과 함께 한 도쿄 여행기다. 그는 현태준과 함께 한 여행 마지막 날 다투게 됐고, 그로부터 3년동안 만나지 않았단다. 김영하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 역시 그는 예민하고 소심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이번 책을 통해 그동안의 여행을 모두 담아냈다. 아내와 단 둘이 떠난 여행도, 예쁜 딸과 함께 한 가족 여행도, 여행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떠난 여행도, 결국 다투고 돌아온 현태준과의 여행도, 그리고 혼자서 떠난 여행도 담겨 있다. 그러니 "만화가 이우일의 추억을 담은 여행책"이라는 작은 제목이 딱이다. 이 많은 여행 가운데 그가 말하는 "좋은 여행"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현실과 꿈. 그것이 만나는 곳에 여행이 있다. 여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뭔가 값진 것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자신에게 구체적인 무언가를 준다고 해서 그 여행이 좋은 것은 아니다. 잠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 아니면 그저 삶의 달리기를 멈추고 한 숨을 돌릴 수 있다는 것으로 여행의 가치는 충분하다." (p275)


   『좋은 여행』 속 이우일은 김영하가 말하는 것처럼 이상하지 않다. 비록 휴대전화는 없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 짊어져야 할 책임 때문에 싫어도 집 전화는 받는다. 그래야 예쁜 딸의 우유값이라도 벌 수 있다. 또, 면허를 딴지 20년이나 됐지만 그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여행 때마다 운전을 해야하는 아내를 위해 조수의 임무를 다하고, 가끔씩 여행지에서 비정상적인 차, 즉 전기자동차나 스쿠터에 아내와 딸을 태우고 달리기도 한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자 아빠이다.

   책을 읽기 전에 그가 그린 만화를 본 적은 없다. 『김영하ㆍ이우일의 영화이야기』에서 맛본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림이 달라졌다. 『김영하ㆍ이우일의 영화이야기』에서는 웹툰의 전형을 보여줬다면,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마치 수채화같다. 여행책이지만 사진은 없다. 대신 장면들을 스케치한 멋진 그림들이 있다. 과연 그림들이 사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물론이다. 그림이라서 오히려 판에 박힌 여행 사진보다 더 기억에 남고 느낌이 살아있다. 그렇다고 사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끝부분에 몇 장의 사진이 실려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 실력도 감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그의 그림 실력은 물론이고 글, 사진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인 거이다.

09-97. 『좋은 여행 : 만화가 이우일의 추억을 담은 여행책』 2009/07/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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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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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약간 알려진 소설가와 조금 알려진 만화가의 만남!
   영화 속 주인공들을 통해 트라우마를 설명한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을 읽었다. 나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내게는 꽤 유익하고 재밌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심리학'을 싫어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정해진 틀에 집어 넣고 분석하는 것이 싫다. 감히 그것을 심리학이라는 잣대로 분석하려는 사람들도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거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번씩 극장을 찾는다. 난 어린 소녀(!), 그러니 고전 영화를 못 본 것은 당연한 것이고 최신 영화도 못 봤다. 영화 이야기만 가득한 책 또한 싫다. 내가 못 봐서, 공감할 수 없으니까. 즉,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은 내가 싫어하는 두 분야를 합쳐 놓은 것이지만 그 싫음이 배가 되지는 않았다. 두 가지를 적당하게 잘 섞어 놓아서 오히려 반감이 된 경우다.
   이렇게 재미를 보고 나니 이와 같은 책이 또 읽고 싶어졌다.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읽을 수 읽는 책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을 통해 트라읽고나니 또다른 영화 이야기가 읽고 싶어졌다. 예전에 한국 작가 작품들을 열심히 탐독하다가 아직까지 김영하의 작품은 한권도 읽지 못했다는 생각에 왕창 사둔 책들이 있다. 그 가운데를 『김영하ㆍ이우일의 영화이야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나에겐 스스로 정한 금기사항이 하나 있다. 한 소설가의 작품을 읽을 때는 반드시 소설부터 읽어보기. 한 소설가의 에세이를 읽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소설을 읽고 마음이 풀렸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려면 그 금기를 깨야만 한다. 아직 그의 소설을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기는 원래 깨라고 있는 법이다.

영화이야기, 이렇게 편안하게 풀어 놓을 수도 있다!
   『김영하ㆍ이우일의 영화이야기』는 『굴비낚시』에 이은 그의 두번째 영화 에세이다. 유명 영화 잡지에서도 칼럼을 썼다고 하던데, 영화를 꽤 좋아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 왠걸! 그는 나처럼 연중행사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었다. 또 "영화를 미치도록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제가 영화잡지에 매달 글을 쓰기는 하나, 그리고 그걸로 책을 묶어낸 바 있기는 하나, 또 가끔 소설에 영화 얘기를 갖다 쓰기는 하나, 기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답니다."라고 말한단다.(p.85)
   아마 눈치 빠른 사람은 이 대목에서 이미 알아챘으리라. 그렇다. 이 책은 드러내놓고 "영화이야기"라고 외치고 있지만, 영화의 서사가 어떠니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기법이 사용됐는지와 같은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이것 저것 말한 다음, 마지막에 사실은 이 영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밝힌다. 아마 그런 코멘트가 없었다면 나같은 사람드은 그가 어떤 영화를 이야기하는지 절대 몰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편안한 책이다. "영화이야기"를 읽으면서 머리 싸매지 않아도 되고, 틀에 박힌 글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칼럼을 쓰고나서 그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 예전에 블로그에 개인적인 영화 평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내 의견에 찬성이니, 반대니 하면서 블로그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고 거의 사이버테러 수준의 악플을 받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블로그에 올린 글도 이렇게 난리인데, 영화 잡지는 오죽했을까. 그는 서문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 영화 잡지에서 잘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아참, 서문에는 그가 두 영화 잡지의 연재를 마치며 쓴 마지막 인사가 두 편 실려 있다. 첫 편은 그냥 읽어도 된다. 두번째 편은 그도 그냥 건너뛰어도 된다고 했으니 건너뛰는게 좋다. 솔직히 지루하다.
   게다가 매 이야기마다 이우일의 만화가 그려져 있다. 그의 만화는 더 골 때린다. 나도 소녀 이미지에 맞게 바르고 고운 표현을 하고 싶지만, 정말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만화라고 하면 어릴적 읽은 순정만화와 『노다메 칸타빌레』가 전부인 내게는, 과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하와 이우일이 부산국제영화제에 간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거기서 김영하가 묘사한 이우일은 좀 더 연구 해고픈 인물이다. 800년전 베트남 보트피플의 후예인 그는 큰 키에 희한한 두건을 쓰고 있고 휠리스를 타고 다닌다. 궁금한 나머지 다음 책은 이우일의 『좋은 여행』을 읽어볼까 한다.
   아무튼 약간 알려진 소설가와 조금 알려진 만화가가 만나 진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마치 친구들과 주고받는 수다와 같은 "영화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영화의 세계에선 아마추어인 그들과 잠시 외도를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동갑내기 안에서 친구를 발견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좋고 싫음, 호오가 분명해진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성질이 더러워진다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취향이 분명해진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점점 더 넓은 범위 안에서 '친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언어와 문화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 형이라 부르면서, 혹은 동생이라 부르면서도 사실은 서로를 친구라고 여기는 관계. (p.142~143)


09-96. 『김영하ㆍ이우일의 영화이야기』 2009/07/1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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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비 독살사건 - 여왕을 꿈꾸었던 비범한 여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
윤정란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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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독살당한 7명의 왕비들!
   이덕일은 조선 왕 4명 가운데 1명이 독살당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선 왕비가 독살당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나마 잘 알려진 장희빈도 독살이 아닌 사사된 것이다. 『조선 왕비 독살사건』은 그동안 조선 왕, 조선 선비의 독살 사건을 다뤘던 이덕일이 아닌 윤정란이라는 여성 저자가 쓴 것이다. 조선 왕이나 선비 같은 경우에는 독살 당한 배경과 방법에 관심이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건보다는 독살 당한 왕비가 누구인가가 더 궁금했다. 즉, 그만큼 왕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는 것이 된다.왕이라고 하면 이름도 줄줄이 꿰고 있고, 대충이라도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도 안다. 반면에, 왕비는 누가 누구의 왕비였는지도 모를 뿐더러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독살 당한 왕비들도 그러하지만, 늘 뒤에 가려져 있을 수 밖에 없는 조선 왕비 그 자체가 안타깝다.

폐비 윤씨와 희빈 장씨의 죄목은 '시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였다!
   저자는 7명의 조선 왕비를 소개하며, 그녀들이 정치적으로 독살 당했다고 말한다. 그녀들은 왜 정치적으로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을까. 한번 살펴보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왕비는 소혜왕후 한씨다. 소혜왕후는 성종의 어머니이자 연산군의 할머니다. 그 유명한 폐비 윤씨 사건의 주역인 인수대비, 그녀가 바로 소혜왕후인 것이다. 그녀는 세조가 총애하는 며느리였지만, 남편인 덕종이 일찍 죽는 바람에 왕비의 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남편이 일찍 죽은 왕후들은 으레 아들을 통해 절대 권력을 얻길 원한다. 소혜왕후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조의 뒤를 이어 시동생인 예종이 즉위했지만, 예종은 어린 아들만 남겨두고 13개월 만에 죽은 것이다. 예종의 아들이 너무 어린 탓에 정희대비는 소혜왕후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을 왕위에 앉힌다. 그가 바로 성종이다. 성종이 13세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정희대비가 수렴청점을 해야했지만 정희대비는 며느리 소혜왕후가 글을 안다는 이유로 권력을 넘긴다. 그때부터 소혜왕후는 아들인 성종을 통해 절대 권력을 꿈꾼다. 그러나 그녀는 성종이 죽고 연산군이 즉위하자 자신이 폐위시킨 뒤 사사까지 해버린 윤씨 때문에 발목을 잡힌다. 연산군은 비록 할머니이긴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소혜왕후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잡은 할아버지 세조 때문에 왕권에 대한 정당성이 약했는데, 폐비 윤씨 사건으로 인해 자신은 죄인의 아들이 된 것이다. 연산군 또한 절대 왕권을 꿈꿨다. 그래서 자신의 왕권에 도전한 소혜왕후를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연산군이 횡포를 부리고 난 뒤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소혜왕후는 한달만에 죽었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왕비는 폐제헌왕후 윤씨다. 그녀는 성종의 첫번째 왕비인 공혜왕후가 병으로 죽자 왕비로 책봉돼 4개월만에 훗날 연산군이 된 융을 낳았다. 힘없고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던 윤씨가 후궁이 되고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신숙주의 사촌 조카였기 때문이다. 예종이 죽자 후계자 임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정희왕후와 신숙주가 정치적인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결탁하게 되고, 그 신숙주를 배경으로 윤씨가 왕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왕비가 된 윤씨는 같은 이유로 폐비가 됐다. 성종은 융을 낳은 윤씨가 조정 신하들과 결탁해 자신의 권력을 넘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윤씨의 죄목은 '투기'였지만 실제 죄목은 왕의 권력을 넘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p.102)

   인목왕후는 19세에 50세가 된 선조의 왕비로 책봉됐으며,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다. 이미 광해군이 세자 물망에 올라 있었지만, 선조는 후궁 출신의 광해군보다는 적자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싶어했다. 그 와중에 선조가 죽은 것이다. 광해군은 역모 사건을 조작해 영창대군을 죽였고, 대비가 된 인목왕후 또한 쫓아내려 했다. 아들을 잃은 인목대비는 복수의 칼만 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났고, 그녀는 반란군에게 광해군의 목을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인조가 즉위해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정략적으로 필요할 때만 인목대비의 존재를 인정했다. 아무런 정치 기반이 없었던 그녀는 광해군 때뿐만 아니라 인조가 즉위한 후에도, 그녀가 죽은 후에도 역모와 관련된 구설수에 올랐다.

   광해군부인 유씨는 남편인 광해군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은 명으로부터 인정받은 세자도 아니었고, 선조의 적자도 아니었다. 유교적으로 볼 때 광해군은 절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속을 믿기 시작했고, 사대부의 이념을 거부한 왕과 왕비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광해군의 왕비였기 때문에 비록 그와 노선을 달리한다고 해서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는 듯이, 후생에는 왕실의 여인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다.

   소현세자빈 강씨 또한 왕위를 넘본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그녀의 남편 소현세자는 인조의 첫째 아들로, 청나라와의 전쟁에 패해 북경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소현세자는 눈을 뜨게 되고 선진문물을 익히고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또, 인조가 지원을 해주지 않아 형편이 어려웠던 강씨는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이 오랜 인질 생활을 끝내고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환영했지만 유독 인조만은 그들을 보는 눈빛이 사나웠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왕권을 넘볼가봐 겁이 났고, 마침 귀국하고 얼마있지 않아 소현세자가 죽었다. 많은 역사가들은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였다고 주장한다. 강씨 또한 마찬가지다. 인조가 전복구이를 먹다가 독을 발견했는데 그 범인으로 강씨가 지목된 것이다. 인조는 강씨가 권력을 넘보기 위해 세력을 기른다고 생각했고, 여러 차례의 사건을 조작한다. 누명을 쓴 강씨는 결국 사사됐다. 강씨는 단지 인조의 '추측'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희빈 장씨는 인현왕후를 시기한 죄로 사사됐다. 그러나 그녀가 사사된 이유는 천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 사회는 양반과 양인에게는 과거를 볼 기회가 주어졌지만, 천인은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천인 출신인 희빈 장씨가 왕비가 된 것이다. 백성들은 천인이 왕비가 되는 세상이니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거라며 환영했지만, 사대부들은 달랐다. 자신들의 기반인 신분제가 흔들린다고 생각한 그들은 희빈 장씨를 사사하기에 이른다. 

   명성왕후 민씨는 아무런 지지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대원군에게 간택됐다. 대원군은 철종이 외척인 안동 김씨에게 휘둘리는 것을 보고 아버지와 남자 형제가 없는 민씨를 고종의 왕비로 맞아들였다. 정치적인 기반이 없어 늘 불안했던 민씨는 스스로 그 기반을 만든다. 남편 고종에게 왕비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고종의 든든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대원군이 자신을 위협하면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탄탄히 지키려 했다. 그러나 유교 사회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우월하면 안된다. 소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 나라의 국모가 일본 낭인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데도 지켜주지 않았다.

   7명의 왕비들은 남편과 아들을 통해 절대 권력을 꿈꾸거나 혹은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죄목으로 정치적인 독살을 당했다. 왕은 실정을 하거나 민심을 잃으면 쿠데타로만 끌어내릴 수 있었지만 왕비는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잃으면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었다. 만약 그녀들이 든든한 정치적인 후원이나 당시 권력을 쥐고 있는 왕과 신하들과 함께 했다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조 때는 세자빈으로 간택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했으며, 광해군 유씨는 후생에는 왕후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그만큼 조선 사회에서 왕의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시대적 이념 혹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평가 절하된 역사가 있다면 반드시 재조명 돼야 할 것이다.

09-95. 『조선 왕비 독살사건』 2009/07/1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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