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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돌의 도시 - 생각이 금지된 구역
마누엘 F. 라모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평점 :
당신은 스페인 국가 대표 자격이 없소. 2군 가서 더 뛰고 오시오!
생각이 금지된 구역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무엇이 금지된 곳이라고 하면 일단 주제 사라마구가 떠오른다. 정말 없어졌으면 하고 바랐던 '죽음'이 사라지자 도시는 이내 혼란에 빠졌고 죽지 못해 고통 받던 사람은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조차 사라지면 이 모양인데, 생각이 금지되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문득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른다. 빅 브라더가 완벽하게 사람들의 감정을 통제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는가.
『둥근 돌의 도시』의 시간적 배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먼 미래인 49세기. 전 우주는 하나로 통합됐고, 세계의 대통령이 전 우주를 통치한다. 주인공 카르멜로 프리사스는 내리막길만 보이면 미친듯이 달린다. 나도 자전거를 타다가 내리막길만 보이면 바람의 속도로 달려 내려간다. 그래서 그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덕분에 그는 여러 번 병원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그는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갔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핸드백을 들고 그를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승부 근성을 느끼리라. 그는 자신보다 앞서가는 그 남자의 핸드백을 잡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차에 부딪혀서 쓰러진다.
그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주인공보다 앞서갔던 그 남자는 세계의 대통령 핸드백을 훔쳐서 달아나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주인공 때문에 함께 차에 치이고 만 것이다. 이쯤되면 뉴스에도 나올 수 있고, 어쨌든 도둑을 잡았기 때문에 영웅이라 해도 된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멀티 기능이 탑재된 버추얼 비전에서 연일 그의 영웅적인 일을 보도하며 우상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그의 연인이 되길 원했고, 그것은 세계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대통령의 비서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장관 한 명은 돌에 맞아서 살해당하고, 영웅의 행적은 묘연하다. 형사 아부 아산은 영웅이 이 사건의 범인이라 지목하고 그를 찾아나선다.
『둥근 돌의 도시』는 많은 소설들을 연상시킨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들도 떠오르지만, 조지 오웰의 『1984』와는 유사한 점이 많다. 당시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썼을 때 1984년은 미래였고, 빅 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세뇌시킨다. 행동뿐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둥근 돌의 도시" 또한 마찬가지다. 이곳은 생각뿐만 금지된 것이 아니라 책도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다. 또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보면, 보르헤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안할뿐이다. 이 허접한 작가를 세계의 대작가들과 비교해서 말이다.
마누엘 F. 라모스는 나름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다. 혹시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같기도>라는 프로그램을 아는가? "~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가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 <같기도> 같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혀 SF 같지 않고, 생각이 금지된 곳이지만 그것이 결여된 사회를 제대로 그려내지도 못하고, 블랙 유머를 통해 사회를 비웃고 있지만 그 유머는 전혀 통하지 않고,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지만 읽히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야기에 몰입되기는 커녕 도리어 산만할 뿐이다.
게다가 나를 언짢게 한 부분도 있다. 앞부분에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도 할 수 있지요. 한국인들도 이런 말을 했어요."
"중국인들이에요." / "일본인들이에요."
"누가 말했든 상관없소. 중요한 건 위기가 곧 기회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제부턴 따근한 개고기를 먹고, 야구를 하고, 월드컵 경기에서 이기고, 옥상에서 직원에게 총을 쏘겠네요?"
"당신 참 무식하기도 하군. 체노아, 그런 걸 발전이라고 합니다." (p10)
이건 분명 한국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인을 중국인 혹은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따근한 개고기로 몸보신해서 월드컵에서도 이길 수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결국은 그런 행동이 무식하다고 비꼬고 있다. 애초에 작가 자신부터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니 재밌게 봐 줄 수가 없는거지. 작가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몸풀기 경기가 아니다. 월드컵으로 따지자면 본선 경기인 것이다. 본선 경기에서 실력을 테스트하면 안되지. 이런 작가도 스페인 대표선수라고, 더 갈고 닦은 다음 오시오!
09-98. 『둥근 돌의 도시』 2009/07/21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