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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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사의 조건'이란 이런 것!

   가난한 소년 '핍'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아 신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에단 호크와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나온 적이 있어서 꽤 유명한 스토리의 『위대한 유산』은 직접 글로 읽을 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함'을 비로소 느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유산』은 찰스 디킨스가 편집장을 맡은 주간지 「All The Year Round」에 약 1년에 걸쳐 연재를 한 작품으로, 당시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대한 유산』은 부모 없이 누나와 대장장이이자 매형인 조 가저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핍'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매형 조 가저리는 핍에게 한없이 친절하지만, 누나인 가저리 부인은 핍을 구박하고 매도 자주 듭니다. '핍'은 누나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조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나이가 들면 대장장이인 조의 도제가 되기로 합니다.

   이랬던 '핍'의 일상과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사건은 탈옥한 죄수의 협박을 받아 그에게 족쇄를 자를 수 있도록 조의 대장간에서 줄칼과 음식을 가져다 준 일입니다. 이후 핍은 죄수를 도와줬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두번째 사건은 숙부의 도움으로 저택에 살고 있는 미스 해비셤을 찾아가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그곳에서 핍은 미스 해비셤의 양녀 에스텔라를 만나게 되는데, 자신에게 항상 차갑기만 한 에스텔라를 첫눈에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에스텔라 때문에 핍은 열패감에 빠지고, 에스텔라에게 어울리는 신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핍이 신사가 된다는 건 1860그저 '꿈'일 뿐입니다.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행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라. (『위대한 유산(상)』, p127)

 

   그런데 그저 '꿈'으로만 남을 것 같았던 일이 현실로 실현될 수 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핍에게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런던으로 가 신사로서의 교육을 받고, 신사에 어울릴만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핍의 누나가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받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였는데 핍은 그런 누나와 조를 멀리하고 바로 런던으로 떠납니다.

   런던에서 핍은 자신의 일을 대신 맡아 줄 변호사 재거스, 어릴적에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서 그와 치고 받았지만 함께 생활하며 단짝 친구가 되는 허버트를 만나게 됩니다. 이미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서 재거스와 허버트를 만난 적이 있는 핍은 자신에게 엄청난 유산을 물려 준 사람이 당연히 '미스 해비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몇 년 후 성인이 된 핍 앞에 진짜 유산을 물려 준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는 다름 아닌 어릴적에 그가 도와준 탈옥수였던 것입니다. 미스 해비셤의 도움으로 신사가 되어 에스텔라와 결혼까지 꿈꾸고 있었던 핍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를 도와준 사람이 미스 해비셤이 아닌 탈옥수라니. 게다가 지금도 그의 신분은 도주한 죄수 입니다.

   매그위치와 함께 지내면서 핍은 매그위치가 왜 범죄를 저지르고 탈옥수가 되었는지, 왜 핍에게 유산을 물려주며 신사가 될 수 있도록 했는지, 미스 해비셤의 어두운 과거와 에스텔라의 비밀, 변호사 재거스와의 관계까지 모두 알게 됩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핍은 겉보기에만 멀쩡한 신사가 아닌 진짜 '신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멀리하려고 했던 조, 배운게 없어서 글자 하나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조가 진정한 '신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여기 여러분 앞에 여러분 눈으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한 명은 더 젊고 더 교육을 잘 받고 자랐으며, 마땅히 그런 사람으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다른 한 명은 나이가 더 많고 형편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마땅히 그런 사람으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더 젋은 사람은 지금 이 불법 거래 사건에서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거의 목격되지 않았으며 그저 혐의만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그 거래에서 늘 목격되었고 늘 자신의 유죄를 절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이 사건에 단 한 사람만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가 누군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이 사건에 두 사람이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유산(하)』, p174~175)

 

   죄수 매그위치가 수 년 동안 엄청난 노동의 대가로 번 돈을 모두 핍에게 보내며 그를 신사로 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범죄를 계획하고 주동한 진짜 악인은 '신사'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매그위치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고 그 죄를 모두 매그위치에게 덮어 씌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적에 자신을 도와준 꼬마 핍을 신사로 키우기로 한 것입니다.

 

   『위대한 유산』은 분량이 꽤 되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흥미로워 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대한 유산』은 1년 동안 잡지에 연재된 연재 소설이었습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의 후반부에 배치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주인공 '핍' 뿐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름의 특징이 있어서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합니다. 끊임없이 핍에게 악수를 청했던 숙부 펌블추크, 변호사 사무실과 집에서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줬던 웨믹, 사건 때마다 등장하는 올릭 등 누구 하나 심심한 캐릭터가 없습니다.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그토록 찰스 디킨스를 극찬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맨처음 소설이 발표된 이후 『위대한 유산』은 끊임없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졌습니다. 1860년대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지금 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고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껏 사랑받고 있는 것일테죠.

 

   마지막으로 『위대한 유산』의 표지를 살짝 살펴보면, 상ㆍ하권의 표지 디자인이 살짝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똑바로 자리잡고 있던 의자와 술잔이 뒤로 가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유산'으로 인해 '핍'의 몸과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 내게 주어질 유산에 점점 더 익숙해지면서 나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서서히 그것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 유산이 나 자신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가능한 한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이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조에 대한 내 행동에 대해선 만성적으로 불편한 상태로 살았다. 내 양심은 비디와 관련해서도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 마치 커밀라처럼 ─ 기진맥진한 기분으로, 만약 미스 해비셤의 얼굴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옛날의 그 정직한 대장간에서 조와 동업자가 된 걸 만족해하며 어른으로 성장했더라면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위대한 유산(하)』, p40~41)

2014. 05. 3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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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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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

   한 사람이 태어나면 하루 하루 나이가 들고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나 한 순간에 사랑에 빠졌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시들시들해지고 헤어지게 마련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했더라도 결국 죽음이 갈라 놓기도 하죠. 보통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흘러갑니다. 자연스럽게 말이죠.

   여기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누구나 사랑 없이 살기는 힘듭니다. 사랑하면서 사는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죠. 하지만 이 남자의 사랑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르쳤던 소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와 소녀의 나이 차이 때문에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곤 합니다. 그들의 사랑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는 3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랑의 대상이나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 마련인데, 사랑을 대하는 그의 방식은 늘 한결 같습니다. 시간은 흐르는데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부자연스러운 것이겠죠.

 

   나는 그녀의 젖가슴 위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것은 아마도 본능보다 오래된 동경일 것이다. 나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또 다른 나. 나는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매끈매끈하고 하얀 피부가 만들어 내는 완벽한 곡선, 젊은 여인의 완숙한 젖가슴.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자연스러운 것에서도 강렬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행복감에 조금씩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뒤였다. 자연을 거스른다는 것……. 33년이 지났건만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이다. 조금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다. 내 얼굴과 몸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다른 것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간 나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았고, 여행도 했으며, 결혼을 하고 자식도 보았다. 책을 쓰기도 했고,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대부분의 친구들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p.53)

 

   이렇게 자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도 나이가 점점 들자 사랑하는 가족들이 떠나고, 더이상 사랑할 대상이 없게 됩니다. 아무리 자연을 거스르려고 해도 시간 앞에서도 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입니다.

 

   사랑할 능력도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시들해져 버렸다. 누구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모든 게 끝나 버렸다.

   나는 끝이라고 말하지만 사랑에는 끝이란 게 없는 것 같다. (p.228)

 

   자연을 거스르고 싶은 사람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에 맞서고 싶어하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 말이죠. 『자연을 거슬러』는 토마스 에스페달의 자전적 소설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법한 욕망 혹은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얀네, 수컷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어떤지 기억하고 있소? 언젠가 우리 침실 창문 밖에 자리한 나뭇가지 위에 앉아 밤새도록 울부짖던 그 부엉이 말이오. 우리는 서로를 꼭 부둥켜안고 그 소리를 함께 들었고. 암컷을 찾아 헤매던 그 소리. 이제 그 부엉이는 간 데 없소.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수컷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기억하오.

   부엉이. 그건 바로 나니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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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펑크 - 어산지,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다
줄리언 어산지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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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게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 투명성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전체주의가 지배했던 『1984』 속 세계와 다름 없습니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는 더이상 충격적이거나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니 매순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이 현실 속 '빅 브라더'가 아닐까요? 인터넷은 우리 자신도 잘 모르는 취향,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 거미줄처럼 엮어있는 관계에 대해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항상 지켜보고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사이퍼펑크(Cypherpunk)'는 이렇게 매순간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해 감시 당하고 있는 우리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저항 운동의 하나 입니다. 원래 '펑크(punk)'에는 '저항'의 뜻이 담겨 있는데, 사이퍼펑크는 암호(cipher)와 펑크(punk)를 합성한 말로 2006년부터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사이퍼펑크' 운동가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특정 정보를 암호화하는 기술을 활용합니다. 이 암호화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얼마전 있었던 개인정보유출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암호화 기술은 적재적소에 쓰여야 합니다. 개인 정보는 철저하게 암호화해서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합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공유해야 하는 정보도 있습니다. 위키리크스의 편집장인 줄리언 어산지가 공개해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정부나 기관의 자료 같은 것들이 있죠. 이런 것들은 한 치의 숨김이나 거짓없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줄리언 어산지와 동료들은 사이퍼펑크 운동을 통해 약자에게는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강자들은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이퍼펑크』는 줄리언 어산지와 동료 3명의 토론을 담은 책으로 인터넷 세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이 우리와 공유하고자 하는 것들,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세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낯선 용어와 인터페이스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시스템 속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물론 어떠한 시스템 안에서도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온 자유, 그리고 문화적으로 익숙해진 자유마저 대부분 종적을 감추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령 20년 전의 자유를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감시 국가가 이미 대부분의 자유를 없애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사라들은 자유의 개념마저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구조를 치밀하게 공부한 사람들뿐일 것입니다. 즉, 첨단 기술로 무장한 저항 엘리트만이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바로 오페라하우스 안을 내달리는 똑똑한 쥐들입니다. (p.208)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이미 노출된 정보가 많아서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사이퍼펑크 운동가들의 모토인 "약자에게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 투명성을."은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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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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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잊혀지고 싶어서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완전 편애하는 김중혁 작가의 새 장편소설이 나왔습니다. 최근 김유정 문학상, 젊은 작가상,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위치를 공공히 하고 있을 뿐아니라 팟캐스트라는 매체를 통해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는 김중혁 작가. 그동안 팟캐스트를 통해 살짝 살짝 언급한 적이 있어서인지 더욱 궁금하게 만듭니다.

 

   얼마전, 죽은 사람의 온라인 기록을 모두 삭제하는 '디지털 장례식'이라는 것이 관심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내 몸은 죽어 없어졌는데, 내가 남긴 기록과 사진들이 온라인 상에 그대로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으면 자연스럽게 잊혀지는게 죽은 사람에게도,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속 편한 일이겠죠.

   역시 김중혁 작가는 문학계의 '얼리어댑터'이자 '젊은 작가'가 확실합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는 '딜리팅(Deleting)' 혹은 '딜리터(Delet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딜리터'는 의뢰자가 미리 이 세상에서 지워달라고 한 비밀을 의뢰자가 죽고나면 대신 지워주는 사람으로, 이런 일을 '딜리팅'이라고 합니다. 이 '딜리팅'에는 앞서 언급한 '디지털 장례식'이 포함될 수도 있고, 각종 데이터들이 가득 차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하루도 빠짐없이 작성한 일기,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한 사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딜리터'는 의뢰자의 죽음이 범죄와 관련되지 않는 한, 의뢰자가 의뢰한 것을 틀림없이 지워줍니다.

   한때는 형사였던 구동치가 '딜리터'가 된 이유는, 흔하고 흔한 탐정업계에서 틈새 시장을 공략한 탓이겠죠. 악취가 풍기는 악어빌딩 4층에 탐정 사무실을 연 구동치, 소박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서로 얽혀 있는 악어빌딩에서 구동치는 해결사 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구동치를 찾을 정도입니다. 이런 인간미 솔솔 풍기는 구동치도 의뢰인이 앞에 앉아 있으면 까칠한 딜리터로 변신합니다.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 (p.11)

 

   1920년대 이탈리아 테너 가수가 모노로 녹음한 아리아가 흘러나오는 사무실에 노크를 하는 순간, 구동치와 의뢰자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의뢰자가 구동치에게 무언가를 없애달라고 의뢰를 하기 위해서는 왜 없애려고 하는지 비밀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구동치는 합당한 이유없이 무언가를 없애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동치는 의뢰자와의 계약과는 달리 그것들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지는 않습니다. 그저 위치를 바꿀 뿐입니다. 의뢰자가 알고 있던 장소에서 구동치의 사무실 캐비넷으로 말이죠.

 

   "사람들이 제일 많이 없애달라는 게 뭐예요?"

   "다양하죠. 비밀문서, 사진, 연애편지, 컴퓨터……"

   "난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게, 사람들은 다들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그렇게 없애고 싶은 거면 미리 없애버리면 되잖아요?"

   "마지막까지 붙들고 싶은 거죠."

   "이상한 사람들이네."

   "이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어요." (p.232)

 

   구동치의 이야기처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안고 사는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소용 없는 물건이라는 걸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안고 있는 것들 말이죠. 어쩌면 이런 흔적이나 지켜야 할 비밀이라도 있어야 세상을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깔끔하게 죽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던 말요. 탐정님 말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인데, 어떻게 보면 그 흔적이야마롤 진짜 그 사람이잖아요. 지저분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p.49)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p.328)

 

   한때는 구동치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구동치와 손을 잡고 일하는 김인천 형사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역지사지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썼는데, 그의 소설을 읽은 구동치는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건 소설의 가장 큰 장점"(p.288)이라고 한다. 그렇다. 김중혁 작가의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기발한 소재와 캐릭터가 등장해 흥미를 유발하면서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1920년대 아리아 가수가 그토록 길다고 노래했던 무미건조한 월요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함께 사라졌으면 하는 것들은 참 많은데, 반대로 꼭 간직해줬으면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아마도 버리고 싶은 것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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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 보고서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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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마이크로소프트 ★★★★★ / 구글 ★★★★☆ / 삼성전자 ★★★☆☆ / 애플 ★★★☆☆

 

세계를 대표하는 전자ㆍIT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네 기업에 매겨진 별점은 어떻게 산정된 것일까요? 지금은 다소 주춤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별점 5개로 1위, 항상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애플은 겨우 별점 3개를 받았습니다.

이 별점은 독일의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인 프랑크 비베가 독일의 전문 평가기관 세 곳의 점수와 자신의 생각을 토대로 지수화한 것입니다. 그가 평가한 것은 기업의 혁신 아이디어나 경영 상태가 아닙니다. 그는 기업의 윤리성을 평가했고, 특히 그 중에서도 지속 가능성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즉, 기업의 과거와 현재가 아닌 미래를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근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으로, 무엇보다 기업의 이윤이 우선시 됩니다. 이렇게 이윤을 추구하다 보면 비윤리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기업은 원래 그런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니, 돈만 잘 벌면 그만일까요?

저자는 소비자들이 그들을 감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기업 스스로도 윤리 기준을 만들고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위에 언급된 별점은 이런 저자의 생각이 반영돼 나온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를 팔면서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끼워 팔고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한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업 윤리가 바닥이어야 할텐데, 왜 별점을 5개나 받았을까요? 그것은 모두 창업주인 빌 게이츠의 게이츠 재단 덕분입니다. 비록 독점적인 시장 지배를 통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긴 했지만, 재단을 만들어 그것을 다시 기부하면서 최소한의 노력을 보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세상에는 돈 잘 버는 기업도 많지만, 이렇게 많이 기부하는 창업주도 드문 일이니까요.

 

게이츠 재단의 재산이 결국 게이츠가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거둔 천문학적인 수익에서 비롯되었다는 비난은 맞다. 그러나 독점적 지위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다. 게다가 다른 기업은 그렇게 번 돈을 재단에 기부하지도 않는다. (p.139)

 

한국에서는 상황이 다르지만, 해외에서는 검색을 하려면 구글로 갑니다. 한국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지 않으면, 역시 구글로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글을 통해 정보를 공유합니다. 구글 역시 자사의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합니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해당하는 범죄가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 또한 구글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저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구글에게 별점 4개를 주며 면죄부를 주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떠들썩한 두 라이벌인 삼성과 애플은 나란히 별점 3개를 받았습니다. 애플은 혁신 IT 기기를 내놓지만 직접 생산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중국 등에 하청을 주곤 하는데, 애플의 윤리적 문제는 대부분 이곳에서 발생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임금이나 아동 노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나마 별점 3개를 받게 된 것도 이 하청업체들을 모두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하청업체들 명단을 공개해 버리면 정부나 감시 단체들이 예전보다 더 엄격하게 감시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삼성은 대부분의 제품을 직접 생산합니다. 그래서 애플에 비하면 하청업체 문제는 줄어들 수 있지만, 총수 일가의 윤리적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삼성은 재벌 총수가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도 곧 특별 사면이 될 정도로 파워가 막강합니다. 게다가 다른 기업들처럼 공개되어 있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어서 별점 3개를 준 이유도 있습니다.

 

저자는 독자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이름있는 기업 50곳의 윤리보고서를 이런 식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 윤리보고서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깊이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드러나 있는 부분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처럼 저자 자신의 윤리적 잣대에 따라 일종의 면죄부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과거에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인류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우리도 기업을 선택할 때, 또하나의 잣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살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세상은 우리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데 말이다. 개인이 무슨 힘이 있을까? 그런 재앙에 대한 책임은 결국 정치인과 기업이 져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치인들과 기업에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정치인을 뽑고 기업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탄식하는 것처럼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잘사는 나라의 소비자인 우리는 누구보다 힘이 세다. 우리의 돈이 누구에게로 갈지 결정하는 사람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소비자 한 사람이 구매 태도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많은 소비자가 힘을 합치면 세사으이 가장 거대한 경제 권력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투표 한 장이 선거를 결정하지는 못하지만 그 표들이 모이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인뿐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에도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업의 생산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제동을 걸고, 나쁜 기업과 좋은 기업을 가려내고, 기업 활동에 관심을 보이고, 목적의식을 갖고 상품을 구매하거나 소비하고, 때로는 시위나 청원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기업은 고객이 상품 생산 방식에 관심을 보인다는 인상을 받을수록 윤리 지침을 준수해야 할 압박도 더 거세게 느끼기 때문이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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