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

   한 사람이 태어나면 하루 하루 나이가 들고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나 한 순간에 사랑에 빠졌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시들시들해지고 헤어지게 마련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했더라도 결국 죽음이 갈라 놓기도 하죠. 보통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흘러갑니다. 자연스럽게 말이죠.

   여기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누구나 사랑 없이 살기는 힘듭니다. 사랑하면서 사는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죠. 하지만 이 남자의 사랑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르쳤던 소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와 소녀의 나이 차이 때문에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곤 합니다. 그들의 사랑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는 3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랑의 대상이나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 마련인데, 사랑을 대하는 그의 방식은 늘 한결 같습니다. 시간은 흐르는데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부자연스러운 것이겠죠.

 

   나는 그녀의 젖가슴 위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것은 아마도 본능보다 오래된 동경일 것이다. 나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또 다른 나. 나는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매끈매끈하고 하얀 피부가 만들어 내는 완벽한 곡선, 젊은 여인의 완숙한 젖가슴.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자연스러운 것에서도 강렬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행복감에 조금씩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뒤였다. 자연을 거스른다는 것……. 33년이 지났건만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이다. 조금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다. 내 얼굴과 몸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다른 것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간 나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았고, 여행도 했으며, 결혼을 하고 자식도 보았다. 책을 쓰기도 했고,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대부분의 친구들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p.53)

 

   이렇게 자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도 나이가 점점 들자 사랑하는 가족들이 떠나고, 더이상 사랑할 대상이 없게 됩니다. 아무리 자연을 거스르려고 해도 시간 앞에서도 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입니다.

 

   사랑할 능력도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시들해져 버렸다. 누구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모든 게 끝나 버렸다.

   나는 끝이라고 말하지만 사랑에는 끝이란 게 없는 것 같다. (p.228)

 

   자연을 거스르고 싶은 사람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에 맞서고 싶어하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 말이죠. 『자연을 거슬러』는 토마스 에스페달의 자전적 소설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법한 욕망 혹은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얀네, 수컷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어떤지 기억하고 있소? 언젠가 우리 침실 창문 밖에 자리한 나뭇가지 위에 앉아 밤새도록 울부짖던 그 부엉이 말이오. 우리는 서로를 꼭 부둥켜안고 그 소리를 함께 들었고. 암컷을 찾아 헤매던 그 소리. 이제 그 부엉이는 간 데 없소.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수컷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기억하오.

   부엉이. 그건 바로 나니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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