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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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잊혀지고 싶어서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완전 편애하는 김중혁 작가의 새 장편소설이 나왔습니다. 최근 김유정 문학상, 젊은 작가상,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위치를 공공히 하고 있을 뿐아니라 팟캐스트라는 매체를 통해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는 김중혁 작가. 그동안 팟캐스트를 통해 살짝 살짝 언급한 적이 있어서인지 더욱 궁금하게 만듭니다.

 

   얼마전, 죽은 사람의 온라인 기록을 모두 삭제하는 '디지털 장례식'이라는 것이 관심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내 몸은 죽어 없어졌는데, 내가 남긴 기록과 사진들이 온라인 상에 그대로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으면 자연스럽게 잊혀지는게 죽은 사람에게도,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속 편한 일이겠죠.

   역시 김중혁 작가는 문학계의 '얼리어댑터'이자 '젊은 작가'가 확실합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는 '딜리팅(Deleting)' 혹은 '딜리터(Delet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딜리터'는 의뢰자가 미리 이 세상에서 지워달라고 한 비밀을 의뢰자가 죽고나면 대신 지워주는 사람으로, 이런 일을 '딜리팅'이라고 합니다. 이 '딜리팅'에는 앞서 언급한 '디지털 장례식'이 포함될 수도 있고, 각종 데이터들이 가득 차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하루도 빠짐없이 작성한 일기,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한 사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딜리터'는 의뢰자의 죽음이 범죄와 관련되지 않는 한, 의뢰자가 의뢰한 것을 틀림없이 지워줍니다.

   한때는 형사였던 구동치가 '딜리터'가 된 이유는, 흔하고 흔한 탐정업계에서 틈새 시장을 공략한 탓이겠죠. 악취가 풍기는 악어빌딩 4층에 탐정 사무실을 연 구동치, 소박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서로 얽혀 있는 악어빌딩에서 구동치는 해결사 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구동치를 찾을 정도입니다. 이런 인간미 솔솔 풍기는 구동치도 의뢰인이 앞에 앉아 있으면 까칠한 딜리터로 변신합니다.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 (p.11)

 

   1920년대 이탈리아 테너 가수가 모노로 녹음한 아리아가 흘러나오는 사무실에 노크를 하는 순간, 구동치와 의뢰자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의뢰자가 구동치에게 무언가를 없애달라고 의뢰를 하기 위해서는 왜 없애려고 하는지 비밀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구동치는 합당한 이유없이 무언가를 없애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동치는 의뢰자와의 계약과는 달리 그것들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지는 않습니다. 그저 위치를 바꿀 뿐입니다. 의뢰자가 알고 있던 장소에서 구동치의 사무실 캐비넷으로 말이죠.

 

   "사람들이 제일 많이 없애달라는 게 뭐예요?"

   "다양하죠. 비밀문서, 사진, 연애편지, 컴퓨터……"

   "난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게, 사람들은 다들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그렇게 없애고 싶은 거면 미리 없애버리면 되잖아요?"

   "마지막까지 붙들고 싶은 거죠."

   "이상한 사람들이네."

   "이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어요." (p.232)

 

   구동치의 이야기처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안고 사는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소용 없는 물건이라는 걸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안고 있는 것들 말이죠. 어쩌면 이런 흔적이나 지켜야 할 비밀이라도 있어야 세상을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깔끔하게 죽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던 말요. 탐정님 말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인데, 어떻게 보면 그 흔적이야마롤 진짜 그 사람이잖아요. 지저분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p.49)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p.328)

 

   한때는 구동치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구동치와 손을 잡고 일하는 김인천 형사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역지사지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썼는데, 그의 소설을 읽은 구동치는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건 소설의 가장 큰 장점"(p.288)이라고 한다. 그렇다. 김중혁 작가의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기발한 소재와 캐릭터가 등장해 흥미를 유발하면서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1920년대 아리아 가수가 그토록 길다고 노래했던 무미건조한 월요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함께 사라졌으면 하는 것들은 참 많은데, 반대로 꼭 간직해줬으면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아마도 버리고 싶은 것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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