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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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사의 조건'이란 이런 것!

   가난한 소년 '핍'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아 신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에단 호크와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나온 적이 있어서 꽤 유명한 스토리의 『위대한 유산』은 직접 글로 읽을 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함'을 비로소 느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유산』은 찰스 디킨스가 편집장을 맡은 주간지 「All The Year Round」에 약 1년에 걸쳐 연재를 한 작품으로, 당시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대한 유산』은 부모 없이 누나와 대장장이이자 매형인 조 가저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핍'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매형 조 가저리는 핍에게 한없이 친절하지만, 누나인 가저리 부인은 핍을 구박하고 매도 자주 듭니다. '핍'은 누나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조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나이가 들면 대장장이인 조의 도제가 되기로 합니다.

   이랬던 '핍'의 일상과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사건은 탈옥한 죄수의 협박을 받아 그에게 족쇄를 자를 수 있도록 조의 대장간에서 줄칼과 음식을 가져다 준 일입니다. 이후 핍은 죄수를 도와줬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두번째 사건은 숙부의 도움으로 저택에 살고 있는 미스 해비셤을 찾아가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그곳에서 핍은 미스 해비셤의 양녀 에스텔라를 만나게 되는데, 자신에게 항상 차갑기만 한 에스텔라를 첫눈에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에스텔라 때문에 핍은 열패감에 빠지고, 에스텔라에게 어울리는 신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핍이 신사가 된다는 건 1860그저 '꿈'일 뿐입니다.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행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라. (『위대한 유산(상)』, p127)

 

   그런데 그저 '꿈'으로만 남을 것 같았던 일이 현실로 실현될 수 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핍에게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런던으로 가 신사로서의 교육을 받고, 신사에 어울릴만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핍의 누나가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받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였는데 핍은 그런 누나와 조를 멀리하고 바로 런던으로 떠납니다.

   런던에서 핍은 자신의 일을 대신 맡아 줄 변호사 재거스, 어릴적에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서 그와 치고 받았지만 함께 생활하며 단짝 친구가 되는 허버트를 만나게 됩니다. 이미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서 재거스와 허버트를 만난 적이 있는 핍은 자신에게 엄청난 유산을 물려 준 사람이 당연히 '미스 해비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몇 년 후 성인이 된 핍 앞에 진짜 유산을 물려 준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는 다름 아닌 어릴적에 그가 도와준 탈옥수였던 것입니다. 미스 해비셤의 도움으로 신사가 되어 에스텔라와 결혼까지 꿈꾸고 있었던 핍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를 도와준 사람이 미스 해비셤이 아닌 탈옥수라니. 게다가 지금도 그의 신분은 도주한 죄수 입니다.

   매그위치와 함께 지내면서 핍은 매그위치가 왜 범죄를 저지르고 탈옥수가 되었는지, 왜 핍에게 유산을 물려주며 신사가 될 수 있도록 했는지, 미스 해비셤의 어두운 과거와 에스텔라의 비밀, 변호사 재거스와의 관계까지 모두 알게 됩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핍은 겉보기에만 멀쩡한 신사가 아닌 진짜 '신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멀리하려고 했던 조, 배운게 없어서 글자 하나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조가 진정한 '신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여기 여러분 앞에 여러분 눈으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한 명은 더 젊고 더 교육을 잘 받고 자랐으며, 마땅히 그런 사람으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다른 한 명은 나이가 더 많고 형편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마땅히 그런 사람으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더 젋은 사람은 지금 이 불법 거래 사건에서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거의 목격되지 않았으며 그저 혐의만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그 거래에서 늘 목격되었고 늘 자신의 유죄를 절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이 사건에 단 한 사람만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가 누군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이 사건에 두 사람이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유산(하)』, p174~175)

 

   죄수 매그위치가 수 년 동안 엄청난 노동의 대가로 번 돈을 모두 핍에게 보내며 그를 신사로 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범죄를 계획하고 주동한 진짜 악인은 '신사'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매그위치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고 그 죄를 모두 매그위치에게 덮어 씌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적에 자신을 도와준 꼬마 핍을 신사로 키우기로 한 것입니다.

 

   『위대한 유산』은 분량이 꽤 되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흥미로워 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대한 유산』은 1년 동안 잡지에 연재된 연재 소설이었습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의 후반부에 배치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주인공 '핍' 뿐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름의 특징이 있어서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합니다. 끊임없이 핍에게 악수를 청했던 숙부 펌블추크, 변호사 사무실과 집에서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줬던 웨믹, 사건 때마다 등장하는 올릭 등 누구 하나 심심한 캐릭터가 없습니다.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그토록 찰스 디킨스를 극찬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맨처음 소설이 발표된 이후 『위대한 유산』은 끊임없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졌습니다. 1860년대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지금 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고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껏 사랑받고 있는 것일테죠.

 

   마지막으로 『위대한 유산』의 표지를 살짝 살펴보면, 상ㆍ하권의 표지 디자인이 살짝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똑바로 자리잡고 있던 의자와 술잔이 뒤로 가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유산'으로 인해 '핍'의 몸과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 내게 주어질 유산에 점점 더 익숙해지면서 나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서서히 그것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 유산이 나 자신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가능한 한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이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조에 대한 내 행동에 대해선 만성적으로 불편한 상태로 살았다. 내 양심은 비디와 관련해서도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 마치 커밀라처럼 ─ 기진맥진한 기분으로, 만약 미스 해비셤의 얼굴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옛날의 그 정직한 대장간에서 조와 동업자가 된 걸 만족해하며 어른으로 성장했더라면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위대한 유산(하)』, p40~41)

2014. 05. 3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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