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전자 전쟁 -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
칼레 라슨 & 애드버스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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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학은 맛이 갔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

   우리가 배운 경제학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요? 『문화 유전자 전쟁』은 경제학, 특히 신고전파 경제학에 이런 질문을 던지며 문화 유전자 전쟁(MEME WARS)에 동참해야 한다고 합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이란, 현재 미시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제학파로 인간 행동을 모델링할 때 자기 이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p.128)합니다. 즉, 우리 인간이 합리적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이 극대화되고, 효율성만 좋아진다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했던 애덤 스미스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사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과 일치한다(p.153)고 말했지만, 엔론 사태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면 자기 이익만 극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경제학은 맛이 갔다. 경제학은 경제를 이해한다는 실용적 목적을 저버리고 학문 자체를 위한 지적 유희로 전락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분석적 엄밀성만 있을 뿐 현실 적합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일종의 사회 수학으로 둔갑시켰다. (p.113)

 

   경제학자들은 근사한 연구실에서 빈곤을 연구하고 분석한다. 온갖 통계를 입수하고 온갖 모형을 만들고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p.161)

 

   19세기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유별난 점은 최종적 성공을 거둔 시기가 20세기 말이라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놀라운 현상이다.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지질학, 공학은 이제 19세기의 것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늘 진화했다. 경제학은 21세기 문제를 19세기 이론으로 해석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는 유일한 학문이다. 죽음 충동에 사로잡힌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150년 된 공동묘지에서 가르침과 깨우침을 찾는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지금처럼 대학들이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p.127)

 

   이렇게 경제학 이론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 경제학은 지금의 경제를 이해해야 한다는 실용적 목적 대신 그저 연구실에 앉아서 공식을 만들고, 통계를 내고, 계산만 할 뿐입니다. 게다가 경제학은 상당히 폐쇄적인 학문입니다. 심리학, 과학과 같은 학문들은 시대에 따라 늘 변화하고, '새로고침'을 합니다. 반면 경제학은 21세기에도 19세기의 이론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지각있는 경제학도들은 이런 가르침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기하급수적 성장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미치광이 아니면 경제학자다. (p.329)

 

   경제학은 다른 학문에 비해 상당히 낙관적입니다. 효율적인 방법을 발견하기만 하면 영원히 성장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원을 예로 들어보면, 연료를 좀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면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면 우리는 더 열심히 쓸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게다가 이 자원이 조만간 고갈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가장 큰 자원이 지구가 병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거라는 무조건적인 희망을 갖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밥 먹고 나서 숟가락을 씻는 것보다 땅속에서 석유를 뽑아내어 정유 공장에 운반하여 플라스틱으로 변환하고 적절히 성형하여 가게에 운송한 플라스틱 숟가락을 사서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놀라운 경지에 올랐다. (p. 225)

 

   장기와 연결된 동맥을 끊으면 장기가 죽는다. 사람의 삶과 연결된 자연의 흐름을 끊으면 정신이 죽는다. 간단한 이치. (p.235)

 

   지금의 경제학은 생태 혹은 지구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 또한 경제학이 분석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 한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경제학 혹은 경제학자들과 싸우는 것을 그들은 '문화 유전자 전쟁(MEME WARS)'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다음 세대 경제학자들에게 과제를 던져 줍니다. 경제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계산하고 반영하여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생태적 진실을 말하는 세계 시장을 만들어(p.227) 달라고 말이죠.

 

 

   차버려 선언 : 전 세계의 경제학과 학생 일동은 아래와 같이 고발한다

 

신고전파 경제학을 가르치는 당신네 교수들과 당신네에게서 배워 졸업한 학생들은

이 땅에서 대형 사기극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했다.

 

당신들은 공식과 법칙의 순수 과학을 연구한다고 우기지만,

경제학은 온갖 약점과 불확실성을 가진 사회 과학이다.

진짜 모습을 감추고 거짓 행세를 한 죄로 당신들을 고발한다.

당신들이 전문 용어로 방벽을 쌓고 연구실에 숨어 있는 동안 진짜 세상에서는

숲이 사라지고 생물이 멸종하고 사람들은 삶이 황폐화되고 목숨을 잃는다.

지구의 살림을 소홀히 한 죄로 당신들을 고발한다.

 

당신들은 경제 발전을 측정하는 방법인 GDP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것이 국제적 기준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으며

온갖 언론에서 매일같이 인용하도록 방관했다.

진보의 환상을 무분별하게 부추기며 인간과 환경의 건강을 파괴한 죄로 당신들을 고발한다.

  

세상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 당신들의 시대가 이제 저물어 간다.

인류 역사상 가장 희망적이고 단호한 경제학 혁명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패러다임 투쟁을 벌일 것이고 진리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며,

그로부터 개방적이고 총체적이고 인간적 척도를 가진 새로운 경제학이 탄생할 것이다.

  

이 캠퍼스에서 저 캠퍼스에서 당신네 꼰대들을 권좌에서 몰아낼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아니 몇 달 안에

우리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새로운 방향으로 굴리기 시작할 것이다.

 

   kickitover.org를 방문하면 선언에 서명할 수 있다.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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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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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곱하기 92를 단숨에 계산하는 방법!

   2013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 한 권의 소설로 할배들 열풍에 가세했던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두번째 장편소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나왔습니다. 100세 할배가 그랬듯이, 이 까막눈이 여자 또한 상당히 엉뚱 발랄할 것이라 기대하며 책장을 펼칩니다.

   우리는 두 권의 소설을 통해 요나스 요나손 소설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에 앞서, 줄거리부터 살짝 살펴볼까요?

 

   소웨토 B 섹터의 공동변소 신임 관리소장은 한 번도 학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이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보다 시급한 다른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놈베코가 불운하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이유가 컸다. 그것도 1960년대, 그러니까 정치 지도자들이 놈베코 같은 아이들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정도로 여기던 시대에 태어났으니 설상가상이었다. 당시의 수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걸로 유명하다. '왜 까만 사람들이 학교에 다녀야 합니까? 기껏해야 땔감이나 물을 나르는 사람들 아닌가요?'

   이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말이 틀렸다. 왜냐하면 놈베코가 나른 것은 땔감도 물도 아니요, 똥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이 말라깽이 소녀가 나중에 커서 왕들과 대통령들과 사귀고, 열국(列國)을 벌벌 떨게 하고, 또 세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고 상상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p.17~18)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놈베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빈민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종차별정책이 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난한 흑인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다섯 살부터 놈베코는 자기 몸뚱이만 한 분뇨통을 메고 다녔습니다. 놈베코가 공동변소의 분뇨를 수거해 돈을 몇 푼 벌어가면 그녀의 어머니는 환각제와 알코올을 샀고, 그 때문에 놈베코는 어린 나이에 부모 형제 하나 없이 혼자가 됐습니다.

   글도 배운 적이 없는 까막눈이였지만, 놈베코는 셈을 할 줄 알았습니다. 단순히 셈을 할 줄 아는게 아니라 놈베코의 암산 실력은 대단했습니다. 95x92도 이내 계산해 낼 줄 알았습니다.

  

   "95 곱하기 92는……." 그는 혼자서 웅얼거렸다. "가만있자, 계산기가 어디 있더라?"

   "8,740." 놈베코가 옆에서 알려 주었다.

   "꼬마야, 그냥 계산기나 찾아다 줘!"

   "8,740이에요!" 놈베코가 되풀이했다.

   "지금 뭔 말을 하는 거냐?'

   "95 곱하기 92는 874-"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에, 그러니까, 95는 100 빼기 5이고, 92는 100 빼기 8이에요. 100에서 5와 8을 빼면 87이에요. 그리고 5 곱하기 8은 40이고요. 따라서 87에다가 40을 붙이면 8,740이 나와요." (p.20)

 

   당시 13살이었던 놈베코는 공동변소 분뇨 수거인용 샤워실에서 한 늙은 호색한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게 되는데, 놈베코는 그의 허벅지에 가위를 박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자신의 가위를 찾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간 그녀는 노인의 집에 가득한 책을 보고는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없었던 노인은 책에 관심을 보이는 놈베코가 반가워 글을 가르쳐주게 되고, 수 십개의 다이아몬드와 책을 남기고 죽습니다.

 

   이렇게 글을 배우고, 다이아몬드를 가지게 된 놈베코는 빈민촌을 떠나 도서관이 있는 도시로 향하다가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 사고로 피해를 입은 건 놈베코였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의 목숨이란 차보다 못한 것이었습니다. 자신과 부딪혀 차가 파손되자 놈베코는 그 피해 보상으로 7년동안 운전자에게 무급으로 일을 해주라는 판결을 받게 되는데, 그 운전자는 핵폭탄 엔지니어였습니다.

   놈베코는 연구소에 7년동안 갇혀 있으면서 무급으로 일해야 했지만, 자신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배운 것 없는 흑인 소녀가 밖에서 할 수 있는 얼마되지 않을 뿐더러 바깥 세상에서 수 십개의 다이아몬드를 지키기란 더더욱 쉽지 않을테니까요. 게다가 연구소 안에는 책이 많았습니다. 놈베코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모든 내용을 소화했습니다. 심지어 엔지니어보다 이해력이 더 좋아서 엔지니어가 곤란해 할 때마다 대신 계산을 해주거나 분석해 줬습니다. 즉, 놈베코는 분뇨통을 나르거나 무급으로 청소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넘치는 천재였던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엔지니어의 계산 착오로 6개만 만들어야 하는 핵폭탄을 7개나 만들었고, 연구소를 탈출해 스웨덴으로 건너간 놈베코에게 7번째 핵폭탄이 배달됩니다. 놈베코는 이 핵폭탄을 지키기 위해, 혹은 스웨덴의 국왕이나 수상에게 핵폭탄 보유 사실을 알리기 위해 20년이 넘도록 노력합니다.

 

    현대사 주요 장면에 등장했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또한 곳곳에서 실존 유명인사들이 등장하며,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믹스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스 요나손이 쓴 두 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야기가 다소 산만하게 전개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믹스시키려고 하다보니 개연성은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문제점인듯 합니다.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해 온 작가였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도 있었겠지만, 요나스 요나손은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초보 작가니까요. 다음 소설에서 이 부분이 개선된다면, 요나스 요나손만의 글쓰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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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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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우리는 외친다. 볼라뇨라고! 

   로베르토 볼라뇨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나 2003년 스페인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방대한 양의 문학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어마한 분량의 『2666』은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매달린 작품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스페인과 칠레, 미국 문학상을 모두 흽쓸어 버립니다.

   이런 그였기에 그를 추종하고, 그에게 감염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볼라뇨 전염병 : 감염자들의 기록』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기록을 모아 펴낸 책입니다. 이 책에는 20명이나 되는 국내ㆍ외 추종자들의 기록들이 실려 있습니다. 국내 추종자들 가운데는 방대한 독서로 유명한 작가 장정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읽고 볼라뇨가 소설 속에 그려 넣은 그림을 흉내내어 그린 그림까지 선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로베르토 볼라뇨가 스페인, 칠레, 미국에서 문학상을 휩쓸었다고 언급했었는데 장정일은 볼라뇨 문학의 국적까지 걱정합니다. 볼라뇨 문학을 읽다보면 서로 문학의 국적을 탐낼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칠레에서 태어난 작가가 스페인에 살면서, 청년기의 고향이었던 멕시코에 관해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이 빚어낸 풍요로움 가운데 일부는 이처럼 복잡한 다국적성으로부터 왔다. 그런 까닭에 작품의 귀속처가 애매해진 것은, 문학 사가들이 겪을 곤경이다. 칠레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멕시코에서 보내고, 스페인으로 건너가 살았던 볼라뇨가 스페인어로 쓴 이 작품은 어느 나라 작품일까?

 

   또, 번역가 이경민은 '로베르토 볼라뇨 삼각형'이라는 것을 언급하며 그의 문학의 특징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도 합니다.

 

   볼라뇨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메타텍스트적 유희>로 규정한 바 있다. 문학을 일종의 <인용 체계>로 간주한 보르헤스처럼 그 또한 (자기) 인용과 변용을 창작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의 문학은 (단편) 소설과 시 문학 장르를 불문하고 상호 의존적으로 교차하는 분절적 연속체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제3제국』의 주제인 나치즘은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거쳐 『먼 별』, 『칠레의 밤』, 『2666』 등의 작품으로 투사되며,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라미레스 호프만은 『먼 별』에서 카를로스 비더로 재등장했다가 R.P. 잉글리시로 바뀌는데, 이 인물은 『전화』의 단편 「조안나 실베스트리」의 증언에서 다시 나타난다. 또한 『먼 별』에서 비더의 글을 비형한 이바카체나 비비아노라는 인물은 『칠레의 밤』에서 재등장한다. 마찬가지로 『제3제국』의 배경인 코스타 브라바는 『아이스링크』의 배경이 되며 이 작품이 지닌 다성적 목소리는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에서 극대화된다. 더불어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등장한 아욱실리오의 이야기는 『부적』으로 확장되고 죽음과 폐허의 공간인 소노라는 『2666』의 산타 마리아와 아날로지적 상응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듯 볼라뇨의 작품은 인물, 배경, 사건, 주제, 형식 등 다양한 지점에서 서로 맞물리며 움직인다. 그로 인해 볼라뇨의 작품은 문학적 유희가 되며 그 안에서 독자는 텍스트 추적자로 변모한다. 더불어 볼라뇨를 읽는 독자라면 볼라뇨의 작품 안에 흩어진 연쇄의 고리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드릐 작품의 흔적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p.311~312)

 

   '로베르토 볼라뇨 삼각형'을 설명한 이 글을 보는 순간, 쉽게 덤빌 수 없는 작가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그의 문학의 매력에 빠지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요?

 

   작가로 태어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추종해 준다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게다가 이 책은 가격까지 '2,666원'으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로베르토 볼라뇨에게 관심이 생겼다면, 가볍게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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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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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고통을 느끼는 자들은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낸다!

   터키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야사르 케말의 『의적 메메드』는 평범한 청년이 포악한 지주로부터 가족과 연인을 구하기 위해 의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짜 '인간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13살 소년 '말라깽이 메메드'는 디켄리 평야의 다섯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지주 압디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마을을 탈출하지만, 지주 압디에게 붙잡혀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압디의 핍박은 더욱 심해집니다. 압디는 다섯 마을을 지배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경작하게 하는데, 추수가 끝나면 수확량의 4분의 3을 거둬가 마을 사람들은 늘 궁핍하게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식량이 떨어질 즈음이면 사람들은 압디를 찾아가 식량을 빌리곤 하는데, 메메드는 그것 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릴적부터 메메드가 좋아했던 핫체를 압디가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키려고 합니다.

 

   "염소 수염을 한 못된 압디 놈의 마을 말이군. 듣기로는 압디가 지주가 되었다지? 마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린다던데. 마을 사람들은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고 말이야. 겨울이 오면 다 굶어 죽는다면서? 더구나 압디가 허락을 안 하면 결혼도 못 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사람도 죽인다고 하더군. 마을 다섯 개가 압디 놈의 손 안에 있고, 마치 술탄이라도 되는 양 군림한다며? 이 사람, 저 사람, 다 죽이고……. 그런 놈이 지주가 되었다니……. 망할 놈의 압디……. (『의적 메메드』, p90~91)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메메드는 핫체와 함께 다시 도망가는데, 결국 추적해 온 압디와 그의 조카에게 잡힙니다. 압디는 조카를 총으로 쏴서 죽여버리고, 압디까지 쏴 버립니다. 자신들을 추적하던 두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압디는 핫체를 먼저 마을로 돌려 보내고, 자신은 경찰을 피해 산적들 사이로 숨어버리는데 안타깝게도 압디는 죽지 않았습니다. 압디는 핫체가 자신의 조카를 죽였다고 하며 감옥으로 보내고, 메메드의 어머니는 매질을 해 죽여 버립니다.

   그 사이에 메메드는 산적의 우두머리가 돼 압디 조차 그를 두려워 할 정도가 됐습니다. 메메드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압디의 핍박에서 벗어나 자신이 경작한 땅에서 나온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메메드를 '영웅'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뒤늦게 핫체와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메메드는 다른 감옥으로 이송 중인 핫체를 데리고 산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를 쫓던 경찰에 의해 핫체가 죽고 아이만 남게 되자 메메드는 산으로 내려가 항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항복을 말리자 메메드는 압디를 죽이고 다시 산으로 사라집니다.

 

   계집애 같은 메메드! 온 마을 사람들이 자네를 바라보는 꼴을 좀 보라고! 그래도 항복하러 갈 텐가? 지주 압디가 다시 우리를 괴롭히게 할 심산인가? 데네의 유골이 무덤 속에서 통곡하겠구먼. 아름다운 핫체의 유골도……. (『의적 메메드』, p564)

 

   마을 사람들은 메메드가 압디의 땅을 나눠주고 압디의 핍박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자 메메드를 '영웅'으로 치켜 세웁니다. 그런데, 메메드가 경찰에 항복하려 하자 '계집애 같은 메메드!'라며 온갖 비난을 퍼붓습니다. 메메드가 항복하고 나면 예전처럼 지주 압디가 자신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주 압디의 핍박을 못 이겨 지주 압디의 편을 든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은 메메드를 이용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좀 더 편하게 살려고 말이죠.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의 본질이 아닐까요.

 

   나에게 있어서 『의적 메메드』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소설을 쓰는 것 이상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열고 새로운 형상들을 발견해 내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나는 인간성의 개념을 찾아냈다. 그것은 이후에 내가 썼던, 또 쓰고 있는 모든 것에 스며들었다. 내가 깨달았던 것은, 인간은 궁지에 처해 있거나 극한의 고통을 느낄 때 자신들의 은신처가 될 신화의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화를 창조하고 꿈의 세계를 떠올림으로써 인간은 이 세상의 엄청난 고통을 참아낼 수 있다. 또 사랑, 우정, 아름다움, 어쩌면 불사( 不 死)까지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의적 메메드』, 작가의 말, p574~575)

 

   사람들은 왜 신화와 꿈을 창조하여 그곳에서 은신하고 싶어 할까? 사람들은 환희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서 오는 모든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신화와 꿈의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과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파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지만, 그것에도 역시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의적 메메드』, 작가의 말, p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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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4 -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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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행간을 몇 포인트일까요?

책을 읽다보면 '책'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책표지와 내지는 알겠는데 그 사이에 있는 색지(?)는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있는 한 소설가의 이름이 왜 모두 다르게 표기되고 있는지, 정말 시시콜콜한 것이지만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어요. 바로, 열린책들 편집부에서 나온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입니다. 해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나오고 있는데, 원래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나온 책이긴 하지만 일반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의 각 부분에도 모두 이름이 있다는 사실. 설마 이런 것에도 이름이 있을까 싶은 정말 사소한 부분에도 명칭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표지와 내지 사이에 있는 색지(?)의 정식 명칭은 면지였습니다. 그리고 책머리와 책발도 있다는 사실.

 

 

   물론 열린책들만의 외래어 표기법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서 포털이나 사전에서는 '도스토옙스키' 혹은 '도스토예프스키'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열린책들에서는 '도스또예프스끼'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노통'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작가의 이름을 작가의 요청에 의해 '노통브'로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말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기본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굳이 편집을 하지 않더라도 한번 읽어보면 바른 우리말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앗! 새로운 사실도 한가지 알았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을 살펴보다 보니, 세르보크로아트어라는 언어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읽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읽을 때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 책 좋아하는 이웃님들 중에도 많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다소 답답한 행간 입니다. 개인적으로 포스팅을 할 때도 행간을 250% 정도로 설정합니다. 보통 9pt로 포스팅을 하니, 행간은 22.5pt인 셈이죠. 뿐만아니라 단행본 중에서도 행간이 널널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행간이 몇 포인트일까? 한글 폰트가 10pt일 때 행간이 15.5pt 였습니다. 즉, 155% 정도 되는 셈인데 보통 200% 이상의 행간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당연히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행간입니다. 그래도 행간 널널하게 해서 페이지 수만 잔뜩 늘려 놓는 편집보다는 의도가 건전하다고 생각되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린책들 책을 읽다가 혹은 평소 편집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한번 찾아보세요. 궁금했던 점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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