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죽음의 고통을 느끼는 자들은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낸다!

   터키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야사르 케말의 『의적 메메드』는 평범한 청년이 포악한 지주로부터 가족과 연인을 구하기 위해 의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짜 '인간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13살 소년 '말라깽이 메메드'는 디켄리 평야의 다섯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지주 압디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마을을 탈출하지만, 지주 압디에게 붙잡혀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압디의 핍박은 더욱 심해집니다. 압디는 다섯 마을을 지배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경작하게 하는데, 추수가 끝나면 수확량의 4분의 3을 거둬가 마을 사람들은 늘 궁핍하게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식량이 떨어질 즈음이면 사람들은 압디를 찾아가 식량을 빌리곤 하는데, 메메드는 그것 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릴적부터 메메드가 좋아했던 핫체를 압디가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키려고 합니다.

 

   "염소 수염을 한 못된 압디 놈의 마을 말이군. 듣기로는 압디가 지주가 되었다지? 마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린다던데. 마을 사람들은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고 말이야. 겨울이 오면 다 굶어 죽는다면서? 더구나 압디가 허락을 안 하면 결혼도 못 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사람도 죽인다고 하더군. 마을 다섯 개가 압디 놈의 손 안에 있고, 마치 술탄이라도 되는 양 군림한다며? 이 사람, 저 사람, 다 죽이고……. 그런 놈이 지주가 되었다니……. 망할 놈의 압디……. (『의적 메메드』, p90~91)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메메드는 핫체와 함께 다시 도망가는데, 결국 추적해 온 압디와 그의 조카에게 잡힙니다. 압디는 조카를 총으로 쏴서 죽여버리고, 압디까지 쏴 버립니다. 자신들을 추적하던 두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압디는 핫체를 먼저 마을로 돌려 보내고, 자신은 경찰을 피해 산적들 사이로 숨어버리는데 안타깝게도 압디는 죽지 않았습니다. 압디는 핫체가 자신의 조카를 죽였다고 하며 감옥으로 보내고, 메메드의 어머니는 매질을 해 죽여 버립니다.

   그 사이에 메메드는 산적의 우두머리가 돼 압디 조차 그를 두려워 할 정도가 됐습니다. 메메드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압디의 핍박에서 벗어나 자신이 경작한 땅에서 나온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메메드를 '영웅'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뒤늦게 핫체와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메메드는 다른 감옥으로 이송 중인 핫체를 데리고 산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를 쫓던 경찰에 의해 핫체가 죽고 아이만 남게 되자 메메드는 산으로 내려가 항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항복을 말리자 메메드는 압디를 죽이고 다시 산으로 사라집니다.

 

   계집애 같은 메메드! 온 마을 사람들이 자네를 바라보는 꼴을 좀 보라고! 그래도 항복하러 갈 텐가? 지주 압디가 다시 우리를 괴롭히게 할 심산인가? 데네의 유골이 무덤 속에서 통곡하겠구먼. 아름다운 핫체의 유골도……. (『의적 메메드』, p564)

 

   마을 사람들은 메메드가 압디의 땅을 나눠주고 압디의 핍박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자 메메드를 '영웅'으로 치켜 세웁니다. 그런데, 메메드가 경찰에 항복하려 하자 '계집애 같은 메메드!'라며 온갖 비난을 퍼붓습니다. 메메드가 항복하고 나면 예전처럼 지주 압디가 자신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주 압디의 핍박을 못 이겨 지주 압디의 편을 든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은 메메드를 이용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좀 더 편하게 살려고 말이죠.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의 본질이 아닐까요.

 

   나에게 있어서 『의적 메메드』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소설을 쓰는 것 이상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열고 새로운 형상들을 발견해 내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나는 인간성의 개념을 찾아냈다. 그것은 이후에 내가 썼던, 또 쓰고 있는 모든 것에 스며들었다. 내가 깨달았던 것은, 인간은 궁지에 처해 있거나 극한의 고통을 느낄 때 자신들의 은신처가 될 신화의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화를 창조하고 꿈의 세계를 떠올림으로써 인간은 이 세상의 엄청난 고통을 참아낼 수 있다. 또 사랑, 우정, 아름다움, 어쩌면 불사( 不 死)까지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의적 메메드』, 작가의 말, p574~575)

 

   사람들은 왜 신화와 꿈을 창조하여 그곳에서 은신하고 싶어 할까? 사람들은 환희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서 오는 모든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신화와 꿈의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과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파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지만, 그것에도 역시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의적 메메드』, 작가의 말, p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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