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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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곱하기 92를 단숨에 계산하는 방법!

   2013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 한 권의 소설로 할배들 열풍에 가세했던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두번째 장편소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나왔습니다. 100세 할배가 그랬듯이, 이 까막눈이 여자 또한 상당히 엉뚱 발랄할 것이라 기대하며 책장을 펼칩니다.

   우리는 두 권의 소설을 통해 요나스 요나손 소설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에 앞서, 줄거리부터 살짝 살펴볼까요?

 

   소웨토 B 섹터의 공동변소 신임 관리소장은 한 번도 학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이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보다 시급한 다른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놈베코가 불운하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이유가 컸다. 그것도 1960년대, 그러니까 정치 지도자들이 놈베코 같은 아이들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정도로 여기던 시대에 태어났으니 설상가상이었다. 당시의 수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걸로 유명하다. '왜 까만 사람들이 학교에 다녀야 합니까? 기껏해야 땔감이나 물을 나르는 사람들 아닌가요?'

   이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말이 틀렸다. 왜냐하면 놈베코가 나른 것은 땔감도 물도 아니요, 똥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이 말라깽이 소녀가 나중에 커서 왕들과 대통령들과 사귀고, 열국(列國)을 벌벌 떨게 하고, 또 세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고 상상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p.17~18)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놈베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빈민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종차별정책이 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난한 흑인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다섯 살부터 놈베코는 자기 몸뚱이만 한 분뇨통을 메고 다녔습니다. 놈베코가 공동변소의 분뇨를 수거해 돈을 몇 푼 벌어가면 그녀의 어머니는 환각제와 알코올을 샀고, 그 때문에 놈베코는 어린 나이에 부모 형제 하나 없이 혼자가 됐습니다.

   글도 배운 적이 없는 까막눈이였지만, 놈베코는 셈을 할 줄 알았습니다. 단순히 셈을 할 줄 아는게 아니라 놈베코의 암산 실력은 대단했습니다. 95x92도 이내 계산해 낼 줄 알았습니다.

  

   "95 곱하기 92는……." 그는 혼자서 웅얼거렸다. "가만있자, 계산기가 어디 있더라?"

   "8,740." 놈베코가 옆에서 알려 주었다.

   "꼬마야, 그냥 계산기나 찾아다 줘!"

   "8,740이에요!" 놈베코가 되풀이했다.

   "지금 뭔 말을 하는 거냐?'

   "95 곱하기 92는 874-"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에, 그러니까, 95는 100 빼기 5이고, 92는 100 빼기 8이에요. 100에서 5와 8을 빼면 87이에요. 그리고 5 곱하기 8은 40이고요. 따라서 87에다가 40을 붙이면 8,740이 나와요." (p.20)

 

   당시 13살이었던 놈베코는 공동변소 분뇨 수거인용 샤워실에서 한 늙은 호색한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게 되는데, 놈베코는 그의 허벅지에 가위를 박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자신의 가위를 찾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간 그녀는 노인의 집에 가득한 책을 보고는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없었던 노인은 책에 관심을 보이는 놈베코가 반가워 글을 가르쳐주게 되고, 수 십개의 다이아몬드와 책을 남기고 죽습니다.

 

   이렇게 글을 배우고, 다이아몬드를 가지게 된 놈베코는 빈민촌을 떠나 도서관이 있는 도시로 향하다가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 사고로 피해를 입은 건 놈베코였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의 목숨이란 차보다 못한 것이었습니다. 자신과 부딪혀 차가 파손되자 놈베코는 그 피해 보상으로 7년동안 운전자에게 무급으로 일을 해주라는 판결을 받게 되는데, 그 운전자는 핵폭탄 엔지니어였습니다.

   놈베코는 연구소에 7년동안 갇혀 있으면서 무급으로 일해야 했지만, 자신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배운 것 없는 흑인 소녀가 밖에서 할 수 있는 얼마되지 않을 뿐더러 바깥 세상에서 수 십개의 다이아몬드를 지키기란 더더욱 쉽지 않을테니까요. 게다가 연구소 안에는 책이 많았습니다. 놈베코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모든 내용을 소화했습니다. 심지어 엔지니어보다 이해력이 더 좋아서 엔지니어가 곤란해 할 때마다 대신 계산을 해주거나 분석해 줬습니다. 즉, 놈베코는 분뇨통을 나르거나 무급으로 청소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넘치는 천재였던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엔지니어의 계산 착오로 6개만 만들어야 하는 핵폭탄을 7개나 만들었고, 연구소를 탈출해 스웨덴으로 건너간 놈베코에게 7번째 핵폭탄이 배달됩니다. 놈베코는 이 핵폭탄을 지키기 위해, 혹은 스웨덴의 국왕이나 수상에게 핵폭탄 보유 사실을 알리기 위해 20년이 넘도록 노력합니다.

 

    현대사 주요 장면에 등장했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또한 곳곳에서 실존 유명인사들이 등장하며,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믹스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스 요나손이 쓴 두 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야기가 다소 산만하게 전개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믹스시키려고 하다보니 개연성은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문제점인듯 합니다.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해 온 작가였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도 있었겠지만, 요나스 요나손은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초보 작가니까요. 다음 소설에서 이 부분이 개선된다면, 요나스 요나손만의 글쓰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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