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숲에 간 호호 아줌마 난 책읽기가 좋아
알프 프로이센 지음, 비에른 베리 그림, 홍연미 옮김 / 비룡소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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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우리 호호 아줌마를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죠?
호호 아줌마네 집 뒤에는 낡은 울타리가 있고, 거기에는 문이 하나 있어요. 그 문을 지나가면 마법의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해요.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어요. 호호 아줌마는 아저씨에게 마법의 숲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나무를 베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시간이 없다고 하네요. 별 수 있나요? 못하는 것이 없는 우리의 호호 아줌마가 나섰죠. 나무를 베려고 도끼를 드는 순간, 아이쿠 이걸 어째요. 호호 아줌마가 찻숟가락만하게 작아져 버린거예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정말 좋겠지만, 찻숟가락만큼 작아진 호호 아줌마에게는 그리 좋은 일이 아니랍니다. 하필이면 이때 또 눈이 내리기 시작하네요. 정말 큰일이네요. 발이 푹푹 빠지는 눈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아줌마, 그러나 다행히 아줌마처럼 작은 가족들을 만나게 돼요. 정말 이 숲은 마법의 숲이 맞나봐요.
호호 아줌마가 찻숟가락만큼 작아지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멋진 모험이 펼쳐지는 것 다들 아시죠? 그래서 아줌마가 작아져도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런데 이번에는 곤란한 일들이 생겨버려요. 사라진 인형 대신 호호 아줌마를 인형극 무대에 세우기도 하구요, 수영을 배우려다가 갑자기 작아지기도 하고, 꼬마 까마귀에게 잡혀가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감자 도둑을 잡으러 나섰다가 감자 바구니에 빠져 감자와 함께 삶길뻔도 해요.
그래도 항상 적절한 타이밍에서 다시 커지니까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마지막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호호 아줌마가 나들이를 나선다고 해요. 호호 아줌마의 나들이,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2008/07/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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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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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소설가를 단지 그가 쓴 한 편의 산문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영구제명 시켜버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평소 심리 운운하는 것은 그 주체가 무엇이든 싫어하지 않았던가. 혹여 또 심리를 운운하더라도 적어도 소설로 그를 판단해야 정당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열입곱살 소녀 니은은 부모님의 고향인 장승포로 내려간다. 딱히 그곳에 그녀를 보살펴 줄 일가친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곳은 처용과 황옥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내려오는 곳이고,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곳이다.
장포수 할아버지는 장승포에서도 알아주는 고래잡이였다. 할아버지가 바다로 나가면 고래들이 할아버지를 따르는듯 했고, 할아버지도 고래들과 대화를 나누는듯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별명도 '대왕고래'다. 포경이 금지된 이후, 할아버지는 다시 바다로 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왕고래집 할머니는 오랫동안 장승포에서 식당을 하며 살았다. 할머니는 다치거나 길 잃은 생명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니은도 그런 존재였다. 얼마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는 니은에게 숙제를 확인 받고, 니은은 할머니의 숙제를 통해 할머니의 지나온 삶을 엿보게 된다.
열일곱살 때 배를 탄 할아버지와 열다섯살 때 이미 결혼한 할머니처럼 니은도 어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니은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릴적 수영하며 놀던 푸른 바다를 잃어버린 아빠, 어릴적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가 죽임을 당한 엄마, 평생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고래잡이를 할 수 없게 된 할아버지,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할머니.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상실을 경험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변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픈만큼 성장한다고 정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이 된 것일까? 내가 어른이 된 것은 언제였을까? 사실 우리의 삶은 아날로그 시계처럼 그 경계가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어느 한 시점을 계기로 가속도가 붙을 수는 있겠지만 그 시점부터 어른이 되었다고 단정짓지는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난 아직도 어른이 되기 위해 성장 중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고집 속에 갇히게 된다는 뜻일까? (p77)

고아라는 말은 나이가 더 적은 어린애에게나 어울렸다. 고아 청소년이라는 말은 없었다. 열일곱살에 부모를 잃으면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아보다는 어른이 되기로 했어." (p90)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닌 기억이란 없었다. (p97)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이상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느라 이상해지는 것 같다. 나도 이제 나만의 슬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이상한 방법을. (p157)

나도 기억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내 인생을 낡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만든 셈이지. 잘 떠나보내고서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걸. (p236)

 
   


고래는 왜 신화처럼 숨을 쉴까?
"고래사냥"이라는 옛날 노래가 있다. 그 노래 속에는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신화처럼 숨을 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니은도 의문만 덩그러니 품은채 그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보통 우리가 신화라고 하는 것은 100%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에 어느 정도의 상징적인 의미가 가미된 것을 말하는데, 장승포 사람들에게도 처용이나 황옥 신화처럼 고래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고래가 작살을 맞으면 쉽게 죽지 않고 도망치면서 물속에 숨었다 숨쉬러 나왔다 하거든. 그러면서 두 시간, 세 시간씩 고래배를 끌고 다닌다. 그러다가 고래가 지치면 배를 고래 가까이 붙이고 정확하게 급소에 작살을 꽂는다. 급소를 맞은 고래는 죽기 전에 마지막 숨을 내뿜는데, 그 숨에는 피가 뿜어져나온다. 핏빛 물뿜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온 바다 가득 퍼진다. 그걸 꽃핀다 한다. (p103)

 
   


2008/07/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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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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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한 작가 심윤경은 『달의 제단(2004)』, 『이현의 연애(2006)』, 『서라벌 사람들(2008)』 등 2년마다 한 편씩 장편소설을 선보이며 이름을 떨쳤다. 그녀의 데뷔작을 읽고 완전 반해버린 나는 『서라벌 사람들』, 『달의 제단』을 거쳐 마지막으로 『이현의 연애』를 읽게 됐다.
그리 많은 작품을 써낸 것도 아니고, 책과 책 사이의 간격이 큰 편도 아니어서 어느 것을 먼저 읽든 상관은 없어 보이지만 왜 하필이면 이 작품이 마지막이었을까? 사실은 제목 탓이다. 적어도 그동안 내가 보아온 심윤경은 시시한 연애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니다. 매 작품마다 남녀간의 사랑이 빠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녀가 하고자하는 주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대문짝만하게 '연애'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를 향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현의 노래』와 같은 '현(絃)'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잖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재경경제부에서 일하는 이현은 어느날 매점에서 일하고 있는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그녀는 이현이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결혼식장에 갔다가 첫눈에 반해버렸던 신부, 그러니까 그의 첫사랑이었다. 여전히 그녀에게서는 살구향이 났고, 그녀를 감싸고 있는 눈부신 외모는 남자들을 매점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어릴적 함께 찍었던 결혼식 사진을 들고 이현을 찾아가자 그녀는 사진 속 신부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다. 마흔이 넘도록 간직해왔던 첫사랑인데 이번에는 절대 그녀를 놓칠 수 없다.
그녀의 이름은 이진, 영혼을 기록한단다. 영혼이라면 귀신? 그렇다면 그녀는 무당처럼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것도 아니란다. 그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 그러니까 생령을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령들은 그녀를 끊임없이 찾아오고, 그녀는 생령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생령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단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때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왕실 혈통의 이생 공. 굳이 그녀가 매점에서 일하지 않아도 될만큼 이생 공은 부유하지만,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딸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한다. 매점 일을 하느라, 그녀를 끊임없이 찾아오는 영혼을 상대하느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이현이 스폰서가 되어주겠다고 제의한다. 3년 동안 자신과 결혼해서 살아준다면 3년 후에는 그녀가 평생 영혼을 기록하며 살 수 있을만큼의 위자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일명 계약결혼인데, 이건 너무 이현에게 불리한 조건이 아닌가? 사실 이현에게는 세 번의 이혼이라는 화려한 경력이 있다. 그가 굳이 3년이라고 명시한 것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3년을 넘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나면 이내 상대에게 싫증을 느끼는 그를 솔직하다고 해야할까? 아님 바람둥이라고 해야할까? 흔히 우리가 하는 이야기 중에 결혼하면 남녀간의 사랑은 3년 이상 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그저 자식 바라보며 산다고 하는데, 적어도 이현은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지 않은가.
그런 이현에게 이생 공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수 없을거라며 그를 말린다. 아무리 그래도 이진은 자신의 딸인데 이생 공은 왜 그리도 싫어하는 것일까?

기록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을 기록하는 이진,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 자신의 존재감은? 그녀는 단지 기록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그녀는 기록을 멈출 수 없고, 그녀의 생활은 기록하는 일에 맞춰져 있다. 이현이 그녀의 노트를 찢어버리고, 더이상 기록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자신이 미처 다하지 못한 기록을 이어가기 위해 또다른 자신을 잉태하고, 그 숙명이 얼마나 오랫동안 되풀이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진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그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이현이 찢어버린 노트에다가 그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노트를 읽고 찢어버린 자신의 배덕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느 '연애'담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행복한 결말도 없지만 이야기 자체는 독특하다.

『이현의 연애』는 이현과 이진의 이야기 사이에 '이진의 기록' 네 편이 어우러져 있다. 네 편 중 두 편은 이미 써놓은 것이고, 두 편은 새롭게 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앞의 두 편은 완전히 독립적인 단편처럼 읽혀지지만, 뒤의 두 편은 이진의 기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장편소설로 데뷔한 심윤경은 지금까지 줄곧 장편만 고집해 왔다. 그러나 그녀의 장편들을 읽다보면 어쩌면 다음에는 단편집을 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의 제단』에서는 서간의 형태로 살짝 선보였고, 이 작품에서는 '이진의 기록'이라는 이름을 빌려, 그리고 『서라벌 사람들』에서는 연작소설의 형태를 빌려 쓰고 있다.

과연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존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귀신이라고 말하니까 조금 이상하네요.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귀신이라는 이름에는 아무래도 경멸적이거나 적대적인 어감이 섞여 있어요. 귀신보다는 영혼이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그래요, 영혼이지요. 죽은 사람의 영혼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이에요. (p30)  
   

2008/07/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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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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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린 그녀는 그 한 권의 소설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심, 윤, 경이라는 이름 세 글자로도 나는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낼 수 있다. 『달의 제단』은 그녀의 신작 『서라벌 사람들』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는 작품이다.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녀의 작품들은 모두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막 제대를 한 상룡이는 손이 귀한 종가의 서자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쓰러져가던 종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할아버지를 거역한 일이 없는 상룡이지만 종가의 전통을 잇는 것에는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은 서자이기 때문이다. 상룡의 아버지는 집을 나가서 근본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해 상룡을 얻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할아버지께 돈을 받고 아버지를 떠났다. 그후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했지만 몇 달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게다가 행실이 나쁘다는 상룡 어머니의 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비록 아버지와 혼인신고까지 했지만 할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은 여자였기 때문에 그는 서자임에 틀림없다.
이런 고민에 빠진 상룡은 어머니가 하는 초콜릿 가게에서 사 온 초콜릿을 먹고 오랫동안 집안일을 봐주던 달시룻댁의 딸 정실을 쓰러뜨리고 만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쩔 줄 몰랐던 상룡의 깊은 시름이 정실과 몸을 섞은 이후로 사라졌고, 상룡은 더욱 더 정실에게 매달린다. 그런데 멘스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정실의 배가 점점 불러온다. 분명 할아버지는 정실을 인정하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상룡 자신은? 정실은 자신이 부리는 사람으로 멀쩡한 다리는 한쪽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없는 정체성에 정실까지 더해진다면?
상룡의 고민을 엿보면서 어느새 나는 정실이도 아닌 상룡의 편에 서 있었다. 아니 상룡에게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 가슴 속에도 할아버지와 같은 잣대가 존재하고 있었나보다. 한편 국문학을 전공하는 상룡에게 할아버지는 해석해 달라고 오래전 언찰을 하나 맡긴다. 해석한 언찰을 두고 종가의 전통을 지키려는 할아버지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상룡은 서로 갈등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녀는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강한 여운을 남겼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은 포항으로 등장인물들은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다. 사투리로 말하는 것은 쉽지만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사투리를 듣고 자라며 사용하고 있는 토박이인 나조차도 막상 문장으로 써내려면 쉽지 않다. 하물며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에게는 오죽했을까. 그런데 문장으로 써내려간 경상도 사투리가 예술이다. 문장을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내어 한번 읽어보라. 문장들이 입 안에 착착 달라붙어 절로 나온다.
게다가 그녀는 우리말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그녀의 작품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런 단어들을 메모해 놓는 버릇이 생겼다.
아참, 상룡과 정실의 이야기를 엿보면서 내 머리 속에는 줄기차게 또다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데릴사위와 마름의 딸이 등장하는 김유정의 「봄봄」. 상황은 다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비슷한 구석이 있다.

뜨겁게. 여한 없이 뜨겁게. 어차피 한 번 왔다 가는 세상 뜨겁게.
그녀는 가슴의 뜨거움조차 잊어버린 쿨한 세상의 냉기에 질려 버려서 옛날식의 정열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느낀 것은 정열보다는 냉정이다. 완전한 옛날식의 정열을 품고 있는 사람은 정실뿐이지 않은가? 상룡은 정열과 냉정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할아버지는 완전히 냉정의 편이다. 상룡의 어머니와 해월당 어머니 모두 냉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지 않는가. 어쩌면 해월당 어머니는 열정을 품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참, 열정의 편이 한 사람 더 있다. 정말 쿨하지 못해 자살한 상룡의 아버지다.
이제 한 작품만 남았다. 다음에 만나볼 『이현의 연애』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그녀를 향한 나의 신뢰가 계속 이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2008/07/1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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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무] 서평단 알림
눈물나무 양철북 청소년문학 1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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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그의 산문집 『여행할 권리』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에게는 넘어야 할 국경이 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유일하게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북쪽의 휴전선은 서로 눈을 부라리며 총을 겨누고 있어 어느 누구도 여느 국경선처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크로싱》에서는 차인표와 그의 아들이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넘었고, 『연을 쫓는 아이』에서는 바바와 아미르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을 넘었다. 여기 또다른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희망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 멕시코, 그들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멕시코의 국경을 넘어 꿈의 나라 미국으로 향한다. 다른 곳과는 달리 사막으로 이어지는 국경은 버티고 있는 군인은 없지만 또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막은 길을 모르는 사람이 지날 수 없는 곳이다. 사막을 건너려는 사람들은 큰 돈을 주고 코요테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사막에서 죽는다. 더위 때문에, 전갈 때문에 혹은 습격을 당해서.
소년 루카는 혼자다. 맨처음 아버지가 사막을 가로질러 국경을 넘었고, 다음에는 형이, 그 다음에는 어머니와 누나가 국경을 넘었다. 혼자 남은 루카는 유능한 코요테와 함께 사막을 건너 가족을 찾아 가려한다. 그런데 그 코요테가 루카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오래전 집을 나간 형이었다. 그리고 형에게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듣는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와 누나가 있는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루카는 말로 들었던 것처럼 미국이 꿈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최저 임금보다도 못한 임금을 받았지만 묵묵히 일만 할 수 밖에 없었고, 매일을 추방되지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그렇게 종종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곤 한다. 단지 배불리 먹으며 살고 싶어서 떠났을 뿐인데, 그것조차 그들에게는 쉽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이민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런 이민자들의 모습은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는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도 더이상 월경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왔으면 좋겠다. 

   
  "엘 아르볼 데 라그리마스(눈물나무)"
"이 나무에는 빗물이 필요하지 않아. 우리 이야기와 여기서 흘린 눈물만 먹고도 자라지." (p9)
 
   


2008/07/1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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