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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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좋아하세요?
   지난 밤, 올림픽 야구대표팀의 한일전 승리로 좀처럼 흥분을 가라 앉힐 수 없었던 나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야구를 좋아하는 와넬님께 받은 이 책이 그대로 책장에 꽂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어느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는지는 지난 2006년 WBC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창 회사가 행사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전경기를, 그것도 실시간 중계로 모두 챙겨 봤다는 것. 처음에는 야구를 특히 좋아하는 상사 한 분 밖에 없었지만, 경기가 거듭되고 우리 대표팀의 선전이 계속되면서 함께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었다. 그렇다고 특히 좋아하는 선수나 팀은 없다. 과거에는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세요!
   작가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982년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했지만 사실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전해 들어서 알 뿐이다. 1982년은 바로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한, 한국 프로야구의 원년(元年)이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격동의 80년대에 일종의 오락거리였던 프로야구의 탄생이라니. 흔히 이 탄생을 두고 3S정책의 하나라고들 한다.
   프로야구 원년의 프로팀은 MBC 청룡,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그리고 삼미 슈퍼스타즈까지 모두 6개 팀이었다. 당시 삼미를 제외한 나머지 5개 팀은 빵빵한 모기업을 등에 업고 스타 선수들을 영입했다.

   당시 중학교 입학을 눈 앞에 둔 주인공 '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을 연고로 하는 삼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친구 조성훈과 함께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하는가 하면, 춘천에서 하는 홈개막전도 놓치지 않고 보러갔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고, 삼촌도, 같은 동네 반장까지 모두 삼미를 응원했다. 
   역시 야구는 기록의 경기였던가. 그들의 응원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삼미는 프로야구 역사상 길이 남을 기록 대행진에 나섰다. 최저 승률, 최다 실점, 최다 연패, 최소 득점, 최소 타점, 최소 수비율, 최다 피안타...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기록 대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연패를 시작하면서 야구 이야기가 줄어들더니 결국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마저 사라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다음해 삼미는 장명부가 30승을 올리며 또다른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시즌을 2위로 마감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눈을 반짝였지만, 그 이듬해인 84년 삼미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삼미의 라이벌은 삼미 밖에 없었다. 82년에 삼미가 세운 기록들을 또다시 갱신하며 연패의 늪에 빠진 것이다. 85년 전기에는 그 연패의 신화를 또 한번 깨며 급기야 전기리그를 끝으로 청보에 매각되어 청보 핀토스가 됐다.
   삼미의 마지막 경기를 보고 온 날 새벽, '나'는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삼미가 최하를 기록한 것은 평범했기 때문이며, 평범한 사람들은 프로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p.130)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신의 소속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최고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최고의 소속을 만들기 위해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나'는 어릴적 추억이 담긴 삼미 슈퍼스타즈의 기념품들을 미련없이 버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삼미를 잊어가고 있던 '나'에게 1998년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일에만 전념하느라 아내에게 신경쓰지 못한 '나'는 이혼을 당하고 실직까지 하게 된다. 이때 어린시절 삼미의 추억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 조성훈이 그를 찾아온다. 여전히 삼미의 기념품들을 간직하고 있는 조성훈과 함께 마지막 팬클럽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삼미가 최하의 성적을 기록했던 것은 그들이 진정한 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야구를 즐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생은 야구, 야구는 인생!
   2006년 월드컵을 등에 업고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2003년 박민규도 그랬냐고? 그렇지 않다. 2003년은 2002년 월드컵의 신화가 후폭풍처럼 몰아치던 때였다. 그 해에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 아니었고 재미있지만 소설의 가벼움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 작품은 수상작이 됐다.
   솔직히 비교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내가 결혼했다』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둘다 인생을 스포츠에 비유하고 있다. 박현욱이 인터넷을 떠도는 축구 이야기를 상황에 맞게 잘 버무려 놓았다면, 박민규는 그 이야기를 완전히 소화해서 자기 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그래서 승자를 가린다면, 박민규에게 우승컵을 주고 싶다. 여기서 한가지 밝혀두자면, 개인적으로 야구보다는 축구를 훨씬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박민규에게 우승컵을 안겨 준 것에는 그 어떤 편파 판정도 없었음을 밟혀두고 싶다.

   사실 '가벼움'이 문제라고 했지만 그 가벼움이 전혀 문제되지는 않는다. 가벼우니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이유없이 무턱대고 가볍지는 않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최고가 돼야하는 프로보다 그것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삼미를 더 좋아했던 작가가 치열하고 진중한 글쓰기를 보여줬다면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도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도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 아닐까.

2008/08/17 by 뒷북소녀.

   
  처음 널 봤을 때…… 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투 스트라이트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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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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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는데는 무려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은희경, 유명한 작가지만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단지 그녀의 신간이 나왔고 신간을 사면 그녀의 다른 작품을 함께 준다기에 혹해서 샀을 뿐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 문학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이제 슬슬 읽어볼까 하던 참이었다. 게다가 장편은 좋아하지만 단편은 정말 싫어한다. 내가 아는 그녀의 작품들이 모두 장편들이었고 그래서 당연히 장편일거라 생각해서인지 표지에 커다랗게 적혀있는 소설집이라는 텍스트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안하게도 이 책은 그녀의 또다른 작품과 함께 그대로 책장行이 되고 말았다.
그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을 준비를 했냐고? 그건 아니다. 사실 그녀의 작품을 한번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정혜윤의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읽고나서였다. 은희경 작가의 독서기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부터 조숙한 독서를 한 사람의 결과물은 어떨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작가에겐 미안할 따름이다. 그녀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다른 책 때문이라니.


「의심을 찬양함」
배달사고에서부터 시작된 남자와의 만남. 이름도 같고 취향도 비슷한 한 남자와의 계속되는 우연을 그의 쌍둥이 동생은 형의 각본대로 움직인 필연이라며 의심해 보라고 한다.
문득 어릴적 누군가를 우연히라도 만나기 위해 그 주위를 맴돌았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의심이 꼬리를 물면 더이상 믿을 사람이 없다. 그렇게되면 나만 외로워질 수 밖에.

세상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굴러가요. 더러움과 증오와 한심함으로 가득차 있어요. 솔직히,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 세상이 모두 정밀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나는 아마 각본대로 뛰지 않는 토끼일 거예요. (p. 36)

「고독의 발견」
어린시절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아이의 이야기를 읽은 이후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K. 고시 준비를 하며 서른여덟번째 생일을 맞이한 K는 한 카페에서 만난 남자로부터 대학생 시절 하숙집 주인이 운영하던 여관을 대신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W시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키작은 젤소미나와 과거의 자신. 젤소미나가 들려준 노래의 가사처럼 그는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에게는 낯선 존재, 그러니까 자신에게는 외로운 존재일 뿐이다.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 과연 그 남자를 만난 이후로는 모든 것이 꿈이었을까?

네가 이방인일 때 사람들은 낯선 존재가 된다.
네가 혼자일 때 타인의 얼굴은 모두 추악해 보인다.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을 때 여자들은 모두 사악하다.
네가 힘들 때는 걷는 거리조차 울퉁불퉁하다.
아무도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네가 낯선 존재일 때, 네가 낯선 존재일 때는. (p.65)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문이 있다 ─ 윌리엄 블레이크. (p.71)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카펫이 깔린 이태리 식당에 갔다가 아버지 등뒤의 벽에 걸려있던 보띠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매혹당한 소년. 자신을 원한 적이 없는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생각한 소년은 자신의 뚱뚱한 외모가 아버지와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서른다섯번째 생일을 맞이한 그는 비로소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사람들은 그의 실패를 상상했고 그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결혼을 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정작 그가 다이어트를 결심한 이유는 죽어가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아들이 되고 싶었던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다이어트를 그만둔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갈망하지만, 결국 아름다움은 우리들과 멀어지려 하고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소녀 B. B는 자신이 읽은 책 속 주인공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주기를 기대한다. 서울로 전학을 간 B의 학교로 한 남자가 찾아온다. B는 키다리 아저씨를 상상했지만 자신이 읽은 문학 전집의 미수금을 받으러 온 외판원이었다.
아마 책 읽기를 좋아했다면, 아니 소녀라면 빨간 머리 앤처럼 이런 공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작가도 그랬을 것이다.

인생은 얼마나 많은 암호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것일까. (p.119)

「지도 중독」
친구 B는 튀는 것을 싫어하고 그때 그때 대충 적응해서 살며 귀차니스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M을 9번 유형이라고 분류한다. 그런 M이 B의 예상을 깨고 친구 Y가 있는 캐나다로 산행을 떠난다. 사실 M이 산행을 결심한 것은 너라면 꼭 와줄거라는 Y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이다. 이 산행에는 그들의 선배인 P가 함께 했다. 한때 멘사 회원이었던 P 선배는 마치 좌표를 모두 머리 속에 넣기라도 할 것처럼 지도 중독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도 중독인 P 선배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려는 부적응자, 즉 진화론자였고, M은 대충 적응해서 살려는 적응자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사실 내가 9번 유형에 어느 누구보다 딱 들어맞는 적응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적응을 너무 잘해서 재미가 없어. 적응만 하면 진화를 할 수가 없지. (p.180)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더이상 아무런 사건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출판사 사장, 더이상 나아지거나 나빠질 것이 없다면 지금처럼 살고 싶어한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P를 공항에서 배웅하고 돌아오던 날, 그의 책상에는 「1991년의 코스모나츠」라는 원고 뭉치가 있었고 '우리 약속 잊지 않았죠?'라는 한 통의 메일을 은숙이라는 미지의 여자에게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처음 읽는 원고인데 어디서 본 것 같고, 약속을 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은숙이라는 여자를 아는 것 같았다. 그랬다. 그에게는 더이상 일어날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모두 잊고 살았던 것이다. 유리 가가린이 지구로 귀환하던 때의 기억들을 말이다.
내게도 그런 기억이 분명 존재한다. 기억의 바다 저편에 깔려 있다가 어느 순간 떠오르는 기억들, 우리는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인데 그 존재마저 부정하곤 한다.

세상이 그다지 놀랍지 않게 생각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든 언젠가 겪어본 일처럼 여겨진다. 뉴스도 그렇고 주변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다 그런 식이다. …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살아오면서 만난 적이 있는 비슷한 누군가와 얼굴이 겹쳐지게 마련이고, 그러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쉬워졌다. 세상 사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어쩌면 틀을 갖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p.187)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어김없이 휑한 바람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해피엔딩도, 반전도 없는 흐릿한 흑백 영화를 본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항상 이야기의 끝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이야기의 마무리는 읽는 이의 몫이다. 자신은 이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다는듯이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그녀가 너무나도 차갑고, 서늘하게 느껴진다.
사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제목은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골라낸 문장이라고 한다. 차가움이 느껴지는 그녀의 이야기와 꼭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멸시'라는 단어가 풍기는 차가움과 고독함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 릴케 (p.226)

2008/08/1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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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 여행에 미친 사진가의 여행본능을 불러일으키는 포토에세이
신미식 사진.글 / 끌레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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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시작하면서부터 읽은 여행 관련 책들이 몇 권인지 모르겠다. 한때 나도 떠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처럼 지냈던 적이 있지만, 떠나고픈대로 떠날 수 없는 지금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엿보며 만족하고 있다. 정말 많은 작가들의 책을 읽었지만 베테랑 여행사진가인 그의 책은 처음이다. 이번이 벌써 열번째 책이라는데 그동안 몰랐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은 후에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사실 여행에세이는 비슷비슷하다. 여행한 곳과 테마만 다를 뿐, 글도 그렇고 사진도 그저 그렇다. 그 여행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작가라면 적어도 글 때문에, 사진작가라면 글은 엉망이라도 사진을 보는 재미로, 유명한 사람이라면 그저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을 뿐이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만큼 특별히 뛰어난 여행에세이는 없었다. 그저 읽는 당시만이라도 공감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작가는 '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낯선 곳으로 떠난다. 사막의 밤만 추위가 있다고 생각했지 아프리카의 겨울에도 추위가 있을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남아공, 어린왕자의 바오밥 나무만 알았지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서 진짜 바보밥 나무를 보고 낯설어했던 마다가스카르, 로맹 가리의 작품을 읽고 진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을까 궁금해 하기만 했던 페루.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신문에 나오는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낯설기만한 나라들을 그는 여행했다. 물론 그의 목적지에는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파리나 에딘버러, 아시아의 도시들도 있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볼 것은 색에 대한 그의 뛰어난 감각이다.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그의 사진들은 유난히 색감이 예쁘다. 누렇게 익은 남아공의 들판을 보자마자 저절로 숨이 내쉬어졌고,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와 하늘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예쁜 색감들은 아름다운 자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형형색색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꼭 한번 해외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곳은 에펠탑이 있는 파리여야만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지만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남아공 혹은 마다가스카르로 바뀌어 버렸다.

   또 하나는 책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사진들이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싫어해서 아무리 예쁜 아이라도 두 번 이상 보지 않지만, 사진 속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보는 순간 따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 사진이란 평생 한번 가질까 말까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진을 찍는 우리가 카메라 앞에서 보이는 미소와는 차원이 다른 미소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여행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마다가스카르 이야기』의 표지모델이 되었던 아이에게는 책을 가져다 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아이들에게 인화해 주었다. 그들에게 난생처음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에서 힘들게 장비를 모두 챙겨가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개입이 멋져 보였다.

2008/08/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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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철학자 50
夢 프로젝트 지음, 박시진 옮김, 배일영 감수 / 삼양미디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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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교양? 

철학의 역사는 논쟁의 역사!
   철학의 역사는 논쟁의 역사다.(p.25) 최초의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소크라테스가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래서 플라톤은 영원불멸의 진리를 찾으려 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절대적인 지성은 '신'이라고 했다. 그렇게 철학자들의 논쟁의 대상은 만물의 근원에서 신으로 넘어갔다. 
   근세의 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한 사람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페르니쿠스가 엄청난 발견을 했다. 철학자들은 천동설을 반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부르며 그동안 철학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바로 잡으려 했다. 
   이러한 사고의 변화는 새로운 사상을 대두시켰다. 소쉬르,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등 오늘날의 사상가들은 새로운 영역에서 그들의 논의를 펼쳐나가고 있다.

   
  현재는 살고 있는 우리는 철학을 그저 교양과목 정도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많다. 혹자는 철학의 시대가 가고 과학의 시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대 사회를 철학과 관계없는 과학의 시대라고 아예 단정 지어 버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철학을 하려는 것일까? (p.24)  
   
   토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며 좌중을 휘어잡았던 어떤 교수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철학자 한명쯤 언급한다면 상대방으로부터 '오~'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따분하고 실생활에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철학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철학'을 읽고 '교양'을 얻으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교양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철학'을 한번 해보라고 한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철학인데, 과연 우리가 철학을 할 수 있을까?
철학자들은 멀티플레이어, 우리도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철학자들은 그저 철학자였던 것이 아니라 요즘 식으로 말하면 멀티플레이어였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정치가이자 과학자였고, 데이비드 흄은 경제학자였다. 칼 마르크스는 혁명가이자 사회학자였고, 샤를 보들레르는 비평가이자 시인, 프로이드와 융은 정신분석학자, 소쉬르는 언어학자였다. 게다가 이 사람도 철학자였나? 그런 의문이 드는 철학자도 더러 있다.
   즉 자신의 분야에서 더 깊게 파고들고 사고하다 보면, 철학의 세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도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사실 작가가 일본인이라 약간의 걱정이 앞섰는데, 이해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게다가 두 명의 일본인 철학자도 소개하고 있다. 이름은 생소했지만 그들의 사상은 전혀 낯설지 않다.
   
 

"누구든지 화낼 줄은 안다. 그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로, 올바른 때에,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쉬운 일도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p.34)

"마음의 괴로움은 육체의 고통보다 견디기 힘들다. 마음의 목마름은 물을 마셨다고 해서 해갈되지 않는다. 마음의 평온함을 얻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도 따뜻하고 평화롭다. 마음이 선량하면 모든 것이 좋아진다. 마음을 열고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하다. ─ 데카르트 (p.76)

"나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철학하는 것을 가르칠 뿐이다." ─ 칸트 (p.119)

 
   

2008/08/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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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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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작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
   내게 문학상 수상작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읽히지 않는 것들이다. 세계문학상 같은 경우에는 두 작품을 읽고 수준 떨어진다고 규정해 버렸고, 이상문학상은 이상이라는 작가의 내공 덕분에 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 수상작들도 마찬가지일거라고 피해 버렸다. 
   한겨레문학상은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 한 작품이 좋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작품 이후로는 한결같이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제목이 너무 경쾌하다고 해야 할까?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가벼워 보인다. 아마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들이 그런 이야기여서 일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저하게 된다.
(앗, 너무 무거워서 이상문학상은 읽지 않는다더니 이번에는 너무 가벼워서 싫다니. 이 무슨 말인가.)

그래도 중력을 택할거야!
   작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정한아의 『달의 바다』에서 우주비행사가 꿈인 고모가 등장했다. 지난 4월에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했다. 이젠 귀 따갑게 말로만 듣던 우주시대가 아니라 진짜 우주인을 배출한 나라가 됐다. 그녀는 무중력 상태인 우주선 안에서 실험을 하고 라면을 먹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니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중력의 힘을 받으며 살고 싶다. 물론 땅에 발을 딛지 않고 공중을 마음껏 유영하는 자유로움은 좋을테지만 무언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제자리에 머물 수 없는 자유로움, 즉 어지러움은 싫다. 그래서 난 중력을 택할 것이다.

뉴스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엿보다
   하나뿐인 달이 증식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을 보며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세기말부터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던 지구 종말론이 다시 떠올랐고, 달 구경을 간다는 사람, 사실은 무중력자였다고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생겼다. 달의 기운이 세져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변태가 늘어났으며, '우주적 섹스'를 즐기고 바바리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 급기야 만년필로 사람을 찌르는 신종 범죄까지 생겼다.  뉴스는 온통 두 개가 된 달 이야기 뿐이었고, 너도나도 달 마케팅으로 돈을 벌려고 뛰어 들었다. 
   그러다가 달이 두 개에서 세 개, 세 개에서 네 개로 계속 증식하기 시작했다. 처음 달이 두 개가 되었을 때는 온통 달 이야기 뿐이었는데, 이제 달이 여섯 개가 되자 사람들은 차츰 시들시들해지고 달이 두 개가 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곱번째 달이 뜰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원래의 달만 남겨두고 모든 달들이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달이 한 개였던 이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가 버렸다.
   윤고은은 우리 사회에서 뉴스가 어떻게 생성되어 확장의 과정을 거쳐 소멸해 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 가상의 뉴스거리인 달의 증식 대신 실제의 뉴스거리인 광우병 파동을 대입해 보면 얼마나 생생하게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달의 증식'이라는 소재에서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사실은 현실의 이야기이다. 경쾌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나 혹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와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년배이기 때문에 더욱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괜찮아. 위기의 주부들만 있는 게 아니더라구. 위기의 청소년들하고, 위기의 아이들 편도 있던데. 내일 자 기사 제목은 위기의 가장들이라고 예고까지 했어. 결국 모두 다 위기인 거야. 모두 다 위기면, 아무도 위기가 아니란 얘기지. (p.37)

아버지는 늘 '사람은 소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나는 그 말에 떠밀리듯이 아무 구멍이나 찾아 들어갔다. 그 결과 직장을 일곱 번이나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졸업 이후 나를 설명할 만한 소속을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가장 심각한 것은 영혼의 영양실조였다. 바삭바삭 말라가는 영혼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나는 여러모로 노력해야 했다. 50개가 넘는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부였다. … 동호회가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소속된 모임의 수에 비례해서 그만큼 더 지구 밖으로 내팽개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 소외감이었다. (p.72)

무중력증후군은 달이 번식하면서 무중력상태에 있는 듯한 호흡곤란을 느끼는 질병이었다. (p.214)

 
   

 2008/08/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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