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야구 좋아하세요?
   지난 밤, 올림픽 야구대표팀의 한일전 승리로 좀처럼 흥분을 가라 앉힐 수 없었던 나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야구를 좋아하는 와넬님께 받은 이 책이 그대로 책장에 꽂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어느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는지는 지난 2006년 WBC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창 회사가 행사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전경기를, 그것도 실시간 중계로 모두 챙겨 봤다는 것. 처음에는 야구를 특히 좋아하는 상사 한 분 밖에 없었지만, 경기가 거듭되고 우리 대표팀의 선전이 계속되면서 함께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었다. 그렇다고 특히 좋아하는 선수나 팀은 없다. 과거에는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세요!
   작가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982년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했지만 사실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전해 들어서 알 뿐이다. 1982년은 바로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한, 한국 프로야구의 원년(元年)이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격동의 80년대에 일종의 오락거리였던 프로야구의 탄생이라니. 흔히 이 탄생을 두고 3S정책의 하나라고들 한다.
   프로야구 원년의 프로팀은 MBC 청룡,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그리고 삼미 슈퍼스타즈까지 모두 6개 팀이었다. 당시 삼미를 제외한 나머지 5개 팀은 빵빵한 모기업을 등에 업고 스타 선수들을 영입했다.

   당시 중학교 입학을 눈 앞에 둔 주인공 '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을 연고로 하는 삼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친구 조성훈과 함께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하는가 하면, 춘천에서 하는 홈개막전도 놓치지 않고 보러갔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고, 삼촌도, 같은 동네 반장까지 모두 삼미를 응원했다. 
   역시 야구는 기록의 경기였던가. 그들의 응원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삼미는 프로야구 역사상 길이 남을 기록 대행진에 나섰다. 최저 승률, 최다 실점, 최다 연패, 최소 득점, 최소 타점, 최소 수비율, 최다 피안타...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기록 대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연패를 시작하면서 야구 이야기가 줄어들더니 결국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마저 사라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다음해 삼미는 장명부가 30승을 올리며 또다른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시즌을 2위로 마감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눈을 반짝였지만, 그 이듬해인 84년 삼미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삼미의 라이벌은 삼미 밖에 없었다. 82년에 삼미가 세운 기록들을 또다시 갱신하며 연패의 늪에 빠진 것이다. 85년 전기에는 그 연패의 신화를 또 한번 깨며 급기야 전기리그를 끝으로 청보에 매각되어 청보 핀토스가 됐다.
   삼미의 마지막 경기를 보고 온 날 새벽, '나'는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삼미가 최하를 기록한 것은 평범했기 때문이며, 평범한 사람들은 프로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p.130)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신의 소속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최고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최고의 소속을 만들기 위해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나'는 어릴적 추억이 담긴 삼미 슈퍼스타즈의 기념품들을 미련없이 버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삼미를 잊어가고 있던 '나'에게 1998년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일에만 전념하느라 아내에게 신경쓰지 못한 '나'는 이혼을 당하고 실직까지 하게 된다. 이때 어린시절 삼미의 추억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 조성훈이 그를 찾아온다. 여전히 삼미의 기념품들을 간직하고 있는 조성훈과 함께 마지막 팬클럽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삼미가 최하의 성적을 기록했던 것은 그들이 진정한 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야구를 즐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생은 야구, 야구는 인생!
   2006년 월드컵을 등에 업고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2003년 박민규도 그랬냐고? 그렇지 않다. 2003년은 2002년 월드컵의 신화가 후폭풍처럼 몰아치던 때였다. 그 해에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 아니었고 재미있지만 소설의 가벼움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 작품은 수상작이 됐다.
   솔직히 비교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내가 결혼했다』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둘다 인생을 스포츠에 비유하고 있다. 박현욱이 인터넷을 떠도는 축구 이야기를 상황에 맞게 잘 버무려 놓았다면, 박민규는 그 이야기를 완전히 소화해서 자기 식으로 풀어놓고 있다. 그래서 승자를 가린다면, 박민규에게 우승컵을 주고 싶다. 여기서 한가지 밝혀두자면, 개인적으로 야구보다는 축구를 훨씬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박민규에게 우승컵을 안겨 준 것에는 그 어떤 편파 판정도 없었음을 밟혀두고 싶다.

   사실 '가벼움'이 문제라고 했지만 그 가벼움이 전혀 문제되지는 않는다. 가벼우니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이유없이 무턱대고 가볍지는 않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최고가 돼야하는 프로보다 그것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삼미를 더 좋아했던 작가가 치열하고 진중한 글쓰기를 보여줬다면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도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도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 아닐까.

2008/08/17 by 뒷북소녀.

   
  처음 널 봤을 때…… 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투 스트라이트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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