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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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작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
   내게 문학상 수상작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읽히지 않는 것들이다. 세계문학상 같은 경우에는 두 작품을 읽고 수준 떨어진다고 규정해 버렸고, 이상문학상은 이상이라는 작가의 내공 덕분에 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 수상작들도 마찬가지일거라고 피해 버렸다. 
   한겨레문학상은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 한 작품이 좋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작품 이후로는 한결같이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제목이 너무 경쾌하다고 해야 할까?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가벼워 보인다. 아마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들이 그런 이야기여서 일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저하게 된다.
(앗, 너무 무거워서 이상문학상은 읽지 않는다더니 이번에는 너무 가벼워서 싫다니. 이 무슨 말인가.)

그래도 중력을 택할거야!
   작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정한아의 『달의 바다』에서 우주비행사가 꿈인 고모가 등장했다. 지난 4월에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했다. 이젠 귀 따갑게 말로만 듣던 우주시대가 아니라 진짜 우주인을 배출한 나라가 됐다. 그녀는 무중력 상태인 우주선 안에서 실험을 하고 라면을 먹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니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중력의 힘을 받으며 살고 싶다. 물론 땅에 발을 딛지 않고 공중을 마음껏 유영하는 자유로움은 좋을테지만 무언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제자리에 머물 수 없는 자유로움, 즉 어지러움은 싫다. 그래서 난 중력을 택할 것이다.

뉴스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엿보다
   하나뿐인 달이 증식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을 보며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세기말부터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던 지구 종말론이 다시 떠올랐고, 달 구경을 간다는 사람, 사실은 무중력자였다고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생겼다. 달의 기운이 세져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변태가 늘어났으며, '우주적 섹스'를 즐기고 바바리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 급기야 만년필로 사람을 찌르는 신종 범죄까지 생겼다.  뉴스는 온통 두 개가 된 달 이야기 뿐이었고, 너도나도 달 마케팅으로 돈을 벌려고 뛰어 들었다. 
   그러다가 달이 두 개에서 세 개, 세 개에서 네 개로 계속 증식하기 시작했다. 처음 달이 두 개가 되었을 때는 온통 달 이야기 뿐이었는데, 이제 달이 여섯 개가 되자 사람들은 차츰 시들시들해지고 달이 두 개가 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곱번째 달이 뜰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원래의 달만 남겨두고 모든 달들이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달이 한 개였던 이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가 버렸다.
   윤고은은 우리 사회에서 뉴스가 어떻게 생성되어 확장의 과정을 거쳐 소멸해 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 가상의 뉴스거리인 달의 증식 대신 실제의 뉴스거리인 광우병 파동을 대입해 보면 얼마나 생생하게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달의 증식'이라는 소재에서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사실은 현실의 이야기이다. 경쾌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나 혹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와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년배이기 때문에 더욱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괜찮아. 위기의 주부들만 있는 게 아니더라구. 위기의 청소년들하고, 위기의 아이들 편도 있던데. 내일 자 기사 제목은 위기의 가장들이라고 예고까지 했어. 결국 모두 다 위기인 거야. 모두 다 위기면, 아무도 위기가 아니란 얘기지. (p.37)

아버지는 늘 '사람은 소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나는 그 말에 떠밀리듯이 아무 구멍이나 찾아 들어갔다. 그 결과 직장을 일곱 번이나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졸업 이후 나를 설명할 만한 소속을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가장 심각한 것은 영혼의 영양실조였다. 바삭바삭 말라가는 영혼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나는 여러모로 노력해야 했다. 50개가 넘는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부였다. … 동호회가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소속된 모임의 수에 비례해서 그만큼 더 지구 밖으로 내팽개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 소외감이었다. (p.72)

무중력증후군은 달이 번식하면서 무중력상태에 있는 듯한 호흡곤란을 느끼는 질병이었다. (p.214)

 
   

 2008/08/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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