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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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클래식은 그저 배경음악일뿐?
   세계가 낳은 지휘자, 위대한 지휘자 누구 누구라는 수식어를 보면서 지휘자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지휘라고 하면 학창시절 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그저 애국가 박자에 맞춰 팔만 휘젓던 것 밖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지휘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었고 정작 위대한 것은 연주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뒤집어 준 것이 바로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통해 그저 관객들 앞에서 팔만 휘젓는 것이 아닌 지휘자의 진짜 역할을 봤다.
   사실 미니멀한 연주곡은 좋아하지만, 클래식은 별로다. 듣긴 하지만 솔직히 지루하고 재미없다. 유행가처럼 가사가 있어 따라 부를 수도 없고, 몇 번 교향곡인지 제목도 헷갈리고, 교향곡과 협주곡, 실내악, 오케스트라의 차이도 모르겠다. 내게 클래식은 그저 배경 음악일 뿐이다. 책을 읽거나 일을 할 때는 가사가 있는 노래보다는 조용히 흐르는 음악이 좋을 뿐이다. 시끄러운 것은 싫지만 정적 또한 싫을 때 역시 클래식이 좋다. 좋아하는 음악가도 있고, 즐겨듣는 곡도 있지만 클래식 자체를 즐기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무언가를 위한 배경 음악일 뿐이다.

알고 들으면 재밌는 클래식!
   하지만 클래식을 알고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곡은 어떤 음악가가 썼으며 그의 생활은 어떠했다, 혹은 이 몇 번 교향곡은 제목이 따로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왜 그것이 제목인지 알 수 있다, 또는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 뒤로 흐르던 음악이었거나 어떤 CF에 등장하는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 음악에 대한 이야기거리가 생기니 지루하지도 않고, 누군가 그 음악에 물어올 때 들려줄 이야기도 생긴다.
   그런데 솔직히 그것을 알아간다는게 쉽지 않다. 언제부터의 음악을 클래식이라고 해야할지, 누구의 음악부터 들어봐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관련 서적을 찾아본다고 해도 어렵지 않을까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결혼하면 누가 태어날까? 모차르트? 베토벤? 정답은 음악이다. 그런데 헨델도 남자인데, 왜 우리는 그를 음악의 어머니라 부르는걸까? 그것은 바흐의 음악이 남성적인데 비해, 헨델의 음악은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을까? 바로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에 나오는 이야기다. 
  괴물이라는 별명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은 이렇게 쉽고 재밌는 이야기부터 들려준다. 독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지 않도록 말이다. 그럼, 쉽고 재밌는 이야기만 들려주고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조윤범의 나같은 문외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클래식의 시작부터 현대음악까지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무슨 파가 등장하면 어렵고 지루할 수 밖에 없는데, 그가 설명하는 고전파와 낭만파의 이야기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리고 왜 다들 베토벤을 외치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된다. 최근 재평가되고 있는 윤이상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클래식을 듣는 재미가 솔솔할 것이다. 이야기가 풍부해질 것이다.

   최근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클래식이 바이러스처럼 대중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클래식은 처음부터 대중들을 위한 음악이었다. 단지, 오늘날처럼 당시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했을 뿐이다. 클래식, 처음부터 우리를 위한 음악이었으니 어려워하지 말자. 지금부터는 당신의 MP3 플레이어에 클래식도 한번 넣어보라!

2008/11/0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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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네버랜드 클래식 24
L. 프랭크 바움 지음,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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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어릴적 읽었던 동화 가운데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동화 있으세요? 책장 속에 꽁꽁 숨겨두고 일상에 지칠 때면 꺼내어 보는 동화는 있으세요? 물론 제게는 그런 멋진 동화가 한 편 있답니다. 회오리 바람 때문에 얼떨결에 오즈의 나라로 모험을 떠나는 도로시와 그 친구들이 바로 제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만나는 아주 특별하고 멋진 친구들이랍니다.   

   어릴적 제가 읽은 『오즈의 마법사』는 꿈과 모험이 가득한 동화였어요.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한번쯤 회오리 바람이 몰아쳐 주기를 바랐죠. 비가 내린 후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며 무지개를 찾기도 했답니다. 노래 덕분일까요? 왠지 무지개 너머엔 오즈의 나라가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제게도 그런 멋진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거라 믿었죠.

   그런데 어른이 되어 완역본으로 다시 접한 『오즈의 마법사』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어릴적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즈의 마법사』가 꽤 잔인한 동화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공주나 요정이 등장하는 비슷비슷한 동화가 싫었던 작가 프랭크 바움은 어린이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여느 동화들과는 다른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잔인한 면이 없지 않아요. 도로시가 타고 온 집이 못된 마녀를 깔아 죽이는 장면(p.25)과 인간 나무꾼이 양철 나무꾼이 된 사연(p.65), 겁쟁이 사자가 흉측한 짐승들을 죽이고(p.91) 나무꾼이 도끼로 내리치는 장면(p.112) 등이 바로 그것이죠.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장면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면 상당히 잔인해요.

   또, 어릴적에는 그저 모험을 동경하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또다른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것은 아무리 여행이 좋고 설레어도 집이 최고라는 사실입니다. 
   도로시는 강아지 토토 말고는 웃을 일이 거의 없었어요. 도로시에게는 따분한 풍경과 시시한 일상만이 되풀이됐죠. 그러다가 우연찮게 모험을 나선 도로시는 새로운 풍경을 접하고, 멋진 친구들도 만나게 됩니다. 못된 마녀를 죽인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도로시를 환영하죠. 그러나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원합니다. "내 진정 쉴 곳은 내 집 뿐이리"라는 노래 가사도 있듯이, 도로시에게도 가장 편한 곳은 집이었을거예요.   

   뿐만아니라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 여행의 진정한 의미도 되새길 수 있어요. 
   머리가 텅 비어 두뇌를 갖고픈 허수아비와 따뜻한 마음을 갖고픈 양철 나무꾼, 용기가 필요한 겁쟁이 사자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에게 그것을 얻기 위해 도로시와 함께 모험을 떠나요. 그들은 이 모험을 통해 자신들을 발견하게 돼죠. 모험에서 허수아비는 위기 때마다 지혜를 발휘했고, 사자는 용기있게 나섰습니다. 양철 나무꾼은 자신의 몸이 녹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사실 그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갖고 있었던거죠.

   동화책을 펼쳐 들고 있다보면 이상한 시선을 느낄 때가 종종 있어요. 동화는 어린이들만 읽어야 하나요? 우리 어른들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만 읽어야 하나요? 절대 아니예요. 어릴적 읽었던 동화를 요약본이 아닌 완역본으로 한번 읽어보세요. 분명 어릴적에는 몰랐던 동화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거예요.


"너한테는 두뇌가 필요 없어. 너는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날마다 무언가를 배우고 있어. 갓난 아기는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아는 게 별로 없지. 지식을 가져다 주는 건 경험뿐이란다. 네가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경험을 쌓게 될 거야." (p.216)



"너는 이미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어. 다만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너한테 필요한 건 자신감이야. 위험이 닥쳤을 때 두려워하지 않는 동물은 없단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워하면서도 위험과 맞서는 거야. 그런 용기는 너도 충분히 가지고 있어." (p.216)


2008/10/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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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파바로티 - 신화가 된 마에스트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삶과 열정
알베르토 마티올리 지음, 윤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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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로티, 그의 삶을 엿보다!
   엄청난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의 루치아노 파바로티. 성악은 모르지만 그의 한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페라는 낯설지만, 그가 부르는 레퍼토리는 귀에 익을 것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성악의 대중화에 기여한 그의 이름은 신화가 됐고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천상의 목소리를 타고난 그가 천상으로 돌아간지 1년이 지났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는 행운아였다. 그의 아버지는 빵공장 직원이자 아마추어 성악가였다. 비록 그의 집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어릴적부터 음악을 듣고 자랄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로부터 멋진 목소리를 물려 받았고, 훌륭한 스승을 두었다.
   사실 파바로티는 성악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몇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악보를 읽을 줄 몰랐다. 그의 악보에는 자신만의 언어로 곡을 설명한 메모들이 가득있다. 또한 암기력도 그다지 좋지 않아 두 명의 프롬프터와 지휘자가 가사를 불러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로 인해 그는 많은 레퍼토리를 가질 수 없었다. 빅 파바로티라는 별명을 갖게 해준 그의 엄청난 거구는 성량을 풍부하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연기를 하는데 방해가 됐고, 말년에는 지독한 신경통을 가져왔다.
   그런 그가 세계 최고의 테너 자리에 오른 것은 타고난 목소리와 실력도 있었겠지만, 운도 뒤따라야 했을 것이다.
   그에게 이런 행운이 뒤따랐던 것은 낙천적인 성격 탓일지도 모른다. 안개가 많은 영국이나 추운 독일과는 달리 이탈리아는 일조량이 많아 이탈리아인들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이고 활달하다고 한다. 파바로티는 그런 전형적인 이탈리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낙천적인 성격은 매력적이지 못한 외모보다 더 돋보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싸게 된다. 특히,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를 거쳐간 많은 비서들이 그의 연인이 되었고, 급기야 말년에는 자신보다 35살이나 어린 비서와 결혼해 딸까지 낳게 된다. 덕분에 그는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물론 그에게 성공만 뒤따랐던 것은 아니다. 그는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해 흥행 실패를 맛 봤고, '쓰리 테너'와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은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뒀지만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말년이 돼서는 립싱크를 하다가 들통나고, 공연 중 실수를 하거나 마무리를 하지 못했으며, 공연을 취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에게는 행운이 뒤따랐다. 많은 스캔들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그를 원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내가 읽고자 했던 것은 파바로티의 '삶과 열정'이었다. 저자는 파바로티의 장점과 약점을 모두 이야기해 균형있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흥미 위주로만 구성돼 있다. 그가 행운아라고 느꼈던 것은, 성악가가 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의 열정도 어느 정도 반감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아쉬움은 남았지만, 성악가로서의 그의 모습 외에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008/10/1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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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랜덤 - 마법에 걸린 떠돌이 개 이야기
J.R.R 톨킨 지음,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 엮음, 박주영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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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의 상상력은 어린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됐다!

   아끼던 강아지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를 달래기 위해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아빠가 있다면 그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행복을 줄 수 있는 그 아빠도 얼마나 행복할까?
   『반지의 제왕』으로 판타지 문학의 제왕이 돼버린 톨킨과 그의 아들이 바로 이 행복한 사람들이다. 톨킨은 강아지 인형을 잃어버려 슬퍼하는 아들에게 매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마법에 걸려 강아지 인형이 된 강아지가 마법에서 풀려나 진짜 강아지가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 강아지는 지상과 달을 오가는 우편배달부인 갈매기를 타고 달나라로 떠나기도 하고, 달에서 아이들의 꿈을 만드는 달 사나이를 만나기도 한다. 또 자신을 강아지 인형으로 만든 마법사를 찾아 인어들이 살고 있는 바다 속으로 떠나기도 한다.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며 모험을 하는 이 강아지의 이름이 바로 '로버 랜덤'이다. '로버'는 떠돌이, '랜덤'은 무작위! 그야말로 이 강아지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인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톨킨이 완성한 작품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엮은 크리스티나 스컬과 웨인 G. 해몬드가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여기저기 써놓은 이야기를 찾아 완성한 것이다. 사실 나도 그렇지만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다른 이가 그것들을 짜맞춰 내놓은 것이라면 원작자의 의도대로 쓰여졌다고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상당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엮은이들의 설명은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야기를 엮었다는 설명은 필요하겠지만, 만약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나같은 어른이 아닌 톨킨의 아들처럼 어린이라면 설명에 주석까지 달린 이야기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반지의 제왕』처럼 스펙터클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톨킨의 아기자기한 상상력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게다가 톨킨이 직접 그린 원화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아주 훌륭한 그림은 아니지만 아들을 위해 그림까지 그리는 아빠의 정성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2008/10/1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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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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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인생의 반전은 지금부터야!
   어른이 되면 분명 난 훌륭한 사람이 될거라고 믿었다. 다행히 성적도 좋았고, 머리도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난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아이였는데, 이건 모두 내 탓이 아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이고, 바로 전해까지만 해도 인기있던 전공이 비인기 전공으로 전락했기 때문이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내가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야. 내 선택에 대한 어긋난 결과를 그렇게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탓이 아니기 때문에, 그 탓들은 모두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현실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안주하며 살고자 했다.

   이런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 녀석이 있다. 이 녀석은 하늘로 쭉쭉 뻗은 가지를 자랑하는 백양나무의 곁가지로 태어나, 마찬가지로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백양나무로 성장할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 백양나무 근처에서 농사를 짓던 남자가 소를 길들이기 위해 이 곁가지를 꺾은 것이다. 곁가지에서 회초리가 된 것이다. 만약 남자가 소를 내리친다면 그나마 폼은 나지 않지만 유지하고 있던 회초리의 생명마저 끝날지도 모른다. 다행히 소를 내리칠 일은 생기지 않았다. 한편, 이 남자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 재희는 아버지가 드실 참을 들고 가끔씩 이곳으로 온다. 재희를 좋아하는 곁가지는 그날 오후 우연히 재희네 집 사리문에 자리잡게 된다. 같은날 밤, 곁가지는 다시 회초리가 돼 좋아하는 재희의 종아리를 내리치게 됐다. 게다가 몸도 마음도 모두 아픈 곁가지를 재희의 아버지가 측간으로 가져가 똥을 휘젓는 것이다. 백양나무가 돼야 하는데, 결국 똥친 막대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곁가지의 잘못이 아니다. 곁가지는 나처럼 남의 탓만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곁가지에게 반전이 찾아온 것이다. 재희는 자신을 괴롭히던 동네 아이들에게 똥친 막대기가 된 곁가지를 흔들며 그들을 몰아냈다. 순식간에 재희를 구해낸 용감한 곁가지가 됐지만, 또다시 내버려지게 된다. 게다가 비까지 내려 곁가지는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비가 내리고 곁가지가 머물게 된 곳은 다행스럽게도 백양나무의 뿌리는 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결국 곁가지는 백양나무가 된 것이다.

   사실 내게도 백양나무와 같은 반전이 찾아왔다. 좌절의 바닥까지 맛본 후, 의외의 곳으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릴적 생각했던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먼훗날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때론 동화 한 편이 어느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현재 지치고 힘들더라도 좌절하지 않기를. 언젠가는 분명 자기 인생의 반전이 찾아올 것이다. 나와 백양나무 곁가지처럼.

2008/10/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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