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후회남
둥시 지음, 홍순도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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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계세요?
   우리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을까? 타야할 버스를 눈 앞에서 놓쳤는데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릴까, 아님 다른 버스를 타고 갈까? 버스 타고 가는 동안 잠시 눈을 붙일까, 아님 책을 읽을까?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읽지? 등등 매순간이 선택의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선택들을 하면서 여러분들은 얼마나 만족하며 살아가는가? 여기 매순간이 후회로 얼룩진 한 남자를 소개한다. 

입방정과 후회로 얼룩진 한 남자의 이야기, 미스터 후회남!! 

내가 제일 무서운 건 다른 게 아니야. 바로 몹쓸 놈의 네 입이야. 어떤 일은 말이 새어나가는 즉시 문제가 생겨.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된다고. 알았어? (p.56)  

   어머니가 쩡광셴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쩡광셴은 한마디로 입이 방정인 사람으로, 그는 말 한마디로 많은 것들을 잃었다.
   쩡광셴이 15살이던 해는 문화대혁명으로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뒤바뀐 시대였다. 쩡광셴의 집안은 자본가 계급으로, 다행히 쩡광셴의 할아버지가 먼저 재산이 창고를 정부에 헌납한 덕분에 한때 자신들의 하인이었던 집안 사람들과 함께 창고에서 살게 됐다.
   사건의 발단은 창고 앞에서 벌어진 개 두마리의 짝지기였다. 이것을 지켜본 쩡광셴의 아버지는 분출되는 욕구를 참지 못해 지난 10년간 관계를 거부해 온 아내 대신 한때 하인이었던 집안의 딸 자오산허와 관계를 맺는다. 이를 본 쩡광셴은 자신의 어머니와 선생이 된 자오산허의 오빠에게 말한다. 덕분에 쩡광셴의 아버지는 비판 투쟁대회에 끌려가 운신을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서 오고, 자오산허는 기관사에게 시집을 간다. 한편, 동물원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원장에게 추행당하는 모습을 쩡광셴에게 들켜버리자 호랑이에게 몸을 던져 자살한다. 여동생 쩡팡은 어머니가 죽자 행방을 알 수 없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머니 대신 동물원에서 일하게 된 쩡광셴은 동료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은 동료가 좋아했던 장나오를 강간했다는 혐의로 10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출옥 후에는 자신이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옥바라지를 해주며 10년을 기다렸던 류샤오옌 대신 장나오와 결혼한다. 하지만 장나오는 쩡광셴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배신의 칼날만 겨눴다. 
   그러던 중, 다시 시대가 바뀌어 쩡광셴 가족의 재산인 창고를 돌려 받게 된다. 창고의 시세는 쩡광셴 가족이 다 먹고 쓸 수 없을만큼 올라 있었지만, 쉰이 넘은 쩡광쎈은 여전히 가난하고, 아이도 없고, 결혼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셰익스피어 안마'에서 안마를 해주는 아가씨에게 하고 있다. 쉰이 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가족이나 친구 한명 없다니, 한심함을 뛰어넘어 안스럽기까지 하다. 

   쩡광셴이 평생 가장 원했던 것은 "성욕"이었다. 그러나 어릴적 아버지의 사건을 계기로 마음대로 분출할 수가 없었고, 이 성욕 때문에 후회할 일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쉰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쩡광셴은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록 성욕으로 표현되기 했지만, 사실 쩡광셴이 가장 원했던 것은 남들처럼 어엿한 가족을 꾸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쩡광셴처럼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때론 그것을 자제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플러스가 되는 것이라면 후회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해놓고 하는 후회보다 하지 못해서 하는 후회가 더 크다"고 했다. 부디 쩡광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후회라는 것은 집 앞을 다 봤는데도 불구하고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집을 못 보는 것과 같아요. 또 집으로 가는 길이 가까운데도 일부러 빙빙 돌아 쿠바까지 가는 것과 같다고요. 더 말할가요. 후회는 자기가 다 지은 집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일과 같아요. 여자의 몸 위에 올라가자마자 사람들에게 붙잡히는 것과도 같죠……. (p267) 

별 볼일 있는 작가 둥시(東西)를 소개합니다! 
   둥시(東西)는 작가의 필명으로 중국어로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 별 볼일 없는 것"을 뜻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된 둥시의 작품은 『언어 없는 생활』과 『미스터 후회남』 두 편 뿐이지만, 작품마다 자신만의 문체로 중국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그려내는 중국의 모습은 우울하고 답답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측은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해학과 유머가 넘친다. 
   '둥시'라는 그의 필명과는 달리, 그는 중국 문단계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한다. 어느 작품이든 상관없으니 한번만 읽어보라. 그의 필명은 역설적인 표현임을 알게 될 것이다.

09-02. 『후회남』 2009/01/0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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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s 더 뉴스 -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
쉐일라 코로넬 외 지음, 오귀환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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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기능에 대해
   언론의 기능 중에는 게이트키핑( gate keeping)과 의제 설정(agenda-setting)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게이트키핑은 다수의 뉴스거리 중에서 편집권이 있는 사람이 취사 선택해서 보도하는 것을 말하며 의제 설정은 선택한 뉴스거리 중에서 어느 것을 중점적으로 다뤄 이슈로 만들 것인가를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여론 조작, 왜곡 보도 등의 역기능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의 공정성 혹은 공익성이 무엇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최근의 방송법 개정 반대 파업 및 시위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이해관계도 존재하지만.)
   그렇다면, 이러한 언론의 역기능은 비단 우리 언론만의 문제일 것인가? 그렇지 않다. BBC, CNN 등으로 대표되는 서구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다. 서구 언론들의 관심사는 그들이 몸 담고 있는 나라 안에 존재할 뿐이다. 지구의 어느 귀퉁이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의 일 같은 건 당연히 관심 없을 수 밖에.
   그 단적인 예로 1999년에 있었던 미군의 코소보 대공습과 콜롬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들 수 있다. 1999년 4월 20일, 미국의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이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사망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1시간 전,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군의 코소보 대공습을 발표했다. 당시 콜롬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은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서도 연일 보도된 반면, 미군의 코소보 대공습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지금도 한번 두 사건을 검색해 보라! 콜롬바인 총기 난사 사건에 비해 코소보 대공습에 대한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사실 미군의 코소보 대공습을 알게 된 것도, 몇년 후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롬바인》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였다.
   전세계에 뉴스를 공급하는 4대 통신사는 물론 세계 대표 언론사들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 적을 두고 있으니 그것을 제공받아 뉴스를 제공하는 각국의 언론들도 서구의 입맛대로 재편될 수 박에 없다. 

아시아의 눈으로 아시아를 바라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서구 언론들은 자국과 이해관계가 있을 때만 뉴스의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자국과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의 내전이나 쿠데타, 부정부패 등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그것뿐이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구 언론들은 그들의 관점으로 뉴스들을 재해석하고 왜곡한다. 뒤늦게 그것이 보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됐을 때는 오랫동안 탐사 취재해 온 지역 기자들의 기사를 가로채기도 한다.
  『더 뉴스』는 아시아 기자로서 사명을 다하고자 했던 기자 9명의 취재기가 담겨 있다. 자국의 발전 혹은 자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뛰어다녔던 그들은 권력 뿐만 아니라 서구의 거대 언론과도 맞서야 했다. 때론 짓밟히고 생명의 위협도 느꼈지만 그들은 절대 굴하지 않았다. 그들의 취재기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서구 언론들이 재해석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같은 아시아인인 우리들도 이러할진대 서구인들은 오죽할까. 

   요즘처럼 언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사주의 입장과 나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으며 거북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아무런 액션을 취할 수가 없다. 그저 소리 놓여 반대하고 있는 그들에게 소심한 응원을 보낼 뿐이다.


"확인할 수 없는 뉴스나 객관성 없는 보도가 언론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사실'에 자신 없는 건 보도하지 않는 게 결국 이기는 길이다." (p44) 

"기자란 직업은 아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있게 하는 것." (p224)


09-01. 『더 뉴스 :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 2009/01/0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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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
김현진 지음 / 해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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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이맘때만 되면 괜스레 우울해진다. 아마도 20대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는 잘 읽지도 않던 책으로부터 위로라도 받아야 힘을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꼭 일년만에 다시 펼쳐든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 분류된다. 그러나 저자 김현진은 당돌하게 자기 계발서 같은 건 읽지 말고 진짜 자기 계발을 하라고 한다. 도대체 이 당당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라기보다는 20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여자의 삶이 담긴 에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 김현진은 80년대 초반에 태어나 온갖 좌절과 산전수전을 겪으며 20대를 살아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엄친아가 아닌 예쁘지도 잘나지도 않은 그녀의 이야기만 읽고 있을 뿐인데, 힘이 솟고 용기가 난다. 무엇 때문일까?
   따지고 보면 그녀 또한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에게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아무리 발버둥치며 살아도 경제적으로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 일상, 수술비 300만원을 구할 길이 없어 좌절하고 그나마 실업급여라도 받고 있어서 다행인 그녀. 
   그래, 나도 그녀와 같았어!
   어떤 이들은 몇 푼 안되는 실업급여라고 했지만 나에겐 위안을 주는 큰 돈이었고, 낮밤도 휴일도 없이 일을 해도 겨우 88만원 세대일 뿐인데... 그런 사람이 나말고 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문득 얼마전 세상을 떠난 작가 이청준님의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인 중의 한분이 이청준님께 해주신 말이라고 한다. 

"자신만이 그 어려운 어둠 속 길을 가지 않고 다른 수많은 사람도 각기 자신의 어둠 속 산길을 외롭고 힘들게 가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은 우리 삶의 길에 대한 근본적 이해뿐 아니라, 그 각각의 독행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이냐. 네 소설은 적어도 그것을 할 수 있다."  (「귀항지없는 항로」, p280)    그렇다. 꼭 "힘내!"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녀의 이야기는 20대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어야 하고, 언젠가는 나아질거라며 긍정적인 사고로 '화이팅'해야 한다고 말하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힘들면 울어도 되고, 애써 '화이팅'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들을 토닥여 준다. 

내가 유일하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슬퍼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슬퍼할 권리는 내가 유일하게 행사 할 수 있는 권리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온전한 권리입니다. (p. 41) 

몸은 자는 동안 자라고 마음은 고독한 동안 자라고, 고독한 시간이야말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회이고 쌩얼의 자신을 만날 기회이니까요. 고독해서 마음이 괴로우면 마음의 평수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외로워보지 않은 사람, 고독해 보지 않은 사람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깊이는 또 얼마나 있겠어요. 그러니 외로워서 힘들고 마음이 아프면 잘되고 있어, 하고 생각하세요. 잘되고 있어, 내가 자라고 있구나, 이 시간 동안 내 안에서 뭔가 좋은 것이 자라날 거야, 하고 말이에요. (p.148~149) 

책 보면서 버티면 훨씬 나아요. 자기계발서나 성공을 위한 처세학, 연애 비결이나 돈 모으는 비결 같은 실질적인 거 말고 뜬끔없는 책을 읽어보는 거예요. (...)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단 하나 있으니 그게 품위입니다. 품위를 살 수 있는 것은 단지 노력입니다. 인생에 대해 더 알려고 하는 의지, 세상이 원래 슬프고 불공평하다는 것을 아는 사색, 그 슬픔에 공명하는 연민과 사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 그런 게 있고 그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 팔자에 대한 한탄은 대폭 감소했어요. 그리고 관용과 사색은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p. 271)

2008/12/3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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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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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두번째 특별판 연애소설
   2,30대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완소 작가 김연수.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모 광고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해 펴낸 특별판이다. 그의 특별판은 지난 1997년에 펴낸 『7번 국도』에 이어 두번째로, 올해 세번째 특별판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특별판에는 항상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등장한다고 한다. 이번 특별판에는 선영과 그녀를 사랑했던 진우, 친구의 연인과 결혼한 광수가 그 주인공이다. 
   진우보다 먼저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까지 줄곧 그녀만 사랑해왔다는 광수는 결혼식날 그녀가 들고 있는 부케 속 부러진 팔레노프시스를 보며 의혹을 키운다. 지금도 진우가 선영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영과 진우의 사이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꿈틀대기 시작한 광수의 의혹은 질투를 등에 업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광수가 혼자서 속으로 삭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술의 힘을 빌린 광수는 진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진우는 광수의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일 뿐인데, 사랑과 늘 함께 찾아오는 질투는 그 사랑을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까지 한번도 광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선영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광수의 입에선 이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의 연애관을 가볍게 풀어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문화를 차용해 무겁지 않게 들려주고 있다. 그동안 그의 진중함 때문에 만나기를 망설였던 사람이라면 서슴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예쁜 우리말  사랑은 여전하다. 젊은 작가이면서도 어쩜 그리 고운 우리말들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지,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p.64)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p.116)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가?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p.139)


2009/01/0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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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지혜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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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지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쓰면 쓸수록 욕심나고, 읽으면 읽을수록 만족하지 못하는게 글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이만큼 써내는 것도, 이런 생각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된다.
   특히 내 글에는 감정이 없다. 단순히 사실만 요약하고 있을 뿐이다. 직업적인 탓이라며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남들처럼 감동을 주는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김훈 작가를 존경한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으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고 가슴 울리는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지 않았는가. 그에 비하면 나는 고작 얼마되지 않는 경력을 가지고 직업 탓을 운운하며 감정없는 글을 쓰는 자신을 변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욕심 탓에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글쓰기 방법을 자주 엿보곤 한다. 『창조적 글쓰기』의 작가 애니 딜러드는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사실 나는 퓰리처상 수상작들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녀의 작품이 한 권도 번역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글쓰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 책을 읽은 한 독자는 그녀에게 "낚였다"고 했다. 그 독자의 말에 나 또한 공감한다. 솔직히 말하면, '글쓰기의 지혜' 같은 건 없다. 글쓰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썼던 글을 몇 번씩 읽어보고 지우고, 다시 고쳐쓰는게 비단 그녀만이 겪는 시행착오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그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노하우를 들을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인지, 나는 그녀에게서 어떤 노하우도 들을 수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글쓰기의 지혜'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창작의 귀재라 불리는 토마스 만은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하면서 하루에 한 쪽씩 글을 썼다고 한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도 매일 8시간씩 글을 썼다고 한다. '글쓰기의 지혜'란 그저 열심히 쓰는 일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글 쓰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매번 즉시 그것을 모두 써 버리고, 뿜어내고, 이용하고, 없애 버리라. 책의 나중 부분이나 다른 책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뭔가를 남겨두려는 충동은 그것을 지금 다 써먹으라는 신호이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p111)

2009/01/0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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