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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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히말라야 산골 마을에 78개의 학교를 지었습니다!

   히말라야 산골 마을에 78개의 학교를 지은 사람이 있다. 그는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희생 정신이 투철한 사람도 아니다. K2 등정에 도전했다가 조난 당한 산악가일 뿐이다. 그레그 모텐슨, 미국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며 등정에 도전했던 그는 무슨 사연으로 멀고 먼 히말라야 산골 마을에 학교를 짓기 시작했을까?

   1993년 그레그 모텐슨은 어린 여동생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히말라야 다음으로 힘들다는 K2 등정에 나선다. 그러나 그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정상 등정에 실패하고 조난을 당한다.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는 그를 구한 것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코르페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코르페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모텐슨은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해 글조차 읽을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어한다. 그들의 소원은 바로 아이들에게 학교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코르페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모텐슨은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아무리 산골 마을에 짓는 것이라고 해도 학교를 지으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병원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 그에게 그런 큰 돈이 있을리가 없다. 그는 580여명의 유명인사들에게 도움의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단 한 명뿐이었고, 그 후원금은 학교를 짓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렇게 답이 보이지 않던 즈음에,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한 공학자로부터 후원을 받게 된다.

   겨우 돈을 모아 다시 히말라야 산골 마을로 돌아가지만, 현지 상황을 모르는 모텐슨에게는 자재를 구입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학교가 필요한 곳은 코르페 마을 외에도 많았고, 그 사람들을 뿌리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자재를 싣고 코르페 마을에 도착한 그는 또 한번 무너지고 만다. 학교가 필요하다고 해서 학교만 달랑 지으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지으려면 코르페 마을을 드나드는 다리부터 있어야 했다. 

   모텐슨은 1995년 부랄두 다리를 완성했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코르페 학교를 지었다. 그 후 지금까지 모두 78곳에 학교를 지었다. 그동안 그가 겪은 어려움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2001년 9ㆍ11테러로 인해 반이슬람과 반미주의가 퍼지면서 생명이 위협받기도 했다.  

발티스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우리 방식을 존중해주어야 하네.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닥터 그레그,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우리는 교육을 못 받았을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라네. 우리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고 또 살아남을 사람들이야. (p.2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기부나 공헌 활동으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텐슨도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들이 마시는 차 조차 거북해서 피하려고 했던 그였지만, 코르페 마을의 촌장인 하지 알리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무엇보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며, 그들의 가족이 되려고 했다. 그런 노력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가 이룬 결과들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자주 접한다. 만약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모텐슨처럼 헌신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에 대해 선입견은 가지지 말아야겠다.

09-36. 『세 잔의 차』 2009/03/2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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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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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말하다!
   내가 중학생 때, 우리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무렵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는 막 개발을 시작한 곳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늘 땅을 밟고 살다가 이른바 로얄층으로 불리는 높은 층에 살게 되니 일단 시야가 탁 트여서 좋았다. 멀리 보이는 공원과 알록달록 불빛으로 장식하고 있는 타워는 마치 우리집 안마당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해가 다르게 생겨나는 고층 아파트들로 그 좋았던 전망이 가려진 것이다. 더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우리 가족은 그곳을 떠났다. 그곳의 답답함이 싫어 떠났는데, 주거 지역은 어딜가나 온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10년 넘도록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이내 그곳의 편리함이 그리워졌다. 
   어딜가나 보이는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들, 외국에서는 서민들의 주거공간이라는 이 아파트가 이 땅에는 언제부터 들어서게 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토록 아파트에 열광하며 목 매다는 것일까?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 교수가 사회ㆍ문화적 관점에서 아파트를 다룬 『아파트에 미치다』를 펴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아파트의 역사와 변화, 한국만의 독특한 아파트 문화  등을 재밌게 풀어쓰고 있다.
   뭔가 떨어지고 분리돼 존재하는 주거공간을 의미하는 아파트의 어원은 불어의 아파르트망(appartement)으로 알려져 있다. 아파르트망은 원래 궁전이나 대저택 안의 독립적인 생활공간을 의미하는데, 프랑스혁명 이후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대저택을 새로 성장한 도시중산층이 아파르트망별로 나눠 살기 시작한 것이 아파트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조선조가 무너지면서 한양의 사대부가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p.20)
   그러나 아파트가 이 땅에 정식으로 들어선 것은 1930년이었고, 한국인을 위한 것이 아닌 일본 미쿠니상사의 직원 관사였다고 한다. 한국인을 위해,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1956년 서울 중구 주교동에 들어선 중앙아파트이다. 이후 주택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아파트는 그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아파트의 시작은 서민들의 주거공간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정작 서민들에게는 아파트를 사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아파트는 강남불패 신화를 등에 업고 부동산 시장의 샛별로 떠올랐다. 더이상 아파트는 서민들의 주거공간이 아니다. 게다가 주택이나 땅처럼 이것저것 묻거나 따져볼 필요도 없이 어느 아파트 몇 동인지만 알면 아주 편리하게 그 아파트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뿐만아니라 어떤 이들은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만 이야기해도 눈빛이 달라진다.  

공과대학의 도시공학과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이나 역사 같은 인문학을 배우는 것이 좋다. 도시를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주민의 장래가 결정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 p86) 

   이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머리말이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우리나라 학자들의 대부분이 계급구조, 세계체제, 국제관계, 민족문제 등과 같은 큰 주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며, 자신은 반대로 소소한 일상이나 주변의 생활세계로 눈길을 돌려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저자는 너무 미시적인 관점으로 아파트를 파악하고 있다. 디테일한 것도 좋지만,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아파트 문화로 사회학을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또, 저자는 마지막 장을 통해 '아파트와 미래 한국'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아파트 문화만 이야기할 뿐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 저자 말처럼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적어도 독자들이 대안을 떠올릴 수 있게끔 해야하지 않았을까.

09-33.『아파트에 미치다』 2009/03/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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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출판 - 북페뎀 09
강주헌 외 21명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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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번역출판의 현실 - 출판계, 번역가, 독자 모두의 몫!

   며칠전 한 신문에 실린 지난해 "교보문고 판매량 베스트 100 목록"을 봤다. 100위 안에 든 외국 문학은 모두 14권이었고, 한국 문학은 10권이었다. 비록 황석영, 신경숙 등의 몇몇 작가가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고해서 전체 문학에서 우리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껏해야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문학 작품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체코와 함께 번역서 비중이 29%로 세계 최고라고 한다. 이웃 나라 중국이 4%, 일본이 8%인 것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수치다. 번역서의 비중이 큰만큼 번역가의 역할 또한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출판계 현실은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출판계가 세계적인 경제난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로 인해 훌륭한 작가를 발굴하는 것보다 적은 투자로도 흥행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번역출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현실이다. 덕분에 번역가의 역할은 커지고 있지만, 어려운 출판계 상황 때문에 그들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인정 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

   이 책은 22명의 번역가와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번역출판에 대해 쓴 글을 모아 놓은 것으로, 번역의 의의에서부터 번역출판의 현실, 번역 작업, 출판기획 경험기 등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번역의 질'이 문제될 수 밖에 없는 우리 출판계를 논한다. 가장 큰 문제는 양질의 번역을 선보일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번역의 수요는 많지만, 양질의 번역을 공급할 수 있는 전문 번역가는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초보 번역가들에게 맡겨질 수 밖에 없다. 일부 전문 번역가들 또한 밀려드는 작업량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 오역을 하기도 한다. 또 번역가들은 작업량에 비해 합당한 페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역할을 알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 때문에 재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출판사도 있고, 내용보다는 겉모습에 치중하는 출판사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번역가의 자성을 지적한다. 어떤 이들은 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좋은 책을 독자에게 소개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은 날림 혹은 대리 번역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요즘엔 외국어 공부도 많이 하고, 해외에서 공부를 하거나 살다가 온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들의 성의없는 번역을 알아볼 수 있는 독자들이 많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듯이, 한 명의 잘못으로 모든 번역가들이 화살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물 좀 먹고 오면 너도나도 번역을 한답시고 뛰어드는데, 꾸준히 노력할 수 없다면 쉽게 달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번역이다. 

번역가는 문화의 첨병입니다. 세계의 꽃밭에서 가장 아름다운 씨앗들을 가져와 우리 문화를 살찌우는 농사꾼들입니다. 바로 그것이 번역가로 살아가는 의미이며 보람입니다. ─ 제2회 유영번역상 수상자 김진준 (p102)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그동안 한 두 장의 짧은 역자 후기로 만나볼 수 있었던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됐고, 어떻게 번역 작업을 하는지, 그리고 번역할 때 신경쓰는 부분 등 그동안 궁금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다. 
   진정한 번역가에게는 책을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듯이, 독자 또한 진정한 번역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진정한 번역가들이 많아야 우리 같은 독자들이 양질의 번역서들을 읽을 기회가 많아질테니 말이다.  

09-32. 『번역출판』 2009/03/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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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쉽게 하기 : 일러스트 드로잉 스케치 쉽게 하기 8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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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도 괜찮아! 자신만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방법!

   내가 즐겨찾는 블로그가 있다. 그 블로그의 주인공은 건축을 전공했고, 깜찍한 일러스트가 있는 몇 권의 책을 썼고, 현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일러스트는 정교하지도,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다. 그러나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일러스트를 좋아하고, 그의 블로그를 찾는다. 그의 일러스트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개성이 담겨있고, 그만의 표현법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그의 일러스트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나는, 직업적인 이유로 가끔씩 그림을 그려야 할 때가 있다. 컴퓨터 그래픽 툴인 일러스트레이션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보지만, 밑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나는 언제나 원하는 사진을 바탕에 깔고 그림을 그린다. 덕분에 내가 원하는 그림도 그리지 못하고, 나의 개성도 담아내지 못해 늘 아쉬움이 남는다.

   벌써 몇 권의 『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를 펴낸 김충원은 늘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 그리는 사람은 없고, 똑같이 그려낼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내면 될 뿐인데, 처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실물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지워버리고 감추려 한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것, 이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일러스트 드로잉이다. 같은 동화를 읽고 그림을 그려내도 사람에 따라 다른 형태로 그려내기 마련이다.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것과 강조하고 싶은 것,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일러스트면 충분하다. 선이 삐뚤어도 괜찮다. 섬세하지 않아도 된다. 부담없이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이 바로 일러스트인 것이다.

   그동안 몇 권의 『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를 만나왔지만, 생각처럼 부지런하게 그림을 그려보지는 않았다. 기초 드로잉이라고 해도 그림인데, 도화지며 색연필이며 시간적인 여유까지 모두 갖춘 상태에서 연습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러스트는 부담없이 틈나는대로 연습할 수 있을 것 같다. 즐겨찾는 블로그의 주인공이 그린 일러스트처럼 한 눈에 내가 그린 것임을 알아볼 수 있는 일러스트를 그려보고 싶다.

 

09-30. 『스케치 쉽게 하기 : 일러스트 드로잉』 2009/03/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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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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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고 싶은 희망과 절대 죽지 않는다는 공포 사이에서! 

   『죽음의 중지』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번에는 주제 사라마구가 아무도 죽지 않는 도시를 그렸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p11) 예상대로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멋진가. 죽음이 없다면 어린시절의 내가 그것에 대한 공포로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영생을 꿈꿨던 진시황은 맨발로 이 도시로 달려올 것이다.
   그러나 늘 주제 사라마구가 그리는 도시들이 그러하듯, 더이상 아무도 죽지 않는 나라는 천국도, 낙원도 아니다. 더이상 살 기력이 없어 시체처럼 누워있기만 한 사람들, 사고로 다쳐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 고통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 늘어나는 환자로 더이상 발디딜 틈이 없는 병원, 무의미한 생명 연장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들, 더이상 사람들이 죽지 않아 파산 위기에 몰린 장례업자들, 종신보험 가입자들의 무더기 항의를 받고 있는 보험회사들, 늘어난 수명 때문에 연금 지급액이 바닥이 난 기관들. 급기야 정부는 내색하지는 않지만 예전처럼 사람들이 죽기를 바란다.
   죽음의 중지 상태는 이 나라 안에서만 유지될 뿐이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국경 밖으로 데려가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손가락질 했지만,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게 돼고 마피아가 정부의 묵인하에 개입한다.
   죽음의 중지 상태가 지속된지 7개월째, '죽음'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라온다. 한동안 일을 멈춘 '죽음'이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는 것과 이번에는 죽기 일주일 전에 사람들에게 편지로 통보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죽기 일주일 전에 통보를 받고 미리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다면 갑자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나을까? 사실 그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공포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를 찾고, 기도를 하고, 고해성사를 한다. 어떤 이들은 죽기 전날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때 '죽음'의 원칙을 깬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에게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여러 번 보내지만, 무엇 때문인지 이내 '죽음'에게 돌아온다. 그는 개와 함께 살고 있는 첼리스트로, 어떤 능력을 가진 자이기에 죽음마저 되돌려 보내는 것일까? '죽음'은 첼리스트에게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평범한 여자로 변신한 다음 그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잠들어 본 적이 없는 '죽음'이 그와 함께 잠들고, 다음날부터 아무도 죽지 않게 된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혹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게 된다면? 주제 사라마구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한번쯤은 죽음에 대해 가져봤을만한 생각들을 그려내고 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죽음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삶이 곧 죽음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죽음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삶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09-29. 『죽음의 중지』 2009/03/1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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