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말하다!
   내가 중학생 때, 우리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무렵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 단지는 막 개발을 시작한 곳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늘 땅을 밟고 살다가 이른바 로얄층으로 불리는 높은 층에 살게 되니 일단 시야가 탁 트여서 좋았다. 멀리 보이는 공원과 알록달록 불빛으로 장식하고 있는 타워는 마치 우리집 안마당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해가 다르게 생겨나는 고층 아파트들로 그 좋았던 전망이 가려진 것이다. 더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우리 가족은 그곳을 떠났다. 그곳의 답답함이 싫어 떠났는데, 주거 지역은 어딜가나 온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10년 넘도록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이내 그곳의 편리함이 그리워졌다. 
   어딜가나 보이는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들, 외국에서는 서민들의 주거공간이라는 이 아파트가 이 땅에는 언제부터 들어서게 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토록 아파트에 열광하며 목 매다는 것일까?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 교수가 사회ㆍ문화적 관점에서 아파트를 다룬 『아파트에 미치다』를 펴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아파트의 역사와 변화, 한국만의 독특한 아파트 문화  등을 재밌게 풀어쓰고 있다.
   뭔가 떨어지고 분리돼 존재하는 주거공간을 의미하는 아파트의 어원은 불어의 아파르트망(appartement)으로 알려져 있다. 아파르트망은 원래 궁전이나 대저택 안의 독립적인 생활공간을 의미하는데, 프랑스혁명 이후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대저택을 새로 성장한 도시중산층이 아파르트망별로 나눠 살기 시작한 것이 아파트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조선조가 무너지면서 한양의 사대부가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p.20)
   그러나 아파트가 이 땅에 정식으로 들어선 것은 1930년이었고, 한국인을 위한 것이 아닌 일본 미쿠니상사의 직원 관사였다고 한다. 한국인을 위해,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1956년 서울 중구 주교동에 들어선 중앙아파트이다. 이후 주택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아파트는 그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아파트의 시작은 서민들의 주거공간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정작 서민들에게는 아파트를 사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아파트는 강남불패 신화를 등에 업고 부동산 시장의 샛별로 떠올랐다. 더이상 아파트는 서민들의 주거공간이 아니다. 게다가 주택이나 땅처럼 이것저것 묻거나 따져볼 필요도 없이 어느 아파트 몇 동인지만 알면 아주 편리하게 그 아파트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뿐만아니라 어떤 이들은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만 이야기해도 눈빛이 달라진다.  

공과대학의 도시공학과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이나 역사 같은 인문학을 배우는 것이 좋다. 도시를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주민의 장래가 결정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 p86) 

   이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머리말이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우리나라 학자들의 대부분이 계급구조, 세계체제, 국제관계, 민족문제 등과 같은 큰 주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며, 자신은 반대로 소소한 일상이나 주변의 생활세계로 눈길을 돌려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저자는 너무 미시적인 관점으로 아파트를 파악하고 있다. 디테일한 것도 좋지만,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아파트 문화로 사회학을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또, 저자는 마지막 장을 통해 '아파트와 미래 한국'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아파트 문화만 이야기할 뿐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 저자 말처럼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적어도 독자들이 대안을 떠올릴 수 있게끔 해야하지 않았을까.

09-33.『아파트에 미치다』 2009/03/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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