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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ㅣ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그대의 삶이 이 영웅전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삶과 많이 닮았다!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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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의 새 완역본으로 만나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내 북킷리스트 중 하나였지만, 어느 버전으로 읽어야 할지 책을 선택하지 못해서 읽지 못하고 있던 책이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변신 이야기』로 대표되는 서양 고전문학 시리즈를 모두 천병희 선생님 번역으로 읽어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역시 같은 출판사 번역으로 읽고 싶었지만(사실은 세트로 깔 맞춤하고 싶었던 욕구가 강했다.)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천병희 선생님은 그리스와 로마 영웅 50인 모두를 다룬 것이 아닌 역사적 전환점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10인만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것. 이왕 읽는 거라면 50명 모두를 다룬 책을 읽어야 읽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을유문화사에서 50년 만에 새롭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펴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어판 완역본이 제일 먼저 나온 곳도 을유문화사였다고 한다.(이 출판사에서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만든 책이라고 생각하니 신뢰감 상승!) 이것은 지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어라는 채찍질이 아닌가!
"표지 디자인쯤이야 아무려면 어때!" 보통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 책이 세트일 때는 깔 맞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새롭게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대놓고 고전스럽지 않으면서도 책장에 꽂아두면 폼 나게 예쁘다.(특히, 책등 디자인이 그렇다.) 1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표지 속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설마 내가 못 찾고 있는 건 아니겠지?)
플루타르코스가 우리 곁으로 데리고 내려온 그리스 ㆍ로마 영웅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46~120년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로마 시대 철학자 플루타르코스가 20년에 걸쳐서 그리스ㆍ로마 영웅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아미요가 엮은 한니발과 스키피오까지 소개되어 있어 모두 52인의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시대와 번역자에 따라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데, 옮긴이가 어떤 판본을 번역 정본으로 삼았으며 원문과 다르게 작업한 것은 무엇인지 친절하게 소개해 주고 있다.
옮긴이는 우리에게 낯선 영웅들이 등장하는 이 책의 앞부분은 재미도 없고 지루하다고 했지만, 나는 감탄하며 읽었다. 어떻게 종이도 없던 시절에, 구술로, 이토록 긴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심지어 플루타르코스는 그때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혹은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까지 정리해 함께 소개해 주고 있다.(이런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이래서 생긴 이야기일 테고, 사실은 이랬을 것이다.) 지금이야 검색만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이야기들(사실 검색해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이지만, 그 당시에는 직접 다 확인해야 했을 테니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겠구나 싶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에는 10명의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이름만 들으면 정말 낯설다. 테세우스, 로물루스, 리쿠르고스, 누마, 솔론, 푸블리콜라, 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아리스티데스, 대(大)카토. 읽으면서도 입에 붙지 않는 이름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다른 경로를 통해 접한 일화들이 종종 등장해 반갑다. 가장 먼저 등장했던 테세우스와 로물루스의 일화가 낯설지 않아서 옮긴이의 우려와는 달리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테세우스(신화시대)는 아테네를 건설했고, 로물루스(재위 기원전 753~716)는 로마를 건설했다. 먼저 테세우스의 탄생 설화는 우리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바위 밑에 칼 한 자루와 신발 한 켤레를 숨겨 놓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만약 아들이 태어나 그 바위를 들어 올릴 정도의 성인이 되면 그 물건들을 징표 삼아 자신에게 보내라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찾아간 테세우스, 그러나 아버지의 나라도 엉망진창이었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에게 9년마다 청년과 처녀를 일곱 명씩 바쳐야 하는데, 크레타에 끌려간 청년들과 처녀들은 미궁에 갇혀 있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잡아먹히거나 출구를 찾지 못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 이 이야기를 들은 테세우스가 스스로 인질로 가겠다고 한다. 만약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면 배에 검은 돛 대신 흰 돛을 달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는 테세우스.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져, 그녀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기쁨에 젖은 나머지 그들을 흰 돛을 잊고 올리지 않는다. 이것을 본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절망한 나머지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그동안 다른 경로를 통해 각각 접했던 여러 이야기들이 한데 섞여 있어서 정말 흥미롭게 읽었던 테세우스.
로물루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원래 로물루스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그들을 원치 않았던 왕이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명령을 받은 사람이 쌍둥이를 죽이지 않고 강가에 데려다 놓았는데, 늑대들이 찾아와 젖을 물리고 새들이 모이를 물어다 아기들 입에 넣어 주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기원전 9세기에 살았던 입법자 리쿠르고스와 스파르타 사람들 이야기다. 리쿠르고스는 원로원 체계를 확립하고, 토지와 동산을 재분배했으며, 공동 식당을 운영했다. 심지어 혼외 관계를 합법화해 아내까지 공유하게 했다. 그는 자식은 아버지의 소유가 아니라 나라의 재산이며, 그렇기 때문에 최상의 핏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교육도 나라에서 담당했다. 시민들이 공산품을 제조할 수 없게 했고(일은 전쟁 포로들이 하게 했다), 돈이 가치 없는 것이 되어버려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을 필요도 없어져서 여가생활을 보장받았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일 수도 있지만, 노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곳이었고 사람을 오직 군사력으로만 파악한 비인간적인 사회이기도 했다.
리쿠르고스와 스파르타 사람들은 짧고 명료한 화법을 추구했는데, 그래서 써먹고 싶은 어록들이 많다. 한 사람이 민주 정치를 요구하자 "가서 그대의 가정에 먼저 민주주의를 이룩하시오."(199쪽)라거나 스파르타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 인물이냐는 질문에 "그대와 가장 닮지 않은 사람이라오."(201쪽)라는 대답들. 하지만 진짜 어록 부자는 따로 있다. 바로 대(大)카토(기원전 234~149)인데, 그의 삶을 지켜준 것도 바로 웅변술이라고 한다.
"바보가 현자에게 배우는 것보다 현자가 바보에게서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바보들이 저지른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바보들은 현자의 성공을 본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50쪽
"나는 그대가 주는 독약을 마시는 것과 그대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악독한 짓인지를 잘 모르겠네." 551쪽
"나는 지금 당신과 불공평한 싸움을 벌이고 있소. 당신은 욕을 먹으면서 태연하고 입심 좋게 남을 욕하고 있지만, 나는 욕하는 것도 싫고 욕먹는 것도 싫기 때문이지요." 552쪽
플루타르코스는 이야기 곳곳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는데, 덧붙여지는 플루타르코스의 견해 역시 낡지 않고 날카롭다. 2천 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아서 놀라울 정도다. 이런 이야기와 어록들이 있으니, 여전히 읽히고 있는 것이리라.
앞부분은 흥미가 떨어질 것이라는 옮긴이의 우려는 정말 기우인듯. 훨씬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이다. 이 정도라면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이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는 얼마나 더 재미 있을까. 더욱 다행스러운 건 한니발이 5권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 끝까지 재미있게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플루타르코스가 이 책에서 쓰고자 했던 것은 역사에 명멸한 영웅들의 거대한 서사나 역사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위대하고 영웅적인 업적이 아니라 일상의 언행들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의 업적을 나열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사소하고도 인간적인 애증을 얘기하고 있다.
영웅은 우리의 곁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 인물사를 공부한 나의 평소 생각이다. 위대한 영웅의 행적이 우리 같은 필부로서는 따라갈 수도 없고 바라볼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상이거나 종교이지 영웅전이 아니다. 우리의 자식들에게 영웅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꿈을 키워 주는 것이 영웅전의 가치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닮지 않은 영웅에게는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15쪽)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