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9쪽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으로 시작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4명의 주인공을 따라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급급했었고, 다시 읽었을 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각각의 주인공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구별하며 읽었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다보니, 이제야 비로소 밀란 쿤데라의 문장과 사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합니다.

만약 이런 제 푸념을 밀란 쿤데라가 들었다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자신의 소설을 띄엄띄엄 읽었다고 말이죠.


 

만약 독자가 내 소설을 한 줄이라도 건너뛴다면 소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그렇지만 행을 건너뛰지 않는 독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행과 페이지를 잘 건너뛰는 사람 아닌가? _ 밀란쿤데라, 『불멸』 533쪽

 

하지만 절대 띄엄띄엄 읽지 않았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한 문장도 건너뛸 수 없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데, 감히 건너뛰다니요.


아무튼,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전에 쓴 리뷰에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설하고, 가장 원초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라는 존재와 그 행동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절대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적인 것이란 없고 늘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는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이 존재 자체가 한없이 가벼울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한번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도 모르고, 이 존재의 끝도 알 수 없어서 늘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존재를 견디기 힘듭니다. 이 소설의 원제 또한 '참을 수 없는'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우리의 삶이 무한히 반복돼서 똑같은 삶을 살고, 또 살게 된다면 우리 존재는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 또한 참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한 번의 선택이 영원히 반복되는데, 그 '한 번'이 얼마나 견딜 수 없이 무거울까요.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짐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12쪽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13쪽

 

밀란 쿤데라는 늘 '존재'에 주목합니다. 그는 소설의 존재 이유 또한 "삶의 세계를 영원한 빛 아래 간직하고 우리를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지키는 것"(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33쪽)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존재'에 대해 생각합니다.


 

여전히 밀란 쿤데라가 어렵다면,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렵다면 굳이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의 문장만 따라 읽어보길 바랍니다. 그 문장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빛나는 작가니까요.

 

사람들이 카프카를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까? 카프카의 탁월한 상상력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알레고리를 찾으려 들기에 결국 상투적인 해답만 들고 옵니다. 예를 들어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둥(아니면 부조리하지 않다는 둥), 아니면 신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둥(아니면 우리와 닿을 수 있는 존재라는 둥) 그런 것들이지요. 상상력이 그 자체로 가치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 특히 현대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_ 파리 리뷰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1』, 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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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7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의 책이라고는 <무의미의 축제>
하나 읽은 게 다네요.

<참을 수 없는...>은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 실패 -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귀찮네요.

쿤데라 다른 책도 있는디.

뒷북소녀 2019-02-27 12:57   좋아요 0 | URL
아, <무의미의 축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여섯 번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여전히 미스테리합니다.
작가가 탐구하고 있는 ‘존재‘ 그 자체가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여러 번 읽다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시길^^

카알벨루치 2019-02-27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견딜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해와 공감이 팍팍!ㅎㅎ

뒷북소녀 2019-02-27 12:58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다보니, 한국어로 번역된 ‘참을 수 없는 ‘ 것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이 더 와닿는 것 같더라구요.
처음 이렇게 제목을 지은 번역가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카알벨루치 2019-02-27 15:24   좋아요 1 | URL
20대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근데 리뷰가 넘 좋네요👍👍👍

뒷북소녀 2019-02-27 23:10   좋아요 1 | URL
저는 며칠 전에 읽어도 늘 가물가물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목나무 2019-02-27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라의 소설은 이 한 권이면 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시작하다 포기 시작하다 포기를 반복...ㅎㅎㅎ;;;;;
언젠가는 나도 뒷북소녀처럼 멋지게 읽어내겠지? ~~ ^^

뒷북소녀 2019-02-27 12:59   좋아요 0 | URL
아, 정말인가요? 저는 다음으로 <불멸>을 읽었는데, <불멸>도 정말 좋더라구요.
한 권으로는 절대... 부족한 것 같아요. 도전해 보셔요. ^^
 
또또
조은 지음 / 로도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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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예쁘고 포근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던 '또또'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에서 '또또'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가 발췌해 준 문장만으로도 '또또'가 자꾸 눈에 밟혔는데, 다른 작가의 에세이에서 '또또'를 또 만나게 됐습니다. 평소 (남녀노소가 아닌) 수컷 암컷 대소를 불문하고 개라면 피해 다니기 바빴는데, 희한하게도 '또또'는 자꾸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유일하게 우리집에 잠시 머물렀다 간 강아지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일까요? 그 녀석의 이름은 '뽀뽀'였고, 키울 능력이 부족했던 우리를 만나 6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보내져야만 했습니다.

사직동에 사는 동안 나는 몸도 건강해졌고, 의식도 성장했다고 느꼈다. 느리고 굼뜬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 세월 동안 한결같이 내 곁에 있었던 존재는 상처 받은 채 내게로 왔던 작은 개 또또였다.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은 여러 이유로 변덕이 잦았지만, 또또만이 고른 마음으로 내 옆에 있었다. 잡종개였던 또또만이 내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슬픔도 묵묵히 덜어내 줬다. 또또는 한 번도 내게 싫증을 내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나의 시시한 면면을 누설하지 않았고, 인간을 통해서는 줄일 수 없었던 내 아픔을 조용히 나눠 가지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동안 내게 기쁜 일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밖으로 나도느라 우리가 같이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으니 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또또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처럼 나는 삶이 내게 주는 무게를 또또를 통해 덜어 내곤 했지만, 같이 사는 동안엔 그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했다. 뒤늦게 그걸 알고 뭉클뭉클 솟구치는 고마움을 느꼈을 때 또또는 이미 폭삭 늙어 버린 뒤라 우리 앞에는 안타까운 시간만 남아 있었다. 10쪽

한번 키워보고 싶다며, 어느 날 동생이 무턱대고 데려온 '뽀뽀'. 하지만 우리에게는 '뽀뽀'를 제대로 보살펴 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져야만 했던 '뽀뽀'는 우리가 떠난 현관 앞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하루종일 우리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요?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않고, 하루종일 집 안에 혼자 두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뽀뽀'를 하루종일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지인에게 입양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입양 보낸 우리가 어디가 좋다고, 가끔씩 그 지인이 하는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뽀뽀'는 헤어진 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줬습니다.

'뽀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마도 저였을 거예요. 알레르기도 있고, 강아지도 무서워해서 곁에 두지 않았는데 집에 있을 때면 늘 뒤에서 맴돌고 있었나봐요. (곁에 있는 건 워낙 싫어하니까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의자를 뒤로 뺐는데,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의자 바퀴에 작은 발이 끼여 버렸던 것입니다. 동생이 여행을 가고 온전히 혼자 '뽀뽀'를 돌보게 됐을 때는 영양실조에 걸리게 했고, '뽀뽀'를 데리고 이동해야 할 때는 가까이 안아주는 게 아니라 멀찍이 들고 다녔습니다. 저도 제 나름의 사정(알레르기와 공포)이 있었지만, 지인들은 '뽀뽀'가 너무 무서울 것 같다며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뽀뽀'는 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뒤에서 맴돌고 있었죠. 제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절대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말이죠.

또또는 죽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받은 나쁜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도 편히 자지 못하던 또또를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워 악몽으로부터 건져 내야 했던 밤의 기억이 너무도 강해 나는 아직도 그들의 말에 얼른 동조하지 못한다. 그때를 제외하면, 말년의 또또는 평화로웠다.

(…) 상처투성이로 내게로 왔지만, 또또는 내게 어떤 마음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공포감을 다스리지 못해 저도 모르게 나를 물기는 했지만. 물고 나선 곧바로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녀석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녀석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꽤 오랫동안 안간힘을 썼고, 그동안 녀석의 증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냥 번쩍 들어 품에 안아 줬으면 녀석은 명랑하고 상냥한 태생적 본능을 잃지 않고 예쁘게 살다 죽었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그랬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했을 것이다. 11쪽

원래 '또또'는 조은 시인이 세 들어 살던 개량한옥 주인집의 개였습니다. 십 대 후반의 두 아들과 살고 있는 주인집은 평소에는 너무도 조용하고 강아지도 방 안에서 키웠는데, 가끔씩 이 강아지를 학대하는 장면이 시인에게 목격됩니다. 주인집 아저씨는 강아지를 때리기도 하고, 추운 겨울밤에 목욕을 시킨 후 말려주지도 않은 채 마당으로 쫓아내기도 합니다. 겨우 1만 원짜리 강아지라며 막 대하고, 개 장수에게 줘버린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또또'가 불쌍해서 시인이 가끔씩 돌봐주자 '또또'의 안부를 시인에게 묻기도 합니다. 지난밤에 얼어 죽지 않았는지, 새벽에 나가는 걸 봤는데 돌아왔는지 등.

갈색 실꾸리 같은 것이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 끼어 내 쪽으로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 그것이 둥글게 오므라들며 마른 큼직한 플라타너스 잎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 그 나뭇잎이 회오리치는 바람에 굴러 내 발목에 와닿았다. 열리지 않는 문의 의미를 병적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을 때였다. 곧이어 무엇인가가 내 바지를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고, 그 느낌은 계속되었다. 뭔가가 이상해 허리를 굽혀 발치를 내려다보던 순간, 깜짝 놀랐다. 갈색 나뭇잎이거나 실꾸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도 예쁘게 생긴 작은 강아지였다. 나는 그때껏 그렇게 예쁘게 생긴 강아지를 본 적 없었다. 강아지는 상냥하고, 명랑하고, 예쁘고, 포근하고, 사교적이었다.

(…) 강아지는 내가 일찍이 본 적 없이 예뻤지만, 나는 녀석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19쪽

사실 시인은 개와 가까워지는 게 두렵습니다. 어릴 때 키웠던 '마루'가 아빠 친구들에게 잡아먹힌 사건 이후로 충격을 받아 더이상 개는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매일 마주치는 이 '또또'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기만하면 물어버리는 '또또', 시인 역시 여러 번 '또또'에게 손을 물렸습니다. 아픈 '또또'를 치료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의사는 이런 예민한 성격에, 잘 먹지도 않아서 3년도 못 살거라고 말합니다.

집주인과 공동으로 '또또'를 키우던 시인은 이사를 하면서 아예 '또또'를 데려갑니다. 주인 역시 시인에게 별말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1만 원짜리였으니까요.

또또는 사람이 의도를 갖고 자신을 때리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고통에 강했다. 녀석은 정말이지 죽을 정도로 아파도 조용했다. 내부의 고통을 수용하는 녀석의 태도는 인간인 나도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102쪽

하지만 시인과 '또또'는 무려 1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또또'가 아파도 더이상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습니다. 병보다는 그런 스트레스가 '또또'에게 더 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예민하고 아팠지만, 신체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줄 알았던 '또또'. '또또'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날, 시인은 동물병원으로 '또또'를 마지막으로 데려가, 편안하게 보내주기로 결심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또또'에게 보내는 시인의 '애도'일지도 모릅니다.

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또또는 '저렇게 먹고 어떻게 생명이 유지될까?' 싶을 정도로 적게 먹었는데, 3년을 못 넘길 거라던 수의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17년을 살았다. 135쪽

개들은 정말이지 인간의 속된 감정을 정화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존재이다. 인간에게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순저오가 순수함이 주는 위로에 매혹되면, 개와 살면 일생이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사는 젊은이가 개와 너무 밀착되어 생활하는 것을 조금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알 만큼 아는 나이 든 독신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같이 살고 있는 개에게서 얻는 정서적 위안과 평화를 변덕스러운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어 그들에게 다시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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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5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희 이모님이 기르시던 댕댕이
이름을 제가 또또라고 지어 주었었는데...

지금 무지개 다리 건너갔구요.

뒷북소녀 2019-02-27 13:03   좋아요 0 | URL
아, 또또...
강아지들은 주로 부르기 쉬운 이름들로 명명되나봐요.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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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도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자신 있게 늙고 있어!

 

마음산책에서 나온 <짧은 소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입니다. 이 책에는 모두 19편의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짧은 분량과 감각적인 문장들 덕분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이 괜찮고 제대로인 듯하지만 어떤 날에는 반만 그렇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흔한 아침인 걸까. 선미도 에그머핀을 다 먹지는 못하고 남자처럼 반을 남겼다. 그리고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사람들의 화사한 일상을 SNS로 지켜보았다.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는 그들의 아침이 이 작고 완전한 프레임의 사진들처럼 온전할지, 그러니까 제대로일지, 혹시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은 아닐지 생각하면서.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51쪽

특히, 인상적인 소설은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사드린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춤을 추며 말없이」입니다.

어릴적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던 주인공은, 직장을 얻어 서울로 떠나오면서 할아버지에게 저렴이 버전의 인공지능 로봇을 선물합니다. 그는 그것을 '꼴통' 혹은 'B품', 더러는 그냥 '기계', '폐품'이라고도 불렀는데 정식 제품명은 '말로'였습니다. 워낙 저렴이 버전이라 알람처럼 기본 기능만 장착되어 있고, 언어 능력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알파고나 고가의 인공지능 로봇처럼 스스로 학습해서 진화할 가능성은 제로인 로봇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인공은 로봇을 집으로 데려오는데, 이 단순한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할아버지 곁에 아무도 없던 시절의' 할아버지 일상을 짐작하곤 합니다. 할아버지는 이 로봇과 대화를 시도하며 일상을 함께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로봇도 나름으로 진화해 할아버지가 건네는 대화에 나름의 대답을 하곤합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주인공 또한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로봇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로봇도 소진되어 버립니다.

나는 하나도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자신 있게 늙고 있어. 「춤을 추며 말없이」 165쪽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갈 수 없었던 주인공이 전화를 걸어 이유를 설명하자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호기롭게 던진 말입니다. 자신 있게 늙고 있다니. 저도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나이가 되면요.

 


파리 살롱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불현듯 추위를 느끼고 혼자임이 실감된다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것, 아주 따뜻한 것을 먹겠다고. 「파리 살롱」 69쪽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지금까지."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75쪽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문득 하는 생각, 대체 지하철의 이 빈 공간들이 어떻게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견디고 있어야 이 도시라는 일상의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남은 고통이 상대와 유리된 오로지 내 것이 되면서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77~78쪽

주용은 어쩌면 아주 어려서부터 영란의 마음은 전혀 다른 멜로디로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문제는 오히려 듣는 이의 관성화된 귀와 마음이 아닐까. 「서로의 기도」 112쪽

그것이 이것보다 어려운가, 이것은 그것보다 쉬운가 하는 삶의 온도차를 재보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온난한 하루」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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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8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 짧은 단편들이 산발적으로 흩어뿌려진 느낌이 들었어요 주제를 향한 부각이 좀 필요한데 그럴러면 한번 읽어선 안 될 것 같은데 두번 읽기는 힘들고...저는 그랬습니다 ^^

뒷북소녀 2019-02-08 13:00   좋아요 1 | URL
저도요. 너무 짧은 단편들은 같은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서 기억에 남는 부분만 정리해 두고 넘어가려구요.^^ 갈수록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은데, 이렇게 짧은 단편들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기는 어렵네요.

레삭매냐 2019-02-08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를 너무 오래 생각하는 건
집착이 아닐까요...

제가 주용이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대학 동창의 이름이네요 ㅎㅎ

뒷북소녀 2019-02-08 13:01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사실...어떤 생각에 사로 잡히면 밤새도록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요...
집착을 버려야겠네요. 갑자기 분위기 스님.

공쟝쟝 2019-05-08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막 덮었는데 저도 춤을 추며 말없이가 너무 좋았어요!

뒷북소녀 2019-05-08 19:57   좋아요 1 | URL
잘 늙고 있다는 저 문장 너무 좋아요^^♡
 

 

 

 어쩌다가 일기를 안 쓰셨어요? 지금 당장 쓰세요!

 

장인 A : 밥 먹으러 가죠.

직장인 B : 먼저 가세요. 전 일기 써야 해요.

직장인 A : 아니 어쩌다가 일기를 안 쓰셨어요. 그렇게 안 봤는데……. 「들어가며」 8쪽

 

서민 교수님 책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서문부터 아주 재밌습니다. 이게 다 서른살 때부터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은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요? 이게 다 망작 『마테우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은 책, 너무 못 써서 작가 스스로 절판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던 책. 그 책 때문에 그는 평생(!)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 부끄러움의 끝에서 그는 이런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려면 매일 조금씩 써야 한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매일 조금씩 쓸 수 있는 글의 형태는 뭘까요? 그가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일기'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조금씩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글솜씨, 어디 내놔도 남부끄럽지 않은 글솜씨, 심지어 재밌기까지한 글솜씨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글은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써야 늡니다. 수많은 글쓰기 책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글쓰기를 위해 하루 30분씩 쓰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고요. 근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루에 30분씩 도대체 무슨 글을 써야 할까요?

까먹어서 그렇지,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매일 조금씩' 글을 쓰라는 강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뭔지 다 아시겠지요? 소제목에 적혀 있듯이 답은 '일기'입니다. 29쪽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매일 30분씩 일기를 쓸까요?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되는데 또 어떻게 일기를 쓸까요?

술 마신 날은 더더욱 쓰기 힘들텐데요?

 

그는 이 모든 것이 핑계일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핑계를 대다보면 죽을 때까지 글을 잘 쓰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따끔한 충고도 덧붙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들만 반복돼서 일기 쓸게 없다면 그날 실검을 장식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기 의견을 쓰라고 합니다. 술을 마셨으면 또 그것을 소재로 쓰라고 합니다. 술자리에서는 늘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법이니까요. 한때 그는 술일기를 쓴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술 때문에 일기를 거르지 말고, 소재를 생각했다가 그 다음 날이라도 꼭 쓰시기 바랍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건너 뛰기 시작하면 글 잘 쓰는 '그 날'은 결국 오지 않습니다. 236쪽

 

그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매일 일기 쓰기를 통해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지 두루뭉술한 비법 대신 실생활용 팁을 알려줍니다. 당장이라도 일기를 쓰고 싶게 말이죠. 그가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루 30분!

 

사실 글쓰기 관련 책들은 재미없기 마련인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술술 읽힙니다. 이게 다 일기를 쓴 덕분이라니 솔깃해집니다. 심지어 그가 그토록 절판되기를 원했던 망작 『마테우스』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동안 그의 글솜씨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할 수 있을테니까요. 원래 처음부터 잘한 사람보다는 노력으로 잘하게 된 사람의 비법이 더 궁금한 법이니까요.

 


■ 밑줄긋기

20세기 말부터는 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납니다. 원래 책을 내는 사람은 작가의 대부분이었고 일반인들은 작가가 쓴 책을 읽는 데 그쳤지만, 어느 순간부터 꼭 작가가 아니라도 책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 하루 수백 종의 책이 나오는 요즘, 그 책의 대부분은 전업 작가와 무관한 사람에 의해 쓰입니다. 작가라서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쓰면 작가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책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책을 쓴 저자에게 부와 명예도 가져다줍니다. 24쪽

 

글에는 '객관화의 힘'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글로 써놓으면 남의 일처럼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37쪽

일기를 매일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날 저질렀던 실수에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으로 이끌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해줍니다. 글을 쓰려면 해당 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야 하니 사고가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고요. 38쪽

글쓰기 소재는 원래 갑자기 떠오릅니다. 작가들은 그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의 신인 '뮤즈'에 비유합니다. 이 뮤즈라는 분은 워낙 빠른 속도로 왔다가 그냥 가버리는 게 특징입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빈대떡을 보는 순간에는 '아, 빈대떡에 대해 쓰자'고 생각을 하겠지만 1분만 지나면 그 생각은 없어지고 '내가 뭘 쓰겠다고 했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게다가 하루에 워낙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버스에 교복을 차려입은 예쁘장한 여학생이 탄다면 그 순간 '빈대떡'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집에 가서 일기를 쓰려면 짜증만 납니다. 79쪽

사진으로 일상을 표현하는 사람은 그 장면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짜낸 사람보다 글을 잘 쓰기 힘들지요. 90쪽

좋은 글을 일기장에 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좋은 글을 자꾸 보고 또 보고 꿈에서도 봐야겠지요. 이렇게 한다면 백일장과는 담을 쌓은,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그 글을 어설프게나마 따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글쓰기와 책읽기를 모두 서른에 시작한 제가 글을 잘 쓰기 위해 했던 것은 매일 일기를 쓰는 거소가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체를 모방하는 건 안 좋은 일 아니냐고요? 내용만 다르다면 문체 좀 따라하는 거야 뭐 그리 문제겠습니까? 저도 그랬답니다. 처음에 제가 따라했던 분은 전북대 강준만 교수님이었어요. 그분이 어이없는 경우에 즐겨 있던 '소가 웃을 일이다'라는 구절이나 '~란 말인가?' 같은 어미는 제 초창기 글에도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한 사람의 책만 계속 읽게 되진 않습니다. 다른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생기고 그 문체를 따라하게 되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저만의 문체가 만들어지더군요. 163~164쪽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노트에 적어놓고 나중에 컴퓨터 파일로 저장해 놓으세요. 그래야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습니다. 책에다 표시만 해놓아서는 "그게 뭐였더라?"라며 발만 동동 구르게 되거든요. 201쪽


 

■ 책 속의 책

일본 작가 사노 요코가 쓴 수필집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집 근처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이 와서 집집마다 탐문수사를 벌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인 밤 8시부터 10시 사이에 혹시 뭐 본 것 없느냐는, 목격자에 관한 수사였습니다. 그런데 사노 여사는 나이가 든 탓인지 전날 뭘 했는지 통 기억이 안 납니다. 소심한 사노 여사는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알리바이를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사노 여사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요. 쓰다가 따분해져서 그만뒀고 그 뒤 일기에 대해선 잊어버렸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갔는데 그때 쓴 일기장이 나왔습니다.

전날 뭘 했는지도 모르는 사노 여사가 그날 불었던 바람과 하늘, 그리고 친구의 털까지 떠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일기였습니다. 38~39쪽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알씁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건축가 유현준 씨가 우리나라 도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책입니다. 건축가가 쓴 책이어서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찌만 이 책은 술술 읽힙니다. 도시 건축물에 대한 책이 잘 읽힌다니 비결이 뭘까요? 책에 나오는 저자의 비유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아파타의 획일성에 대한 비판을 보죠. 저자는 난데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건축물은 소주가 아니라 포도주와 같다." 165~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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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8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서구 사시는군요 저도 한때 달서구민이었던 적은 없었네요 직장이 달서구인 적은 좀 됩니다ㅋㅋ서구민 수성구민 중구민 중에 수성구민으로 오랫동안 살았네요 ㅎㅎ

뒷북소녀 2019-02-08 13:02   좋아요 1 | URL
예리하시네요. 저는 수성구민에서 달서구민으로 넘어온지 좀 오래되었다죠.
달서구의 가장 큰 장점은... 도서관...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카알벨루치님도 대구 사신다니, 반가워요.^^

카알벨루치 2019-02-08 13:13   좋아요 1 | URL
지금은 대구 근처에 있습니다 달서구 도서관 진짜 가보고 싶네요 ~

레삭매냐 2019-02-08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

서민 교수님의 해학이 돋보이는 글쓰기
와 일기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끔은 너무 복잡하지 않고 요러코롬
스트레이트 포워드하게 나가는 책도
갠춘한 것 같습니다.

뒷북소녀 2019-02-08 13:02   좋아요 0 | URL
아하! 해학! 정말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말씀처럼 해학 넘치는 글쓰기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레삭매냐님은... 일기는... 쓰셨어요?^^
 

[책 속의 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의 저자 이다혜 PICK


다른 사람의 독서 리스트를 엿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의 저자 이다혜 기자가 책 속에서 언급한 책들 중에서 몇 권을 골라왔다.



세상 웬만한 명언의 발화자를 찾아보면 열에 두셋은 오스카 와일드라고 한다. 사랑, 결혼, 사회, 정치, 예술 등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오스카 와일드는 무릎을 칠 한마디를 했다. 38쪽

오스카 와일드를 인용해보겠다. "대중은 아름다움의 새로운 방식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그것과 마주칠 때마다 분노하고 당혹해하면서 언제나 바보 같은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하나는 예술 작품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 작품이 지극히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대중이 예술 작품을 두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할 때는, 예술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말했거나 전에 없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또한 대중이 예술 작품을 지극히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때는, 예술가가 사실을 말했거나 그것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형상화했음을 의미한다. 전자는 스타일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소재에 관한 것이다." 39쪽


화가이자 에세이스트로 60년대 말 활발하게 활동했던 조 브레이너드는 기억과 글쓰기에 시동을 주는 주문, "나는 기억한다"를 발견했고, 이 주문은 이후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글쓰기 강습에서 활용되었다. 책 『나는 기억한다』는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폴 오스터는 그 영화 중 한 편을 제작했으며 "지난 35년 동안 일고여덟 번은 읽었지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간단하다. 당신은 이제 빈 문서파일을 하나 열어 "나는 기억한다, ~을"이라고 한 문장씩 적어가면 된다. 나의 기록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역시 이 방법을 발견한 이의 오리지널리티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40쪽


독서는 새해 결심이라는 것에 자주 오르곤 한다. 읽어야 할 것을 읽지 않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게 만드는 게 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런 결심이야말로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지 않나 생각이 들곤 하는데, 한국의 교육제도가 가진 특성상 독서는 '의무'와 '학습'의 영역에 멈춘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에서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 읽기를 행복의 한 형태로, 기쁨의 한 형태로 생각해야 하는 거에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의무적인 독서는 미신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에게 낙원은,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의 형태로 존재했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고, 1920년대부터 소설과 시, 에세이를 썼고, 1955년부터 조금씩 시력을 잃었고 결국 실명했다. 『보르헤스의 말』은 1980년 보르헤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진행된 여러 인터뷰를 묶었는데, 인터뷰어, 윌리스 반스톤은 그를 전설 혹은 신화로 치켜세우고 보르헤스가 그런 표현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인상이 드는 대화가 곳곳에서 보인다. 그 기묘한 불일치야말로 이 책을 읽는 재미이며, 대학생 시절 보르헤스의 책을 몇 장 넘겨보다 덮어버린 이들이 다시 보르헤스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기묘한 농담이기도 하다. 53쪽



박사님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처음 읽으며 감탄하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을 읽는 듯한 기기묘묘한 환자들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환자들을 대하며 그들이 경험하는 일을, 시간을 들여가며 조심스러게 파악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너무나 이상한 증상이라 주변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아 무시당하는 상황에 자주 처했을 환자는, 박사님을 만나서 비로소 본인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를 얻습니다. 이것은 의학적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재능의 묹라고 느꼈습니다. 111~112쪽

그 시기에 쓴 또 다른 글 「나의 주기율표」는 내가 세어본 것만 열 번은 읽은 에세이다. 단 한 번도 주기율표를 매력적이라거나 아름답다거나 흥미롭다고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주기율표와 친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렵 여섯 살 나이로 기숙학교에 보내졌을 때는 숫자가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열 살에 런던으로 돌아온 뒤에는 원소들과 주기율표가 친구였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겪는 시기에 나는 늘 물리 과학에게로 향했다. 아니, 귀향했다. 생명이 없지만 죽음도 없는 세계로." 116~117쪽


한 남자가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죄목은 1790년 당시 불법이었던 결투를 했다는 것이었다. 방 안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자 그는 방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은 그렇게 태어났다. 애초에 군인이었고, 이 책 이후에 꾸준히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가택연금형이 좋은 일을 한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143쪽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언급되기도 했거니와, 이후 마르셀 프루스트, 수전 손택을 비롯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책이다. 여행의 맛이 '발견'에 있다면, 우리가 발견을 통해 가장 놀랄 장소는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방일 것이다. 가장 익숙한 장소를 발견하는 법을 배운다면, 낯선 장소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또한 배우리라. 145쪽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는 자동 주차 차단기에 머리를 부딪힌 뒤 곧 죽는다는 청승을 떠는 빌 브라이슨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무려 도빌에서. 도빌로 말하자면 프랑스의 바닷가 도시로, 도시의 이름을 딴 영화제가 열리며, 에릭 로메르 영화들에서 종종 등장하던 바닷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을 쓴 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음을 알게 된다. 빌 브라이슨이, 나이를 먹으니 다치는 법도 새로 발견하게 된다며 투덜거리며 시작한다. 149~150쪽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가능한 이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지역은 제외하기로 했다는 사실에서 온다. "길모퉁이에 서서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투덜거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150쪽



세상 모든 에세이는 쓸데없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이루어지지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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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01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도 메리 설날입니다 ~~~

카알벨루치 2019-02-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명절연휴 겁나게 즐겁게 보내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