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9쪽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으로 시작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4명의 주인공을 따라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급급했었고, 다시 읽었을 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각각의 주인공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구별하며 읽었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다보니, 이제야 비로소 밀란 쿤데라의 문장과 사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합니다.

만약 이런 제 푸념을 밀란 쿤데라가 들었다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자신의 소설을 띄엄띄엄 읽었다고 말이죠.


 

만약 독자가 내 소설을 한 줄이라도 건너뛴다면 소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그렇지만 행을 건너뛰지 않는 독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행과 페이지를 잘 건너뛰는 사람 아닌가? _ 밀란쿤데라, 『불멸』 533쪽

 

하지만 절대 띄엄띄엄 읽지 않았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한 문장도 건너뛸 수 없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데, 감히 건너뛰다니요.


아무튼,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전에 쓴 리뷰에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설하고, 가장 원초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라는 존재와 그 행동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절대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적인 것이란 없고 늘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는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이 존재 자체가 한없이 가벼울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한번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도 모르고, 이 존재의 끝도 알 수 없어서 늘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존재를 견디기 힘듭니다. 이 소설의 원제 또한 '참을 수 없는'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우리의 삶이 무한히 반복돼서 똑같은 삶을 살고, 또 살게 된다면 우리 존재는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 또한 참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한 번의 선택이 영원히 반복되는데, 그 '한 번'이 얼마나 견딜 수 없이 무거울까요.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짐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12쪽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13쪽

 

밀란 쿤데라는 늘 '존재'에 주목합니다. 그는 소설의 존재 이유 또한 "삶의 세계를 영원한 빛 아래 간직하고 우리를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지키는 것"(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33쪽)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존재'에 대해 생각합니다.


 

여전히 밀란 쿤데라가 어렵다면,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렵다면 굳이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의 문장만 따라 읽어보길 바랍니다. 그 문장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빛나는 작가니까요.

 

사람들이 카프카를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까? 카프카의 탁월한 상상력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알레고리를 찾으려 들기에 결국 상투적인 해답만 들고 옵니다. 예를 들어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둥(아니면 부조리하지 않다는 둥), 아니면 신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둥(아니면 우리와 닿을 수 있는 존재라는 둥) 그런 것들이지요. 상상력이 그 자체로 가치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 특히 현대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_ 파리 리뷰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1』, 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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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7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의 책이라고는 <무의미의 축제>
하나 읽은 게 다네요.

<참을 수 없는...>은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 실패 -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귀찮네요.

쿤데라 다른 책도 있는디.

뒷북소녀 2019-02-27 12:57   좋아요 0 | URL
아, <무의미의 축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여섯 번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여전히 미스테리합니다.
작가가 탐구하고 있는 ‘존재‘ 그 자체가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여러 번 읽다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시길^^

카알벨루치 2019-02-27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견딜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해와 공감이 팍팍!ㅎㅎ

뒷북소녀 2019-02-27 12:58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다보니, 한국어로 번역된 ‘참을 수 없는 ‘ 것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이 더 와닿는 것 같더라구요.
처음 이렇게 제목을 지은 번역가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카알벨루치 2019-02-27 15:24   좋아요 1 | URL
20대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근데 리뷰가 넘 좋네요👍👍👍

뒷북소녀 2019-02-27 23:10   좋아요 1 | URL
저는 며칠 전에 읽어도 늘 가물가물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목나무 2019-02-27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라의 소설은 이 한 권이면 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시작하다 포기 시작하다 포기를 반복...ㅎㅎㅎ;;;;;
언젠가는 나도 뒷북소녀처럼 멋지게 읽어내겠지? ~~ ^^

뒷북소녀 2019-02-27 12:59   좋아요 0 | URL
아, 정말인가요? 저는 다음으로 <불멸>을 읽었는데, <불멸>도 정말 좋더라구요.
한 권으로는 절대... 부족한 것 같아요. 도전해 보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