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의 저자 이다혜 PICK
다른 사람의 독서 리스트를 엿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의 저자 이다혜 기자가 책 속에서 언급한 책들 중에서 몇 권을 골라왔다.
세상 웬만한 명언의 발화자를 찾아보면 열에 두셋은 오스카 와일드라고 한다. 사랑, 결혼, 사회, 정치, 예술 등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오스카 와일드는 무릎을 칠 한마디를 했다. 38쪽
오스카 와일드를 인용해보겠다. "대중은 아름다움의 새로운 방식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그것과 마주칠 때마다 분노하고 당혹해하면서 언제나 바보 같은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하나는 예술 작품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 작품이 지극히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대중이 예술 작품을 두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할 때는, 예술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말했거나 전에 없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또한 대중이 예술 작품을 지극히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때는, 예술가가 사실을 말했거나 그것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형상화했음을 의미한다. 전자는 스타일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소재에 관한 것이다." 39쪽
화가이자 에세이스트로 60년대 말 활발하게 활동했던 조 브레이너드는 기억과 글쓰기에 시동을 주는 주문, "나는 기억한다"를 발견했고, 이 주문은 이후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글쓰기 강습에서 활용되었다. 책 『나는 기억한다』는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폴 오스터는 그 영화 중 한 편을 제작했으며 "지난 35년 동안 일고여덟 번은 읽었지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간단하다. 당신은 이제 빈 문서파일을 하나 열어 "나는 기억한다, ~을"이라고 한 문장씩 적어가면 된다. 나의 기록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역시 이 방법을 발견한 이의 오리지널리티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40쪽
독서는 새해 결심이라는 것에 자주 오르곤 한다. 읽어야 할 것을 읽지 않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게 만드는 게 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런 결심이야말로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지 않나 생각이 들곤 하는데, 한국의 교육제도가 가진 특성상 독서는 '의무'와 '학습'의 영역에 멈춘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에서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 읽기를 행복의 한 형태로, 기쁨의 한 형태로 생각해야 하는 거에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의무적인 독서는 미신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에게 낙원은,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의 형태로 존재했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고, 1920년대부터 소설과 시, 에세이를 썼고, 1955년부터 조금씩 시력을 잃었고 결국 실명했다. 『보르헤스의 말』은 1980년 보르헤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진행된 여러 인터뷰를 묶었는데, 인터뷰어, 윌리스 반스톤은 그를 전설 혹은 신화로 치켜세우고 보르헤스가 그런 표현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인상이 드는 대화가 곳곳에서 보인다. 그 기묘한 불일치야말로 이 책을 읽는 재미이며, 대학생 시절 보르헤스의 책을 몇 장 넘겨보다 덮어버린 이들이 다시 보르헤스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기묘한 농담이기도 하다. 53쪽
박사님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처음 읽으며 감탄하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을 읽는 듯한 기기묘묘한 환자들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환자들을 대하며 그들이 경험하는 일을, 시간을 들여가며 조심스러게 파악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너무나 이상한 증상이라 주변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아 무시당하는 상황에 자주 처했을 환자는, 박사님을 만나서 비로소 본인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를 얻습니다. 이것은 의학적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재능의 묹라고 느꼈습니다. 111~112쪽
그 시기에 쓴 또 다른 글 「나의 주기율표」는 내가 세어본 것만 열 번은 읽은 에세이다. 단 한 번도 주기율표를 매력적이라거나 아름답다거나 흥미롭다고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주기율표와 친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렵 여섯 살 나이로 기숙학교에 보내졌을 때는 숫자가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열 살에 런던으로 돌아온 뒤에는 원소들과 주기율표가 친구였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겪는 시기에 나는 늘 물리 과학에게로 향했다. 아니, 귀향했다. 생명이 없지만 죽음도 없는 세계로." 116~117쪽
한 남자가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죄목은 1790년 당시 불법이었던 결투를 했다는 것이었다. 방 안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자 그는 방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은 그렇게 태어났다. 애초에 군인이었고, 이 책 이후에 꾸준히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가택연금형이 좋은 일을 한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143쪽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언급되기도 했거니와, 이후 마르셀 프루스트, 수전 손택을 비롯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책이다. 여행의 맛이 '발견'에 있다면, 우리가 발견을 통해 가장 놀랄 장소는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방일 것이다. 가장 익숙한 장소를 발견하는 법을 배운다면, 낯선 장소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또한 배우리라. 145쪽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는 자동 주차 차단기에 머리를 부딪힌 뒤 곧 죽는다는 청승을 떠는 빌 브라이슨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무려 도빌에서. 도빌로 말하자면 프랑스의 바닷가 도시로, 도시의 이름을 딴 영화제가 열리며, 에릭 로메르 영화들에서 종종 등장하던 바닷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을 쓴 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음을 알게 된다. 빌 브라이슨이, 나이를 먹으니 다치는 법도 새로 발견하게 된다며 투덜거리며 시작한다. 149~150쪽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가능한 이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지역은 제외하기로 했다는 사실에서 온다. "길모퉁이에 서서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투덜거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150쪽
세상 모든 에세이는 쓸데없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이루어지지 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