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지!

나는 와타나베와 그의 선배 나가사와를 통해 '개츠비'를 만날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했던 와타나베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종종 펼쳐서 읽곤 했는데, 그가 기숙사 식당에서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고 있던 날 나가사와가 말을 걸어왔다. 평소 와타나베에게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졌던 그 선배는 와타나베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보이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 둘은 친구가 됐고, 나 역시 그들의 친구가 됐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멋지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주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 본 사람은 없었으며, 읽고 싶어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1968년에 스콧 피츠제럴드를 읽는다는 것은 반동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결코 권장할 만한 행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내 주위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었으며, 나와 그가 친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나가사와라는 이름을 가진 도쿄 대학 법학부의 학생으로서, 나보다 두 학년 위였다. 우리는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자연히 서로가 얼굴만 알고 있는 그런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내가 식당의 양지 쪽에서 볕을 쬐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자니까, 옆에 와 앉아서 무엇을 읽느냐고 물어 왔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했다. 재미있냐고 그는 물었다. 세 번째 읽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10월의 일이었다.

나가사와 선배는 잘 알면 알수록 묘한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이한 사람과 만나고, 서로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 그처럼 기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아직 없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은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의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58~60쪽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당연히) 세 번 이상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소설이다. 와타나베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가 없고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위대한 개츠비』는 점점 빼곡해져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흔한 스토리 같지만, 이 '위대한'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5년 전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이 보이는 만(灣) 건너편에 집을 샀고,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밤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는 5년 전 우연히 만난 데이지에게 첫 눈에 반해 버렸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 밖에 없었던 개츠비와는 달리 데이지에게는 부족한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츠비는 데이지의 그런 환경과 모습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꼭 '사랑'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자꾸 '사랑이 아니었다'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아쉽다.

그는 거짓 핑계로 그녀를 차지했기 때문에 자신을 경멸했을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수백만 달러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데이지에게 고의로 안도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 인물인 것처럼 믿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를 충분히 보살펴 줄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가정의 뒷받침도 없었을 뿐더러 비정한 정부의 변덕에 따라 세계 어디에서든 갑자기 목숨이 날아가 버리게 될지도 모를 처지였다. 210쪽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형씨. 한동안은 그녀가 나를 차 버려줬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꽤 똑똑한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나는 본래의 야망을 잊은 채 순간순간 점점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었고, 또 갑자기 다른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 그녀에게 앞으로 할 일을 들려주면서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도대체 거창한 일들을 할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211~212쪽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전쟁이었다. 개츠비는 1차 대전 때문에 해외로 파병됐고, 군대에서 활약이 대단했던 개츠비의 귀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지고 말았다. 개츠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데이지도 주변의 압력 때문에 혹은 예전에 개츠비에게서 받았던 안도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데이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톰에게는 정부가 있었고 데이지도 정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과 함께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는 톰의 재산과 지위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데이지의 결혼 소식을 들은 개츠비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갖은 불법을 저지르며 돈을 모았고, 대저택을 구입했다. 개츠비는 여전히 데이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부자가 된 자신을 보면 데이지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년을 기다린, 아니 준비한 사랑의 끝은 참으로 잔혹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사랑 밖에 몰랐던 개츠비, 그는 너무 순수했다. 문득 떠오르는 영화 속 대사가 하나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개츠비는 자신이 변한만큼 데이지도 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상실했다고,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p.227)

『위대한 개츠비』를 이끌어 나가는 화자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이자 개츠비의 옆집에 살고 있는 캐러웨이다. 불법과 일탈을 일삼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올곧다. 개츠비가 얼마나 데이지를 사랑하는지 알면서도 그들의 만남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어찌됐든 개츠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고, 그가 사랑하는 데이지도 이미 결혼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츠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 유일하게 개츠비의 편에 서고,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환멸을 보낸다. 그리고 그곳을 떠난다.

얼마 전, 김연수의 『시절일기』를 읽다가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놓은듯한 글을 발견해 옮겨본다. 개츠비의 사랑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니, 아니 두 명 더 있다. 김연수 작가도 찰스 백스터의 생각에 동의하니까 흥미롭다고 한 것이리라.

 

찰스 백스터의 『서브텍스트 읽기』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예로 들며, 찰스 백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랑을 원한다는 뜻이지만, 사실 그는 그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를 원할 따름이다. 표면 아래 음울하게 감추어진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무엇인가는 소설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요동친다.

어쩌면 개츠비는 자신이 데이지를 원한다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저질렀던 그 많은 소동의 의미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워진다. 이 씁쓸한 웃음 속에 아이러니가 깃든다.

─ 김연수, 『시절일기』 180쪽

 

나의 사랑,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작품이다. 데이지가 변했듯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도 변하고 있다. 때론 개츠비의 사랑이 눈물 겨울 정도로 순수하게만 보이다가도, 때론 사랑의 실체를 모르고 물질적 허상만 쫓는 그의 행보가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데이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 따위 모르는 나쁜 여자라고 욕을 할 때도 있고, 나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데이지와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며 격하게 공감할 때도 있다. 읽을 때마다 우리 내면을 그대로 비춰주는 개츠비. 그런 면에서 '개츠비'는 위대하다. 조만간 책장을 또 펼칠 수 밖에 없는 나의 사랑,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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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27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로 한 번 그리고 영화로 한 번
봤을 따름입니다.

소설로 세 번씩이나 오옷 ~ !!!

뒷북소녀 2019-08-28 08:44   좋아요 0 | URL
아마 세 번...도 넘게 읽었을거예요.ㅋㅋㅋ
처음에 한 번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게 읽을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매력이 있더라구요.ㅋㅋㅋ
 
신이 내린 필력은 없지만 잘 쓰고 싶습니다
심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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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만드는 주문, 이런 일이 있었다!

도대체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나는 매일 고민한다.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첫 문장은 이미 썼지만, 이대로 써도 되는지도 고민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고민되는 글쓰기.

13년간 청소년부터 직장인까지 수천 명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온 심원은 첫 문장을 만드는 마법같은 주문이 있다고 한다. 글쓰기에 능숙한 사람도 첫 문장 쓰기는 어려운 법. 어차피 첫 문장을 공들여 쓴다고 해도 글을 고치는 과정이 있으니 그냥 써보라고 말한다. 그래도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면 무조건 이렇게 시작해보라고 조언한다.

독자들은 "그러니까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라는 건가요?"하고 물을 것이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지 막막할 때 언제나 서공하는 방법이 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 이 문장을 쓰기만 하면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수 있다. 일단 노트에 다음과 같이 써보자.

이런 일이 있었다.

아무리 평범한 문장이라도 글로 쓰면 힘이 생긴다. 문장은 생각을 유도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쓰면 반드시 "무슨 일이 있었지?" 묻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있었다"라는 문장은 경험과 기억을 소환하는 짧은 주문이며, 무엇을 베어 물지를 결정하는 주문이다.

글쓰기 소재는 경험에서 나온다. 글쓰기를 하려면 먼저 "무슨 일이 있었지?"하고 물을 수밖에 없고, "이런 일이 있었다"하고 운을 떼면 글쓰기가 시작된다. 특별하고 충격적인 일을 떠올리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날 리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글쓰기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기록하면서 시작한다. 19~20쪽

수많은 글쓰기 비법들에서 빠지지 않고 강조되는 것이 바로 일단 써보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써보는 것 조차 힘들었던 우리들에게 첫 문장을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줬으니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닐까?

다음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고쳐 쓰기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 가는 사람은 없다. 그들도 모두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문장을 다듬는다. 그런데 고쳐 쓰기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초고를 고칠 때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 배치부터 신경 써야 한다. 문장은 여기를 고치면 저기가 문제고, 저기를 고치면 여기가 문제다. 반면 문단 배치는 더 쉽다. 문단은 결국 하나의 결론만 담고 있으므로 각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뽑아 자연스럽게 연결해두고, 그다음에 문장을 검토하면 된다. 그러므로 글 고치기의 효율을 높이려면 문장의 배치보다는 문단 배치를 먼저 하는 게 낫다. 271쪽

대부분의 초보 글쟁이들은 글을 고쳐 쓰라고 할 때, 문장부터 다듬는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없는지 살펴본다. 그런데 어차피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굳이 우리가 하지 않아도 편집기가 알아서 체크해 주는 것이니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 구도를 먼저 잡듯이 글도 문장을 다듬기 전에 문장들을 배치하며 구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 문장도 쓸 수 없을 때가 있다. 저자는 그럴 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글을 고치려면 고칠 글이 있어야 하고 글을 고치는 요령을 어느 정도 익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자 대부분은 아직 글쓰기와 글 고치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글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글쓰기와 글 고치기를 연습하자. 281쪽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시간을 견뎌야만 뭔가 쓸 수 있지만, 도무지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어진다면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을 필사하거나 재구성하는 연습을 해보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제 뭔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아쉽게도 그런 순간이 당장 찾아오지 않더라도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86쪽

다른 사람의 글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방법은, 스티븐 킹과 함께 아마존에서 작법 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가 제임스 스콧 벨의 비법을 따르면 된다.

소설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왼쪽 페이지의 첫 문장을 읽어라. 그 문장을 당신의 노트에 옮겨 적어라. 그리고 그 문장에서 첫 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라. 그 장면을 다 쓰고 나면 옮겨 적은 첫 문장을 지우고 당신만의 첫 문장을 다시 써 넣어라. 제임스 스콧 벨, 『작가가 작가에게』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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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문장이 남았다 - 시대를 이끈 한 구절의 지성
허연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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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발견한 의미있는 한 대목, 그 한 대목만으로도 책은 나의 분신이 된다!

매일경제신문에 연재한 칼럼 <허연의 책과 지성>을 엮어서 만든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였다.) '시대를 이끈 한 구절의 지성'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장르를 불문하고) 세상에 한 획을 그은 작가와 그들의 책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화씨 451』이라는 소설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미국 환상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레이 브래드버리가 쓴 『화씨 451』는 책이 죄악시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화씨 451도는 섭씨 232.7도쯤 되는 온도로, 종이에 불이 붙는 온도를 의미한다. 정부가 책을 금지하자 사람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책 한 권씩을 저장하기 시작한다. 어떤 책이 읽고 싶으면, 그 책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 그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내가 만약 플라톤의 『국가』를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플라톤의 분신이 되는 것이다.

일찍이 윌리엄 서머셋 모옴도 말했다. "책에서 발견한 의미있는 한 대목, 그 한 대목만으로도 책은 나의 분신이 된다"고.

그렇다. 책은 나에게로 와서 내 자신과 합체한다. 나와 합체됐다는 건 나를 형성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한 나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확장된 나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힘과 기술, 무기를 얻는 일이다. 5~6쪽

멋지지 않은가! 책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작가의 분신이 될 수 있다니. 한 문장만으로 그 책이 나의 분신이 될 수 있다니. 나 또한 한 권의 책을 읽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하나라도 있다면 성공한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장과 검색 기술이 점점 쉽고 편해지는 요즘에는, 책 내용은 커녕 좋은 문장을 만나더라도 기억하는 일이 드물다. 어딘가에 기록해뒀다가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까,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인간 중심의 업적들은 결국 책이 만들어낸 것이다. 노예제가 사라지고,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 많은 질병에 대한 치료의 길이 열리게 한 원동력은 결국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책을 읽으면서 대중들의 자아와 시선이 달라졌고, 그 달라진 자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 것이다.

노예제나 여성차별 같은 말도 안 되는 만행이 자행되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문맹'이다. 소수의 몇 사람에게만 책이 주어졌던 시대, 그 시대가 곧 야만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책이 창문을 열어 주기 전까지 인간은 인간답게 산 적이 없었다. 마녀사냥이 자행되던 중세 때는 유럽 인구의 90%가 문맹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을 벗어나 책을 읽게 되면서 야만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인류가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세상이 바뀐 것이다.

마녀사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마녀사냥을 자행하는 사람들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마녀사냥이 사라진 건 아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에 눈뜬 사람들이 마녀사냥이 옳지 않다는 걸 밝혀냈기 때문에 마녀사냥이 사라진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 인식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 인식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책의 한 문장을 가슴으로 외우는 누군가가 있는 한, 인류는 악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6~7쪽

세상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나아지고 있는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기억을 의지하고 있는 나는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요즘엔 그마저도 기록하지 않아서 기억은 커녕 검색할 것(기억) 조차 없다.

'칼럼'이었던 글들이라 가독성이 매우 좋지만, 생각보다 이야기가 빨리 끝나서 오히려 감질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책 속에 소개된 책들을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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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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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던 '시간'의 개념이 깨지는 순간!

내 손목시계 바늘이 12시를 가리킬 때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4시를 가리킬 때쯤 책 읽기를 마쳤고, 지금은 다시 12시 방향을 향해 돌고 있다. 분명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관찰하며 이 책을 읽었는데, 저자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나처럼 정리를 잘 못하는 독자가 있을거라고 예상했는지, 마지막 부분에 책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해 준다. 저자보다 더 저자의 이야기를 잘 정리할 자신이 없어서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우리는 온 우주에서 균일하게 동등하게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익숙한 시간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온 우주에 하나의 현재, 하나의 ‘지금’이 실재한다. 모든 사람에게 과거는 고정돼 있고, 이미 도래했으며 지나갔다. 미래는 열려 있고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현실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흐르고, 사물의 진화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것이 세상의 기본 구조라고 생각했다.

이 익숙한 틀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시간은 아주 복잡한 현실의 근사치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3장)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순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서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세계적이 아니라 지역적이다.

세상의 사건을 지배하는 기본 방정식에는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없다.(2장) 그 차이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희미한 생각과 함께, 과거에 세상이 우리에게 특별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문제가 될 뿐이다.

지역적으로, 시간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른다. 우리가 물체 덩어리에 가까울수록(1장), 우리가 빨리 움직일수록(3장)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 두 사건 사이의 기간은 단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는 리듬은 자체의 동역학을 지니고,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에 의해 기술되는 실체인 중력장에 의해 결정된다. 양자 효과를 무시하면, 시간과 공간은 우리를 담고 있는 거대한 젤리의 양상들이다.(4장)

하지만 세상은 양자적이고, 젤리 같은 시공간 역시 근사치이다. 세상의 기본 문법에는 공간도, 시간도 없고, 오직 물리량을 변화시키는 과정만 있을 뿐이며, 이로부터 우리는 확률과 관계를 산출할 수 있다.(5장)

지금 우리가 아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는 우리가 경험한 시간과 유사한 것이 별로 없다. 특별한 ‘시간’ 변수도 없고 과거와 미래의 차이도 없고 시공간도 없다.(2부) 우리는 세상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쓸 줄 안다. 이 방정식에서 변수들은 서로에 상대적으로 변화한다.(8장) 세상은 ‘정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변화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꽉 막힌 우주’도 아니다.(7장) 오히려 사물들이 아니라 사건들로 가득한 세상이다.(6장)

여기까지는 시간이 없는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었다. 그 우주에서 돌아오는 여행은 시간이 없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시간 감각이 생길 수 있었는지(9장)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다. 놀라운 일은, 시간의 친숙한 면들이 출현하는데 우리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 세상의 작은 일부인 인간의 관점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세상을 본다. 세상과 우리의 상호 작용은 부분적인데,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보게 되는 이유다. 이 희미함에 양자의 불확정성이 추가된다. 그로 인한 무지가 특별한 변수인 열적 시간(9장)의 존재와 우리의 불확실성을 양화한 엔트로피의 존재를 결정한다.

아마도 우리는 나머지 세상과 상호 작용하면서 열적 시간의 한 방향으로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특별한 부분 계에 속하는 것 같다. 따라서 시간의 방향성은 실제적이지만 관점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에 달려 있는 것이다.(10장) 세상의 엔트로피는 ‘우리와 관련돼’ 있고, 우리의 열적 시간과 함께 증가한다. 우리는 이 열적 시간을 간단히 ‘시간’이라 부르는데, 이 변수 안에서 사물들이 순서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고 우주의 전개를 이끈다. 또한 과거에 대한 흔적과 잔존물 그리고 기억이 존재하도록 한다.(11장) 인간은 과거의 흔적들에 대한 기억으로 뭉쳐져 있는, 엔트로피 증가는 대역사의 산물이다. 우리는 각자 각자가 하나의 통합된 존재다. 세상을 반영하고 있고, 타자와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하나의 통합된 실체의 이미지를 구축해왔으며 기억으로 통합된 세계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2장) 여기서 우리가 시간의 ‘흐름’이라 부는 것이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간의 경과를 경청할 때 듣는 소리다.

‘시간’ 변수는 세상을 설명하는 수많은 변수 중 하나다. 중력장의 변수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4장), 우리 규모에서는 양자의 요동을 기록할 수 없기에(5장) 시공간을 아인슈타인의 거대한 연체동물처럼 잘 확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우리 규모에서는 이 연체동물의 움직임이 너무 작아서 무시될 수 있다. 따라서 시공간을 탁자처럼 견고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탁자에는 차원들이 있는데 우리가 공간이라 부르는 차원과 시간이라 부르는, 엔트로피가 그것을 따라서 성장하는 차원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빛에 비해 매우 낮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계마다 서로 다른 고유 시간이 있음을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며, 또한 어떤 물질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 차이도 너무 작아 식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간들이 아닌, 우리가 경험한 균등하고 범세계적이고 순서가 있는 시간, 이 단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엔트로피의 성장에 의존하여 시간의 흐름에 정착한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특별한 관점에서 기술한, 세상에 대한 근사치의 근사치의 근사치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근사치들에서 파생된 확연히 구분되는 수많은 특성들이 겹겹이 쌓인 다층 구조의 복잡한 개념,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시간의 개념에 대해 수많은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고 다층적인 측면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제각각의 다양한 층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잇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평생 시간의 주위를 맴돌고 나서 알게 된 시간의 물리적 구조이다. 199~204쪽

이것을 좀 더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곳에서나, 무엇을 하든 시계바늘처럼 시간이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라는 사실. 시간은 단순히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우리가 '현재' 혹은 '지금'이라고 정의하는 시점도 문법적인 개념일 뿐 과학적으로는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 저자는 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 물리학자라는 것.

그는 친절하지 않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이론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듯 하다. 그가 간단하다고 말하는 이론 조차 나같은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어쩌면 진짜 물리학적인 접근은 어렵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한 아리스토텔레스나 뉴턴의 연구를 언급하며 인문학적인 접근을 했던 것일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사물의 변화에 맞춰 우리의 상황을 규정하는 방식이자 날짜의 변화와 계산에 맞춰 우리 자신을 위치시키는 방식이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변화의 척도이다. 아무 변화도 없으면 시간도 없다. 72~73쪽

아무 움직임이 없으면 시간은 없다. 시간은 움직임의 흔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73쪽

뉴턴은 사물이나 사물의 변화와 상관 없이 ‘진짜’ 시간은 흐르고, 모든 사물이 멈추고 우리 영혼의 움직임마저 얼어붙어버려도 ‘진짜’ 시간은 냉정하게 그리고 동일하게 계속 흐른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시간과 반대인 것이다. 74쪽

뉴턴에게 시계는 항상 부정확하기는 하지만, 동등하고 균일한 시간의 흐름을 좇으려 하는 장치였다. 뉴턴은 이 ‘참된 수학적 절대 시간’은 인지할 수 없고 현상들의 규칙을 관찰하고 계산해서 추론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뉴턴의 시간은 우리 감각의 증거물이 아니라 우아한 지적 산물인 것이다. 76쪽

뉴턴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인류에게 시간은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헤아리는 방식이었다. 뉴턴 이전에는 그 누구도 사물과 상관없는 시간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77쪽

그는 시간에 대해 상반된 주장을 펼쳤던 아리스토텔레스(시간은 변화의 척도일 뿐)와 뉴턴(아무 변화가 없을 때도 흐르는 시간이 있다)의 사례를 들며, 그들이 어떤 실험이나 실측 없이 오직 사유만으로 그런 성과를 얻었다고 추겨세운다. 이것은 저자가 현재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의 연구 또한 추측만 있을 뿐, 어떤 실측값이 없기 때문이다. (부제에서도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이라고 밝혔듯이 사실 이 분야는 실측값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긴 하다.)

그 답변이 우리가 오늘날 유일하게 옳다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정답은 아니다. 양자중력 이론의 대표적인 한 흐름인 루프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이끌어낸 일종의 이론적 추측일 뿐이다. 현재 양자중력 이론은 오직 이론적 상상을 통해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모할 뿐이며, 아직까지는 어떤 실험적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우주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그 안에서 인간 세상을 재조명하게 한다. 매우 그럴듯하며 흥미진진한 상상이자, 양자 이론의 관점에서 중력 현상을 설명하는 천체 우주 물리학의 미개척 분야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옮긴이의 글」, 220쪽

이 책의 번역자이자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중원 교수 또한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창을 열어두고 이 책을 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글」에 의미있는 내용들이 있어서 덧붙여 본다.

이 책의 원제목 『시간의 질서』는 매우 역설적이다. 마치 시간에 어떤 질서와 순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의 주장은 이와 정반대다. 시간에 어떤 순서나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시 세계에서 바라본 우주의 특수한 양상일 뿐, 보편적인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 지각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 본래의 원초적 시간에는 순서나 질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흐름이 없다. 시간은 단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 간의 관계, 좀 더 엄밀히 말해 이 관계들의 동적인 구조에 나타나는 양상이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 번역 책의 제목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인 이유다. 「옮긴이의 글」, 221~222쪽

이 책은 일종의 ‘시간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 시간에 관한 이 우주의 거대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 온전히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이 인류의 역사에서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구의 시간이 아닌 우주의 시간, 곧 시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한 발짝 더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옮긴이의 글」,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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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8-19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양자역학에서.... 음음..으음... 심지어 리뷰마저 어려워... 하지만 이 리뷰를 보면서 언젠가는 읽어보겠다 마음먹어 봅니다 ㅎㅎㅎ

뒷북소녀 2019-08-20 08:42   좋아요 1 | URL
예쁜 표지가 함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버섯처럼요.^^;;
깔끔하게 정리해서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상대성원리 조차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다소 어려운 책이더라구요.
언젠가는 올리게 되실 쟝쟝님 리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양장 한정판)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저자는 왜 철학책을 썼을까?

 

게이오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저자가 주로 한 일은 컨설팅이었다. 그는 조직 개발, 혁신, 인재 육성, 리더십 분야의 전문 컨설턴트였고, 현장에서 철학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을 살려 유수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기업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단다. 그런 그가 쓴 철학 인문서라니,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의 책일지 짐작이 됐다.

학 전문가도 아닌 내가 왜 사회인을 위한 철학책을 쓰고자 했을까? 그 이유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이 사회를 이루고 영위하는 데 크고 작은 역할을 맡고 있는 개인들이야말로 철학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4쪽

물론 철학 전문가만 철학책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그의 말도 맞다. 그런데 뭔가 당돌한 구석이 없지 않다. 굳이 자신이 철학책을 쓴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소위 철학 입문서가 차고 넘친다. 인터넷 서점에 '철학 입문'이라고 검색하면 철학의 대가인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무려 만 권이 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까지 많은 입문서가 쓰였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대표할 만한 책이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증거이므로 새롭게 철학 입문서를 쓰는 의미가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이렇게나 많은 철학 입문서가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지금까지 쓰인 유사 도서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요소를 드러내지 않는 한 큰 의미가 없다. 26쪽

러셀이 일부 학자들의 혹평을 받고 있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러셀의 작품을 콕 집어 언급한 뒤에 아직 대표할 만한 책이 쓰여지지 않았다고 하다니. 자신감이 넘치는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각설하고 러셀, 군나르 시르베크가 쓴 『서양 철학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철학 입문서들은 연대기 순으로 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저자가 결정적으로 다른 요소를 둬야 한다고 언급했듯이) 이 책은 연대기 순이 아닌 네 가지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 네 가지 콘셉트는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인데 지극히 비즈니스 컨설팅 대가다운 콘셉트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이 네 가지 콘셉트에 맞춰 50가지 핵심 철학 사상들을 선정했는데, 이것을 선정한 기준은 철학사의 학문적인 중요성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쓸모(적용)'이다. 그래서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칸트도 저자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빠져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좀 더 솔직하게 덧붙이고 있는데, 사실은 '너무 대단해서' 저자가 사용하기에 불편하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책에서는 철학ㆍ사상의 핵심 개념을 다루는 데 철학사의 학문적인 중요성은 반영하지 않았다. 분명 철학이나 근대 사상에 익숙한 사람은 칸트, 스피노자, 키르케고르가 싹 빠져 있는 철학 입문서는 허용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비판도 고려하지 않았다.이 책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업인 조직과 인재에 관한 컨설팅과 실생활에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유용성을 토대로 편집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35쪽

저자는 이렇게 자신이 철학책을 쓴 의도를 시작부터 밝히고 있으니, 이 의도만 꼼꼼히 읽는다면 실패 혹은 실망하지 않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천여 명의 CEO가 극찬한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인문학?

앞서 저자가 밝혔듯이, 철학 사상을 나누고 있는 네 가지 컨셉트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이다. 사람, 조직, 사회, 사고에서의 철학의 쓸모를 이야기하다보니, 인문학적인 접근 보다는 경영이나 자기계발에 가까운 설명들이 많다. 특히, 읽다보면 왜 2천여 명의 직장인들이 아닌 CEO들이 극찬했는지 알 수 있다.

리더의 자리에서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황에 따라 환영받지 못하는 결정이나 부하에게 상처를 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비즈니스든 사회 조직이든, 혹은 가족 안에서든 장기적인 번영과 행복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리더는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134쪽

통상 비즈니스 세계에서 상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과급 정책이 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창조성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성과를 유도하기 위해 제공하는 '당근'이 조직의 창조성을 높이는 데 의미가 없을뿐더러 되레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대가와 학습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65쪽

CEO가 아닌 내가 위로 받은 부분도 있었는데, 바로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을 반론한 부분이다.

글래드웰의 주장은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면 1만 시간 동안 훈련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대담한 법칙을 제안한 데 반해 책에 나와 있는 논거는 일부의 바이올리니스트 집단과 빌 게이츠(프로그래밍에 1만 시간을 열중했다), 그리고 비틀스(데뷔 전에 무대에서 1만 시간 연주했다)에게서 이 법칙이 관측되었다는 것뿐으로, 주장의 근거가 너무나 취약하다. 이는 비단 글래드웰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재능보다 노력'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책에 나타나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259쪽

컴퓨터게임 : 26%

악기 : 21%

스포츠 : 18%

교육 : 4%

지적 전문직 : 1%

이 수치를 보면 글래드웰이 주장한 '1만 시간의 법칙'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얼마나 위험한 주장인지 알 수 있다.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주장에는 일종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어 매우 아름답게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이고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의미 있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공정한 세상 가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공정한 세상 가설, 즉 노력은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사고는 실증 연구에서 부정되고 있으며 노력의 누적량과 성과의 관계는 해당 경기나 종목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혀졌다. 다시 말해 섣불리 이 사고에 사로잡혔다간 승산이 없는 일에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261쪽

즉, '1만 시간의 법칙'은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 효과적으로 나타나는 분야는 컴퓨터게임, 악기, 스포츠와 같은 분야에 한정되어 있으니 승산 없는 일에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제목에서부터 일본스러움이 풍기는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철학 입문서보다는 경영서나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이 책은 핵심 철학 사상의 목록을 엿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더 깊게 알고 싶다면 진짜 철학 입문서나 해당 사상가의 저서를 직접 찾아 읽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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