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지!

나는 와타나베와 그의 선배 나가사와를 통해 '개츠비'를 만날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했던 와타나베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종종 펼쳐서 읽곤 했는데, 그가 기숙사 식당에서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고 있던 날 나가사와가 말을 걸어왔다. 평소 와타나베에게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졌던 그 선배는 와타나베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보이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 둘은 친구가 됐고, 나 역시 그들의 친구가 됐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멋지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주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 본 사람은 없었으며, 읽고 싶어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1968년에 스콧 피츠제럴드를 읽는다는 것은 반동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결코 권장할 만한 행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내 주위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었으며, 나와 그가 친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나가사와라는 이름을 가진 도쿄 대학 법학부의 학생으로서, 나보다 두 학년 위였다. 우리는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자연히 서로가 얼굴만 알고 있는 그런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내가 식당의 양지 쪽에서 볕을 쬐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자니까, 옆에 와 앉아서 무엇을 읽느냐고 물어 왔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했다. 재미있냐고 그는 물었다. 세 번째 읽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10월의 일이었다.

나가사와 선배는 잘 알면 알수록 묘한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이한 사람과 만나고, 서로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 그처럼 기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아직 없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은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의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58~60쪽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당연히) 세 번 이상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소설이다. 와타나베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가 없고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위대한 개츠비』는 점점 빼곡해져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흔한 스토리 같지만, 이 '위대한'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5년 전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이 보이는 만(灣) 건너편에 집을 샀고,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밤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는 5년 전 우연히 만난 데이지에게 첫 눈에 반해 버렸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 밖에 없었던 개츠비와는 달리 데이지에게는 부족한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츠비는 데이지의 그런 환경과 모습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꼭 '사랑'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자꾸 '사랑이 아니었다'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아쉽다.

그는 거짓 핑계로 그녀를 차지했기 때문에 자신을 경멸했을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수백만 달러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데이지에게 고의로 안도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 인물인 것처럼 믿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를 충분히 보살펴 줄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가정의 뒷받침도 없었을 뿐더러 비정한 정부의 변덕에 따라 세계 어디에서든 갑자기 목숨이 날아가 버리게 될지도 모를 처지였다. 210쪽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형씨. 한동안은 그녀가 나를 차 버려줬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꽤 똑똑한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나는 본래의 야망을 잊은 채 순간순간 점점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었고, 또 갑자기 다른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 그녀에게 앞으로 할 일을 들려주면서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도대체 거창한 일들을 할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211~212쪽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전쟁이었다. 개츠비는 1차 대전 때문에 해외로 파병됐고, 군대에서 활약이 대단했던 개츠비의 귀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지고 말았다. 개츠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데이지도 주변의 압력 때문에 혹은 예전에 개츠비에게서 받았던 안도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데이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톰에게는 정부가 있었고 데이지도 정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과 함께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는 톰의 재산과 지위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데이지의 결혼 소식을 들은 개츠비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갖은 불법을 저지르며 돈을 모았고, 대저택을 구입했다. 개츠비는 여전히 데이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부자가 된 자신을 보면 데이지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년을 기다린, 아니 준비한 사랑의 끝은 참으로 잔혹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사랑 밖에 몰랐던 개츠비, 그는 너무 순수했다. 문득 떠오르는 영화 속 대사가 하나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개츠비는 자신이 변한만큼 데이지도 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상실했다고,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p.227)

『위대한 개츠비』를 이끌어 나가는 화자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이자 개츠비의 옆집에 살고 있는 캐러웨이다. 불법과 일탈을 일삼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올곧다. 개츠비가 얼마나 데이지를 사랑하는지 알면서도 그들의 만남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어찌됐든 개츠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고, 그가 사랑하는 데이지도 이미 결혼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츠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 유일하게 개츠비의 편에 서고,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환멸을 보낸다. 그리고 그곳을 떠난다.

얼마 전, 김연수의 『시절일기』를 읽다가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놓은듯한 글을 발견해 옮겨본다. 개츠비의 사랑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니, 아니 두 명 더 있다. 김연수 작가도 찰스 백스터의 생각에 동의하니까 흥미롭다고 한 것이리라.

 

찰스 백스터의 『서브텍스트 읽기』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예로 들며, 찰스 백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랑을 원한다는 뜻이지만, 사실 그는 그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를 원할 따름이다. 표면 아래 음울하게 감추어진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무엇인가는 소설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요동친다.

어쩌면 개츠비는 자신이 데이지를 원한다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저질렀던 그 많은 소동의 의미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워진다. 이 씁쓸한 웃음 속에 아이러니가 깃든다.

─ 김연수, 『시절일기』 180쪽

 

나의 사랑,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작품이다. 데이지가 변했듯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도 변하고 있다. 때론 개츠비의 사랑이 눈물 겨울 정도로 순수하게만 보이다가도, 때론 사랑의 실체를 모르고 물질적 허상만 쫓는 그의 행보가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데이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 따위 모르는 나쁜 여자라고 욕을 할 때도 있고, 나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데이지와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며 격하게 공감할 때도 있다. 읽을 때마다 우리 내면을 그대로 비춰주는 개츠비. 그런 면에서 '개츠비'는 위대하다. 조만간 책장을 또 펼칠 수 밖에 없는 나의 사랑,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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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27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로 한 번 그리고 영화로 한 번
봤을 따름입니다.

소설로 세 번씩이나 오옷 ~ !!!

뒷북소녀 2019-08-28 08:44   좋아요 0 | URL
아마 세 번...도 넘게 읽었을거예요.ㅋㅋㅋ
처음에 한 번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게 읽을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매력이 있더라구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