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무엇인가 - 진리를 찾아 나선 인류의 지적 모험에 건네는 러셀의 나침반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석봉 옮김 / 사회평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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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보다 더 강력하게 과학을 옹호하고 종교에 반대하는 책은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11쪽

버트런드 러셀은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 교육 혁신가, 성해방 옹호자, 무정부주의자, 반전주의자였던 그가 다른 상(이를테면, 노벨평화상이라든지)도 아닌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준 책이 바로 『과학이란 무엇인가』이다.

러셀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두 측면, 즉 종교와 과학이 그동안 어떻게 관계를 맺고 대결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오랫동안 다져왔던 종교의 벽이 얼마나 굳건했는지, 과학은 그 벽을 허물지 못해 긴 시간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 시대 이후로 지난 400년 동안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가장 주목할 만한 갈등을 천문학, 생물학, 의학,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울러 소개하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모든 갈등의 승자는 결국 과학이었다.

「서문」을 쓴 과학철학자 마이클 루스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논할 때 네 가지 입장이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종교와 과학은 실재에 대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대립이나 투쟁 관계로 보는 입장, 두번째는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른 물음에 질문하고 답하는 완전히 다른 분야의 경험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입장, 세번째는 과학과 종교는 별개의 문제들을 다루지만 겹치는 부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입장, 마지막으로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러셀은 종교와 과학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대립 관계에 있다고 보았으며, 종교를 거부하고 과학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 때문에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고 있는 것만큼 편파적이지는 않다. 그는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영역에서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자유주의적 신학자들은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고 양보한다. 184쪽

J. 아서 톰프슨 경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과학은 '왜'라는 의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가 그에 대해 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3쪽

새로운 진리는 때로는 불편하다.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야말로 잔인함과 편협함으로 물든 기나긴 역사 속에서 지적이고 총명하면서도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우리 인류가 일궈낸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다. 262쪽

신학이든 과학이든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러셀은 과학은 가치의 문제들을 결정지을 수 없으며, 사람들이 지나치게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신학이 그랬던 것처럼 과학이 그런 오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기술이 과학적 정신보다 더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과학적 정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철학자인 그가 과학에 대해 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과학적 정신은 신중하고 잠정적이고 점진적이다. 자기가 모든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가 획득한 최상의 지식조차도 전적으로 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은 어떤 이론도 조만간 수정이 필요하며,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탐구와 토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255쪽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실무 전문가들과 그들을 고용하는 정부나 대기업은 과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게 된다. 즉 무한한 권력을 지닌 듯한 도취감, 오만한 확신, 인적 자원을 조종하는 쾌감 등이 엿보인다. 이는 과학적 성향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지만, 과학이 이를 조장하는 데 일조해왔음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56쪽

마지막으로 제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원제는 『Religion and Science』다. 그런데 번역서는 왜 '과학'만 강조하고 있을까? 한때 우리나라에서 '…이란 무엇인가' 류의 제목이 유행한 탓일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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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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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밖에서도 연대의 힘을 보여준 윤이형 작가

2020년 1월, 윤이형 작가는 『붕대 감기』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절필을 선언했다. 2020년 '이상문학상'의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금희 작가가 불공정한 저작권 계약으로 수상을 거부했고, 최은영, 이기호 작가도 연대 의사를 밝히며 수상을 거부했다. 이에 2019년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도 "상에 대해 항의할 방법이 활동을 영구히 그만두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절필을 선언한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외치는 연대들

'진경'과 '세연'은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붕대 감기'의 짝꿍이 된 이후로 사십 대가 된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저 소식을 끊지 않고 지낼 뿐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그런 친구 사이는 아니다. 그들은 SNS로 이어져 있었고, 댓글을 달아주거나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이로만 지냈다. 전업주부인 '진경'과 비혼을 선택한 '세연'이 시시콜콜하게 공유하고 공감할 공통의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십 대 중산층 여성(처럼 보이는) 진경은, 페미니스트 편집자이자 작가인 친구 세연에게 끊임없는 가치판단의 대상이 된다."(153쪽) "친구가 친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비혼 여성이 기혼 여성을 평가하고 있다."(53쪽)

세연이 갑자기 계정을 닫았다. 몇 주 후 다시 계정을 연 세여은 더 이상 일상 포스팅을 하지 않았다 공유하는 글들의 성격이 달라졌고, 자주 댓글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달라지더니, 쓰는 글들의 결도 달라졌다.

(…) 자신이 실제로 했고 앞으로 분명히 할 일들에 대해서만 짧게 또박또박 적어 올리는 세연을 보면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미스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칙칙 소리가 나게 미스트를 뿌려주고 싶었다.

진경은 여전히 세연을 좋아했고 존경할 만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세연아, 너의 물기들은 어디로 갔어? 바람이 조금 빠진 자전거 타이어처럼 눌러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피식피식 웃을 수밖에 없던 너의 여유는, 농담들은, 꿈꾸는 듯한 문장들은 어디로 간 거야? 그건 너와 내가 공유하던 빛나는 보물이었는데. 왜 이렇게 지상의 삶에 밀착되어 자갈과 흙과 모래 들만 바라보는 사람이 된 거야? 그 돌들끼리 부딪칠 때면 이를 가는 것처럼 진절머리가 나는 소리가 나던데, 어떻게 그것들을 쉬지도 않고 다 듣고 있는 거야? 진경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세연은 결코 들을 일도 대답할 일도 없겠지만. 49~51쪽

세연은 진경의 포스팅에 댓글을 달 수 없었다. 계속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그 말들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게 자신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끊임없이 그 말들을 늘어놓는 주체가 다름 아닌 자신의 공포라는 것을 알아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117쪽

한편, 전업주부인 '진경'과 영화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워킹맘 '은정'도 대조적이다. 8개월 전 은정의 아들 '서균'이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이 된 이후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아이의 간병만 하고 있다. 지금 은정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지만,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동안 일 때문에 아이 엄마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고, 일과 관련된 일 외의 다른 일들은 소모적이라며 아예 끊고 살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놀이터에서 아이 엄마들을 만나더라도 살가운 대화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은정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들려 있었고, 미용실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런 은정에게 말을 거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정이라는 적금을 필요할 때 찾아 쓰려면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적립을 해뒀어야 했다. 19쪽

8개월 만에 미용실을 찾은 은정을 진경의 딸 '율아'가 발견한다. 율아는 서균의 안부를 묻고싶어 하지만, 진경은 조심스러워한다. 아픈 아이의 안부를 묻는게 조심스럽기도 할테지만, 평소 은정의 성격을 알고 있다면 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왜 조심스러워야 돼?

율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엄마가 많이 아파서 누워 있다면 율아는 누구든 엄마가 다 나았느냐고 물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무도 물어주지 않는다면 자신은 어린이집에 다니지도, 밥을 먹지도 못할 것 같았다. 먹더라도 다 토해버릴 것 같았다. 엄마는 서균이 엄마를 싫어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서균이를 싫어하는건가. 42쪽

'……아이는 아직 모른다. 달착지근한 마카롱 몇 개나 갑작스럽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같은 것으로는 괜찮아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더 겁나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굳이 물어보았다.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종종 장미가 비를 기다리듯이 기다리게 되므로.' 46쪽

은정은 해미의 미용실을 다녔다. 패션지 대신 늘 자신이 가지고 온 책을 읽었던 손님, 올 때가 됐는데 오지 않는다. 은정이 마지막으로 왔을 때 해미가 선물한 책 한 권 때문일까? 그 책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었고, 해미의 '인생 소설'이기도 했다.

마침 은정이 몸이 아파 출근을 못했을 때 은정이 다녀갔다고 한다. 해미 대신 지현이 은정의 머리를 커트했고, 아이가 아파서 최근까지 못 읽다가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고 해미에게 전해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은정이 서균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미용실을 방문했을 때, 소란 피우는 아이를 방치한 은정을 비난하는 트윗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아이의 소식을 들은 지현은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친구 미진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진은 불법촬영 피해자였는데, "친구가 감당하고 있는 정신적 무게를 같이 짊어지기가 버거워서 손을 놓아버렸다."(28쪽)고 했다. 지현은 그 죄책감을 덜어버리기 위해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탈코르셋 운동'이 시작된 뒤로 지현은 내적 갈등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업으로 하고 있는 '미용사'라는 직업이 그런 운동과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현에게 해미는 그저 기도를 하자고 한다. 자신들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걱정을 덜어달라고.

이 외에도 『붕대 감기』를 채우고 있는 인물들이 많다. 이혼 후 고향에서 소소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윤슬, 그녀는 가끔씩 서울에 들러 진경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당돌하게 교수인 경혜에게 친구하자고 먼저 손을 건넨 채이는, 경혜의 동료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채이의 후배 형은은 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데, 마침 엄마의 직장 후배인 효령에게 연락이 온다. 엄마가 큰 병이라도 났을까봐 걱정했던 형은에게 엄마 명옥과 효령은 노후를 함께 하겠다고 한다. 아직은 그런 법이 없지만 '생활동반자법'이 생기면 재산이랑상속 관계도 좀 더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을거라고 하면서.

그녀들은 때론 대립을 하고, 또때론 연대를 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페미니즘들'을 외치고 있다. 그녀들의 연대 혹은 대립을 심진경 문화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소문자 페미니즘들'을 만드는 일이며, 그럴 때라야 비로소 여성 연대는 가능할 것이다. 이때 여성연대란 단수적이기보다는 복수적이고, 통합적이기보다는 해체적이고, 무질서하고 개방적인, 그래서 非연대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 될지도 모른다. 윤이형의 『붕대 감기』가 여성들끼리의 화해와 연합이 아닌,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끝나는 것은 이런 인식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진짜 페니미즘'을 넘어서:윤이형의 『붕대 감기』가 페미니즘'들'에 대해 말하는 방법」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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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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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은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을 쓰셨다. 6쪽

우리는 이 이야기의 끝을 이미 알고 있다. 드라마처럼 기적 같은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절대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라는 것도. 『아침의 피아노』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총 234편의 짧은 일기들을 담고 있다.

2017년 7월, 선생은 암 선고를 받았다. 아직 해야 할일도 많고 사랑해야 할 것도 많은데, 선생은 암 선고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우선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보았다. 그들이 선생의 나이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살 만큼 생을 누렸다고 말한다. 게다가 선생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2017년 7월」, 10쪽) 그는 무기력 상태로 보내는 것은 어리석다며 노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투병 중에도 더 열심히 이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ㅡ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 251쪽

암 선고를 받은 직후인 2017년 7월에는 78편의 글들을 남겼지만 8월에는 34편, 9월에는 5편을 남겼다. 점점 줄어드는 글들 때문에 더 빨리 다가오는 날짜들을 보며 선생의 상태를 짐작했다. 선생은 자신이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해 기록들을 남긴다고 했다.

비록 몸은 아프지만, 선생이 바라보는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아침의 피아노 소리. 깊은 사색에 젖을 수 있는 비 오는 날, 파란 버스가 멈춰선 정류장, 선생은 이 모든 것들이 있는 세상을 사랑했다.

병원에 다녀왔다. 결과가 안 좋다. 기대를 걸었던 면역 치료는 소용이 없었다. 종양은 그사이 더 자랐다. 입원 지시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 산책을 했다. 바람은 신선하고 맑고 부드럽다. 허공에 맴도는 잠자리들은 흥겹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이 세상을 마지막까지 사랑할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존재이고 진실이고 의무이다. 「2018년 7월」, 240쪽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 모든 것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많이…… 이것만이 사실이다. 「2018년 7월」, 239쪽

고통이 점점 더해지는 와중에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모두 여전한데 선생만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선생의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애도 일기』를 썼다. 선생은 어머니를 잃은 롤랑 바르트와는 달리 선생의 곁에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잃은 건 오직 자신의 건강 뿐이기 때문에 롤랑 바르트의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뒤적인다. 그는 사랑을 잃었다. 나는 건강을 잃었다. 그래서 다 같이 낙담에 빠져 있다. 그런데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는 완전히 잃었다(어머니는 죽었다). 나는 아직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병에 걸렸지만 아직은 여러 면에서 건강하다). 바르트에 비하면 나는 사실 아주 소량을(물론 아주 중요한 것을) 잃었을 뿐이다. 그에게서 동병상련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기연민은 치졸하고 가엾다. 「2017년 12월」, 155쪽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뒤적인다. 부끄럽고 괴롭다. 그의 고통들은 모두가 마망 때문이다. 마망의 상실 때문이다. 그의 고통들은 타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 그건 오로지 나 때문이다. 나는 나만을 근심하고 걱정한다. 그 어리석은 이기성이 나를 둘러싼 사랑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사실 나는 바르트보다 지극히 행복한 처지다. 그는 사랑의 대상을 이미 상실했다. 그러나 내게 사랑의 대상들은 생생하게 현존한다. 나는 그들을 그것들을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만 하면 된다. 「2018년 7월」, 250쪽

롤랑 바르트 외에도 선생이 이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작가가 한 명 더 있다. 평생 병으로 고생하다 51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프루스트다. 프루스트는 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 말년에는 더 바쁘게 글을 썼을 것이라고 선생은 말한다. 아마도 선생은 누구보다도 프루스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프루스트와 같은 방식으로 마지막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이 불확실성과의 대결이 프루스트의 말년이었다. 그가 침대 방에서 살아간 말년의 삶은 고적하고 조용한 삶이 아니었다. 그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삶이었다. 침대 방에서 프루스트는 편안하게 누워 있지 않았다. 그는 매초가 아까워서 사방으로 뛰어다녔을 것이다. 그가 종일 침대 방에서 무엇을 했는지 셀레스트조차 모르지만 독자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마지막 책은 100미터 달리기경주를 하는 육상선수의 필치와 문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166쪽

세상에 가족이 있다면 특정한 족속이 아니라 인간 모두를 포함하는 인간 가족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프루스트도 이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회고해보면 콩브레에 살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다 비슷하게 닮아 보인다. 그래서 콩브레의 추억은 인간 가족의 박물관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2018년 2월」, 170쪽

유년에 대한 글쓰기를 유서 쓰기로 여겼던 이들이 있었다. 발터 베냐민, 프루스트…… 「2018년 3월」, 179쪽

프루스트의 소설 공간은 둘이다. 하나는 생의 공간. 이 공간은 점점 더 수축하고 그 끝에 침대가 있다. 이 침대보다 더 작은 공간이 관이다. 또 하나의 공간은 추억의 공간. 이 공간은 생의 공간이 수축할수록 점점 더 확장되어서 마침내 하나의 우주를 연다. 그것이 회상의 공간이고 소설의 공간이다. 「2018년 3월」, 180쪽

다시 프루스트:

"우리가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다고 여기는 그때 우리를 구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가 그토록 찾았던 그 문을 우리는 우연히 두드리게 되고 그러면 마침내 문이 열리는 것이다. 「2018년 6월」,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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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생각의 시대 1
김용규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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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코 브라헤가 될 것인가? 케플러가 될 것인가?

덴마크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는 놀라운 인내력과 끈기로 행성들의 운행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가 1576년에서 1597년 사이에 수집한 행성들의 자료는 어마어마했지만, 그는 그 자료들을 통해 어떤 보편적 원리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스승의 방대한 관측 자료를 물려받은 제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그 자료들을 토대로 '케플러 법칙'을 만들어 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상당 부분을 학교에서 배웠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 지식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평소 유학파에 스마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한 배우는 예능에서, 자신은 어릴 적에 독일의 수도를 '본'이라고 배웠다고 하며 언제 수도가 바뀌었는지 되물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을 하자 수도가 '베를린'으로 바뀌었다고 하자 89학번인 자신은 모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웃으며 말했다. 그만큼 예전에는 학교 교육에 의존적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지식을 검색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시대다. 지식에 보다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우리는 그저 브라헤처럼 데이터만 모으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이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격변하는 환경을 꿰뚫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획득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그에 합당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고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한마디로,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생각의 시대다! 11쪽

기원전 450년에서 322년 사이,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의 황금기'를 일구며 서양문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분명 그들보다 먼저 역사를 기록하고 문명을 이룩한 나라가 있었다. 한때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들 보다 한참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그들보다 1,200년이나 앞서 살았던 수메르인들에게도 미치지 못했다. 그랬던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황금기를 일구고 서양문명을 주도하기 시작했을까?

그 비밀은 일명 '축의 시대'라고 불렸던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5세기 사이에 있었다. 당시 그곳에서는 훗날 눈부신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생각의 도구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리스인들은 그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해 부지런히 갈고닦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그리스인들은 보편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 저자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갈고닦았던 '생각의 도구'를 이렇게 5가지로 정리하며 그동안 이 도구들이 어떻게 적용되고 변천되어 왔는지 소개한다. 또, 지금의 우리들이 어떻게 이 도구들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키울 수 있는지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인문교양서와 유아교육 실용서 사이!

일단 '5가지 생각의 도구'에 대한 소개는 교양 지식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유용하고 흥미롭다. 하지만 매 챕터마다 등장하는 아동심리학자 피아제의 이론들은, 이 책을 '누구에게나 필요한 인문 교양서'에서 '유아교육이 필요한 부모들을 위한 실용서'로 한정시켜버렸다. 물론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 책의 목표는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 '실용'임을 강조하긴 했어도, 당장 '유아교육'과 같은 실용적인 측면이 필요하지 않은 나 같은 독자는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책이다.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 소설은 그저 줄거리만 파악하면 된다며 무협지 읽듯이 읽는 사람, 글을 쓸 때 주술 관계는 무시하고 수식만 잔뜩 늘어놓는 사람, 소설 따위는 안 읽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은 읽지 않고 아이에게만 책을 읽어라고 강요하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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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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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만 루슈디가 들려주는 현대판 '천일야화'

『2년 8개월 28일 밤』을 날수로 계산하면 1001일 밤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천일야화(千一夜話)』 (제목의 '천일'을 보통 '1000일'이라고 생각하는데, '1001'이다)를 현대판으로 다시 쓴 것으로, 31세기의 누군가가 21세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판타지 소설이다. 31세기의 그 누군가는 친절하게도 대강의 내용을 이야기 앞부분에 정리해서 들려준다.

이 책은 마족의 위대한 공주였던 어느 여마신, 벼락을 마음대로 부려 번개공주라 불리며 오래전에, 우리가 12세기라고 부르는 시대에 한 인간 남자를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며, 그녀의 수많은 후손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나긴 세월이 흐른 후 그녀가 이 세상에 돌아와 잠시나마 다시 사랑에 빠졌다 전쟁에 나서는 이야기다. 또한 여러 마족, 남성이든 여성이든, 날아다니든 기어다니든, 선하든 악하든 도덕 따위에는 무관심하든, 아무튼 온갖 마족에 대한 이야기이며, 2년 8개월 28일 밤, 다시 말해서 천 날 밤 하고도 하룻밤에 걸쳐 이어졌던 위기의 시대, 혼란의 시대, 우리가 괴사의 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 그 시대가 끝난 후 이미 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 시대가 우리 모두를 영원히 변화시켰다. 다만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우리의 미래가 말해주리라. 17쪽

먼저 이 이야기를 하려면 11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위대한 철학자 '이븐루시드'는 개방적 사상 때문에 세비야에서 루세나로 귀양살이를 하러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열여섯 살쯤 먹은 소녀 '두니아'를 만나게 된다. 이븐루시드는 그녀를 집안에 들여 가정부 겸 연인으로 삼는다.

어느 나그네가 그 이름을 지어주면서 그리스어로 '세계'를 뜻한다고 설명해줬는데 자기는 그 뜻이 마음에 들었단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번역한 바 있는 이븐루시드는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그 이름은 여러 언어에서 '세계'를 뜻하므로 굳이 학식을 뽐낼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세계를 뜻하는 이름을 골랐지?" 그가 묻자 소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 몸에서 세계가 태어날 테니까,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들이 세계로 퍼져나갈 테니까." 19쪽

사실 '두니아'는 인간이 아닌 마족의 위대한 공주였지만 마족과 달리 이성을 중시했던 이븐루시드를 사랑하게 됐다. 마족들은 넘치는 성욕을 가졌는데, '두니아' 역시 2년 8개월 28일 동안 세 번이나 수태했고 그때마다 여러 아이를 한꺼번에 낳았다. 이븐루시드는 두니아의 넘치는 성욕을 이야기로 가라앉히기도 했다. 이븐루시드는 2년 8개월 28일만에 사면 복권되어 귀양살이를 끝내고 왕실 주치의 자리로 돌아갔고, 두니아와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식들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주지도 않았다. 그들의 후손들은 귓불 없는 마족의 외모만 물려받게 된다.

호메로스, 발미키, 비야사, 셰에라자드.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간단히 '우리'라고 칭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생물인지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생물이다. 271쪽

그로부터 800년이 지난 21세기의 뉴욕,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그치자 2년 8개월 28일 동안 괴이한 일이 잇따랐다. (귓불 없는) 정원사 제로니모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처음에는 제로니모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떠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이 부양하게 되었고 전염병처럼 주변 사람들도 공중부양을 하게 된다. '스톰 베이비'라는 아이가 시장실에 버려지게 되는데 이 아이에게는 사람들의 부정부패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었다. 낙뢰를 맞고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손가락에서 번갯불이 나왔다. 괴사(怪事)가 일상사처럼 일어나던 시대였다. 이것은 모두 대홍수 때 인간계와 마계 사이에 틈이 생기면서 인간계로 나온 흑마족들이 벌인 것들이다.

한편, 위대한 철학자 '이븐루시드'에게는 '가잘리'라는 숙적이 있었는데, 대홍수가 끝난 뒤 가잘리가 흑마신에 의해 깨어난다. 과거에 가잘리는 푸른 병 속에 갇힌 흑마신 주무르드 샤를 풀어주고 3가지 소원권을 획득한다. 그는 당장 소원을 비는 대신 자신이 "언제든 어떤 달이 뜨는 밤이든" 원하는 때로 소원을 유예하는데, 그 덕분에 죽은 후에도 소원을 빌 수 있게 되었다. 가잘리가 원한 것은 여느 인간들처럼 "막대한 재산, 더 큰 성기, 무한권력"이 아니라 인간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

"두려움만이 죄 많은 인간을 하느님께 이끌어줄 수 있소. 두려움은 하느님의 일부분이오. 절대자의 무한한 권능과 인과응보 앞에서 나약한 피조물 인간에게 어울리는 반응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오. 두려움은 곧 하느님의 메아리라고 말할 수도 있겟소. 그 메아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자비를 애원하지. 지상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런 곳은 굳이 건드리지 마시오. 인간의 교만이 팽배한 곳, 인간이 스스로를 신처럼 여기는 곳, 그런 곳을 찾아가 무기고와 환락가를, 그리고 기술과 지식과 재산을 떠받드는 신전을 때려부수시오. 하느님은 곧 사랑이라고 부르짖는 감상적인 지역도 찾아가시오. 가서 진실을 보여주시오." 190쪽

그랬다. 가잘리는 흑마신을 이용해 "인간이 신앙을 버리고 이성을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 이븐루시드에게 맞서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두니아도 마계의 규칙을 어기고 죽은 이븐루시드를 깨워낸다.

두니아의 바람대로 귓불 없는 두니아의 후손들이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었고, 두니아는 후손들이 마족의 능력을 깨우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는 두니아가 사랑하는 인간계가 쾌락과 비이성으로 난무하지 않도록, 후손들과 함께 흑마족들에 맞선다.

환상적인 이야기는 곧 현실을 이야기하는 다른 방법!

역사와 신화를 넘어서 마족과 마계라니. 이미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도 읽어보았지만, 거기에 환상적인 요소가 더 더해진 것 같아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살만 루슈디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친절하게도 살만 루슈디는 31세기의 누군가를 통해 힌트를 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 인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인데,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라서 때로는 이것이 역사인지 신화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어떤 이들은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누구나 동의하는데,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곧 현재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환상적인 이야기, 상상을 다룬 이야기는 곧 현실을 이야기하는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할 텐데,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무의미한 일을 가급적 피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304쪽

살만 루슈디는 현실의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일까? '위대한 철학자' 이븐루시드는 과학과 이성을 중시한 그의 사상 때문에 고향에서 내쳐지고, 더이상 그의 철학을 설파하거나 저술하는 일도 금지되고, 그가 쓴 모든 책이 소각되었다. 살만 루슈디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악마의 시』라는 책 때문에 그의 목에는 현상금이 내걸렸고, 처형 당할 위험에 빠졌다. 루슈디는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영국의 보호 아래 숨어 살았고, 인도에서는 그의 책이 금서로 지정됐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몸소 체험했던 이야기, 현실에서는 직접적으로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분노는 제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결국 분노한 자를 망가뜨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으로 인해 새로 태어나듯이 증오하는 것으로 인해 몰락하고 파멸하다. 402쪽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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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2-22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1일 밤이 몇 년 몇 개월인지 외우기 쉬운데요. 2828! ‘2828’을 말할 때 발음을 조심해야겠어요.. ㅎㅎㅎ

뒷북소녀 2021-02-22 11: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천일이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알게 됐어요.^^

레삭매냐 2021-02-22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븐루시드/아베로스와 가잘리가 실존 인물
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냥 소설의 캐릭
인 줄 알았거든요.

자크 아탈리는 젊은 날의 이븐루시드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도 썼다고 해서 주문장
날렸답니다.

보르헤스의 <알레프>에도 아베로에스가
나와서 어제 냉큼 빌려다 찾아 보았습니다.
별 건 없더군요.

뒷북소녀 2021-02-22 11:20   좋아요 0 | URL
매냐님 리뷰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어찌 그렇게 뱀꼬리를 잘 찾으셨는지^^ 알레프... 있지 싶은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