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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인가 - 진리를 찾아 나선 인류의 지적 모험에 건네는 러셀의 나침반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석봉 옮김 / 사회평론 / 2021년 2월
평점 :
이 책보다 더 강력하게 과학을 옹호하고 종교에 반대하는 책은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11쪽
버트런드 러셀은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 교육 혁신가, 성해방 옹호자, 무정부주의자, 반전주의자였던 그가 다른 상(이를테면, 노벨평화상이라든지)도 아닌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준 책이 바로 『과학이란 무엇인가』이다.
러셀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두 측면, 즉 종교와 과학이 그동안 어떻게 관계를 맺고 대결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오랫동안 다져왔던 종교의 벽이 얼마나 굳건했는지, 과학은 그 벽을 허물지 못해 긴 시간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 시대 이후로 지난 400년 동안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가장 주목할 만한 갈등을 천문학, 생물학, 의학,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울러 소개하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모든 갈등의 승자는 결국 과학이었다.
「서문」을 쓴 과학철학자 마이클 루스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논할 때 네 가지 입장이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종교와 과학은 실재에 대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대립이나 투쟁 관계로 보는 입장, 두번째는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른 물음에 질문하고 답하는 완전히 다른 분야의 경험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입장, 세번째는 과학과 종교는 별개의 문제들을 다루지만 겹치는 부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입장, 마지막으로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러셀은 종교와 과학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대립 관계에 있다고 보았으며, 종교를 거부하고 과학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 때문에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고 있는 것만큼 편파적이지는 않다. 그는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질문에 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영역에서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자유주의적 신학자들은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고 양보한다. 184쪽
J. 아서 톰프슨 경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과학은 '왜'라는 의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가 그에 대해 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3쪽
새로운 진리는 때로는 불편하다.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야말로 잔인함과 편협함으로 물든 기나긴 역사 속에서 지적이고 총명하면서도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우리 인류가 일궈낸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다. 262쪽
신학이든 과학이든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러셀은 과학은 가치의 문제들을 결정지을 수 없으며, 사람들이 지나치게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신학이 그랬던 것처럼 과학이 그런 오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기술이 과학적 정신보다 더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과학적 정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철학자인 그가 과학에 대해 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과학적 정신은 신중하고 잠정적이고 점진적이다. 자기가 모든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가 획득한 최상의 지식조차도 전적으로 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은 어떤 이론도 조만간 수정이 필요하며, 이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탐구와 토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255쪽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실무 전문가들과 그들을 고용하는 정부나 대기업은 과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게 된다. 즉 무한한 권력을 지닌 듯한 도취감, 오만한 확신, 인적 자원을 조종하는 쾌감 등이 엿보인다. 이는 과학적 성향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지만, 과학이 이를 조장하는 데 일조해왔음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56쪽
마지막으로 제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원제는 『Religion and Science』다. 그런데 번역서는 왜 '과학'만 강조하고 있을까? 한때 우리나라에서 '…이란 무엇인가' 류의 제목이 유행한 탓일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