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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발표 소설, 그는 왜 SF를 선택했을까?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긴 칩거에 들어간 가즈오 이시구로는 6년 만에 SF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그는 왜 SF를 선택했을까? 가즈오 이시구로는 "의식이 있고 말을 하는 장난감과 아픈 아이가 친구가 되는 동화"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편집자 역할을 맡아온 딸로부터 냉정한 답변을 받게 된다. 그런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될 거라고 말이다. 그는 딸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동화 대신 우화적 SF로 발전시켰다.
결국 마음의 문제!
『클라라와 태양』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이자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양성한 복제 인간의 삶과 존엄성을 다룬 『나를 보내지 마』와 주제 의식이 이어지는 SF 소설이다.
가까운 미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AF(Artificial Friend), 즉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한다. 소녀 AF인 '클라라'는 B2 4세대 모델로, 햇볕이 잘 드는 쇼윈도에 앉아 누군가 자신을 데려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클라라는 쇼윈도에 앉아 사람들과 풍경을 관찰한다. 다른 AF보다 관찰력이 뛰어난 클라라는 그렇게 학습하고 공감 능력을 키워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최신 모델인 B3 AF를 더 선호했고, 클라라는 그들에게 밀려 구석진 곳에 진열된다. 클라라는 앞쪽에 진열되지 않아 주인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 것도 안타깝지만, 그보다는 창밖을 관찰할 수 없어서 더 슬프다.
다행히 클라라가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을 때 클라라를 눈여겨 본 '조시'가 클라라를 데리러 온다. 조시는 자신의 집이 어떤 곳인지, 가끔씩 자신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 클라라에게 미리 알려주며 함께 가고 싶은지 의향을 묻는다. 조시의 어머니는 최신 모델들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았지만, 클라라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 후 클라라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클라라를 데려가는데 동의한다.
내 머릿속이 조시에 대한 걱정, 특히 왜 해가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시에게도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다시 가득 찼기 때문이다. 모건 폭포에 가기 전에도 조시가 아플 때면 나는 해가 조시를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그때는 어쩌면 해가 지금은 좀 더 두고 보겠다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시가 훨씬 약해졌고 앞날의 많은 것들이 불분명해졌는데도 왜 해가 마냥 꾸물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조시 말고도 해의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 아무리 해라고 해도 조시처럼 어머니, 가정부, 에이에프에게 돌봄을 잘 받는 듯 보이는 아이까지는 미처 챙기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174~175쪽
조시는 가끔씩 아프다. 상태가 매우 안 좋아질 때도 있어서 클라라는 (아니 조시 주변 사람들은 모두) 늘 조시의 건강을 걱정하며, 조시도 자신처럼(클라라의 동력은 '태양열'이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양분을 충분히 받아 건강해지길 원한다. 사람들은 모르는 태양의 힘, 클라라에게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
"너는 똑똑한 에이에프야. 어쩌면 우리가 못 보는 걸 보는지도 모르지. 네가 희망을 갖는 게 맞는 일일 수도 있지. 네가 옳을지도." 165쪽
'릭'은 어릴 때부터 조시와 함께 자란 이웃집 소년이다. 조시와 릭은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하지만, 조시와 릭은 다른게 있다. 조시는 '유전자 편집의 혜택'을 받아 '향상되는 것'을 선택했고, 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릭이 선택할 수 있는 학교나 교류 모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 조시에게는 '샐'이라는 이름의 언니가 있었다. 샐 역시 '향상되는 것'을 선택했지만, 잘못되어 죽었다. 조시가 현재 아픈 것도 샐과 같은 이유다. 조시의 어머니와 친구 사이인 릭의 어머니는 말한다. 샐을 잃고도 어떻게 조시까지 향상시킬 생각을 했냐고. 만약 우리에게 '향상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사실 클라라가 필요했던 건 조시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만약 조시가 샐처럼 자신의 곁을 떠난다면, 클라라가 완벽하게 조시를 구현해 곁에 있어 주기를 원했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클라라의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AF인 클라라가 자신의 딸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클라라가 조시를 대체하는 것이 진정 조시와 어머니를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클라라는 알고 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직장에서 로봇에게 대체 당해 일자리를 잃은 조시의 아버지도 알고 있다. 결국 이것은 '마음의 문제'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만약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조시를 제대로 배우려면 조시의 습관이나 특징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아? (…) 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건 능력 밖일 거야. 아무리 신통하게 해낸다 해도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턱도 없을 테니까.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그걸 완전히 알아야 하지, 아니면 너는 절대로 조시가 될 수 없어." 320~321쪽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441~442쪽
다행히 클라라의 믿음처럼, 조시는 건강해졌고 집을 떠나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게 된다. 이제 클라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집을 떠난 조시 대신 어머니와 함께 사는 걸까? 그렇지 않다. 클라라는 야적장에 버려진다. 유기당했다. 나는 《토이 스토리》처럼 아름다운 이별을 상상했지만, 소설은 영화보다 더 가혹하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딸이 동화로 출판하는 것을 반대한 이유도 이런 것 때문일 것이다.
필요할 때는 '인공지능 로봇 친구'를 표방하고, 완벽하게 인간을 구현해 내기를 원하면서, 그렇지 않을 때는 철저하게 '물건'처럼 취급한다. 예를 들면, 인간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등을 돌리고 차가운 벽을 향해 서있게 하거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어서 다용도실이나 구석진 곳에 서 있어야 하고, 친구라면서 나란히 걷지도 못하게 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공감해 주기를 원하면서 이런 대우라니.
인간과 로봇, 로봇과 인간.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공존할 수 있을까?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결국 마음 혹은 윤리의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혹은 윤리)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비록 SF라는 타이틀이 달려있지만, 이것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가까운 미래,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결국 '마음'이라고 말하는 『클라라와 태양』. 그러나 소설 속 몇몇 인간들은 클라라보다 더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인간의 비정함에 가슴이 아릿해지는 소설이다. 미안해, 클라라!
※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귓가를 맴돌던 노래 한 곡(♪어쩔 수 없어요, 결국 당신 마음의 문제이니까.)이 있다. 그래서 이 리뷰의 제목으로 차용해 보았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마음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