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0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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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먼저 '검찰관'을 사칭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어느 지방도시, 비밀 명령을 받은 암행 검찰관이 중앙에서 온다는 소식이 '시장(안똔 안또노비치)'에게 전해진다. 시장을 비롯한 판사, 자선병원장, 교육감, 우체국장 등 이 지방도시의 인사들은 잘못한 것이 없는지 체크하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서로 협의한다. 시장은 누군가가 자신을 밀고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는, 우체국장에게 의심스러운 편지는 뜯어보라고 지시한다.

곧이어 시의 지주 두 사람이 여관에서 검찰관으로 추정되는 관리를 봤다는 소식을 전한다. '훌륭한 풍채에 사복을 입은 사람이 방 안을 서성거리고'(31쪽) 자신들이 연어를 먹고 있는데 접시를 들여다봤다면서 '관찰력이 강해 보였고, 모든 것을 죽 훑어보는 눈치'(32쪽)였다고 한다. 시장은 여행자들의 편의를 시찰 중인 것처럼 가장하여 검찰관으로 추정되는 관리가 묵고 있는 여관을 방문한다. 흘레스따꼬프와 이야기를 나눈 시장은 그가 검찰관이 맞다고 확신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한다.

흘레스따꼬프는 평소에도 허세가 심하고 비싼 옷들을 입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진짜 중요 인사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푸시킨과도 친분이 있다고 하고. 흘레스따꼬프를 만나기 위해 소도시의 주요 인사들이 시장의 집으로 찾아온다. 판사, 교육감, 자선병원장, 우체국장, 시의 지주 등등. 흘레스따꼬프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고, 어차피 뇌물을 바치고 청탁할 작정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서슴없이 돈을 제공한다. 소식을 들은 일반 시민들도 시장의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그를 찾아온다. 그 와중에 흘레스따꼬프는 시장의 아내에게 추파를 던지고, 시장의 딸에게는 청혼까지 한다.

그러나 불안을 느낀 흘레스따꼬프의 하인 오시쁘가 하루빨리 떠날 것을 종용하자 이미 충분한 돈을 챙긴 흘레스따꼬프는 곧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도시를 떠난다.

그는 떠나기 전 이곳에서의 일을 한 기자에게 편지를 써 기삿거리로 제공하는데, 훔쳐보기 좋아하는 우체국장이 그 편지를 뜯어본 것이다.(시장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우체국장은 호기심 때문에 평소에도 남의 편지를 훔쳐보았다.) 사실을 알게 된 시장과 사람들, 그들 앞에 헌병이 나타나 '특명을 받고 상뜨뻬쩨르부르그에서 온' 검찰관이 그들을 데려오라는 소식을 전한다.

이 말은 천둥소리처럼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한다. 부인들의 입에서 일제히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위치를 바꾸고 화석처럼 굳어버린다. 174쪽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그들은 진짜 검찰관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검찰관이 온다는 소식에 경악하는 사람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적어도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여지껏 우리는 자신의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 '인사'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웃음과 공포의 환상적인 조화!

ㅡ 이현우,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10쪽

『검찰관』은 푸시킨의 여행담으로부터 나온 이야기다. 흘레스따꼬프가 푸시킨과 친분이 있다고 한 것은 허세였지만, 고글은 실제로 푸시킨과 친분이 있었다. 희곡 소재를 고민하고 있는 고골에게 푸시킨은 자신이 지방 여행을 하면서 검찰관으로 오해 받았던 사건을 들려준 것이다.

사실 흘레스따꼬프는 검찰관을 사칭한 적이 없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지레 겁 먹은 시장과 지방 인사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 (푸시킨도 직접 겪을 정도로) 당시 러시아에서는 종종 있는 일들이었고, 고골은 그것을 웃음으로 고발하고 있다. 황제의 특명으로 초연된 『검찰관』은 보수 언론과 관리들에게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 희곡을 보는게 불편했을 것이다.

『검찰관』에는 제대로 된(선하거나 정직한) 인물이 하나도 없다. 하나같이 비리를 저지르고, 온통 부정적인 인물들 뿐이다. 고골은 이렇게 말한다. "단 하나 긍정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웃음이다"(215쪽)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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