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현금을 지급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급 대상자의 직업이나 수입, 재산, 교육 수준은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괜찮은 생활을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취지이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한 제안으로 들리는가. 기본소득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시도가 나오면 퍼주기 복지’, ‘포퓰리즘’, ‘도덕적 해이등 온갖 부정적인 수사들이 뒤따르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청년들에게 매달 50만원씩 주기로 한 청년수당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직권취소됐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살아났지만, 신청 연령과 인원을 제한하고 있고 미취업자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취업 여부나 소득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발 나아간 정책이지만, 24세 청년에게 지역 상품권을 준다는 한계가 있다.

 

기본소득은 현실적으로 난관이 적지 않다. 공짜 돈을 받으면 근로의욕이 감소할 것이고,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헛되다는 공격에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선진국 정부가 전쟁·군사 비용을 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유토피아를 공격하는 또 다른 논리인 위험하다는 주장에는 사람들이 유급 직업을 더 갖게 될 것이며, ‘사악하다는 주장에는 오히려 기존 복지제도가 국민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치심을 안기고 있다고 응수한다.

 

기본소득이 최근에야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98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빈곤가정 전체에 조건 없이 연 1600달러(4인가구 기준, 2016년 가치로는 1만달러)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자녀가 있는 미국 가정의 소득 아래 바닥을 까는법안으로, 오늘날 기본소득 개념에 가까운 시도였다. 경제학자들과 언론, 종교단체, 노동조합, 기업들이 일제히 찬성했지만, 상원에서는 부결됐다. 한편 1973년 캐나다 위니펙의 소도시 도핀에서 4년간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실험을 한 결과, 근로 시간은 줄지 않았고 건강은 향상됐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기본소득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인공지능(AI)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 속에 기본소득은 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6월 스위스는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비록 부결됐지만, 기본소득은 스위스의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다. 네덜란드는 20여 곳의 지자체에서 기본소득 정책을 실행하고 있고, 캐나다와 핀란드도 대규모로 실험에 나섰다.

 

이 책이 제안하는 15시간 노동이라는 비전 역시 뜻밖에도 오래된 미래. 대공황이 휘몰아치던 1930,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아이러니하게도 100년 후 인류의 최대 과제로 무한한 여가를 꼽았다. 정치인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2030년이면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케인스 이전에도 카를 마르크스나 존 스튜어트 밀 등이 미래에 여가가 넘쳐날 것으로 전망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기계화로 인간이 권태에 빠져들 것을 우려했다. 물론 이 모든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제성장은 우리에게 시간을 앗아갔고, 남은 것은 과도한 소비로 진 빚과 과로였다.

 

이제는 근로시간을 줄여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이 책의 논거는 이렇다.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어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 의료 사고나 원전 사고, 금융 위기 등 각종 재난도 막을 수 있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실업을 해결하고, 성평등, 고령화, 불평등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도 뿌리 뽑을 수 있다. 다만 한꺼번에 주 15시간으로 줄일 수는 없으므로, 유연한 정년 제도, 남성 육아휴직 장려, 교육 투자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이상에 다가가야 한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우리는 곳곳에서 진보의 역설을 겪고 있다. 경제는 성장해도 삶의 질은 오히려 나빠졌다. 절대 빈곤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인구도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일에 허우적대고 있으며 행복하지 않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이유라는 독설이 뼈아프다.

 

이 책은 지금이야말로 유토피아적 사고가 절실한 때라고 주장한다. “유토피아가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예제 폐지, 민주주의, 5일 근무제 등도 한때는 판타지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따라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과 접근법이 필요하다.

 

MIT대의 에스더 듀플로 교수는 빈곤 해법 연구에서 모델 중심의 기존 경제학적 접근이 아닌 무작위 비교 실험을 택했고, 현금 지급이 가장 효과적인 빈곤 퇴치 수단임을 밝혀냈다. 교육도 현재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에 집중하기보다 노동시간을 줄여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유토피아에 다다르는 길을 가로막는 주범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복지국가조차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건드리는 데 그쳤다. 책은 특히 좌파가 소극적인 언더독 사회주의의 행태를 보이며 희망과 진보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맹렬하게 비판한다. 이 점에서는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배울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기수인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47년부터 스위스 몽 펠르랭에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가다듬었고, 실천에 옮겼다.

 

책을 쓴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1988년생 네덜란드 저널리스트이다. ‘가난은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현금의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주제의 TED 강연으로 글로벌하게 이름을 알렸다.

 

불가능한 일을 불가피한 대안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야심 차다. 하지만 개발원조의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진국의 국경을 전면 개방하자는 주장은 엉성하게 들린다. 이주의 장벽이 사라지더라도 어쩔 수 없이 또는 자발적으로 개발도상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고, 공동체는 처참히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17개국에서 번역된 이 책의 추천사에는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평등이 답이다>를 쓴 리처드 윌킨슨 등 쟁쟁한 이름들이 즐비하다. 세계 석학들도 스스로를 각성한 몽상가로 부르는 젊은 브레흐만의 외침에 응답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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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벼룩
찰스 핸디 지음, 이종인 옮김 / 모멘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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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이종인 선생은 이 시대 최고의 번역가 중 한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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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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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이고 색채로 가득한 연주... 일곱 색깔 이미지 그리고 다섯 감각의 하모니.

 

작가 온다 리쿠는 피아노가 만드는 음악과 소리를 텍스트로, 혹은 이미지로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그 뜨거운 프로페션은 작가를 열병에 들뜨게 했을 것이다. 독감에 걸린 것처럼 앓아 눕기도 하고, 기억 상실증 환자처럼 허공으로 훠이훠이 저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호프만이 안겨준 기프트 혹은 설치한 폭탄은 무엇일까? 여기에 미스터리 같은 재미가 있다. 그렇다고 책을 건너뛰면 안 된다. 작가는 거대한 직소퍼즐의 조각을 딱딱 맞추듯특유의 섬세함과 노련함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건너뛰면 당신만 손해다.

 

나 말이야, 호프만 선생님하고 약속했어.”

무슨 약속?”

음악을 세상에 데리고 나가겠다는 약속.”

 

나는 결국 가자마 진이 본선을 앞두고 오케스트라와 가진 리허설 장면에서 감동어린 눈물을 흘렸다. 아카시와 아야가 서로 부둥켜 안고 크게 울었던 만큼은 아니지만.

 

세 번의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여섯 명. 개중에 마사루, 아야, 가자마가 주인공들이다. 세 사람에게는 피아노를 하게 된 배경이 있고, 각자의 꿈이 깃들어 있다. 이번 콩쿠르를 통해 서로 교감하면서 성장하고 진화한다.

 

이 작품은 비록 짧은 2주간에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성장 소설이요, 어떤 독자에게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여담 하나. 7백 쪽이나 되는 양장본을 손에 들고 읽기 영 불편했다. 독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배려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두 권으로 분철했으면 어땠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곡을 담은 CD도 세트로 판매되고 있다. (프로코피예프 2번은 왜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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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현대작가들 A To Z
캐롤라인 타가트 지음, 앤디 튜이 그림, 정윤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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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현대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아프리카 작가 치누아 아체베를 시작으로 시몬드 보부아르, 가즈오 이시구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까지 총 52명의 주요 작가들을 A부터 Z까지 소개했다.

 

작가별로 대표작 중심으로 5권 씩 소개한 꼭 읽어야 할 작품은 독자가 더 읽고 싶을 때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또한 작가에 대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또 다른 진실은 작가들의 삶의 이면을 엿보듯 흥미롭다.

 

프리랜서 작가 캐롤라인 타가트가 1000자 범위 내에서 정리한 작가들의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는 글쓰기의 모범이다. 게다가 글쓴이의 의견과 명문의 인용까지 다채롭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은 아티스트 앤디 튜이가 그린 작가들의 초상화다. 특히 초상화의 배경을 눈여겨보야 한다. 가령 올더스 헉슬리 초상화의 배경은 멋진 신세계에 나오듯 알파부터 엡실론까지 계급으로 나눈 아이들을 상징하는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다. 또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에는 청새치, 월딩엄 골딩에는 탐욕스런 돼지,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에는 거대한 곤충이 그려져 있다.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1920~1977)

 

나는 특히 20년 동안 브라질 소설이 맴돌고 있던 중력의 중심을 이동시킨 작가로 칭송받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에 대한 이야기에 솔깃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에서 브라질로 이주한 유대인 작가였다. 망명자 신분이던 그녀는 자신이 느낀 정체성의 혼란과 소외감을 작품에 반영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그녀의 마지막 작품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원제 A Hora da Estrela, 별들의 시간)가 변역돼 있다. 클라리시는 화상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1977년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목록을 보면 내게 익숙한 이도 많지만, 잘 몰랐던 작가도 적지 않아 묘한 설렘을 느꼈다. 그간 내게 잊혔거나, 내가 잘 몰랐던 작가들을 다시 만난 반가움은 뭐에 빗댈 수 있을까.

 

프랑스 문예평론가 샤를 단치는 위대한 고전은 위대한 독자 덕분에 불멸로 살아남는다고 했다. 읽혀지지 않는 고전은 사멸한다는 뜻이다. 고전이란 시대에 따라 새롭게 읽히고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위대한 작가들을 새롭게 보게 하고, 위대한 고전들을 되짚어 보게 해준다.

 

요즘 소통과 공감이 부족한 시대에 고전과 문학 작품을 다시 꺼내자.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고, 살아갈 힘을 서로 북돋우자. 그리고 나만의 명작을 다시 가슴에 품어보자.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인생이 두남받을 수 있다면 그만한 행운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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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당신이군요. 최초의 프로그래머 - 컴퓨터 탄생을 둘러싼 기이하고 놀라운 이야기
시드니 파두아 지음, 홍승효 옮김 / 곰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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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이노베이터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은 뛰어난 혁신가 한 사람이 아니라 협업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가장 진정한 창조성은 예술과 과학의 연결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인간-기계의 공생 시대에 인문과 과학의 융합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암 투병 중 마지막으로 제품 발표회에 나선 것은 2011년 아이패드2 출시 때였다. 당시 잡스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인문학과 결합된 테크놀로지라는 사실이 애플의 DNA에 박혀 있다고 선언했다.

 

 

컴퓨터 쪽에서 보자면 예술과 과학의 결합을 체현한 대표적인 인물 중에 시인 바이런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가 있었다.

 

에이다가 찰스 배비지(1791-1871)를 처음 만난 것은 183365일 수요일이었다. 당시 배비지는 매주 커다란 저택에서 손님 수백 명을 초대해 파티를 열곤 했다. 당일 그는 손님들에게 자신이 만든 차분 기관’(Difference Engine)을 보여주었다. 배비지의 차분 기관은 다항 방정식을 풀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에이다는 여기에 깊이 매혹되었다. 에이다의 통찰력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당시 배비지는 마흔둘, 에이다는 열여덟이었다. 그들은 평생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애니메이터 시드니 파두아는 컴퓨터 개발의 역사를 연 두 사람, 에이다와 배비지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흥미로운 캐릭터, 풍부한 자료와 방대한 주석 덕분에 에이다는 오늘날 재탄생했다.

 

월터 아이작슨은 컴퓨터 혁명의 연대기는 에이다가 메나브레의 해석기관에 대한 논문에 주석을 발표한 1843년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묘사한 에이다(왼쪽)와 배비지

 

1840년 배비지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해석기관에 대해 강연을 펼쳤다. 공학자 루이지 메나브레는 2년 후 한 프랑스 학술지에 강의에 대한 요약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배비지의 강의를 꽤 깔끔하게 글로 옮기고 기관의 기본 구조를 약술한 기록이었다.

 

에이다는 이 논문을 번역하면서 7개의 각주를 덧붙였다. 주석에는 현대의 컴퓨터 조작과 관련된 여러 발상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최초 버전을 담고 있었다. 가령 루프, 조건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 범용 컴퓨터의 개념 등이 언급돼 있다. 이처럼 거의 완전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논문은 에이다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에이다는 저자가 제목에 단대로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불린다. 배비지는 한 편지에서 에이다를 과학의 가장 추상적인 분야에 마술을 거는 마법사이자 활기찬 요정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에이다의 마지막 논문이 됐다. 그녀는 1852년 서른여섯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아버지 바이런과는 생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죽어서는 나란히 묻혔다. 에이다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간통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했다. 남편은 이후 그녀 곁을 떠났다. 그녀의 유품은 남김없이 처리됐다. 후속 연구에 대한 논문이 있었다면 같은 운명을 맞았을 것이다.

    

Computer History Museum(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소재)에서 시연된 차분 기관

 

두 사람은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을 만들고자 했으나 결코 완성하지 못했다. 차분 기관 역시 당시에는 일부만 작동했고, 배비지가 설계한 대로 완전히 구축된 것은 2000년에 와서야 가능했다. 현대식 컴퓨터의 기능을 모두 갖춘 최초의 컴퓨터는 194511월에 완성된 ENIAC이다.

 

한편 빅토리아 여왕이 차분 기관의 시연을 지켜보고 한 말이 있다. “짐은 즐겁지 않소.” 빅토리아 여왕은 에이다와 공통점이 좀 있었지만 둘은 서로 잘 지내지 못했다. 관심사가 달랐던 것이다.

 

에이다는 아버지 쪽에서 시적 기질을 물려받았고, 어머니 쪽에서 수학적 기질이 나왔다. 이 때문에 그녀는 시적인 과학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아버지 바이런은 기계 방직기를 부순 러다이트를 옹호했지만, 에이다는 천공 카드가 그런 방직기에 아름다운 무늬를 짜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사랑했으며,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이런 경이로운 결함이 컴퓨터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고 상상했다.

*1890년 미국의 허먼 홀러리스가 천공 카드 기계를 만들었고, 이는 1911년 설립된 IBM의 모태가 됐다.

 

이 책은 스물 넷의 나이 차를 초월하여 우정을 나눈 에이다와 배비지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보는 만화와 읽는 재미, 둘의 장점을 멋지게 살린 대작이다. 저자의 열정과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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